[183]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유재원도 만족했다.
케이블 TV와 ISP라는 신규 사업에 투자할 자금은 지금 일본에서 열심히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샌프란시스코나 LA를 기반으로 하는 케이블 TV 업체를 바로 인수해서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유재원은 헨리 사무엘이 가져온 프로토타입 ADSL 모뎀을 컴퓨터에 연결해서 고속 인터넷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ISDN 모뎀도 빠르게 느껴졌는데, ADSL을 쓰니 인터넷이 날아다녔다. 수많은 이미지가 올라온 유즈넷도 바로 열렸고, 3.5인치 디스켓 수십 장 분량의 ID 오피스의 온라인 다운로드도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헨리 사무엘이 통신 기술에 대해 특출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를 보고 넥스트컴 사장으로 스카우트했던 것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원은 ADSL 모뎀을 개발한 헨리 사무엘과 개발팀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인이 개발자였기에, 개발자를 챙겨주는 일은 절대 빼먹지 않는다.
희희낙락한 헨리 사무엘을 보낸 유재원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그러면 나도 몇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네.””
아직 인터넷 세계는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가 많았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은 이제 시작이라서 개인이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 출판 업체나,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사진사, 최신 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 정도에 불과하다. 이미지 품질도 그다지 좋지 않다.
유재원이 빈센트 그린힐에게 꼭 획득해야 할 기술 중에 CMOS나 CCD 같은 걸 선정해서 보내주긴 했지만, 당장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진출할 마음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시장의 순리대로 흘러두는 게 낫다.
그렇지만 ADSL을 가지고 고속 인터넷 회선을 공급하기로 마음먹은 지금은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코덱 개발인가?”
1991년 현재 널리 사용되는 이미지 포맷은 BMP와 PCX인데 매우 비효율적인 파일이었다. BMP는 이미지의 화소 그 자체를 그대로 저장하는 터라 다양한 색상과 높은 해상도를 사용하면 할수록 용량이 커진다. PCX는 그나마 압축을 하긴 하는데,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PC의 그래픽 수준이 VGA라서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32비트 컬러시대는 곧 다가올 거다. 총천연색의 화려한 색감과 적은 용량, 빠른 디코딩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포맷이 필요하다.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높아지면 그림에서 탈피한 동영상까지도 서비스할 수 있어진다.
그렇다고 압축하지 않는 동영상은 무지막지한 용량을 자랑하기에,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제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만드는 게 손실압축 코덱이다. 보통은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이전 프레임의 데이터를 계속 활용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코덱은 동영상의 용량을 최대한 줄이면서 높은 화질을 달성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유재원은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뛰어난 화질과 좋은 속도를 발휘하는 코덱을 많이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유재원의 머릿속에 해당 코덱의 소스코드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그렇다고 21세기 수준의 코덱을 바로 내는 것도 무리겠지.”
물론 속도가 좋다는 건 21세기 수준의 컴퓨터에서 돌렸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 486 DX2 컴퓨터로 활용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코덱들이다.
“그러면 JPG나 MPEG1 정도면 되려나?”
JPG는 이미지용 손실압축 코덱이었고, MPEG1은 동영상용 코덱이다. VGA 그래픽카드에서 돌리기에 적당한 수준의 화질과 해상도였다. 다만 MPEG1 동영상은 486 컴퓨터로는 인코딩은커녕 재생도 매끄럽게 할 수 없을 만큼 버겁다. 최소 펜티엄 컴퓨터 정도는 되어야 부드럽다. 대신 MPEG 재생 전용 칩을 추가하면 486은 물론 386에서도 부드러운 화면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MPEG1에서 파생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MP3였다. 동영상이란 움직이는 화상뿐만이 아니라 음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음성 역시나 손실압축 기법으로 압축하는 것이 MP3였다.
MP3 이전에는 MP2라는 것도 있었는데, 음질과 압축효율 등이 더 좋은 MP3로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MP2 같은 건 유럽에서 한창 개발 중이겠지?”
JPG나 MPEG도 마찬가지다.
기업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연구소에서는 관련 기술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개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알고리즘의 방식을 내야 한다.
당연히 유재원은 마스터플랜을 통해 다 대비한 것들이다. 단지 예정보다 몇 년 일찍 발표하게 되었을 뿐이다.
“당장 두 팔 벌려 환영할 곳은 18금 업체들이려나?”
수십 장의 이미지를 바로 받아볼 수 있을 만큼 인터넷 속도가 빨라진다. 고화질 이미지 코덱과 동영상 코덱도 나온다.
그러면 당장 적용할 회사들이 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내는 성인용 비디오 업체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최첨단을 달려왔다. 그리고 해당 산업을 견인했다.
이들의 힘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는 바로 비디오테이프 표준안 경쟁이었다. 그 유명한 베타맥스와 VHS의 싸움이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치열했다. 테이프의 크기의 크기도 베타맥스가 더 작은데, 화질과 음질은 VHS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결국 시장은 VHS의 승리로 끝났다.
소니가 무척이나 배타적 성향으로 비디오재생기 제조 업체에 라이센스를 쉽게 내주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폭력적인 것이나 선정적인 것을 담지 말아야 한다는 제약까지 걸었다. 결국, 성인용 비디오 업체들은 VHS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베타맥스의 패배가 되었다.
지금 성인 비디오 업체들은 인터넷의 선봉장이 되어, 인터넷의 이로움을 세상에 설파 중이었다.
최상위 DNS 서버를 공짜로 베풀고 있는 넥스트컴이었기에, 성인 동영상 업체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나며 IP를 등록하고 있다는 걸 다 감지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WWW 서비스를 만들고 W3 표준화 협회까지 구성한 팀 버너스리는 유재원과 ID 톡을 하면서 의도했던 건 이게 아닌 데 하는 푸념까지 했을 정도다. 유재원이 성인이었다면 이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여줬을 거다.
유재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인터넷 전송 속도 때문에 동영상은커녕 이미지 파일에 주력하는 중이었지만, 이들 업체의 성장 속도는 무척이나 경이적이었으니 말이다. 업체가 늘어나는 만큼 사용자 숫자도 꾸준히 느는 중이었다.
21세기에도 성인물 시장의 크기는 항상 대단한 규모를 자랑했으니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다. 유재원도 이에 동의했다. 그렇기에 소니가 했던 것처럼 건전한 매체가 되겠다고 성인물을 억지로 금지하는 일은 절대 할 생각도 없었다.
“흠, 유출 영상이라면 제재해야겠지.”
한국의 경우에도 유명한 유출 영상이 있었고, 이걸 보겠다고 사람들이 인터넷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니 불법 비디오가 공유되는 건 확실히 차단할 작정이다.
“게다가 인터넷이 음란물만이 전부는 아니잖아.”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는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을 빼면 서운하지. 멀티플레이 게임도 재미있고, MMORPG도 끝내주는 콘텐츠란 말이지.”
성인용 비디오 업체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땅을 찾아 개간을 한 사람이라면, 개간한 땅에서 폭발력으로 자라난 것은 게임이었다.
게임은 컴퓨터 산업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사람에게서 놀이는 절대 빠질 수 없었고, 놀이는 게임이 되어 21세기를 지배했다. 그래서 유재원도 안드로이드 알파를 출시할 때 게이밍 운영체제로 포장했었고, 그 혈통은 정식 버전인 1.0에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ID 소프트웨어의 존은 비디오카드 개발사들 엔지니어들과 거의 매일 만나면서 글라이드 X2의 완성을 위해 열일 중이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호킨스 사장은 둠의 후속작을 지금 당장 만들면 5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할 정도로 몸이 달았지만, 존이나 유재원은 글라이드 X2 라이브러리가 완성되고, 비디오 카드 제작사들이 3D 가속카드를 내기 전까지는 차기작 개발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ID 소프트웨어의 직원 중 글라이드 X2에 관여하지 않는 이들이 노는 건 아니다. 본격적인 3D 게임 개발을 위해서 관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익히는 중이었다.
글라이드 X2의 완성은 내년 초였으니, 둠을 잇는 제대로 된 3D 게임은 내년 말, 혹은 내후년 초에 나올 거다.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전 세계에서 최초의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임리그가 열린 나라였다. 그것은 피시방이라는 고유의 문화 덕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대중화를 이끈 피시방의 공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동시에 피시방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게임이 두 가지가 있으니, 스타크래프트와 혈맹이라는 게임이다.
“흐흐,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혈맹의 개발자는 내 손에 있지.”
서울 로데오 팀에서 열심히 ID 오피스를 개발 중인 김택수가 바로 혈맹의 개발자였다.
그러고 보니 두 게임 모두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장르로 먼저 나와서 길을 다진 게임들이 있다는 것이다.
혈맹은 최초의 대규모 접속 온라인 게임은 아니었다. 스타크래프트도 마찬가지다.
스타크래프트가 전략게임의 화룡점정을 찍긴 했지만, 그보다 일찍 나와 스타크래프트 개발자에게 강렬한 영감을 심어준 게임도 있었다.
“제목이 듄이었나? 개발사 이름은 버진 게임즈였고?”
듄의 발매연도는 1992년.
즉, 현실에서는 듄이란 게임이 나오기 이전이었지만, 전생의 기억까지 있는 유재원에겐 무척이나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거렸다. 기억의 궁전이 아니었다면 방대한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섞여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을 거다.
“최초의 MMORPG 개발사는 오리진.”
곧이어 유재원은 버진 게임즈와 오리진이란 이름을 쪽지에 옮겨 적었다.
넥스트컴의 헨리 사무엘 사장이 인터넷을 구성할 하드웨어를 책임진다면, 유재원은 고속 인터넷을 타고 다닐 콘텐츠를 책임지는 거다.
“그러면 아예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따로 차려야 하나?”
패키지 게임과 달리 인터넷 기반 게임들은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여러 차례의 확장팩을 통해 계속 콘텐츠가 누적되면서 용량도 엄청나게 크고, 대규모의 사용자들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게 서버 시스템도 잘 갖춰져야 한다.
그러니 ID 테크놀로지의 하부 조직으로 묶어놓는 것보다는 아예 독립된 사업체로 출범하는 게 이점이 클 거다.
뭐가 되었든 기분 좋은 흐름이었다.
반면, 유재원과의 반대편에 있던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다.
일성 그룹의 김혁수였다.
“답 나왔어. ID 그룹이야.”
보기만 해도 띠거운 정보팀장에게서 김혁수는 상상하지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응? ID 그룹? 그게 여기에 왜 나와?”
김혁수가 유력하게 보았던 뒷배는 미래 그룹이었다. 재벌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일어났던 일명 부산그룹 구명운동의 참여에 가장 미지근했던 회사였던 탓이다.
그런데 ID 그룹이라니.
김혁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푸콘 완전 감하합니다~!!!
3월 1일!
삼일절입니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감사하는 날이지요. 덕분에 대한민국 만세도 마음대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