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Command & Conquer =========================
-도와주겠다고?
“네! 찬조연설도 해드리고 TV 광고도 찍어드릴게요. 스케줄만 잘 맞으면 선거 운동도 뛸 수 있고요.”
지른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유재원은 선거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줄줄이 읊었다. 이 정도로 해주는 건 같은 배를 탄 정치적 동업자들이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정치판에서 한 번 딱지가 붙으면 오래간다. 이렇게 열심히 참여했다가 선거에서 망하면 본인까지도 쪽박을 차는 게 정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진짜로?
전명헌은 유재원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만큼 전명헌이 받은 신선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연히 전명헌은 유재원에게 전화할 때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유재원이니 본인이 정치에 참여에 하겠다는 것에 다른 대안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예전에 걸프 전쟁에 대해 엄청나게 정확한 전망까지 했던 아이였으니, 이번 총선에 대한 전망도 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호탕하게 자신의 정치 참여를 지지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선거 운동까지 도와주겠다고 하니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었다.
유재원의 존재감은 한국에선 여전했다.
최근 몇몇 쓰레기 같은 신문이 유재원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기사를 쓰긴 했고, 이에 부화뇌동한 사람들로 약간의 혼란이 있긴 했다. 하지만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는 승승장구 중이었고, 기사에 낚여 해지한 사람들만 커다란 미래 수익을 포기한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베일에 가려져 있던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수익률이 간접적으로 공개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사람들이 관심이 폭증했다.
반면 투자은행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유재원의 뒤를 따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수많은 투자은행은 처참한 수익률을 찍고 있었다. 여기서 수수료 같은 걸 떼고 나면 원금 손실까지도 보는 것들이 상당했다.
극명한 대비였다.
덕분에 한국에선 유재원의 이름이 다시금 높아지는 중이었다. 이런 유재원이 자신의 선거를 도와주면 최소한 측근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쪽박을 차진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붙었다.
“그럼요, 제가 언제 식은 소리한 적 있나요?”
-없지. 암, 없고말고.
유재원이 전격적으로 전명헌 회장을 돕겠다고 선택한 건 그저 친분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전명헌이란 사람은 본인이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불도저 같은 성격이었다. 전명헌 회장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은 ‘임자, 해 봤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 실패부터 예단하느냐는 질책과 동시에 저돌적인 행동력을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선거판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명헌 회장은 총선을 100일 정도 앞에 두고 만든 신생 정당인 통일 국민당으로 30석이 넘는 의석을 가져왔다.
교섭단체 성립을 위한 숫자도 가뿐히 넘기는 건 물론, 국회에서 제법 큰 목소리를 낼 만한 숫자였다. 초반의 큰 성공에 자신감이 더욱 붙은 전명헌 회장은 곧바로 대선까지 도전했다. 하지만 초반의 성공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객관적으로 가망이 없다는 데이터가 계속 올라왔지만, 총선에서의 예상 밖 선전을 믿고 끝까지 완주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찍혀 미래 그룹이 풍비박산이 날까 두려워 정계 은퇴까지 급하게 선언해야 했다. 구심점이자 돈줄이 사라진 통일 국민당도 깨져서 의원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유재원이 주판알을 튕겨서 최대의 이익을 포착한 지점이 여기였다.
전명헌 회장의 추진력을 적절히 제어만 할 수 있다면, 대선에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뽑아낼 비책을 찾아냈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는 전명헌 회장을 적절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최선이다.
“제가 선거 전략도 잘 짜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돼요. 음, 1월 말 중에 시간 좀 되세요? 제가 가서 직접 브리핑해드릴게요.”
그렇기에 유재원은 선거운동만 도와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본인의 발언력과 공적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맞춤형 선거 전략까지 짜 줄 생각이다. 보통의 선거 조직을 꾸린 상태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의 가신 집단까지도 다들 반대만 하고 있으니 유재원이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고맙구나. 나야 언제든 시간을 만들 수 있단다.
전명헌 회장이 반색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생생히 들렸다.
이렇게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은 혈족을 제외하고 유재원이 유일했던 탓이다. 게다가 유재원의 존재감은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을 달리했기에, 백만 대군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든든하기까지 했다.
-아니다. 재원이 너는 회사 일로 바쁠 거 아니겠냐? 이번에 미국 갈 일이 있는데, 샌프란시스코에도 들리마.
몸이 단 전명헌 회장은 역시나 기다리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날아오는 걸 선택했다. 미국 출장 스케줄이 있다고 하니 겸사겸사 찾는 것이겠지만, 엉덩이 무거운 재벌 회장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다! 꼭 가마!
예의상 한 번 해본 말이었지만, 전명헌 회장은 적극적으로 거절했다. 유재원이 다시 한국에 오려면 몇 주는 기다려야 하는데, 본인이 움직이면 며칠 만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빠른 건 전화로 답을 받는 것인데, 도·감청의 위험이 크다는 건 전명헌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이상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알겠어요. 그러면 샌프란시스코에 오시면 연락해주세요. 제가 최근에 구매한 집이 있는데, 그리로 모실게요.”
최근 구매한 집이란 바로 레밍턴 사장에게 결혼 선물로 주려던 저택이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하고, 잔금도 모두 지급한 상태였다. 게다가 인테리어까지 다 새로 해서 구매를 취소할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쓸까 고민했던 유재원은 처음엔 부모님을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미국에서 사실 생각은 없었기에 거절이었다.
결국, 유재원은 ID 그룹 전용의 작은 별장으로 쓰기로 했다. 부모님이 방문했을 때 쓰시라고 내어드리고, 평소에는 회사를 방문하는 귀빈들을 모시는 영빈관이나 우수 직원들 포상으로 사용권을 내주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방침이 잡혔다.
명의도 유재원 개인에게서 ID 그룹으로 바꾸었다. 개인이 가지고 있어 봤자 세금만 잔뜩 나오니 회사 명의로 바꿔서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이익이었다. 어차피 ID 그룹 지분은 덕진국민학교 선생님들께 드린 3주만 빼고 나머지를 유재원이 가지고 있으니 본인의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 그 언덕 집 말이냐? 알겠다. 그러면 있다가 보자꾸나.
“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유재원은 공손히 전화를 끊었다.
전명헌 총회장과의 통화를 마친 후에는 다른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생각할 것이 많았던 탓이다. 물론 왕회장님과의 통화는 만족스러웠다. 적극적인 개입으로 정치권에 친 ID 그룹의 국회의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앞으로의 행보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훨씬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일단 노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임기 말이었으니, 퇴임 후를 준비하기에 바쁜 노 대통령은 정치를 꼼꼼히 챙기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노 대통령의 최대 현안은 제2 이동통신 사업을 어떻게 하면 사돈 기업 선경에 부드럽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덤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알곡을 무사히 지키는 것이 제2의 현안이기도 했다.
“어디 진짜로 그러나 한 번 볼까.”
유재원은 곧 컴퓨터 앞으로 가서 넥스트컴 한국 사이트로 접속했고, 가장 즐겨 사용하는 뉴스 페이지로 곧장 이동했다.
확 달라진 페이지가 유재원을 반겼다.
예전에는 카테고리의 구분 없이 그냥 글 번호와 제목이 나란히 표시되어서 뒤죽박죽이었던 뉴스 페이지였다. 지금은 마치 21세기 포털의 뉴스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각 섹션이 구분되었고, 가장 중요한 기사는 제목이 크게 강조되며 본문의 중요한 내용이 제목 밑에 함께 나타났다.
뉴스를 올리는 건 아직도 수작업이다. 대신 수작업을 할 때 기사의 중요도나 속성을 나타내는 여러 태그를 붙이면 서버의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기사를 배치해주는 반자동화가 이뤄졌다.
덕분에 유재원은 간편하게 뉴스 페이지의 날짜만 바꿔가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나 유재원의 예상대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서는 김영삼 총재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애초에 차기 대통령에 가장 유력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 총재였기에, 그 밑으로 조직이 생겨나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 전명헌 회장의 신당 창당에 가장 경계하는 사람은 노 대통령이 아니라 김영삼 총재겠지.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신문 기사를 검토한 유재원은 선거 전략에서 노 대통령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대신 김영삼 총재의 반응과 앞으로 행보에 대해 여러모로 검토하면서 전명헌 회장을 도울 전략을 열심히 생각했다.
“흐흐, 초반부터 고개를 숙이는 건 하수지.”
김영삼 총재는 전명헌 회장을 분명 얕잡아 보고 있을 거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업의 생사가 결정되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정치인들의 밥인 기업인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게 가소롭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3월 총선에서 대박을 터트리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후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총재의 반응을 보면서 대선에 임하면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딱 하나. 전생과 똑같은 루트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왕 회장님이 오시면 이야기하고. 92년도 계획을 다시 점검해봐야겠다.”
92년도에는 할 게 참 많은 해였다.
마스터플랜도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세상에 유재원과 ID 그룹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킬 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총선과 대선 개입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이점 때문에 마스터플랜 역시 변수를 대입해서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유재원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도 많은 탓이다.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라면 당연히 대통령 선거인데,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있다. 재선을 노리는 부시와 무섭게 부상하는 클린턴이 한판 격돌한다.
당연히 유재원은 클린턴에게도 선을 댈 작정이었는데, 작년에 앨 고어가 먼저 찾아와준 덕에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큰 사건은 LA 폭동이 있다. 4월 말에 LA에서 터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재미 교포들의 피해가 무척이나 컸다. 변수가 제법 생겨난 지금은 그 양상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전생에는 사망 1명에 부상자가 46명이 나왔었다. 똘똘 뭉친 재미교포들 덕분에 사건의 크기에 비해 인명 피해는 작았지만, 재산 손실은 너무도 컸다.
한인 점포가 1,669개나 털리거나 불에 탔고, 이로 인한 재산 손실이 3억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유재원은 LA 폭동에 사전 개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 불난 것처럼 구경할 생각도 아니었다. 사후 복구 사업을 ID 그룹의 이름으로 지원해서 재미 교포들의 재기를 도울 생각이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일본이 열심히 만들어주고 있으니 아무런 부담은 없다. 또한,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 중에 제일 큰 덩치를 자랑하는 LA였으니, 이들은 나중에 유재원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컴퓨터 분야에서도 빅뱅이 예고하고 있다.
유재원이 주도해서 만든 3D 환경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3월에 있을 안드로이드 1.0의 두 번째 패치를 통해 공개될 글라이드 X2가 그것이다. 3D 라이브러리를 포함하고 있고, 글라이드 X2를 하드웨어적으로 지원할 비디오 카드들이 함께 출시할 것이다.
게임 업체들의 경우 개발자용 버전을 이미 받아서 열심히 만드는 중에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둠의 차기작 둠 2도 개발에 들어간다.
3D 가속 카드를 통해서 486에서도 대량의 폴리곤과 고화질의 텍스처를 사용한 게임이 부드럽게 구동된다.
게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음, 개인적인 일로는 대학교 진학도 있지.”
미국의 학사 일정은 가을부터 시작이라서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워낙 큰일이 많은 해이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키보드를 치는 유재원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지금 정리되는 것들을 문서로 만들어서 저장하는 중이다. 머릿속의 단편적인 아이디어는 글로 옮겨지면서 구체화하였고, 한층 가다듬어졌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텍스트를 바탕으로 훨씬 구체적인 세부 계획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서 작성을 완료한 유재원은 1992라는 간단한 숫자로 파일 이름을 설정하고 저장했다. 물론 최고 수준의 암호를 거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유재원은 ID 톡을 통해 간단한 아침 임원 회의를 마쳤다.
채팅으로 임원 회의한다는 건 다른 기업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일 테지만, ID 그룹은 회사가 막 시작했던 초기부터 인터넷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했던 곳이었다. 대기업이 되었다고 해도, 그때의 기업 문화는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기에 원래 ID 출신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케빈 존슨과 같이 외부에서 수혈된 인물들은 이런 식의 온라인 대화에 무척이나 낯설어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먼 거리에 있는 임원과 회의를 한다면, 회의용 전화기를 사용한다. 그것도 그냥 회선이 아니라 보안 회선으로 연결하고 내부의 소리가 밖으로 빠지지 않는 방음 처리가 된 회의실에서 했다.
뭐가 더 나은 지 딱히 감이 오진 않지만, ID 톡이 무척이나 편리하다는 건 확실히 체감했다. 케빈 존슨의 이러한 느낌은 이어진 유재원과의 1:1 채팅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유재원은 케빈 존슨이 따로 보고할 게 있다고 하자, 전체 채팅과는 별도의 채팅창을 열어서 대화를 수락했다.
임원들이 다 모여 있는 채팅창에선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유재원과 별도의 채팅창이 새롭게 열렸다.
당연히 임원회의를 비롯해 이번에 열린 채팅창 역시 암호화가 이뤄지는 채팅창이라서 외부인이 패킷을 가로챈다더라도 대화의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
“무슨 일이에요?”
유재원의 물음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안드로이드 사업부를 맡은 케빈 존슨은 이때까지 유재원의 지시를 열심히 수행하기만 했지, 본인의 의견을 먼저 밝힌 적은 무척이나 드물었던 탓이다.
-예, 회장님.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인터넷 웹 서비스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청하게 되었습니다.
케빈 존슨의 설명이 시작되고 나서 몇 분 뒤.
“우와! 좋은 아이디어네요.”
유재원이 무릎을 탁 쳤다.
케빈 존슨의 의견은 인터넷 웹 서비스 프로그램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대한 제안이었다. 원래 유재원은 인터넷 웹 서비스를 안드로이드 1.0에 탑재하려고 했다. 그러다 용량이나 용도 때문에 유료 패키지로 선회했다. 그런데 케빈 존슨은 그렇게 하면 수익이 그다지 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사용자 수요는 아직 한정적이지만, 복제 방지 장치는 뚫린 상태라서 실질적인 수입은 미미할 거라는 분석을 담은 ID 스프레드시트 파일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아예 인터넷 웹 서비스를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1.0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제안 드립니다.
케빈 존슨의 대안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업용 버전인 엔터프라이즈였다.
멀티 코어 지원, 대용량 메모리 지원, 새로운 파일 시스템과 같은 신기능을 위해서 운영체제 커널 패치도 당연히 해야 했다. 여기에 인터넷 웹 서비스가 기본 번들로 함께 포함해 놓으면 기업용 운영체제라고 선전하기에 딱 좋은 제품이 나온다.
물론 파편화를 막기 위해 커널의 기능은 모두 같아야 한다. 그러니 멀티 코어 지원이나, 대용량 메모리 지원 등의 차세대 기능 역시 3월에 배포될 패치에 포함될 것이다. 대신 지원되는 숫자에 약간의 차등을 주면 개인용과 기업용을 구분하기에 딱 좋다.
유재원은 간단히 생각했을 때에도 그냥 인터넷 웹 서비스를 별도의 패키지로 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익이 날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개인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지금처럼 애드웨어, 혹은 10달러의 가격을 유지하고, 기업용으로 만든 엔터프라이즈는 개당 120달러부터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다. 기업 버전의 옵션으로 운영 중 장애가 발생하면 최고의 엔지니어를 파견해 해결해주는 보증 서비스도 적당한 가격에 넣으면 그야말로 완벽하다.
“좋아요. 그럼 만들어보죠.”
인터넷 웹 서비스를 비롯해 차기 패치에 들어갈 기능은 벌써 반은 완성된 상태였다. 이걸 다 합쳐 놓으면 엔터프라이즈 버전이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이고, 인터넷 웹 서비스만 제거하면 개인용이다.
-헉, 바로 결정하십니까?
“그럼요. 여기서 더 생각해 볼 게 있나요. 완성된 아이디어는 바로 실행해야 하는 법이죠.”
거대한 기업들이 작은 벤처 기업들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 종종 있다.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탓에 시급한 사안을 놓쳐 버리기도 하고, 명백히 잘못된 결정인데 윗선의 결정이라고 무턱대고 실행하기도 한다.
유재원은 그러한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 ID 톡으로 최대한 슬림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라면 바로 실행한다. 이렇게 해서 안드로이드 엔터프라이즈 버전 출시는 이날로 확정되었다.
이후로도 매일 같이 바쁜 나날이 며칠 반복되었다. 그리고 1월의 두 번째 주말. 예고했던 귀한 손님들이 유재원의 새집을 찾아왔다.
전명헌 미래 그룹 총회장이었다. 홀몸은 아니었다. 유재원도 이동할 때, 자동으로 따라붙은 수행원이 4명이나 된다. 운전기사 한 사람, 경호원 두 사람 그리고 수행비서인 김대석이었다.
하물며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최대 재벌인 미래 그룹의 총회장의 장기 출장인데 수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은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엔 수행원의 구성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평소 전명헌 회장을 수행하는 비서진은 당연했고, 미래 증권의 김익치 사장, 최재수 구조조정본부장, 김윤구 미래건설 사장 등의 가신 집단이 모두 있었다. 심지어 전명헌 회장의 신당에 참여할 거라고 유력시되는 정치인도 있다.
전명헌이 유재원에게 품고 있는 기대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선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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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리플을 보니 독자님들의 EA에 대한 지탄과 성토가 하늘에 닿았음을 느낄 수 있었네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급 게임 인수해서 싸그리 망가뜨린 EA는 공공의 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EA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군요.
암튼, 1992년이 파란의 연속이라는 건 연대표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네요. 연초부터 총선이라는 빅이벤트가 곧장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번에도 신나게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