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9화 (199/1,007)

[199] Command & Conquer =========================

환호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전명헌 명예회장은 후보 지지연설을 시작했다.

정치인으로 사는 삶은 최근 두 달이 전부인 전명헌이었다. 발성이나 시선 처리, 즉흥적인 연설 등 정치인의 기본스킬은 너무도 부족했다. 지금도 참모들이 만들어준 연설문을 보고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여의도에 모인 지지자들은 전명헌 명예회장이 무슨 말만 하면 크게 환호했다. 전명헌이라는 연호가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지자들 사이에는 쇳가루 날리는 느낌으로 목이 쉰 것 같이 목소리도 여러 명 있었다.

덕분에 분위기도 점점 뜨거워졌고, 이런 분위기를 탄 전명헌 명예회장의 말주변도 좋아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서 드디어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통일 국민당이 내건 파격적인 경제 공약들이 쏟아지는 부분이었다.

경제라면 본인이 수십 년 종사했던 분야였기에 자연히 목소리도 훨씬 커지고, 발성도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경제 분야 공약을 말하던 전명헌의 시야에 전환사채가 들어왔다.

“본인이 재벌 청산을 말하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나를 모르는 자들의 헛소리입니다. 본인이 그쪽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수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뒤에서 전명헌의 연설을 듣던 참모들 사이에 ‘아’하는 탄성인지 아니면 한탄이 나왔다. 어쩌면 체념일지도 모른다. 즉흥 연설로 워낙 큰 사고를 많이 친 탓에 원고에만 집중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런 말이 먹히면 전명헌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재벌들이 사회공헌을 한다고 공익재단이라는 걸 많이 만들었지요. 그런 공익재단 중에 우리 미래 꿈나무 동산 말고 제대로 활동을 하는 곳이 없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큰돈 들여 공익재단을 만들면 절세 혜택도 받을 수 있고, 재단 이사장 자리만 물려주면 상속세 안 내고도 재산을 물려준 것과 같은 것이지요. 통일 국민당이 국회에 입성하면 원래의 취지를 무시하고 법을 악용하는 폐단부터 확실히 끊어버리겠소이다!”

잔뜩 상기된 전명헌은 아예 원고에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업계(?)에 있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내부고발이나 다름이 없는 폭탄이 터진 것이었기에, 전명헌 명예회장을 찍고 있던 사진 기자들과 영상 기사들이 열심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역시 전명헌이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돌 극성 팬 저리 가라 하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이 맛에 저도 모르게 중독된 전명헌은 일부러 파격적인 공약을 열심히 내던지면서 유세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사실 낡은 수법이지요. 요즘 최신 동향은 무엇이냐? 바로 CB라는 것입니다.”

드디어 전환사채가 언급되었다.

“CB라는 건 말입니다. 회사가 돈을 빌려줄 때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대신 만기 때, 원금에 이자를 좀 보태서 돌려주는 일반 채권이 아니라, 자기 회사 주식으로도 받아 갈 수 있는 옵션이 붙어있는 특수한 채권이지요. 말만 들어보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 액면가와 시가의 차이를 일부러 크게 만들 때 문제가 됩니다. 500원을 회사에 빌려주고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받았다 칩시다. 그런데 그게 주식시장에서 1만 원에 거래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거래 한 번에 20배의 수익을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누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수법이 있다고 알려준 사람 있습니까? 통일 국민당 전명헌이 유일할 겁니다.”

드디어 전환사채까지 언급되었다.

덕분에 이번엔 반응이 전과 다르다. 지지자들뿐만이 아니라 전명헌 명예회장을 전담해 취재하고 있던 기자들도 탄성을 낸 탓이다.

조건 없는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과 달리,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기자들이었다. 게다가 교육 수준도 좋아서 전명헌 명예회장이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전환사채라는 걸 이용해서 재벌들이 부의 세습을 하는 메커니즘을 바로 이해했다.

탄력을 받은 전명헌은 이어서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대기 중이던 참모 하나가 뭔가 귓속말을 받더니, 바로 연단으로 올라와 전명헌에게 다시 전달해줬다. 고개를 끄덕인 전명헌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통일 국민당 지지를 선언한 우리의 희망 유재원 군이 지지 연설을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딱 10분만 기다리면 됩니다.”

와아아!

유재원! 유재원!

전명헌 명예회장의 말에 재벌 성토장이 되었던 여의도가 다시금 후끈 달아올랐다. 유재원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전명헌 명예회장이 예고했던 시간의 2배는 더 기다린 끝에 유재원이 탄 그랜저 자동차가 여의도에 도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건 거의 30분쯤 전이었는데, 서울의 열악한 도로 사정 탓에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전명헌 명예회장은 유재원을 환하게 반기며 포옹까지 했다. 그리곤 한 손을 번쩍 잡고 연단에 함께 올랐다.

그 모습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열심히 찍었다. 재미있는 점은 취재진의 숫자가 전명헌 명예회장이 처음 연단에 올랐을 때보다 3배는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매스컴에서도 사람들이 나와서 열심히 찍었다.

이날 한국 공중파의 9시 뉴스 첫 꼭지는 모두 유재원과 전명헌의 여의도 랑데부였다. 두 번째 꼭지 역시 둘의 이야기였는데, ID 인베스트먼트의 20억 달러 한국 투자 혹은 전명헌 명예회장의 재벌편법 상속 고발이었다.

그날 저녁.

“이것들이!”

최현희 일성 그룹 회장의 서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서 분노가 가득한 소리가 터졌다.

최현희가 보고 있는 건 일성 그룹의 새로운 CI가 선명하게 찍힌 대형 텔레비전이었다. 정확하게는 그 텔레비전이 보여주고 있는 9시 뉴스였다.

겁 없는 애송이 유재원과 노망이 단단히 든 전명헌이 두 손을 맞잡고 번쩍 들면서 수천 명의 환호를 받는 장면이다. 바로 오늘 여의도에서 있었던 통일 국민당 후보 지원 유세에 대한 내용이 방송 중이었다.

지원 유세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최현희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것은 유세 내용이었다.

공익 재단을 이용하는 것을 고발한 것도 문제였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은 전환사채였다.

일성 그룹이 전환사채를 이용해 상속을 준비하고 있던 건 그야말로 극비였다. 그런데 그걸 전명헌이 어떻게 알았는지 실행하기도 전에 대중에게 까발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법적인 제재까지 하겠다고 했다.

웃기는 점은 재벌들을 비판하는 전명헌 명예회장이라고, 깨끗한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늘 여의도에서 전명헌 명예회장이 자랑스럽게 떠든 미래 꿈나무 재단이라는 것도 전명헌의 자식들이 이사장을 거쳐 가던 자리였다. 당연히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편의를 받기도 했고, 재단의 재산을 물 쓰듯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깨끗한 척하며 같은 재벌을 공격하는 건 일성 그룹과 최현희 회장에겐 기가 찰 일이다.

재벌들이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던 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힘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챙겨주고 원하는 것을 받아내면 그만이었다.

미래가 아무리 많이 뜯겼다고 해도 엄청나게 특출한 케이스는 아니다. 일성은 물론 다른 재벌들도 비슷하게 뜯겼다. 하지만 뜯긴 만큼 반대급부로 큰 보상을 받았다. 빼고, 더하고 나면 얻은 게 훨씬 크다.

뜯겼다는 것 하나 때문에 발끈해서 해선 안 될 말을 내뱉고 저질러선 안 될 일을 저지른 전명헌 회장은 최현희 회장이 보기에 노망이 난 늙은이 그 이상도 아니었다.

“유재원, 이놈은 또 뭐고?”

더욱 열이 받는 건 전명헌 회장만 날뛰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재원까지 나서서 전명헌을 부추기고 있었고, 동시에 막대한 자금으로 일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낮부터 일성 그룹 일부 계열사들의 주가가 상한가를 쳤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그것도 전자, 건설, 물산과 같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계열사들이 치솟아 올랐다. 한국의 주식 시장이 작긴 해도, 덩치가 있는 무거운 주식들이라서 하루 3~4%의 등락이 나오면 많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숨에 15%가 상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물이 쏟아져도 상한가가 깨지지 않았다. 대량으로 매집하는 세력이 나타났다는 증거였다.

최현희를 비롯한 일성의 수뇌부들은 ID 인베스트먼트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건 딱 하나.

투자 시점이다. 보통 투자회사들의 투자 발표와 실제 투자가 이뤄진 시점이 일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발표 이전에 매입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아니면 발표한 후 한참 뒤에 이뤄지기도 했다.

괜히 발표 시점과 맞춰 매입하면 쓸데없는 프리미엄이 껴서 돈만 더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제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발표를 보고도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진 않았다.

먼저 매입하고 발표하는 것이라면, 대주주 지분에 변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참 뒤에나 투자가 이뤄질 줄 알았는데, 바로 오늘 전격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 일성의 주요 계열사 주식을 싹쓸이했다.

“얼마라고 했지?”

김혁수가 올린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보는 최현희다.

화가 잔뜩 난 탓에 보고서의 작은 숫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안경을 꺼내 쓴 후에야 바로 숫자를 읽을 수 있었다.

1,200억.

오늘 하루만 일성 그룹 계열사 주식을 1,200억 원어치나 사들였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오늘 주식을 매입할 때 ID 인베스트먼트가 활용한 거래창구가 일성 증권이었다는 이야기다. 증권 매입 자금으로 한화로 1조5천억 원을 보란 듯 예치했으니, 어제 발표했던 것과 완벽히 일치했다.

ID 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어제 발표에서는 저평가된 우량주를 사겠다고 했고, 오늘 김포국제공항 기자회견에서는 음해에 대한 조사 그리고 건실성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빈센트 그린힐이라는 사람 그 옆에는 유재원이 있다. 미친 듯 날뛰는 전명헌 옆에도 유재원이 붙어 있다.

의도가 분명히 있다.

최현희 회장 역시나 노련한 경제인으로서 유재원의 의도를 읽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예전 김&정 법무법인 개업식 때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칙하면 자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최현희의 인생에서 그때처럼 직설적인 경고를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저 어린아이의 치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하루에 20억 달러를 동원할 수 있는 존재가 어떻게 애송이란 말인가. 최현희가 유재원을 떠올릴 때 늘 따라붙었던 애송이라는 수식어도 이 순간부터 떨어져 나갔다.

더욱 가공할 이야기는 20억 달러가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건 간단한 암산으로도 충분히 계산할 수 있는 문제였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작년 가을부터 일본 닛케이 지수 선물에 3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떠들썩했으니 말이다.

분명 하락에 배팅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지 소동에서 50%에 이르는 수익률까지 보태서 내줄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약정 기간 내의 해지라서 페널티를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러면 원래의 수익금보다 적게 받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일성 증권의 경우 중도 해지의 경우 대략 80%에 이르는 페널티가 부과된다. 1년 만기 이자가 15%짜리 투자 상품을 중도에 해지하면 3% 정도의 이자만 쳐주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계산하면 대충 ID 인베스트먼트의 닛케이 투자 수익률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보통의 성공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성공이었다.

원금이 30억 달러이니, 현재 15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챙기는 중이라고 봐야 했다.

“제대로 계산한 건가?”

셈이 밝은 최현희도 너무도 커다란 숫자에 순간 계산을 잘못한 줄 알고 검산을 다시 해봤다. 하지만 두 번의 계산에서도 어김없이 같은 값이 나왔다.

원화도 아니고, 귀하디귀한 미국 달러였다.

150억 달러.

현재 1달러당 740원 수준인 한국 원화로 바꾸면 11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작년 국가 예산이 40조 원 조금 못 미치는 규모였는데, ID 인베스트먼트 혼자서 1/4을 책임질 수 있다.

일성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일성 그룹 계열사들의 모든 순이익을 합쳐봐야 1조 원이 겨우 넘는 수준인데, ID 인베스트먼트 하나로 11조 원을 찍어버린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단 한 번도 꿀린 적 없었던 최현희는 이 순간만큼은 지독한 패배감을 맛보았다.

물론 이런 최현희의 계산은 살짝 과장된 것이긴 했다.

닛케이 지수 투자를 통해 부풀린 ID 인베스트먼트의 총자산은 107억 달러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150억 달러도 찍을 것 같지만, 실무를 진행하다 보면 여러 한계로 인해서 투자나 이익의 규모가 작아진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최현희 회장은 다시금 화가 폭발했다.

“김혁수! 이 자식, 당장 잡아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최현희는 인터폰을 들고 소리쳤고,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내리치듯 끊어버렸다.

ID 인베스트먼트에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면서 일을 꾸며보겠다고 했던 자가 김혁수였다.

김혁수를 오랫동안 최측근으로 두고 있던 최현희는 바로 감을 잡고 고개만 끄덕거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온 게 ID 인베스트먼트 해지 소동이었다. 처음엔 통쾌한 느낌도 들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뒤집히고 말았다.

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일이 너무도 켜져서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할 지경인 최현희 회장이다.

-유재원, 길거리 유세에 1만 명 모여!

-보통 정치인과는 다른 풍경, 젊은이들이 다시 뭉쳤다.

-서울에서 통일 국민당 광풍 분다.

유재원이 유세 지원을 시작한 지 딱 하루가 지났다.

주로 다녔던 지역은 통일 민주당이 제일 취약한 서울이었다. 울산과 충청과 같은 지역은 탄탄한 지지도를 바탕으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었지만, 서울은 여당에도 밀리고, 야당에도 치이는 지역인 탓이다.

최강욱 비서실장이 책임지고 3일에 한 번씩 하는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면, 지방에서는 26명의 후보가 당선이 확실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서울은 겨우 3명이었다.

그래도 전생에 통일 국민당이 달성한 성적보다 5명은 더 많은 수치였다. 아무래도 유재원이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고, 전명헌이 전생과 달리 훨씬 더 적극적으로 유세 활동을 하면서 5명이 더 플러스 된 것이다.

“세 곳이나 뒤집었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조금 전 받은 여론 조사에서 3개 지역에서 골든 크로스가 일어났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입국한 후에 제일 먼저 찾아갔던 여의도를 포함하는 영등포구와 충청과 강원도의 지역구였다. 특히 영등포구의 경우에는 이전 여론 조사에서는 4% 차이로 뒤진 상태였는데, 오늘 조사에서는 2%로 앞섰다고 나왔다.

오차범위 내의 차이였기에 확실히 앞섰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추세를 보자면 확실한 상승 세였다.

무엇보다 유재원의 유세 참여는 어제부터 시작한 것이기에, 여론 조사에 제대로 반영된 건 아니었다.

유세와 광고 등의 효과가 밑바닥까지 퍼지는 데 시차가 있었으니, 투표 하루 전에 하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그 효과가 확실히 나타날 것이다.

당연히 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오늘 받은 여론조사뿐만이 아니라, 유세 현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민심을 직접 느껴본 유재원은 컴퓨터를 동원해 분석하지 않아도 전생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기에 유재원은 오늘도 열심히 유세 활동을 할 채비를 시작했다.

준비물은 본인의 몸뚱이와 좋은 정장 한 벌로 끝이다. 연예인처럼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세팅하고 준비된 옷을 입으면 끝이다.

오늘도 하루 8탕을 뛰는 과도한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체력이야 넘쳐나는 나이었기에 활력이 넘치는 유재원이었다.

그날 저녁.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지원 유세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배웅을 나온 이에게 인사를 하는 유재원이다. 온종일 마이크를 잡고 움직였지만, 목소리나 행동에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 배웅을 나온 사람도 그걸 부럽게 보면서 입을 열었다.

“뭐,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자네가 다 수고했지.”

역시 본인보다 유재원을 더 치켜세웠다.

그 모습에 유재원은 상대를 새롭게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의 배웅을 위해 나온 이는 보통의 후보가 아니고 전명헌 회장의 6남 전재준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비 70원과 월드컵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전명헌은 전재준의 두 형에겐 건설과 자동차의 사장 자리를 맡겼지만, 전재준에겐 미래 그룹에 정식 직책을 맡기진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신당을 창당하면서 통일 국민당의 가장 확실한 텃밭인 울산을 내주었다.

확실한 텃밭을 받은 탓에 본인의 선거운동은 가족이나 측근에게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와 다른 사람들의 선거 운동을 해주고 있다.

전재준을 처음 만났을 때, 유재원은 살짝 긴장하긴 했다. 전생에 보았던 전재준은 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미래 그룹의 로열패밀리들이 보기에 전명헌과 너무도 가까이 지내는 자신이 굴러들어온 돌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전재준이 자신을 보는 눈빛엔 약간의 호감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를 좀 오래 나눠봐야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일정이 바빠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그래도 오늘만 보고 말 사람은 아니었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네, 그럼 내일…….”

‘보겠습니다’라고 해야 했는데, 유재원의 말은 다 끝나지 못했다.

“회장님! 큰일입니다!”

차 안에서 카폰으로 전화를 받고 있던 김대석이 큰일이 났다고 다급히 외쳤기 때문이다. 진짜로 뭔가 큰일이 터진 듯 크게 당황한 표정의 김대석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군대가 난립니다. 국군기무사가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하고 있다고 이지문 중위이라는 사람이 양심선언 중입니다.”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과 전재준, 두 사람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런데 비슷한 표정은 아니었다. 전재준의 경우 벼락을 맞은 것처럼 얼굴이 사색이 되었지만, 유재원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정확하게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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