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로열로드 (王道) =========================
며칠 후.
유재원은 오랜만에 덕진리에서 나와 외부 스케줄에 나서는 중이다. ID 그룹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유재원 일행의 규모는 엄청난 규모였다.
평소라면 유재원이 탄 자동차에 경호원이 함께 탔으니 한 대로 끝이었다. 오늘은 최강욱 비서실장이 직접 유재원과 동행했고, 수행원도 추가되어서 경호원들은 따로 자동차 한 대가 추가되었다.
그래 봐야 2대지만, 실제로 유재원의 뒤를 따르는 자동차는 6대가 넘는다.
“누가 보면 회장님이 미래 그룹 후계자처럼 보겠습니다.”
최강석 비서실장의 말이 지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유재원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이들은 유재원의 직원이 아니라 미래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미래 건설, 미래 자동차, 미래 전자 그리고 미래 중공업까지. 미래 그룹의 핵심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유재원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렇게 규모가 커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유재원의 스케줄은 바로 대전 방문이었다.
대전에는 93년 가을에 개막할 세계 엑스포 공사장이 있다. 이미 터파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제 체험관과 전시관 등을 열심히 지어 올리는 중이다.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도 기초 공사를 끝내고 본관 건물을 올리고 있다. 전시관의 이름은 ID 테크노피아랜드였고, 규모는 엑스포 참여 기업 중에서도 가장 컸다. 시공사는 당연히 미래 건설이었다.
오늘 유재원이 현장 점검할 첫 번째 스케줄이 바로 대전의 ID 테크노피아랜드였다.
ID 그룹이 미래 건설의 가장 큰 거래처는 아니었지만, 미래 그룹의 창업자 전명헌과 더는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다. 심지어 총선에서 전명헌의 신당 통일 국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 못 할 일이었다. 그런 유재원이 직접 건설 현장을 방문하는데, 미래 건설 사장이 따라나서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미래 전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 불과 몇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미래전자의 제2 반도체 공장이 있다. 당연하게도 대전에 온 김에 미래 전자 제2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미래 전자의 2대 대주주는 유재원이었기에 미래 건설 사장보다 더 긴장했다.
자동차와 중공업은 직접 따라올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미래 자동차 사장은 엑스포에 미래 자동차 전시관이 있으니 설명을 해준다고 따라왔다. 중공업의 경우 목포 미래 조선소에 억지로 스케줄을 만들어서 덤으로 붙었다. 모두 유재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그만큼 유재원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그런 큰일 날 소리는 넣어 두세요.”
유재원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쓸데없이 후계자 싸움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유재원이었다.
“이미 휘말리신 거 같습니다만.”
최강욱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엑스포 공사장 입구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는데,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아, 또 귀찮게 됐네요.”
한국에서 기자들과 어울려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는 유재원이었기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 즐기는 게 최고라고 누군가 말했다. 말이 쉽지 실제로 해보는 건 어렵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분명 해보지도 않고 듣기 좋으라고 한 게 틀림없다고 유재원은 확신한다.
이번의 경우도 한두 사람 정도면 모를까 수많은 기자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기자들이란 사람들은 똑같은 사건 하나를 보고도 자기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별의별 해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도 분명히 미래 그룹 사장단들이 유재원에게 줄을 대려고 구름처럼 따라다녔다고 쓰는 기자가 분명히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재원의 걱정을 읽은 듯 최강욱은 짐짓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최강욱의 설명은 간단했다.
이미 수많은 언론사에서 ID 그룹에 대한 구애가 시작된 지 한참 되었다고 한다. 유재원이 집행한 광고비의 단맛을 톡톡히 본 신문사를 시작으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은 거의 모든 발행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단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결재를 처리하는 유재원이었기에, 그런 적이 있나 돌아보려면 기억의 궁전으로 들어가 봐야 했다. 즉, 지금 당장은 떠오르는 게 없다는 이야기다.
유재원이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자 최강욱이 부연해 설명했다.
“전에 일성이 광고를 빼면 그 자리에 ID 그룹의 광고를 2배로 집어넣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제야 유재원의 표정이 알겠다는 듯 바뀌었다.
김&정 법무법인이 생기기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해당 사안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되고 있던 것 같다.
분기마다 마케팅 비용이라고 1억 달러 정도를 쓰는데, 한국에는 대략 2, 3천 만 달러 정도가 배정된 것 같다. 광고 집행 예산이 남아돌기 시작하니 최강욱은 좀 더 적극적이 되어서 일성이 빠지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일성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루만 제 자리에 앉아 있으면 기자들 얼굴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니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기자들로부터 청탁 전화가 그렇게도 많이 온다는 것이다.
취업 청탁은 기본이고, 광고 좀 달라고 징징거린다거나 컴퓨터 좀 지원해달라, 해외 출장을 나가게 됐는데 지원 좀 해달라는 식이란다.
“해줄 수 있는 건 해줬습니다.”
놀랍게도 올곧은 최강욱 비서실장이었지만, 기자들의 청탁 중 들어줄 만한 것들은 들어 주었다고 한다. 거절은 오직 취업 청탁과 유재원과의 인터뷰 정도이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해 주었다.
ID 그룹은 한국 최고의 인기직장으로 급부상했다. 기본급도 높았고, 연말 보너스도 파격적이었다. 다 합하면 대기업 2, 3년 치 연봉이 1년 만에 나오는 것과 비슷했으니 꿈의 일자리로 바뀌었다.
신규채용 청탁을 확고히 거절한 건 유재원이 채용에 있어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능력이다.
ID 테크놀로지가 처음 채용을 했을 때, 인터넷에 공개했던 것과 비슷한 문제가 지원자들에게 보내진다. 그걸 풀지 못하면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입사는 어렵다.
쓸데없는 인터뷰도 당연히 거절이다.
인터뷰에서 좋은 질문이 나오면 유재원도 좋은 일이지만,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 질 좋은 질문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수천만 원짜리 전면 광고보다 기자 집에 컴퓨터 한 대 보내주는 게 훨씬 효과가 좋더군요.”
최강욱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재원은 최강욱을 탓하지 않았다. 이건 21세기에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이익을 신문기사로 보답하는 건 전통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회장님의 위상도 불과 1년 전과 차원이 달라지셨습니다.”
최강욱은 1년 사이 유재원이 이뤄낸 업적에 대해 말했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 공대 합격을 시작으로 안드로이드 1.0의 성공적인 런칭, 뉴 에그의 전 세계적인 흥행, 김&정 법무법인으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영향력, 이제껏 쉬쉬했던 정신대 문제의 본격적인 개입, 통일 국민당의 대선전, 마지막으로 일본의 경제 위기를 이용한 200억 달러의 투자 수익까지.
듣고 있는 유재원이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된 두 개의 요소가 미래 그룹 사장단과 기자들이 유재원을 쫓아서 대전까지 내려오게 한 것이었다.
원내 제3당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 전명헌 명예회장의 통일 국민당이다. 이젠 명예회장님보다 의원이라고 불러주는 게 더 자연스러운 전명헌은 무슨 마법을 부렸던 걸까?
유재원에게 장담했던 대로 법사위원회, 건설교통위원회를 가져오셨다.
동시에 제14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전환사채, 주식전환사채를 이용한 편법 상속을 금지하는 법률과 전국의 낡은 건물,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공공시설물과 사업장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하는 대규모 점검단을 구성하는 법률을 발의했고, 심지어 통과까지 시켰다.
전환 사채의 경우 보수적인 여당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거부했지만, 야당과 협력했고, 안전진단 점검의 경우 국회 다수의 동의를 얻어냈다.
예전에는 별다른 입법도 못 해보고 흐지부지 사라졌던 통일 국민당이 이제는 국회에서 캐스팅보트가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통일 국민당을 만든 건 전명헌이지만, 44석이란 의석을 만든 건 유재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전명헌을 움직여 전환사채 규제 강화, 안전점검단 조직과 같은 강력한 법을 만들게 한 것도 유재원의 제안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가져온 200억 달러라는 무지막지한 자금은 사람들을 놀라 자빠지게 만들었다.
특히 다른 나라도 아니고 앙숙이나 다름이 없는 일본에서 그 막대한 수익을 낸 것 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상급 경제력으로 주변국에 오만하게 굴던 일본에 한 방 먹여준 것도 통쾌하게 생각했다.
여기에 유재원은 기름을 부었으니, ID 인베스트먼트의 제2차 투자상품 청산일을 3개월 일찍 당겨 7월 초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예정보다 2개월이나 일찍 무너져버린 탓에 투자금 운용도 일찍 끝나버렸다.
적잖은 돈이라서 3개월을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 수익이 수백억 원 정도는 나오지만, 회계 업무도 만만찮은 작업인지라 일찍 청산하기로 결의했다.
유재원이 한국에서 했던 그 어떤 사업보다 더 큰 파급력이 뿜어졌다.
1차 때처럼 88배의 수익이 터진 건 아니었지만, 그때는 참여자가 극소수였다. 이번 2차 투자는 한국에서 모금된 금액만 무려 수천억 원이 가뿐하게 넘었다. 몇백만 원 수준의 투자도 있었고, 수억 수십억을 투자한 사람들도 있었다.
워낙 뜨겁게 몰린 탓에 언론에서는 과열된 게 아니냐는 말부터, 혹여 투자 실패라도 하면 대한민국 최대의 사기극이 될 것이라는 악담을 퍼붙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ID 인베스트먼트의 제2차 투자 상품을 산다고 주식도 팔고, 적금도 깨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던 탓이다. 은행과 증권사에서 뱅크런이 일어난 듯 돈이 빠져나가니, 이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투자한 이들은 마음을 졸였고, 경쟁자들은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뚜껑이 열렸고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무려 600%가 넘는 수익률을 자랑하는 초대박이 터졌다.
물론 투자 운영비와 수수료 등을 다 떼고 나면 수익금이 조금 줄어들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1억을 투자한 경우 통장에 6억이 찍혔으니, 통장을 받는 사람마다 환호가 터졌다.
당연히 투자자들과 언론에서는 ID 인베스트먼트가 언제 제3차 투자자 모집을 언제 시작할지가 초유의 관심사가 되었다.
두 번의 성공을 본 사람들은 3차 투자자 모집이 시작되면 적금만 깨는 게 아니라 집이라도 팔아서 투자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저기 진을 치고 있는 기자 중에도 분명 이런 질문을 하려고 벼르는 사람이 최소 반 이상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나머지 반은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현금 뭉치에 대한 운영 계획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다.
일성 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투자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서 일성 그룹 전체가 난리였고, 최현희 회장은 본인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순환출자구조를 점검하고 강화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는 중이다. 그렇지만 순환출자는 법으로 엄격히 규제가 되는 사안이라서 골머리라고 한다.
순환출자를 막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얻는 이익은 주주의 몫이었다. 그러니 주주에게 균등히 분배하는 게 자본주의적 논리에 일치한다. 그런데 순환 출자는 주주 전체의 이익이 아닌 특정한 지분을 가진 자들, 재벌들의 이익만 대변한다.
순환 출자를 강화하기 위해 자사 주를 매입할 때 회사의 잉여자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배당으로 내려가야 할 돈이 낭비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자사주를 매입해서 하는 건 소수의 지분을 가진 이들의 경영권과 이익의 보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은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해서 일성의 지분을 획득했다. 그렇게 막대한 지분을 통해 이사회에 참석했고, 강력한 회계조사를 통해 비리를 찾아내 횡령과 배임 등으로 고소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털리고 있는 건 규모가 작았던 제일 섬유였고, 일성 건설, 일성 전자가 뒤를 기다리고 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해당 계열사 임원들의 동요가 심각하단다. 자신들이 얼마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다녔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예전엔 일성의 힘으로 무마하고 쉬쉬할 수 있었지만, 자본력과 영향력에서 차원이 다른 유재원의 등장으로 인해 불문율이 붕괴하는 중이다.
유재원의 영향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성이나 선경 등등 다른 거대 재벌들의 공포감도 거대했다. 200억 달러의 수익금을 국내로 돌리면 일성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재벌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벌들의 동향을 설명하는 최강욱의 목소리는 너무도 경쾌했다. 아무래도 그간 일을 하면서 재벌들과 충돌한 일이 좀 많았던 모양이다.
“흐흐, 쓸데없는 걱정이 많네요.”
유재원이 보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리나 싶다.
200억 달러가 거대한 자금이긴 해도, 무한대는 아니다. 그 귀한 자금을 재벌들 겁주는 데 낭비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유재원이다.
컴캐스트 인수가 있기 때문이다.
헨리 사무엘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컴캐스트 인수전은 아직 공식 발표되진 않고 물밑에서 진행 중이었다.
ID 그룹이 현재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M&A는 일본의 산요 하나뿐이다. 물론 일본에 간 빈센트 그린힐이 주관하고 있는 인수 작업은 산요뿐만은 아니었지만, 산요에 비해 작은 규모인지라 그다지 조명되진 않았다.
컴캐스트 인수는 일본의 산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산요의 전체 인수 가격은 현재 1조 원을 기본으로 놓고 ±1천억 정도에 맞추기 위해 줄다리기 중이었다.
반면 컴캐스트의 협상 가격은 이보다 5배가 큰 5조6천억 원으로 시작되고 있다.
미국 전역에 케이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고, 유료 가입자들이 5백만 명이 넘는 초거대 케이블 TV 기업이다. 워너 케이블의 바로 뒤를 바싹 쫓고 있는 회사로 21세기에도 늘 2등만 하는 회사였지만, 유재원과 헨리 사무엘이 원하는 수준의 전국 네트워크를 구성하기엔 적당한 업체였다.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7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을 한 방에 받는 데 싫어할 이는 얼마 없었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일부 대주주가 가격을 더 높여야 한다고 압력을 넣기도 했고, 미국 정부에서 법률을 검토해야 한다며 제동까지 걸었다.
문제가 되는 건 법률 검토였다.
단순히 ID 그룹이 한국 기업이어서 국가기간산업을 팔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알고 봤더니 케이블 TV 업체가 정보통신 서비스를 하는 게 위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케이블망을 인수해봤자 유선 텔레비전 서비스만 할 수 있지, 인터넷 서비스는 시작도 못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유재원이 법률 전문인 앨런에게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지시한 상태인데, 이게 문제가 되면 컴캐스트 인수는 불발로 끝날 수도 있었기에 아직 대중에 발표는 미뤄진 상태였다.
“아예, 안심하라고 컴캐스트 인수를 일찍 발표할까요?”
차라리 대중에 공개하고 언론의 힘을 받아서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컴캐스트는 신규 투자에 매우 인색했다. 특히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필드 직원들에 대한 투자는 바닥 수준이다.
덕분에 컴캐스트 사용자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넥스트컴 게시판에서 컴캐스트라고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면 온갖 서비스 장애와 불친절한 케이블 가이 때문에 하루를 망쳤다는 글이 수두룩하다.
ID 그룹이 컴캐스트를 인수하고 신규 투자와 인력충원을 대대적으로 해서 거듭날 거라고 한다면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법률 자문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하시죠.”
마음이 급한 유재원이지만 최강욱의 말이 정석이었다. 게다가 그의 말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그 시간만큼 국내 재벌님들의 눈칫밥 먹는 날도 늘어나니 말입니다.”
그렇다.
학교에서 매타작을 당할 때, 제일 마음을 졸이는 순간은 본인이 맞는 순간이 아니라 본인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이다.
최현희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우릴 말려 죽일 셈이냐면서 기겁했겠지만, 유재원이 알 바는 아니다.
“도착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곧이어 최강욱은 유재원의 헤어스타일과 옷맵시를 단정히 잡아주었다. 그리곤 밖으로 신호를 주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자동차의 문을 부드럽게 열어주었다.
차 문이 열리고 유재원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벌건 대낮인데도 플래시까지 터졌다. 이들의 모습은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를 영접하러 나온 열성 팬클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날, 유재원의 대전행 스케줄은 성공리에 마무리 되었다.
벌판에 올라가고 있는 93 대전 세계 엑스포 공사장은 활력이 넘쳤다. 그래봐야 아직은 공사판이지만, 이제 1년하고도 2개월만 더 지나면 한국에서 수백만 명, 아니 천만 명 이상이 몰려올 행사가 벌어지는 자리가 된다.
거기에서도 ID 테크놀로지가 지어 올리는 전시관은 유독 돋보였다. 규모가 다른 회사들의 것보다 2배 규모로 커서 들어서자마자 딱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은 전생에 93 대전 엑스포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왔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본인도 다녀왔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했는데, 생전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처음 보았다.
관람에 딱 3분 걸리는 조그만 체험관을 보자고 30분, 1시간을 기다리는 건 예사였다. 인기가 있었던 대형 전시관의 경우엔 2시간 이상 걸렸다.
오전에 9시쯤 입장해서 오후 5시까지 8시간이나 엑스포 행사장에 있었지만, 대형 전시관을 가본 건 두 곳뿐이었다.
이번엔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전시관들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들어오고, 회전율도 빠른 전시관으로 기획 중이다. 그렇다고 건설비가 엄청나게 늘어난 건 아니다.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건물이 아닌 H빔과 임시 패널로 짓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행사가 끝나면 엑스포 위원회가 장담했던 대로 유지 보수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애물단지가 된다는 걸 아는 유재원은 과감하게 임시 건물로 선택했다.
미래 전자 제2 반도체 공장도 재미있던 곳이었다.
미래 그룹이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공들이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철근하나 빼돌리는 것 없이, 설계했던 그대로, 계획했던 공기에 맞춰 착착 진행 중이었다. 이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년 말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험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미래 전자의 현재 반도체 설계 능력은 아직도 8Mbit DRAM에 머물고 있어서 전망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유재원의 미래지식이 더해진다면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재미있는 건 미래전자 제2 반도체 공사장을 둘러볼 때, 유재원의 바로 옆에서 수행한 사람은 최강욱도 미래 전자 사장도 아닌 미래 중공업 사장이라는 것이다. 미래 그룹 사장단 중에 제일 이력이 많은 그가 짬밥으로 떡하니 핫스팟을 차지했다.
그렇게 해서 사진 몇 장을 찍었고, 그게 다음날 조간신문에 떡하니 실렸으니 그의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스케줄을 마치고, 덕진리의 집에 돌아왔을 때.
유재원은 태평양을 건너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레밍턴이 전해준 전화의 내용은 너무도 신선했다.
“네? 게임기요?”
소니의 정식 제안으로 차세대 게임기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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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까진 더웠는데, 밤이 되고 비가 오니까 추워지네요.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 관리 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