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18화 (218/1,007)

[218] 왕좌의 게임 =========================

○ 왕좌의 게임

유재원이 푸앵카레 정리를 완벽히 증명했다는 소식은 딱 5일짜리 뉴스였다.

사실 이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중이었으니 같은 이슈로 5일이나 후속보도가 이어졌던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파급력도 상당했다. 덕분에 세계의 주류 뉴스에서는 사라졌다지만, 유재원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슈가 진행 중이었다.

특히 수학계의 반응은 상상 초월이었다. 존 내쉬 박사를 시작으로 수학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세계의 석학들이 찾아와서 미팅을 요청했다.

상큼한 여대생의 미팅을 꿈꾸었던 유재원은 나이 지긋하고, 숫자만 아는 어르신들과 미팅만 질리도록 해야 했다. 미팅 때 하는 이야기도 죄다 수학적인 것이었다. 그분들이야 숫자를 다루는 게 재미있으시겠지만, 유재원은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멀리서 찾아오신 분들을 냉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 반대편에서 오신 분은 기본이고 대서양 혹은 태평양을 건너 찾아오신 분도 계셨으니 말이다.

하여튼, 나름대로 꿈꾸었던 캠퍼스 라이프가 있었던 유재원에게 스탠퍼드 대학교는 진득한 배신감만 안겨주고 있다.

“에휴, 내 주제에 무슨 미팅.”

3년은 빠르게 대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포기도 빨랐다.

하긴, 억지로 미팅을 해봐야 누님들하고만 매칭이 될 것이다. 게다가 ID 그룹의 회장이란 직위는 일반적인 미팅은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재원은 본인의 존재감이 스탠퍼드에 완전히 드리워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전생에서 중고등학교는 그놈의 인피니티 드림을 만든다고 말아 먹었고, 대학교는 30대에 입학했던 탓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ID 그룹과 패스트트랙 테스트 때문에 일반적인 미팅을 하기엔 다 틀렸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유재원 본인의 선택인지라 어디에 하소연도 할 수 없었다.

“음! 차라리 채팅 사이트라도 만들어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유재원이다.

미팅 자리가 어색해 죽을지라도, 아무런 성과도 없을지라도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상적인 미팅은 불가능해졌으니, 약간의 편법을 써서 해보겠다는 마음이다.

바로 익명 채팅 사이트다.

ID 톡의 경우 서로의 아이디를 알아야 대화창이 생긴다. 그러니 익명의 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 물론 괴짜가 많은 미국이었기에, 친구추가에서 아무렇게나 아이디를 집어넣어서 익명의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채팅 사이트라고 하니 아이디어가 쑥쑥 떠오른다.

“태그 시스템을 적용하면 좋을 거 같다.”

비슷한 관심사항을 공유하는 익명 채팅방을 만들어 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지역, 취미, 성별, 나이 등등. 본인의 상태와 관심 사항을 표시하는 태그를 설정해놓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대기실에 입장하는 식이다. 그리고 태그는 언제는 바꿀 수 있게 하면 그때그때 원하는 채팅방을 바꿔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21세기로 가면 채팅의 인기는 확 식고 이상한 만남 사이트로 변질할 테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대로 있으니 몇 년간은 긍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

“재밌겠는데.”

넥스트컴을 설립하고 헨리 사무엘을 사장으로 영입한 다음 딱히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지 않았던 유재원이었다.

여러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헨리 사무엘도 최근엔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컴캐스트 인수에 매달리면서 넥스트컴 서비스는 살짝 뒤로 밀렸다. 지금은 기존의 기능만 개선 중고, 신규로 착수되는 건 없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은 엉뚱한 개기로 태그 채팅사이트 개발에 마음을 굳히게 된 것도 재미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유재원 역시 당장은 시작할 수 없었다.

“아, 근데 대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

달력을 보니 어느덧 10월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멀지 않았다. 미국은 11월에 대선이고, 한국은 12월에 있다.

덕분에 미국은 한창 선거 운동이 진행 중이었고, 한국도 대선 정국에 한참 들어간 상태였다. 국가에서 가장 큰 권력을 놓고 치르는 선거인 탓에, 소란스러움도 역대급이었다.

유재원의 수학적 업적이 5일 만에 쓸려 내려간 것도 다 대선 소식 때문이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예외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민주주의가 성숙한 미국보다 한국의 소란스러움이 몇 배는 컸다.

그건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만 보면 된다.

미국 뉴스 페이지를 보면 부시와 클린턴의 선거 유세 소식이 가득하다.

정당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책 대결이 주를 이루었다.

부시는 기업의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등의 보수적인 정책을 바탕으로 현직 대통령이라는 경험을 강조했고, 걸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어필했다. 반면 클린턴은 경제정책 실패를 대대적으로 강조했다.

클린턴은 경제 이슈 하나로 충분했다. 미국인이 느끼기에 살림살이가 팍팍해 졌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 승리한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걸프 전에 쏟아부은 전비 때문에 미국 정부의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여러 경제 지원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려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이 경제를 강조하면서 정보 고속도로 사업을 비롯한 IT 지원책 등의 정책을 말하자 미국인들의 반응이 급속도로 쏠리는 중이었다.

이미 여론 조사에서 클린턴은 10% 이상을 앞서고 있어서, 부시의 재선 가능성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매우 희박한 상태였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게 흘러가는 상태였다.

-노 대통령, 민자당 탈당!

-큰 폭의 개각 예정!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뚝 떨어진 대통령은 선거의 장애물인 모양이다.

민주자유당 수뇌부는 노 대통령과의 회담 후, 대통령의 자진 탈당으로 선 긋기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김영삼 총재의 강력한 정부 비판을 쏟아냈다. 뉴스만 보면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야당의 대표처럼 보일 지경이다.

매우 전통적인 수법이라 피식 웃고 마는 유재원이지만, 한국의 일반적인 유권자가 보기엔 상당히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개각도 비슷했다.

노 대통령 임기는 이제 겨우 3개월 하고도 조금 남았다. 게다가 당선자가 나오면 정권인수위원회도 출범해, 내각에 관여하게 된다. 국정 운영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각이지만, 기존의 장관들을 다 갈아 치우면서 민자당과의 거리감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굵직한 이슈를 매일 생산해서 뉴스에서 야당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것도 제법 효과적이다.

이로 인해서 유재원이 야당 뉴스를 보기 위해서는 페이지 넘김 버튼을 두 번 정도 눌러줘야 했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 대선에 중립 기대.

가장 먼저 나오는 뉴스는 공권력의 선거 중립을 말하는 기사였다.

“전 회장님, 아니 전 후보님은 그나마 잘하고 계시네.”

놀랍게도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의 말이 아니라 전명헌 회장의 발언이었다.

한국에서 야당 기사를 본다면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대부분 민주당과 김대중 의원의 발언이었다. 물론 3당 합당 이전이라면 김영삼 의원의 발언도 동급으로 실렸지만, 야합으로 여당이 되면서 야당 몫의 스포트라이트는 김대중 의원 혼자서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3월부터 갑자기 전명헌 의원이 급부상했다.

입만 열면 굵직한 폭탄이 떨어지니,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누가 봐도 무리수인 공약을 쏟아내서 존재감이 약했다.

일반 국민이라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전명헌 의원이 재벌해체니 반값 아파트니 하는 무리한 공약을 내는 건 서민과는 상극인 재벌 출신이라는 걸 가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걸 다 알았다.

통일국민당 역시 전명헌 의원의 대권 행보를 위한 징검다리라는 것도 진작에 퍼진 이야기였다. 그런 전명헌 의원과 통일 국민당이 달라진 건 유재원의 지지 선언이 시작이었다.

유재원과 전명헌 의원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다.

여의도에 가득한 정치꾼들이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이해 못 할 수준의 폭발력이 나오는 중이었다.

44석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통일 국민당은 무소속 의원들까지 규합하더니 50석이 넘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더욱이 여의도 정치엔 깜깜한 전명헌은 국회에 입성해서 변변찮은 존재감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 정치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예상은 완벽히 빗나가고 말았다. 전명헌 의원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재벌 해체 정책의 구체적 실천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주식전환사채에 대한 규제였다.

정치 전문가들이나 경제 전문가도 상속에 대한 꼼수로 주식전환사채를 사용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걸 전명헌 의원이 까발렸고, 국회를 움직여서 입법까지 시켜버렸다. 혹시 헛다리 짚은 게 아닌가 싶어 재벌가 동정을 살피니 대부분 재벌이 후속대책을 세운다고 난리였다.

그중에서도 일성의 난리가 제일 컸다. 해외 출장 중이던 최현희 회장이 급히 귀국했고, 유학 중이던 아들과 딸도 불러들였을 정도다.

더욱이 전명헌 회장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파격적 공약을 이행할 구체적인 방법들을 계속 쏟아냈다.

요즘 집중하는 건 반값 아파트였다.

그 비싼 아파트가 반값이라니. 참으로 듣기 좋은 공약이었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니 다들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반값 아파트의 실현은 정부가 세금으로 아파트값 반을 내준다는 식이거나, 정부가 강력한 압박으로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릴 거라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전명헌 의원과 통일 국민당이 내놓은 구체적 대책은 바로 아파트 건설원가 공개였다.

미래 건설이라는 한국 최대의 건설사를 거느린 전명헌 회장이었기에, 아파트를 지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폭리를 가져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건설사들이 챙겨가는 폭리를 줄이면 아파트 가격도 자연스럽게 하락할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이어진 건 보유세 중과세였다. 한 가구가 아파트를 세 채 이상 가지고 있으면 부담해야 할 재산세를 팍팍 늘어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양도세는 한시적으로 없애주기로 했다. 투기성으로 가진 아파트를 빨리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자기 집 하나 없는 대다수 국민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물론 아파트를 가진 이들은 빨갱이 정책이라고 전명헌 의원을 매도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득과 실이 함께 있는 정책이지만 정치공학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잃은 것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은 정책이었다.

이러한 전명헌 의원의 행보 중에서도 화룡점정이라면 선경의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의 빛나는 활약이다.

대놓고 선경을 비난했고, 노 대통령과도 척을 졌다. 심지어 김영삼 후보까지 저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군사정권의 잔재로 인해서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전명헌이 물꼬를 트자 비로소 제대로 된 비판이 쏟아졌다.

깜짝 놀란 선경은 바로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했다.

재선정이라는 여지를 놓았던 것도 바로 다음 날 철회되었다. 정부에서도 긴급 진화를 위해서 체신부 장관이 경질되었고, 심지어 총리가 나서서 사과까지 해야 했다.

최근 움직임은 논란이 큰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대선 뒤로 미루고, 무선호출기 사업부터 진행하려는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확정된 건 아니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TG 모바일을, 제3 이동통신으로 포철과 코오롱이 합작한 회사를 지명하고 선경은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통해 이동통신 시장에 참여토록 해줄 거라는 소문이 도는 정도였다.

이용권 사장님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보니 역시나 아직 확정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아예 뜬 소문은 아닌 모양인 듯, 청와대와 모종의 연락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비밀스러운 접촉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선경을 대신해 TG로부터 적당한 금액 혹은 이권만 보장된다면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시켜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단지 TG와만 접촉하고 있을까? 포철이나 코오롱도 분명 같은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제2 이동통신은 분명 둘 중 하나로 낙점될 것이다.

“욕이야 얼마든 먹어도 좋으니 돈만 받으면 된다는 건가?”

괜한 수고 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 유재원이다.

어차피 정권이 차기로 넘어가면 군부 출신 두 대통령의 노후 보장은 끝장이 난다. 김영삼 후보도 군부 출신 대통령 둘에게 칼을 갈고 있었고, 김대중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전명헌 후보도 있다. 전명헌이 대선에 뛰어들 결심을 한 건 군부 출신 대통령들 탓이 100%였다.

“하여튼 돈 욕심이 무섭네.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동시에 각오도 다시 다지는 유재원이다.

돈이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 그 자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회귀까지 하고도 돈만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삶을 사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 덕에 유재원은 회사의 통장에 수백억 달러가 들어와 있어도 무섭지도 흥분되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언제 입국하면 좋으려나?”

유재원은 당연히 미국보다 한국의 대선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전명헌 후보를 확실하게 지원해서 전생과는 다른 결과를 내놓고 싶었다. 전명헌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좋지만, 되지 못한다더라도 최소한 통일 국민당은 살려 놓겠다는 게 유재원의 의지였다.

전명헌이 헛발질을 거의 하지 않고, 국민의 눈높이에 딱 맞춘 정책을 내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유재원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선이 시작되면 멀리서 전화로 조언을 주는 것만으론 부족해진다. 전명헌 후보도 저번 총선 때와 같이 유재원이 한국에 들어와서 도와주길 바라는 지,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대선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한 게 많은 모양이다.

“필즈상이라도 받았으면 참 좋은데.”

유재원은 입맛을 다셨다.

푸앵카레 추측은 조만간 증명으로 그 이름이 바뀔 것이다.

유재원이 제시한 증명법에 존 내쉬를 비롯한 엄청난 수학계의 괴수들이 다 달라붙어서 검증에 돌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류가 있었다면 진작 알려졌을 텐데, 그 어떤 반론도 제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재원의 나이와 직위 등등, 믿을 수 없는 요소들이 더욱 부각되면서 천재성이 다시 한 번 빛났다.

검증단에 참여한 분들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 때마다 유재원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에, 기이한 현상도 일어났다. ID 테크놀로지의 매출액이 큰 폭으로 상승했고, ID 인베스트먼트에 투자문의를 하는 전화가 쏟아졌다.

특히 ID 테크놀로지는 당분간 휴식기라서 그 어떤 신제품도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기존 제품들의 주문이 대폭 올랐다. 특히 키보드 워리어의 매출 상승이 돋보이는데,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도 유재원처럼 되기 바라는 마음에 선물로 사주시는 게 틀림없다.

ID 인베스트먼트도 마찬가지다.

월 스트리트에서 ID 인베스트먼트는 신화를 쓰는 중이었다. 두 건의 큰 이벤트를 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 건 월 스트리트 역사에서도 초유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신뢰성에는 아직 의문이었다.

초신성처럼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업체도 수두룩한 것이 월 스트리트였다. 그런데 유재원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면서 그 의문이 깔끔하게 해소되었다. 그 어렵다는 난제를 해결한 존재라면, 투자에서도 왕도를 찾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덕분에 엄청난 큰 손들까지도 ID 인베스트먼트에 접촉하면서 신규 투자 모집은 언제 시작하는지 문의가 늘고 있다.

이처럼 7대 난제의 증명으로 얻은 무형의 이득은 상당한데, 더 확실하게 하려면 권위를 증명할 상을 하나 받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

필즈상이 딱 맞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필즈상은 매년 수상자가 나오는 노벨상과 달리 4년에 한 번씩 수상자를 선정하는 상이었다. 90년도에 수상자를 배출했으니, 다음은 94년도에 나온다.

아무래도 수학으로 범위를 한정하다 보니 4년에 한 번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수학이라는 좁은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가 매년 나오긴 어려우니, 4년으로 기간을 늘린 것으로 생각하는 유재원이다.

“그러고 보니 상금도 없네?”

수학계 7대 난제에 상금이 걸리는 건 2000년부터였다.

너무도 어려워서 도전자가 사라지니, 해결될 가능성은 더욱 떨어졌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하버드 대학 수학자들이 클레이 수학연구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밀레니엄 문제라고 7대 문제를 엮었다.

한 문제당 100만 달러였으니, 개인 혹은 작은 단체 정도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상금이었다. 유재원은 돈에 욕심을 내는 건 아니었다. 상금을 받아서 적절한 곳에 기부하면 본인의 명성을 더욱 높여줄 기사가 몇 개는 더 나올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는 것이다.

“음, 무슨 생각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달력을 보다가 엉뚱한 곳에 빠졌던 유재원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들어갈 적절한 시일을 따져 보는 유재원은 단순한 기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워서 결국 기억의 궁전으로 돌아가 10월부터 12월까지의 굵직한 뉴스 라이브러리를 뒤적이고 나서야 결정할 수 있었다.

“10월 말이 좋겠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은 11월부터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준비를 하려면 일찍 들어가는 게 좋았다.

“덤으로 한국에 출국하기 전에 컴캐스트 인수도 답이 나오면 좋을 텐데.”

컴캐스트 이사회를 생각하면 아주 징글징글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유재원이다.

여름에 시작한 인수 협상이 가을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유재원이다.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차라리 컴캐스트와의 협상을 파투내고 위너 케이블과 협상을 시작했을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나 가격이었다. 컴캐스트 이사회의 대주주들은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싶어했고, 유재원의 대리인인 헨리 사무엘과 앨런은 컴캐스트의 자산과 미래 가치에 약간의 보상만 해주는 게 대전략이었다.

유재원은 10월까지 답이 없으면 워너 케이블과 접촉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오호라!”

감이 좋은 유재원은 누구의 전화인지 바로 느낌이 왔다.

“여보세요?”

-회장님! 저 넥스트컴 사무엘입니다! 드디어 저들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역시 이 날카로운 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재원이가 미팅에 연연했던 건 전생에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지요. 이걸로 질질 끄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실히 약속 드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챕터도 시작했네요. 제목만 보곧 대충 무슨 내용일지 짐작하시는 독자님이 참 많을 듯 합니다만, 1992년 겨울을 그리는 데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