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28화 (228/1,007)

[228] 왕좌의 게임 =========================

전명헌 대통령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라고 커다랗게 쓰인 글자를 배경으로 만든 무대가 있다.

중심에는 전명헌 후보의 자리가 있고, 그 옆엔 사회자의 자리였다. 질문자들은 약간의 사이를 두고 띄워진 자리 2개가 양쪽으로 붙어 있다.

거기엔 연차가 몇십 년이 쌓인 자칭 대선배들 앉아 있었다. 객석도 수십 개의 자리가 있는데, 거기에도 일반인은 없고 카메라나 녹음기를 든 기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관훈 클럽이라는 게 신문과 방송 기자들 모임이니 이런 모습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기자들이랍시고 대단히 권위적인 것처럼 다들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기에 분위기는 대단히 경직된 상태였다.

시작할 때 전명헌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말했을 정도지만,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욱 경직되었다. 전명헌이 재벌이라고 평소처럼 기자들을 우습게 보는 습성이 있어 농담 따먹기나 하는 거라고 다들 생각했기 때문이다.

틀린 것도 아니었다.

사실 전명헌은 이 자리가 너무도 웃겼다.

자기 옆에서 거들먹거리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미래 그룹에 굽실거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심지어 신문이나 방송은 전명헌이 직접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막 사장단에 오른 막내 사장이 주로 하는 일이었으니, 평소엔 전명헌과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그런데 상황이 좀 바뀌었다고 이렇게나 사람이 바뀌다니. 전명헌이 보기에는 진짜 웃기는 일이었다.

이러한 미묘한 신경전 덕분에 전명헌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은 하나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전 두 차례 양 김을 초청해 치렀던 토론회에서는 후보들의 업적을 치켜세우는 질문도 많이 나왔는데, 이번엔 시종일관 딱딱했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비우호적인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어제 유재원이 준 예상 질문지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예상 질문지를 받아보고 읽기 시작했을 때, 뼈를 때리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나름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전명헌이었는데, 책 잡힐 행적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었다. 그리고 관훈토론회가 끝날 무렵 결정적인 질문 하나가 비수처럼 들어왔다.

-전명헌 후보께 묻겠습니다. 최근 증권가에 이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미래 그룹의 오너 일가가 전명헌 후보님의 출마 선언에 맞춰 자사 주식을 대량으로 팔았다는 소문입니다. 해명 부탁드립니다.

마치 짠 것처럼 토론회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객석에 있던 이들이 이 내용을 여기서 처음 들었다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이 일품이다.

전명헌이 보기에 너무도 웃기는 일이었다. 짜고 치려면 좀 자연스럽게 하던가,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물론 유재원의 사전 질문지가 없었다면 제일 당황했을 인물은 전명헌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두의 시선이 전명헌에게 집중되었을 때, 굳건히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전명헌의 본래 성격이었다면 짜고 치는 짓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불호령이 터졌을 테지만, 정작 나온 말투는 매우 정중했다.

“본인은 미래 그룹에서 손을 뗀 지 이미 오래입니다. 매각이건 매집이건 경영자들과 주주들의 판단이지 제 입김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설사 제 명의의 주식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때 전부 백지신탁을 했습니다. 제 주식을 팔든 말든, 신탁회사가 잘 판단해서 했을 터이니 그곳에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전명헌은 표정 변화 없이 토론회 분위기가 좀 저렴했다면 우하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책임을 죄다 남에게 돌려버리는 전형적인 정치인 화법이었던 탓이다. 관훈클럽 맴버들이 기대했던 건 당황하거나 화들짝 놀라면서 날 것 같은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었는데, 김이 팍 셌다.

그렇지만 한국말은 원래 끝까지 다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사견을 말씀드린다면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본인에 대한 믿음을 친족에게 잘 전해주지 못해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저 전명헌이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 거라는 판단에 중간에 팔아 치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자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될 겁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 성장을 막고 있는 폐단을 뿌리 뽑아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끌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전명헌 후보는 흥분하지도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히려 그것이 전명헌의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 경제통이라 자부하는 다른 후보가 있지만, 현장에서 수십 년을 구른 전명헌만큼은 아니었고,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 임기 내에 종합주가지수 1,200선은 넘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제 못난 자식과 집안 식구들은 1조짜리를 3천억에 판 멍청이가 되는 것이겠지요.”

-후보자님, 너무 근거 없이 말씀하시는 건…….

“이 보시오, 사회자님. 제가 누굽니까 석유 선물 시장에서 8,800%의 대박을 터트린 유재원이 보증하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주가지수를 3배 정도 띄우는 건 일도 아니란 말씀이다 이말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남발하는 전명헌이었지만, 몹시 당황한 기자는 무슨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치명적인 친인척 스캔들이 전명헌의 답변 하나로 못난 자식들의 잘못으로 180도 뒤집혀 버렸다. 비록 전명헌이 자식들과 친척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대통령감이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답변이었다.

“어, 음!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사회자는 이대로 전명헌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 없다는 판단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 다급한 사회자의 얼굴과 득의 만만한 전명헌의 표정이 한 프레임에 잡혔다.

며칠 후.

전명헌의 치른 관훈토론회는 적당히 편집되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었다.

“역시 전명헌이시네.”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던 유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회를 다녀온 직후 걱정할 것 없다고는 하셨는데, 그게 유재원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몰랐었다. 전명헌 후보가 몰고 다니는 보좌진들은 그의 가신이었기에 항상 좋다고만 하고, 신문에 실린 인터뷰는 가공된 것이라서 이렇게 직접 영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준비할 때는 잘 외웠는데 실전에 들어가서 긴장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사람도 있어서 걱정이었다. 다행히 전명헌은 실전에도 강한 사람이었고, 질문이 들어오자 제대로 준비한 답변을 말했다.

덕분에 회심의 질문이라고 날을 갈고 있던 관훈클럽 기자들이 당황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아, 아쉽네. 이걸 실시간으로 유권자들이 봤어야 했는데.”

이렇게나 좋은 그림을 지금은 겨우 서울에서만 볼 수 있다.

TV 토론회도 후보들의 의견 불일치로 이뤄지지 못했고,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역시나 공중파 방송이 중계를 포기했다. 남은 건 서울방송이었는데, 편집본을 뒤늦게 편성했다.

후보들이 실시간으로 토론하는 걸 지켜보는 건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벤트였는데 성사되지 못했으니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보니 후보들끼리 치고받는 토론회는 97년 대선 때부터나 시작되는 것이었다.

선거운동에 대해 이리저리 붙어 있는 제약에 혀를 내두르는 유재원이다.

하긴 현직 대통령이 군부 출신이었으니, 그나마 이만큼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세상을 죄다 하향 평준화시켜 놓으면 발전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현실에 만족하기보다는 보다 높은 곳을 보는 향상심이 투철한 유재원이었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SNS 같은 게 있었으면 차원이 다른 선거운동을 보여줄 수 있는데.”

아쉬움 탓에 아직 구현되지도 않은 아이템이 생각났다.

선거운동에 동원할 수 있는 매체라고는 텔레비전과 신문이 전부인 시대다. 소통의 창구가 너무도 비좁으니 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명헌 후보에 대해 좀 우호적인 기사를 내려면 평소의 가격에 몇 배를 내야 했다. 심지어 지금 관훈토론회에서 보여주듯 기자들이 갑이 되어 이것저것 바라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전명헌을 불러다 놓고 저렇게 사상 검증을 하듯 난도질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편파적인 것도 문제다.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은 김영삼 후보는 이미 대통령 취급이었다. 민감한 질문은 겨우 구색 맞추기로 몇 개가 전부였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군사 정권들이 그에게 덧씌운 빨갱이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전명헌은 지금 보는 바와 같이 경제 분야에서 오점을 일부러 만들고 늘어진다.

전명헌이 양 김에 비해 확실히 우위에 있는 것이 경제 분야였는데, 그 강점 자체를 꺾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이번 관훈토론회는 이러한 움직임을 단적 보여주는 이벤트였다. 당연히 그 이전에도 끝없는 음해와 공작이 쏟아졌다.

새벽에 조간신문이 배달되어 올 때마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가짜 기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평소라면 미래 그룹과 ID 그룹의 입김이 매스컴에 잘 먹혔는데, 선거철이라서 그런지 폭주를 시작한 매스컴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유재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직접 데스크에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한 가닥의 이성은 있어서 황재홍에게 부탁했다. 이번 대선 한 철만 장사하고 종 치고 싶냐고 물어봐 달라고 말이다.

데스크의 답변은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들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오너가 직접 이래라저래라 기사에 간섭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신문사 사주들이 극성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는 건 믿을 수 없다. 자기들이 막장으로 질러 놓고 사주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황색 저널리즘을 제대로 실천 중인 종이신문들은 잘 봤다. 선거만 끝나면 아주 피똥을 싸게 만들어줄 거다.

문제는 지금이다.

“인터넷 대중화만 됐어도 바로 종이 신문 따위는 끝장내버리는 건데!”

가짜 뉴스에 대응하는 최고의 방법은 진실을 가짜 뉴스보다 더 빨리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중과의 소통 창구라는 게 기존 매스컴들이 꽉 쥐고 있었다. 기자회견 같은 걸 해도 살짝 왜곡만 하면 그 의미를 완전히 변질시켜버리니 의미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유재원은 한국 넥스트컴에 들어가서 글을 올렸다. 3천억의 진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고 말이다.

SNS가 있으면 게시글 하나 올리면 순식간에 전국,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데, 넥스트컴에 올린 글은 많아 봐야 조회 수가 3~5천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넥스트컴의 유료 회원은 이제 60만을 조금 넘어서긴 했지만, 그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게시물을 보려면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스스로 자유 게시판이나 뉴스 페이지를 찾아와야 했으니 숫자가 줄어드는 거다.

덕분에 신문사의 가짜 뉴스 전파 속도를 팩트 체크가 따라가지 못했다. 덕분에 도시는 그나마 괜찮은데 시골이 문제였다.

더구나 말로만 문제가 아니라 진짜 여론조사 지표로 확인되었다.

전명헌의 현재 지지율은 30대 초반으로 김영삼 후보와의 격차를 7%까지 줄였다. 그런데 시골로 가면 그 격차가 10%까지도 커지는 일이 벌어진다.

“선거만 끝나면 진짜 스마트폰은 몰라도 셀룰러 폰이라도 만든다!”

여론권력에 쓴맛을 톡톡히 보는 유재원이 이를 갈았다.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 벌써 12월에 들어섰다.

찬 바람은 쌩쌩 부는데, 대선에 참여한 이들은 밖이 추운 건지 포근한 건지 느낄 사이도 없었다.

통일 국민당의 자체 디데이까지는 딱 9일 남았다.

날짜가 줄어들수록 통일 국민당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예민해진 상태였다.

“오늘 여론조사는 어떻게 됐느냐?”

통일 국민당의 중심인 전명헌은 매일 저녁 나오는 여론조사의 변동에 일희일비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말없이 A4용지 하나를 슥 내밀었다.

굳은 얼굴로 돋보기안경을 쓰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기 시작한 전명헌의 얼굴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민주당을 이겼구나!”

급기야 붉게 상기된 얼굴로 탄성이 뿜어졌다.

전명헌의 12월 1일 자 전국 지지도는 무려 32%,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28%로 무려 4%나 앞선 상태였다.

11월 한 달을 열심히 움직였음에도 3등을 면치 못하다가 12월이 되자마자 4% 차이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이전의 결과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선전이었다. 그때 전명헌의 최종 지지율은 16.3%로 지금의 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재원의 참전으로 이전 지지율보다 2배는 띄운 것이니 어마어마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유재원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이었기에 생색을 낼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대선과 같은 단 한 명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2등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1등인 민정당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은 36%로 앞서 있었다. ±3.5%인 오차범위를 넘어선 상태이니 선거는 보나 마나 김영삼의 승리다.

“예!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1등도 사정권입니다!”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서 기운 빠지는 소리는 할 수 없었기에, 유재원은 전명헌의 분위기에 맞춰줬다.

한걸음!

전명헌의 지지율을 딱 2%만 올리면 오차 범위 안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최종 완주를 해서 뚜껑을 열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한 걸음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유재원이 새롭게 꾸린 통일 국민당의 선거 조직은 120% 가동 중이었다. 지역구 의원들은 이미 자기 지역구에 내려가서 하루도 쉬지 않고 텃밭을 다지는 중이었다. 임명장을 남발하며 임명된 수많은 위원장도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외부 인사들은 보통 임명장만 받아두고 설렁설렁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의 경우 그런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전명헌의 존재감 때문인지, 아니면 유재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본인이 출마한 것처럼 열심히 뛰는 사람들도 많았다.

덕분에 오차범위 내이긴 해도 전명헌이 1등을 하는 지역도 생겨났다. 강원도와 충청도였다.

강원도는 통일 정책이 제대로 먹혔고, 충청도의 경우엔 첨단과학 도시 공약이 제대로 들어갔다.

특히 충청도에서의 돌풍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통일 공약은 조금 실체가 불분명했지만, 첨단과학 도시 이슈는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미래 전자의 제2 반도체 공장은 조만간 시험 가동을 시작할 수준으로 공정률이 올라왔고, 여기에 ID 그룹의 LCD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전명헌의 공약이 이어졌다. 미국에 있는 최강욱 비서실장도 LCD 산업진출 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고, 회장인 유재원은 전명헌의 선대본부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뛰고 있었으니 빈말이 아니라는 걸 다들 인지했다.

덕분에 충남에서는 그전까지 1위를 달리던 김영삼을 전명헌이 오차 범위 밖으로 따돌릴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부산이네요.”

민정당과 김영삼 후보는 전명헌의 무서운 추격에 난리가 났다. 그리고 노 대통령과 청와대도 난리였다.

며칠 전부터 통일 국민당에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제보 전화가 부쩍 늘어났다. 공무원을 선거운동에 동원했다는 건 예사고, 산악회니 부녀회니 하는 마을의 작은 모임을 데려와 밥을 사주는 일도 빈번했다.

그야말로 부정선거는 날로 기승을 부리는 중이었다. 제보가 들어오는 족족 선거 관리 위원회에 고소했지만, 공명선거를 위해 감독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는 검토 중이라고만 하면서 그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

“부산?”

“예, 부정선거 관련해서 부산이 특히나 심하거든요. 게다가 매일매일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요동을 치고 있기도 하고요. 부산을 뒤집어 놓으면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유재원의 분석에 전명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대책위원장에 유재원을 임명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는 전명헌이었다. 조직이면 조직, 공약이면 공약, 심지어 선거운동 방법까지, 유재원이 제시한 대로 따르기만 하면 유권자들의 반응이 왔다.

선거판에 늘 끼는 업자들의 분석보다 이제 처음 참여한 유재원이 훨씬 앞서 있었다. 전명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재능이었기에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그러면 집중 유세라는 걸 해야겠구나. 하지만 일주일을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도 이상할 텐데.”

“네, 그러니까 5일까진 전국 유세를 다시 한 번 도시고, 6일부터 9일까지는 부산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결과를 보는 거죠. 전에 약속하신 거 잊지 않으셨죠?”

약속이라고 하니 활짝 웃고 있던 전명헌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9일, 그 날은 통일 국민당에서도 극소수만이 설정한 D데이였고, 선거운동에 크나큰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기존 정치인이 보자면 9일에 여론조사를 보고 승패를 따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전명헌도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음에도 마음속으론 완전히 수긍하진 못했다. 하지만 유재원이 펼친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전명헌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럼. 잊지 않았다.”

전명헌의 확답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유재원이었다.

일단 당사자가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 뚜껑이 열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불안감은 사라진 유재원이다.

다만 문제는 외부에 있다. 심지어 장소도 특정된다.

초원 복국집.

초원 복국집 사건이다. 과연 이전과 같이 터질지, 아니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줄지는 유재원도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불안함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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