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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230화 (230/1,007)

00230  왕좌의 게임  =========================================================================

스프레드시트 파일에 담긴 여론 조사 결과는 기대했던 이변이 없었다.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졌다.

그나마 김영삼 후보도 떨어져서 격차는 4% 차이를 유지 중이었지만 확실히 오차 수준 밖으로 차이가 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부산 지역은 약간의 상승이 있긴 했는데, 서울과 전라도 지역에서 부산에서 오른 것 이상으로 하락한 탓에 지지도가 추락했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들이 크게 오른 것도 아니었다. 김대중 후보만 본래의 자리를 지켰고, 나머지는 죄다 하락했다.

“선거판이 혼탁해져서 그런가?”

데이터를 보면서 유재원이 짧게 분석을 해봤지만, 석연치 않았다.

갑자기 지지율이 죄다 떨어지다니, 선거판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번 조사에서 무작위로 뽑힌 전화번호가 조금은 문제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9일 자 조사가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다행히 유재원은 보험을 들어 놓았다.

보충 조사로 샘플이 5천 개나 되는 파일이 하나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일단 후보자 보고를 위해서 먼저 열린 파일의 요약 페이지를 프린트했고, 두 번째 파일로 넘어갔다. 도스였다면 프린트하는 중에 다른 일은 절대 할 수 없었겠지만, 멀티테스킹이 완벽히 지원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였기에 버벅거림 없이 두 번째 파일이 열렸다.

대신 데이터의 양이 첫 번째 파일보다 5배는 더 많아서 암호 해독과 로딩에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조금은 느리게 차오르는 막대 그래프의 모습과 함께 약간의 기대감도 함께 차올랐다. 100%가 되는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요약 보고서가 떴다.

첫 번째 파일에 담겨 있던 것과 똑같은 형식이었기에, 유재원은 빠르게 숫자만 읽을 수 있었다.

“이거 망했네.”

5천 개짜리 보충 조사의 결과는 첫 번째 것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전명헌뿐만이 아니라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더 낮았다. 3위인 김대중 후보는 26%, 2위인 전명헌은 29.2%. 그리고 1위인 김영삼 후보는 33.7%로 자체 일간 조사 결과보다 4%씩은 더 낮았다. 심지어 신문이나 방송이 인용하는 그 어떤 여론 조사보다 낮은 수치였다.

유재원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면서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쩐지.”

후보를 아직도 정하지 않았다는 부동층이 보충 조사에서는 10% 이상으로 크게 나타났다. 반면 일간 조사에선 스스로 부동층이라 말하는 사람은 3%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다행히 두 개의 여론 조사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차범위 밖에서의 2등.

이대로 계속 간다면 민주당을 이긴 2등에 안착하겠지만, 얻는 건 없다.

“뭐라고!”

유재원의 보고를 들은 전명헌이 펄쩍 뛰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의 유세로 부산이 뒤집히는 걸 직접 보고 왔는데,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제껏 가만히 있던 전명헌의 수행비서까지도 목소리를 높였다.

유재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전명헌의 수행비서는 그냥 수행비서였다. 당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입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사람인데, 여론 조사 결과가 기대했던 데로 나오지 않았다고 흥분한 모양이다.

“그래. 말이 안 된다. 네가 어제까지의 부산이 내뿜었던 열기를 느꼈다면 이 수치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전명헌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을 뒤집었으니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격차는 그대로라니! 게다가 전체 지지율은 이전보다 훨씬 더 떨어져 있다는 데, 이걸 믿을 수가 없었다.

유재원은 충분히 이해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자리는 한 번 앉으면 온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게 될 만큼 온 세상의 관심이 집중된다. 어마어마한 부동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중심을 잡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전명헌도 경제계에서 신화적 업적을 쌓은 분이지만, 정치판에서는 초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수치로 나온 자료를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디데이를 투표가 9일이나 남은 날로 잡았다. 3일을 남겨놓고 이 결과를 보여주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면 먹히지 않겠지만, 9일이나 남았으니 설득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니까 두 분은 이 수치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씀이시죠?”

유재원이 조금은 냉정한 말투로 되물었다.

나이가 들면서 제법 카리스마라는 게 생긴 유재원이었기에, 한창 열을 올리던 전명헌과 그의 수행 비서가 움찔했다.

“그렇다는 말은 데이터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인데, 데이터는 사심 같은 게 들어있지 않아요.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추출한 전화번호에서 이전에 조사한 전화번호는 빼고 조사한 것이라서요.”

움찔하긴 해도, 유재원의 설명에 두 사람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정 의심되면 녹음된 파일을 들어보시겠어요? 여기 데이터에서 아무 전화번호나 찍어줘 보세요.”

인터넷이 좋은 게 바로 이 대목이다.

ID 휴먼 리서치의 서버도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제껏 해왔던 여론 조사 데이터를 앉은 자리에서 열람할 수 있었다.

전명헌 후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전화번호를 쿡 찍으면,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해당 전화번호로 녹음된 음성 파일을 받아서 재생했다.

“음.”

10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찍었고, 음성 파일 재생도 10번이 이어졌다. 단 한 번도 음성과 등록된 결과가 어긋나는 게 없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통화 녹음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전화를 걸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했다. 그렇기에 전명헌이 추가로 찍은 10개 전화번호를 더 들어 봐도 오류는 없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생각을 바꾸시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에요.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하니까 며칠 선거운동도 하시면서 생각해보세요. 대신 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볼게요.”

유재원의 말에 전명헌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잠깐 이어졌다.

1분이 넘는 긴 침묵이었다. 그래도 먼저 침묵을 깬 건 전명헌이었다. ‘후’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전명헌의 대답에 굳었던 유재원의 얼굴도 풀어졌다. 다른 방법, 일명 플랜 B로 넘어가겠다는 확답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전명헌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유재원의 마음에서 전명헌의 평가는 다시 한 번 상승했다.

다음 날.

유재원은 통일 국민당의 본인 사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올라와야 할 소식이 아직도 올라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초원 복국집 사건이다.

“뭐지? 무슨 변수가 생겼나?”

시간상으로 보면 지금 터지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무도 잠잠했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 스페셜 팀의 보고도 없었고, 전재준도 딱히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여기서 왜 전재준이냐 하면, 초원 복국집에 모인 전·현직 기관장과 군, 경의 모임을 사전에 감지하고, 도청을 지시한 사람이 바로 전재준이었기 때문이다.

전재준이 무슨 수로 이 모임을 먼저 알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아마도 전재준에게 정보를 넘긴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전재준 본인이 극구 숨기면서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유재원이 보기에 그 사람은 안기부 요원인 것 같았다.

전재준이 초원 복국집 회동의 도청 녹취록을 보고 길길이 날뛰고, 미래 그룹이 보유한 신문사를 통해 특종을 터트리는 걸 유도한 느낌이 물씬 난다. 불법 선거조작 모의가 하루아침에 불법 도청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전재준이 덫에 걸려 부화뇌동하지 못하도록 그의 주변을 철두철미하게 감시 중에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문화신문 데스크와 통화로 단단히 약속을 받아 놨다. 전재준이 연락해서 특종이라고, 당장 신문에 내보내야 한다고 하면, 유재원에게 연락을 돌리도록 해놨다.

문화신문이 미래 그룹의 출자로 만들어진 덕에 지금은 대놓고 통일 민주당의 기관지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전재준은 미래 그룹의 진성 로열패밀리였으니 그의 우격다짐으로 기사화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통일 국민당의 전권을 한 손에 쥔 유재원이었고, 전명헌과 직통으로 대화할 수 있었기에 전재준보다 유재원의 입김이 훨씬 강하다.

만약 초원 복국집 사건이 터진다면, 한판 뒤집기도 해볼 만했고 그게 안 된다면 플랜 B를 강화하는 데 써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안 터지는 거지? 한번 찍고 와서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기다리고 있으면 꼭 안 일어난다.

“설마, 다른 곳에서 터지는 건가?”

본인이 일으킨 변수가 워낙 많은 탓에 나비효과가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유재원이었다.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더 크게 터질 수도 있지 않겠나.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면 최소한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날 저녁.

전명헌이 유재원을 찾아왔다.

유재원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았다. 무척이나 힘들었을 터인데, 예상보다 빨리 고민을 끝냈는지, 제법 속 시원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었다. 항상 같이 다니는 수행원은 물론이고 전명헌과 함께 정치판에 뛰어든 일부 가신 집단과 통일 국민당의 고위 당직자도 여럿 대동했다.

아무래도 다른 길을 간다는 건 후폭풍이 심한 일이었기에, 독단적으로 발표하고 움직이기엔 부담이 컸다.

그렇기에 통일 국민당과 가신들을 대동해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고 알려주기 위해 대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득 작업은 없었다.

전명헌은 전명헌이다. 그냥 본인이 결정한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당연히 가신들과 고위 당직자들의 반응은 충격을 받은 듯한 동안 말도 못했다. 먼저 알고 있던 수행비서만 담담한 표정이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들은 전명헌의 생각을 돌리겠다고 온갖 말을 쏟아냈지만, 전명헌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나 전명헌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야.”

이 말 한마디로 반론은 한순간 끝이었다. 그래도 약간의 미련은 남은 사람들은 전명헌을 말려달라고 유재원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애초에 유재원이 플랜 B의 제안자인 걸 모를 정도로 철통 보안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모양이다.

따르릉!

유재원이 막 입을 열고자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보통이라면 유재원이 받았겠지만, 이렇게 다들 모여 있을 땐 전명헌의 수행 비서가 먼저 움직였다.

“울산의 전재준 의원입니다. 어르신께 긴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전화를 받으며 몇 마디를 했던 수행 비서가 전명헌에게 보고했다.

중요한 대목에서 맥이 끊긴 탓에 표정이 굳긴 했지만, 아들의 전화에다가 전할 말도 있다고 하니 전화를 넘겨받았다.

동시에 유재원은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다시 말해 봐!”

역시나 전화기를 받아 몇 마디 나누던 전명헌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전재준도 목소리를 높였다.

-후보님! 다른 방법이라니요? 인제 와서 다른 방법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양 김 중 하나 잡아서 지지 선언을 하고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밖에 없잖습니까!

덕분에 스피커폰을 켜지 않아도 송화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유재원과 눈이 딱 마주친 사람도 있었다.

전재준의 말은 아직 다 끝난 것도 아니었다.

-제가 이 판을 획기적으로 뒤집을 꼬리를 드디어 잡았습니다! 부산의 시장 놈들이랑 안기부, 기무사, 심지어 경찰 간부가 복요리집에 모여서 불법 선거를 모의하는 걸 포착했단 말입니다. 녹취록이 그대로 있으니 터트리면 끝입니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유재원이다.

기다리던 복집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유재원의 세심한 모니터링을 뚫고 단박에 전재준에게 연결된 모양이다. 사전에 통제하려고 스페셜 팀 만들어 꽂아 놨던 것인데 대체 뭐 하고 있는 것인지 분통이 터지는 유재원이다.

그렇지만 스페셜 팀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전재준의 행적을 밀착 감시하는 건 물론이고, 전재준의 사무실에 놓인 전화기도 감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민간인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었고, 상대는 그보다 급수가 더 높은 전문조직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대번에 전명헌의 태도도 달라졌다.

전화를 받기 전만 해도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렸다고 했으면서, 전재준의 전화 한 통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폭발한 모양이다. 급기야 전명헌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해서 모두가 편히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일단 녹취된 음성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전재준은 본인이 한 건 올렸다는 걸 자랑했다. 곧이어 조악한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타고 전달되었다.

-어디 감히 전명헌이 같은 장사꾼이 정치한다고 합니까.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민정당이 안 되는 일이 없는데, 그 미꾸라지 같은 전명헌 때문에 보통 흔들리는 게 아니라니까요. 게다가 그 유재원이란 놈은 어찌 영악한지 무지렁이 홀리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데!

-부산에서 50%가 무너지는 게 말이 돼? 나는 이제 중립 못 지킨다! 아니, 안 지킬 거다.

-예, 형님 말이 맞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나서서 뭉쳐야지 않겠습니다. 정 안 되면 지역감정이라도 자극해야지요!

-그래! 그렇지! 우리가 남이가?

-음,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우리도 적극적으로 돕겠네.

-에이, 경찰만으로 되겠습니까? 저희 상공…….

전재준이 재생한 녹음 파일은 임시편집 된 모양인지, 대화는 시작부터 본론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모임의 상당수는 잘린 상태였다. 게다가 상공 회의소 어쩌고 말을 할 때,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문하시겠습니까?’ 소리도 났다.

종업원이 들어와서 말이 좀 끊긴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회동의 정체를 규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전재준은 이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는지 참석자들의 이름을 줄줄 불렀다.

유재원이 기억의 저장소에 넣어둔 리스트와 완벽히 일치했다.

덕분에 유재원의 의심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스페셜 팀을 통해 전재준의 사조직이 움직인 정황이 없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따로 가동된 비선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리 정확한 리스트를 얻을 수 있던 것일까?

대놓고 누군가가 전재준에게 제보했다는 이야기였다.

“재원아!”

유재원이 생각에 잠겼을 때, 전명헌이 유재원의 이름을 높이 불렀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니 다시금 대통령직에 대한 욕심이 다시 폭발한 모양이다.

뒷골이 확 땅긴다.

쌓였던 스트레스가 막 폭발할 것 같다.

전재준의 트롤 짓을 잘 막았다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와서 확 터지는 꼴이라니.

“함정이네요.”

유재원의 말도 짧아졌다.

“뭐라고?”

“함정이라고요. 이걸 우리가 덥석 물면 상대가 바로 불법 도청으로 돌려차 줄 겁니다.”

-뭐야?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어?

회의용 스피커폰이라서 유재원의 말이 전재준에게도 생생히 전달된 모양이다. 한 건 크게 올렸다고 자부했는데, 함정이라고 해버리니 가시가 돋친 말이 돌아왔다.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이 정보의 출처는 어떻게 됩니까? 녹음은 또 어떻게 하신 겁니까?”

짜증이 확 오른 유재원도 말을 돌리는 것 없이 바로 쐈다.

-추울처? 한시가 급한 데 그걸 따질 시간이 어디 있겠나? 부산시장, 부산 경찰서장 심지어 군부대까지 모여서 불법 선거를 작당했다고! 아버지! 당장 윤전기 돌려서 속보로 쏟아내야 합니다. 방송국도 부르고요!

역시 즉답은 바로 회피하는 전재준이었다.

“참석자 중에 안기부 간부도 있었죠? 처음부터 안기부가 판을 짠 거라고 봅니다.”

“판을 짰다고?”

유재원의 날카로운 분석에 전명헌의 눈빛도 조금 수그러졌다.

“예. 이 회동이 언제 있던 것이었습니까? 오늘 낮이었지요? 그런데 전재준 의원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명단도 확보했고, 녹취까지 보유할 수 있었죠? 혹시 미행이라도 붙인 건가요? 아니면 제보라도 받았나요?”

-제보자가 있다.

“제보자? 누구요?”

-그것은 말할 수 없지.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다.

“네, 그러시겠지요. 그렇지만 전 그 제보자라는 사람이 매우 수상하네요.”

-아버지! 저 애송이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1위와의 격차가 불과 4%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걸 가지고 밀어 붙으면 단박에 뒤집을 수 있단 말입니다!

전재준도 뒤지지 않았다.

이번에 한 건 해서 선거 내내 총지휘를 맡았던 유재원보다 더한 공신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적인 업적뿐만이 아니라, 쟁쟁한 형님들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던 후계자 경쟁에서도 확실히 앞장서게 된다. 그러니 자폭하는 최단의 지름길인 줄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유재원은 설마하며 전명헌을 돌아보았고, 절망했다.

전명헌의 표정은 사기꾼의 사탕발림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표정이었던 탓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재원이가 아무리 하드캐리 해도 후보나 후보 직계가 거하게 말아 먹으면 답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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