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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236화 (236/1,007)

[236] New Experience =========================

“그 말씀은 우리가 반도체와 LCD 분야에 진출하신다는 겁니까?”

레밍턴이 총대를 메고 민감한 질문을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IT 전문가였기에 두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설비 투자비를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ID 그룹이 그 정도 자본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승승장구했던 그룹의 위상이 추락함은 물론이고, 재정 건전성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LCD는 직접 공장을 지을 거예요.”

유재원의 말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일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임원들도 있었다. 특히 최강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강욱은 유재원의 최근 한국 활동을 매일 같이 모니터링했던 사람이었다. 전명헌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했던 공약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전에 LCD 공장을 세우겠다는 것도 진작 인지했다.

최강욱과 같이 유재원의 한국행을 주의 깊게 관찰한 임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최강욱과의 차이점이라면 유재원이 낸 공약이 이렇게 빨리 지켜질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빈말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설사 사실이라 해도 이렇게 일찍 시작할 거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대전에 말입니까?”

“예! 바로 거기에다 큰 공장을 세울 거예요.”

최강욱의 물음에 유재원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일단 시작은 월 10만 장 이상의 LCD를 생산하는 규모를 생각 중 이고, 차츰 물량을 확대해서 100만 장을 노려보죠.”

유재원의 통 큰 스케일에 최강욱 말고는 다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월 100만 장이지요?”

“당연하죠. 연 100만 장으론 미국 시장 하나 감당 못할 걸요.”

“그렇게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한 계기라도 있으신지요?”

그나마 레밍턴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진심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쉘 북이요.”

몇 달 전 TG에서 출시한 쉘 북은 에그 시리즈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다. 에그 시리즈는 아직도 매달 수십만 대가 팔려나가는 중이지만, 쉘 북은 월 1만 대 수준을 겨우 넘었다.

“쉘 북을 많이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요. 그놈의 LCD 수율 때문에요. 만약 LCD의 단점을 제거하고, 단가를 낮추고,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 쉘 북의 판매는 몇십 배로 늘어날 거예요. 게다가 LCD를 사용하면 기기의 휴대성과 두께를 대폭 낮출 수 있거든요. 그러면 쉘 북의 수요는 폭등할 거예요. 게다가 다른 포터블 기기에 LCD를 적용할 수 있죠.”

“휴대형 컴퓨터가 쉘 북이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쉘 북이라고 지칭을 했겠죠. 제가 말하는 휴대형 컴퓨터라는 건 손바닥만한 크기의 LCD가 달린 장치를 말하는 거예요. 이뿐만이 아니라 휴대전화도 컬러 LCD가 장착된 게 기본이 될 거예요.”

MP3 플레이어도 없는 시대이니 유재원은 모바일 장치에 대한 묘사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렇지만 LCD에 대한 수요 예측은 무척이나 정확하게 했고, 본인의 의지도 강하게 피력했다.

“예. 그러면 투자계획서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LCD 기술에 관해서는 샤프하고 이야기를 해보세요. 적당한 대가를 주고 기술이전을 받으면 좋고, 아니면 합작회사를 만드는 것도 좋아요.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아예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어떤 방식이든 유재원은 자신 있었다.

LCD라고 해서 어떤 고차원의 기술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기본 원리는 이미 다 알려진 상태였다. 더욱이 유재원은 현재의 LCD 기술보다 몇 배는 진보한 기술도 알고 있었다. 물론 머릿속 이론과 기술을 현실화하는 데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공장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만 하면 실패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대신 반도체는 기술 개발과 설계만 할 거예요.”

ID 그룹이라도 대규모 LCD 공장과 함께 반도체 공장까지 세우는 건 무리라는 사실을 유재원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공장은 미세 공정을 할 때마다 설비 전체를 뜯어고쳐야 해서 돈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크다.

“팹리스 방식인 거죠.”

유재원의 말에 최강욱과 레밍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계는 직접하고, 생산은 위탁하는 방식은 이미 실리콘밸리에서도 제법 대중화된 방식이었다. 반도체 전문가를 스카우트해서 개발팀을 꾸리는 것도 좀 힘든 일이지만,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

“자,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회식이라는 게 낯선 미국이지만, ID 그룹은 예외였다.

회사의 초기부터 유재원이 한턱내는 게 많았기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무조건 참가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었고, 올 사람은 와서 푸짐하게 먹고 가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유재원은 아직도 미성년자였기에 술은 금지였다.

오늘도 임원들과의 식사는 매우 건전했다.

며칠 후.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쟁! 플라스마 VS LCD

-LCD가 승리하나?

-ID 그룹, 연 120만 장 규모 LCD 사업 진출!

-파나소닉 울고, 샤프 웃는다!

유재원이 어제 선보인 93년도 비전은 금세 기사화되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쟁은 이제 시작 중이었고,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와 LCD가 한창 세력을 모으는 중이었다. PDP는 선명하고 시야각에 대한 왜곡도 없으면서, 검은색 표현도 완벽하고, 대형화에도 유리하다는 강점을 내세웠다. 심지어 아직 기초 단계인 LCD에 비해 21인치 텔레비전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LCD는 잔상 문제도 심각했고, 시야각도 나빴다. 게다가 제조도 어려워서 PDP보다 발전속도가 느렸다.

이런 상황에서 ID 그룹이 대규모로 LCD 제조에 투자하겠다고 하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PDP를 밀고 있던 파나소닉은 크게 당황했고, LCD의 주요 기술을 가진 샤프는 방끗 웃었다.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ID 그룹이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심지어 주식 시장에도 변동이 일어났다.

파나소닉의 주가는 내려갔고, 샤프 전자의 주가는 하늘을 치솟았다.

언론의 호들갑이었다. 공장이 하루아침에 뚝딱 지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LCD가 대량으로 나온다더라도 PDP는 역시 적절한 곳에 쓰임이 있는 물건이었다.

하루아침에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도 없고, 반대로 망하지도 않는데, 괜한 언론의 호들갑에 두 회사의 주주들만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덕분에 물밑 접촉도 많아졌다. LCD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원은 제 할 일을 했다.

“헨리 사장님,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죠?”

바로 넥스트컴캐스트의 헨리 사무엘 사장과의 미팅이었다. 며칠 전에 ID 테크놀로지 현황 보고에서 짧게 보고한 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직접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왔다.

“예, 회장님. 자주 찾아 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은 마세요. ID 그룹에서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됩니다.”

항상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유재원이지만 제일 경계하는 것이 바로 조직 내 비리와 계파 싸움이었다.

비리는 무능이었기에 걸리자마자 철퇴를 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함께 유재원이 비리와 동급으로 생각하는 게 조직 내의 계파 싸움이었다. 계파는 유재원이 중시하는 능력 우선주의를 완벽히 역행하는 것이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선을 잘 탔다고 위로 쉽게 올라가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다.

물론 유재원 혼자서 수천 명이나 되는 임직원을 거느린 ID 그룹 조직 전체를 들여다볼 순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워 직원들 스스로 경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유재원은 단순한 경각심이나 임직원의 양심만 믿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감사팀을 열심히 돌리는 건 물론이고, 임직원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장치도 조만간 만들 작정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헨리 사장님은 120% 잘하고 계시는 거죠.”

이어진 유재원의 칭찬에 헨리 사무엘이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믿고 맡기는 것도 고마운데, 전폭적인 지원까지 있으니 신바람이 나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 이번엔 제대로 보고하겠습니다.”

넥스트컴캐스트는 ID 테크놀로지의 자회사였기에 어제도 간략히 듣긴 했다. 하지만 컴캐스트와의 합병으로 덩치가 테크놀로지만큼 커졌고, 그만큼 전문적인 회사로 발전했다. 그렇기에 헨리 사무엘 사장에게 직접 현황을 보고받아야 할 사안도 많았다.

덕분에 헨리 사장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미국 중부에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다.

“현재 넥스트컴캐스트에는 3개의 큰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헨리 사장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ID 프레젠테이션으로 만든 도표가 떴다.

-북미 횡단 광케이블 네트워크 건설.

-케이블망을 이용한 인터넷 공급 사업.

-방송 체계의 디지털화.

익히 알고 있는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유재원은 30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다만 방식을 두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넥스트컴캐스트가 오로지 ID 그룹의 자회사였다면 자본 납입으로 간편하게 끝났을 텐데, 유재원의 지분은 65%였다. 한 푼 내지 않는 나머지 35%의 몫을 챙겨줄 이유는 없었기에 적당한 방식을 찾아야 했다.

답은 30억 달러치 신주를 발행해 유재원이 모조리 인수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유재원의 지분은 기존 65%에서 20%가 더 늘어나 85%를 보유하게 된다. 대신 넥스트컴캐스트의 자본도 30억 달러가 추가된다. 당연히 자신들의 비율이 줄어드는 기존 대주주들이 불만이 많았다.

유재원의 대응은 간단했다. 무시다. 본인들의 지분을 늘리고 싶으면 출자에 동참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들을 압박하는 건 충분했다. 유재원처럼 30억 달러를 턱턱 낼 수 있는 대주주는 없었기에 그저 불만만 터트리면서 구시렁대고 있을 뿐이다.

“넥스트컴캐스트의 통 큰 투자를 차기 정부에서 매우 반기고 있습니다.”

현황을 보고하는 헨리 사무엘 사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경영자라기보다는 개발자에 더 가까운 헨리 사장이긴 했지만, 지금 하는 일에 너무도 만족 중이었다.

북미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광케이블망과 함께 인터넷과 디지털 방송을 보급하는 일은 그가 꼭 해보고 싶었던 숙원 사업이었다. 게다가 갑질을 당하면서 머릴 숙여야 하는 처지에서 180도 달라졌다.

앉은 자리에서 견적서를 받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북미에 깔 1만km가 넘는 광케이블을 구매 건으로는 3M, 코닝에서 견적을 받았다.

디지털 셋톱박스를 두고서도 미국과 유럽의 거대 전자회사의 경쟁이 엄청났다. 넥스트컴캐스트의 가입자는 500만이었고, 이는 곧 세톱박스 500만 대를 납품한다는 뜻이고, 셋톱박스의 가격을 최소로 잡아도 10억 달러가 넘는 사업이니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예전엔 그렇게 만나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요즘엔 먼저 보자고 찾아올 정도였으니 격세지감을 매일 느꼈다.

당연하게도 미국 정부에서도 대대적인 투자를 환영했다.

미국에다 큰돈을 쓴다는 데 싫어할 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방송용 케이블망의 인터넷 공유도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겠네요?”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ADSL 기술을 사놓고도 아직 정식 서비스는 시작도 못 했다.

기껏해야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시범 서비스를 하는 중이었는데, 반응은 무척이나 좋았다. 수십 메가나 되는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몇 분 만에 주고받는 가공할 속도와 편리성은 모뎀이나 ISDN은 따라올 수 없었다.

ADSL 서비스를 준비하는 곳은 넥스트컴캐스트뿐이었다. 심지어 기술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몇 년간은 넥스트컴캐스트가 인터넷 공급자로서 우뚝 설 것이다.

“회장님이 언질을 주신 이메일 서비스와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기에 이메일과 개인 홈페이지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다. 물론 사용자가 적은 지금 단계에서 개인 홈페이지가 붐을 일으키는 건 아직 무리겠지만, 이메일은 쓰임새가 많았다.

우편으로 보내면 며칠이나 걸리는 서신 교환이 이메일이면 순식간에 전해진다. 작은 크기의 문서 파일을 주고받는 것도 수월하다.

당장은 기업과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겠지만, 나중에는 사람들 모두가 이메일 주소 하나씩은 갖게 될 것이다.

“마케팅 방향도 정했습니다.”

“뭔데요?”

유재원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헨리 사장이 조금 망설였다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회장님의 성공담에서 이메일의 역할을 강조하는 연속 CF를 만들 예정입니다. 이메일로 태평양을 건너 큰 비즈니스를 했던 것 자체가 기적 아니겠습니까.”

“에? 혹시 제가 출현해야 하는 건가요?”

“그러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죠. 사실 회장님과 비슷한 느낌의 배우를 모색 중이지만, 아무리 비슷해도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건 힘들지요.”

너무 자신에게 기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나쁠 것도 없었다. 이미 얼굴도 잔뜩 팔렸으니 말이다.

“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나저나 이메일 서비스를 하는데, 도메인이 중요하잖아요. 주소는 정했나요?”

“음, 넥스트닷컴이 있지 않습니까?”

헨리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따로 생각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넥스트닷컴 주소로 이메일을 만드는 유저가 늘수록 넥스트닷컴의 회원 숫자도 많아지는 것이고, 그만큼 넥스트닷컴의 가치도 높아지는 거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인터넷 1세대의 생각이었다.

가입자의 숫자가 곧 사이트의 가치였고, 이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합병도 일어났다. 이를테면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이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AOL의 시대는 끝났다. 북미 최대의 가입자라는 건 그저 빛바랜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부풀려진 숫자를 인터넷의 영향력으로 착각한 티임워너가 무지막지한 자금으로 합병을 진행했고, 결국 파탄으로 막을 내렸다.

“저는 그냥 별도의 이메일 서비스 전용 도메인을 만들면 좋겠네요. 외우기 쉽게 이메일닷컴으로 말이죠.”

“이메일닷컴? 확실히 직관적이네요!”

헨리 사장은 바로 좋다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곧장 도메인을 검사해 보았다. 역시나 보더니 누구도 등록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분간 인터넷은 무주공산이었다. 세계 최고가를 찍었던 귀한 도메인들도 지금은 누구나 등록 가능한 상태였다. 이메일닷컴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저는 이메일을 개인용 프라임키로 삼을 생각이에요.”

“프라임키?”

“이메일 하나로 우리 ID 그룹이 서비스할 모든 사이트를 접속하는 거죠. 이른바 사이트 통합 아이디죠.”

그제야 헨리 사무엘 사장이 깜짝 놀랐다.

넥스트닷컴은 유재원이 준비 중인 인터넷 서비스 중에 단 하나의 조각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서비스를 런칭할 것인데, 서비스마다 별도의 회원 가입이 필요하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아이디를 이메일로 대체하면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거부감을 덜 할 수도 있고, 통합적인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당연히 회원 관리도 훨씬 수월할 것이고, 신규로 시작하는 서비스를 본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러면 ID 톡과 넥스트컴의 회원들도 이메일닷컴으로 통합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해가 빠른 헨리 사장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는 넥스트컴 아이디를 ID 톡과 같이 쓰고 있는데, 여기에 이메일닷컴만 추가로 붙이면 되니 변환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강제로 하진 마세요. 선택권을 주면 사용자가 알아서 선택하실 거예요.”

기업에는 통합이 좋지만, 사용자에겐 그다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걸 억지로 하면 괜한 반발만 사니, 사용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훨씬 좋다. 통합 아이디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나면 억지로 압력을 주지 않아도 사용자가 알아서 변환할 것이다.

이후에도 유재원은 1시간 동안 헨리 사장에게 본인이 품고 있는 넥스트컴캐스트의 비전을 전수했다.

“인터넷도 중요하지만, 본분인 케이블 방송도 소홀히 할 수 없죠. 메이저 스포츠 중계권 계약이 좀 비싼 것 같아도 웬만하면 체결하세요.”

MLB, NBA, NFL 중계권은 비싸지만 사야 한다. 중계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케이블 가입자의 숫자가 좌우되는 킬러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조금만 비싼데,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비싸지는 게 중계권이었다.

2000년대만 되도 해당 리그의 중계권은 지금보다 숫자 0 하나가 더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초 장기계약으로 일찌감치 찍어 놓는 게 훨씬 났다.

마음 같아선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도 챙겨 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북미에선 미식축구의 인기가 초강세지만 일반 축구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넥스트컴캐스트의 영업 영역이 아시아를 포함한다면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이 좋은 아이템이긴 했지만, 북미에만 서비스 중이었으니 괜한 돈 낭비였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함께 밥이나 먹을까요?”

“옙,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사주시는 스테이크가 그렇게나 맛있다더군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유재원이 식사를 권했고, 헨리 사장 역시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유재원은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ID 테크놀로지 본사로 출근하는 건 이제 끝이고, 이제는 집 서재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현황 보고는 간단히 화상 채팅으로 마무리했다. 닛케이 지수 투자와 일본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 인수와 같이 큰 건은 이미 다 처리했고, 주식 시장도 파장 분위기였다.

화상 회의를 통해 ID 인베스트먼트의 잔고 상황과 신규 투자 상품에 대한 준비를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학교도 갈 이유가 없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개학은 1월 말로 1개월 남짓한 짧은 방학이었다. 물론 학교에 계속 나오셔서 연구 활동을 하시는 교수님도 좀 계시긴 하다. 하지만 유재원이 관심을 두는 반도체 소재 관련 연구를 하는 분은 안 계셨으니 학교에 갈 이유는 없었다.

“흠, 연락이나 좀 해볼까?”

유재원이 만지작거리는 건 티파니의 연락처였다. 그런데 딱히 전화해서 할 말이 없었다. 자전거 잘 쓰고 있느냐고 물어보기에도 그렇고, 만나서 차라도 한잔 마시자고 하기에도 모호했다.

“뭐, 인연이 있다면 나중에 또 볼 수 있겠지.”

잠깐 고민했던 유재원은 깨끗하게 접고 컴퓨터 앞에 집중했다.

ID 웹 브라우저를 열고 조지아텍, 칼텍, UC버클리 등등의 명문 공과 대학의 웹페이지나 고퍼를 돌면서 자료를 검색하는 일이었다.

찾고자 하는 건 반도체 소재 최적화 연구로 유재원이 조만간 세상에 내놓을 구리 배선 기술의 선행 연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스탠퍼드에선 해당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고 나오긴 했지만, 다른 학교라면 또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학교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 꾸려질 반도체 사업부로 스카우트를 제의할 생각이고, 없다면 원맨쇼라도 펼쳐 보일 생각이었다.

검색은 지루했다.

21세기의 통상적인 인터넷 환경과 달리 오로지 텍스트로만 구성되었고, 대학별로 카테고리가 나누는 기준도 제각각인지라 매크로 작업도 불가능했다. 결정적으로 일부 대학은 인터넷 속도도 느렸다.

“어라?”

그럼에도 유재원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결국엔 성과를 냈다!

“있다!”

열심히 키워드를 넣으며 검색한 결과 놀랍게도 1개의 검색 결과를 토해냈다.

“응? 근데 MIT네?”

문제는 검색 결과로 나온 논문이 올라온 학교가 MIT라는 점이었다. 스탠퍼드가 서부의 명문 공대라면, MIT는 동부의 명문대였다. 보스턴에 있는 학교니 스탠퍼드와는 극단에 있는 학교였다.

스카우트할 때 지리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컸다.

“응? 이분은?”

이름도 익숙했다.

유재원의 검색에 걸린 ‘웨이퍼 기판 표면과 하층 사이의 얇은 절연막을 추가해 반도체 소자의 성능을 향상하는 기법’이란 긴 제목의 논문의 저자는 리사 슈였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Issah'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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