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New Experience =========================
유재원의 기억 속에 있는 리사 슈의 가장 젊었던 모습보다 20년은 더 젊은 진짜 리사 슈가 거기에 있었다.
20년은 젊어 보인다, 이 말인즉슨 유재원이 그녀를 기억하는 건 2017년쯤 젠 시리즈를 발표할 때의 모습부터 인지도가 쌓였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낯섦과 반가움이 묘한 공존을 이뤄 이상한 느낌을 자아냈다.
“안녕하세요! 리사 슈입니다!”
그렇지만 유재원의 기억보다 20년이 젊은 리사 슈도 성격은 같았다. 적극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이 어색한 상황에서도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는 건 아무나 못 할 일이라는 건 분명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보스, 이분이 보스의 초대를 받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곧이어 리사 슈 옆에서 굳은 표정이던 경비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은 조심스러워도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당장 리사 슈를 끌어낼 태세였다.
“그럼요! 여기 보세요.”
유재원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리사 슈는 손에 들린 종이를 흔들었다. 받아서 뭔가 보니 자신이 리사 슈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그대로 출력한 것이다.
특히나 괜찮다면 만나서 리사 슈가 쓴 논문을 가지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자는 분량에 볼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별표도 그려져 있었다.
“네, 맞아요.”
경비 직원은 유재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꾸뻑 숙이곤 순순히 물러났다.
“들어오세요.”
이어 유재원은 리사 슈를 집으로 순순히 들여 보냈다. 역시 이번에도 리사 슈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 집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유재원과 리사 슈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거실 쇼파에 앉았다.
리사 슈를 위해서 직접 커피와 과자를 좀 내왔고, 리사 슈에 의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이야기다.
유재원이 대접해 준 커피와 과자라서 잘 먹은 게 아니라,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이를 잘 캐치한 유재원은 과자로는 좀 부족한 것 같아서 포만감이 생기는 빵과 과일도 내왔다. 역시 금세 사라졌다.
이유는 있었다.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편의 로드 무비였다.
“제가 유재원 회장님의 이메일을 확인한 건 크리스마스였죠. 보스턴의 집에서 확인했는데, 처음 보고는 장난인 줄 알았어요. ID 그룹의 회장님이 미국 반대편에 있는 저를 콕 찍어서 메일을 보내냐 싶었죠! 그런데 제 석사 논문도 언급되어 있고, 메일이 발신된 서버의 주소를 확인해 보니 진짜였던 거예요. 그때부터 제 머릿속엔 당장 실리콘밸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집을 나섰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집을 나섰고, 당연히 가장 간편한 이동 수단인 비행기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리사 슈의 여행이 꼬이게 되었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보니 항공편도 몇 없었다. 심지어 사람도 밀려서 직항 노선을 구하기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환승 노선을 찾아서 타게 된 것이다.
첫 단추가 그렇게 꼬이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갈아타기 위해 선택한 공항이 폭설로 마비되었고, 아예 착륙도 어려워서 근처의 공항에 내리게 되었고, 여기서는 버스를 타고 인근 도시로 이동해야 했는데, 눈 때문에 하염없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꼬이게 되었다.
유재원이 집에서 둠 2로 플레이어들을 학살하면서 랭킹을 급속도로 끌어 올리고 있을 때, 리사 슈는 찬 바람을 맞으며 새우잠을 잤고, 오늘에서야 날이 풀려 어렵사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나서도 유재원의 집까지 도착할 때까지 사건의 연속이었다. 하긴 경비원이 두 눈 뜨고 경비를 서는 중이었는데, 그걸 뚫고 바로 현관문 앞까지 와서 문을 쿵쿵 두드린 사람이 여기 있는 리사 슈였다.
이메일 하나를 받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을 횡단한 행동력은 정말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동시에 유재원은 의문 하나가 들었다.
“음, 이메일을 받고 나서 답장을 할 생각은 못 하셨어요?”
“아!”
아?
유재원의 물음에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리사 슈의 반응은 ‘아!’가 전부였다. 그냥 바로 움직이다 보니 미처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 답장을 보내기만 했어도 유재원이 기다리느라 지칠 일도 없었고, 리사 슈 본인도 그렇게 환승을 한다고 시간을 낭비할 일도 없었다.
미팅 날짜도 여유로운 날로 정하고, 비행기도 일등석으로 준비해줬을 텐데, 리사 슈가 무턱대고 움직인 바람에 본인만 고생했다.
“IP 주소 등록자로 ID 그룹으로 나오니 다른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냥 무조건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크리스마스라서 가뜩이나 표가 없을 테니 먼저 움직이자고 했죠. 뭐, 이 정도 일은 대학원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서 리사 슈는 하하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좀 푼수 기운이 있는 것 같지만, 능력을 보면 대단한 사람이었다.
지금 리사 슈의 나이는 불과 24살. 그런데 MIT를 조기 졸업했고, 심지어 전자공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증명된 인재였기에 오라는 곳도 많았다. 단지 리사 슈 본인은 박사후과정을 밟아 교수를 준비할지, 아니면 회사나 연구소에 들어갈지를 두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의 이메일을 받음으로써 그 고민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이메일을 보셨으니 알겠지만, ID 그룹은 반도체 생산 기술, 저전력 CPU 설계에 신규 진출을 결정했어요.”
유재원의 말이 시작되자 리사 슈가 귀를 기울였다.
특별한 비밀을 말해주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 나오는 제품들은 본인의 성에 차지 않으니 본인이 직접 원하는 걸 만들겠다고 지도 교수님께 했던 이야기를 순화해서 들려주었다.
“와우! 역시 ID 그룹이 괜히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었군요.”
리사 슈는 그런 유재원의 포부에 박수를 쳐줬다.
반도체 전문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니 속으론 너무나 부끄러운 유재원이었다. 모래로부터 실리콘을 뽑아내서 웨이퍼를 만들고, 그 위에 리소그래피 과정을 거쳐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모든 공정을 전문적으로 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본인 앞에 있는 리사 슈였다.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실시간으로 체감되는 유재원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사람을 실망하게 할 수도 없고, 마스터플랜을 착착 실행할 때부터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유재원 본인의 전문 분야인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는 그저 마스터플랜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다.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게 리사 슈 박사님의 논문입니다.”
리사 슈가 쓴 웨이퍼 기판 표면과 하층 사이의 얇은 절연막을 추가해 반도체 소자의 성능을 향상하는 기법이란 논문은 구리 배선 공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구리 배선 공정에 활용하기에도 좋지만, 반도체 분야 전체에 큰 향상이 되는 기술이었다.
이전에는 웨이퍼를 가지고 생산 공정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절연막과 같은 걸 씌울 생각을 못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사 슈가 제안한 절연막은 반도체의 성능과 수율 향상에 직접 도움이 되는 기술이었다. 일단 완성된 반도체를 웨이퍼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하기도 쉬워진다. 게다가 오염원으로부터 차단하는 역할도 하니, 전체적으로 반도체 수율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구리 배선 공정에서도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절연막 기술과 구리 배선 기술이 합쳐지면 강력하고도 저렴한 반도체를 높은 수율로 양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어서 유재원은 구리 배선 기술에 대한 개요를 간단히 풀었다.
현재 인텔이나 AMD의 기술은 알루미늄 기반이고, 방식은 진공증착이었다. 반도체 회로를 다 그리고 난 후에 배선 작업을 하는데, 순수 알루미늄 덩어리를 진공 챔버에 넣고 감압과 함께 가열하면 알루미늄이 입자 상태가 되어 챔버 안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 상태에서 반도체 회로를 다 그린 웨이퍼를 넣으면 회로에 알루미늄 입자가 달라붙어 증착된다.
반면 구리 배선은 구리 이온을 이용한다. 반도체 회로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구리 이온이 정밀한 배선도를 그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해보는 황산구리 도금과는 차원이 다른 난도를 자랑한다.
“일단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유재원은 기억의 궁전에 담아온 구리 배선 공정의 요점 몇 가지를 풀었다. 생략과 요약이 좀 많았지만, 리사 슈는 유재원의 설명을 한 번만 듣고도 100% 이해했다.
“진짜 천재셨군요!”
덕분에 단단한 오해도 이어졌다. 반면 유재원은 리사 슈가 대단해 보였다.
기본기가 얼마나 탄탄하면 자신의 어설픈 설명을 듣고도 단번에 이해했겠는가.
“후후! 그건 아니죠. 그냥 발상의 전환일 뿐이에요.”
유재원은 빠르게 말을 돌렸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빠르게 넘기고, 바로 핵심으로 넘어가서 본인에게 집중되는 관심을 피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상용화 가능성이겠군요. 사실 학교 실험실에서 엄청난 걸 만들었다는 뉴스가 나와도 시장에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게 상업성이 떨어져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리사 슈의 의견에 유재원도 100% 동의했다.
동시에 흐뭇하기도 했다.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좋은 경영자였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AMD의 경영자가 되었던 때는, AMD의 첫 번째 영광이었던 애슬론 시절은 한참 전에 끝나고, 후속작에서 철저하게 망했을 때였다.
코드명이 불도저였던가?
불도저에 담긴 의미는 숙적 인텔을 밀어버리겠다는 의지였겠지만, 막상 완성된 제품은 그 의지에 부응하지 못했다. 처참한 성능으로 인해서 불도저는 인텔 대신 AMD를 밀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리사 슈가 사장이 되었고, 놀라운 변화를 끌어냈다.
처참한 성능의 불도저를 조금 더 개량했고, 여기에 VGA 기능을 결합한 APU라는 신제품을 냈다. 이뿐만이 아니라 게임기 제조사에 납품도 성공했다.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에 모두 AMD의 칩이 들어갔고, 해당 게임기들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끊어지던 AMD의 돈줄을 다시 살려주었다.
더구나 리사 슈는 이렇게 어렵사리 모은 돈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바로 젠 아키텍처의 준비였다. AMD의 두 번째 전성기였던 젠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너무 일찍 말하는 것 같아 망설이긴 하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식으로 제안할게요! ID 테크놀로지의 반도체 사업부 책임자로 오세요! 같이 일합시다.”
인재에 대한 욕심은 무한인 유재원이다.
이메일 한 통으로 집까지 찾아온 리사 슈는 이전과 같이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인증된 마당에 쓸데없이 뒤로 미룰 이유도 없었다.
리사 슈도 유재원의 제안은 예상 밖인 모양이긴 했다.
유재원의 집까지 찾아올 동안 최대한 상상한 것이 ID 그룹이 본인에게 연구 과제를 의뢰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운이 정말 좋다면 함께 공동 연구 정도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ID 테크놀로지의 반도체 사업부 책임자 자리를 바로 제안할 줄은 몰랐다.
“어? 이렇게 빨리 결정하시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박사 학위는 있다지만, 성과를 낸 것도 없고 나이도 24살밖에 되지 않는데요?”
“그럼 하지 말까요?”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요.”
역시 대놓고 물어 봐야 본심이 바로 나온다. 여기까지 이메일 한 통만 가지고 달려온 것부터 본인의 실력에 대한 단단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걸 알아보지 못하니 이력을 요구하고, 두고 보는 시간을 갖지만, 유재원에게 리사 슈는 이미 증명된 인재였기에 필요치 않았다.
수락을 받은 유재원은 곧장 앨런에게 연락해서 리사 슈의 고용 계약서를 만들도록 했다. 당연히 대우는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다음 날, 리사 슈는 ID 테크놀로지 본관으로 와서 정식으로 고용 계약에 사인했다. 그와 함께 ID 테크놀로지에 반도체 사업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사무실도 번듯했다.
예전에 사놨던 건물은 진작 만실이었기에, 아예 새로운 신상 건물을 구매해버린 것이다. 원래는 사무실이 아예 없는 ID 테크놀로지 산하의 스타트업기업을 위해 마련한 건물인데, 제일 먼저 반도체 사업부가 입주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작은 혼란이 있었다.
반도체 사업부 건물로 삼으면서 원래 입주하기로 한 기업들은 잠깐 뒤로 미뤄진 탓이다. 반도체 사업부 건물 안에는 당연히 시제품 제작을 위한 소규모 반도체 제조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반도체 제조에 무척이나 독한 약품이 사용되는데, 이를 다루기 위한 특별한 시설을 짓고 허가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유재원의 계획은 시범 제작 같은 건 스탠퍼드 대학교를 통해 만들 생각이었는데, 리사 슈가 스카우트되면서 아예 자체 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대책도 간단했다. 다른 건물 하나를 더 사는 것이다. 어차피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니 돈이 열리는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다는 생각으로 샀다.
새로운 사업부가 출범했지만, 떠들썩한 잔치를 꾸미진 않았다. 다만 리사 슈를 비롯해 스카우트 제안에 응한 전문가들 몇 명과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출범식은 끝이었다. 이 때문에 뭔가 화려한 파티를 기대했던 몇몇은 조금 실망한 듯 보였다. 게다가 반도체 사업부 책임자로 빛나는 이력이 쌓인 자신들을 제치고 어리고, 경력도 없고, 심지어 여자인 리사 슈가 임명되자 스카우트 제안에 거의 응했다가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재원은 괘념치 않았다.
사기업에서 중요한 건 결국 성과였다. 반도체 사업부가 큰 성과를 내면 알아서 주변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확실한 포뮬러가 머릿속에 고스란히 있는 유재원이었고, 이를 실행할 최고의 전문가인 리사 슈가 있다.
시작했다 하면 대박부터 치는 ID 그룹의 전통을 반도체 사업부도 이어갈 준비는 이제 다 끝났다.
ID 그룹이 새로운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 주인인 유재원은 편하게 쉴 수는 없었다.
집에서 유유자적했던 자택 근무도 끝났다. 반도체 사업부 빌딩을 완성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AMD의 제리 사장에 큰소리친 여름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작업은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무실을 꾸민다면 그저 사무집기 전문 업체에 의뢰를 주면 끝이었다. 하지만 반도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안전기준을 맞춰 허가도 받아야 했다.
덕분에 유재원은 매일 반도체 사업부 건물로 출근해서 저녁까지 먹은 후에 돌아왔다. 얼마나 바빴으면 오죽하면 새해가 지난 것도 1월 1일 저녁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둠 2만 즐겼던 일은 아스라이 추억으로 느껴질 만큼 일에 치였다. 당연히 일이 많은 만큼, ID 그룹의 현금 계좌에서 큰돈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건물을 사는 것부터가 목돈이 깨지는 일이었고, 반도체라는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만큼 관련 장비도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했다. 심지어 중고 가격도 신품에 비견될 정도였다.
덕분에 기왕이면 신품을 사자고 리사 슈 박사가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품은 배송까지 1달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을 만큼 대기 시간이 길었다. 반면 유재원은 지금 당장 필요했기에, 거래 후 며칠 내로 배송되는 중고품이 더 구미에 맞았다.
그렇게 반도체 사업이 꾸려지는 동안 대전에서도 LCD 공장 부지가 결정되었고, 거래도 즉각 이뤄졌다.
그날, 텔레비전에 다시 한 번 유재원의 얼굴도 잠깐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의 LCD 공장 투자는 조 단위 사업이었다. 물론 사업 규모는 엿가락처럼 늘렸다가 줄이기도 한다지만 단위 자체가 달라지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재원을 대리한 황재홍과 대전 시장이 MOU를 체결하는 것까지도 전국 뉴스에 실릴 만큼 큰 건이었다. 하지만 이건 맛보기에 불과했다.
대전 LCD 공장보다 훨씬 더 큰 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42대 미합중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취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