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1 테크노피아 1993 =========================================================================
딩동!
“왔다!”
현관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유재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달음에 현관 앞까지 달려나갔다.
문을 벌컥 열어 보니 집 앞을 항상 지켜주는 경호원과 함께 낯선 사람이 큰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낯선 사람이 쓴 모자나 입고 있는 옷,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상자에는 AMD 로고가 선명했으니 따로 말하지 않아도 어디서 나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 회장님, AMD CTO 테리 마이크론입니다.”
AMD 모자를 쓴 이가 유재원의 모습을 확인하자 인사부터 했다. 택배만 올 줄 알았는데 무려 AMD의 최고기술책임자(CTO, Chief Technology Officer)가 배달을 왔다. 옆에 경호원을 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유재원의 집에 방문하는 사람은 경호원이 먼저 신분 확인을 하는 게 첫 번째 절차였고, 그의 소개에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아, 유재원입니다. 들어오세요.”
이러면 상자만 받고 돌려보낼 수가 없다. 유재원은 집안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고 테리 마이크론이 들어왔다.
집안으로 들어온 둘은 거실에서 상자부터 개봉했다.
미국서 완충재로 많이 쓰는 찹쌀떡 같은 스티로폼이 제일 먼저 보였다. AMD 본사는 유재원의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데, 무슨 대륙 횡단용 택배처럼 꼼꼼하게도 포장했다.
“혹시 몰라서 말입니다.”
함께 완충재를 걷어내던 테리 마이크론이 살짝 부끄러운 듯 말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포장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생각해보니 정말 잘 지었다. 마이크론이라는 성이 있을 줄 몰랐는데, AMD의 CTO로 역임 중이라니. 현재 CPU의 미세 공정이 마이크론 단위이지 않은가.
물론 앞으로도 계속 마이크론 단위에 머물다간 큰일이다. 미세화 공정이 나노미터 단위로 발전을 해야 하니 말이다.
“오, 이게 코퍼마인 공정으로 만든 최초의 CPU로군요.”
어른 주먹 2개 크기의 CPU 상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매점 판매용 패키지인 듯 그럴듯한 그래픽과 함께 AMD K6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래는 PR166이라는 퍼포먼스 레이팅도 적혀 있다.
“작동속도는 120MHz입니다. 하지만 성능에 있어 인텔의 펜티엄 166MHz 모델과 동급이라고 자부합니다.”
테리 마이크론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자사의 최신 CPU를 자랑했다.
“오, 대단하네요!”
유재원도 호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코요테 시티에 만든 데이터센터에 들어간 AMD CPU의 작동속도는 50MHz였다. 작동속도를 단번에 2.4배 끌어올리는 건 어마어마한 향상이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기대했던 200MHz에는 많이 모자란다. 아무래도 코퍼마인 공정을 자사에 맞게 안정화하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던 모양이다.
곧이어 메인보드도 나왔다.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이전에 사용했던 보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인 AMD였지만, 이번에 작동속도가 크게 올라가면서 메인보드도 교체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밖에도 미래전자의 HPC 인증 메모리도 나왔고, 무려 640MB의 용량을 자랑하는 대용량 하드 디스크도 있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 조립을 시작했다. 케이스 없이 누드 상태로 조립하는 것이라 속도가 매우 빨랐다. 비디오 카드와 모니터, 키보드는 유재원의 집에 남는 것으로 가져와 붙이니 순식간에 고성능 PC 한 대가 만들어졌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설치하고, 곧장 벤치마크에 들어갔다.
벤치마크용으로 실행한 건 당연히 요즘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둠 2였다. 셋업 메뉴에 가 보면 맨 아래 벤치마크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걸 실행하면 화려한 그래픽이 쏟아져 나오는 데모가 시연되고, 초당 그려내는 프레임 숫자로 점수를 계산한다.
“와!”
결과가 나오자 유재원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에 테리 마이크론도 어깨를 으쓱했다.
CPU부터 비디오 카드, 메모리까지 모두 HPC 인증 마크를 받은 PC의 어마어마한 성능 향상이 그대로 보인다. 이 정도 점수라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컴퓨터의 성능 향상을 체감하지 못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게임 분야에서는 눈이 확 달라질 만큼 화려한 그래픽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최초의 3D 가속 카드가 나왔을 때, 초당 30만 개의 폴리곤과 딱 하나의 텍스처를 돌리는 게 전부였다. 최근에 나온 HPC 인증을 받은 3D 가속카드는 100만 개의 폴리곤을 돌렸다. 다만 이때 사용한 CPU는 구식 펜티엄 CPU였다는 것이 체크포인트다.
여기에서 CPU 하나만 코퍼마인 공정으로 탄생한 것을 바꿨고, 이로 인해 벤치마크 점수도 차원이 달라졌다.
“1만 점이 넘었네요!”
모니터 위에는 다섯 자리 숫자가 떴다.
펜티엄급 PC에서는 보통 3천 점 정도 나왔던 벤치마크 점수였는데, 단번에 1만 점을 돌파해버렸다.
3배가 넘는 향상이었다.
세부 항목을 보니 폴리곤 처리 능력이 초당 200만 개로 2배나 늘어났고, 텍스처 처리 능력도 2배 빨라졌다.
이 정도 성능이 대중화된다면 게임의 그래픽도 지금보다 월등히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 단적으로 현재 최고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둠 2도 유재원의 눈에 봤을 땐 너무도 허술했다. 다이나믹한 광원 처리도 못 해서 불꽃이 튀는 총을 쏴도 이펙트만 나오지, 캐릭터 주변이 밝아지진 않는다.
총이 빗나가 벽이나 바닥에 맞으면 파편이 튀어야 타격감이 올라갈 텐데, 그런 것도 없다.
절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해서 넣으려다가 뺀 기술들이다. 이제 컴퓨터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으니 개발 단계에서 만들었다가 현실적 한계에 눈물을 머금고 뺀 것들을 이제 다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앗! 만지지 마세요. 뜨거워요!”
보드에 꽂힌 AMD의 CPU가 참 사랑스러워 슬쩍 만져보려는데, 테리 마이크론이 급히 제지했다.
“악! 뜨거!”
그렇지만 테리 마이크론의 말은 이미 늦었다. 일찍 손을 덴 유재원은 따끔한 느낌에 소리를 내며 바로 손을 뺐다. 그러고도 열감이 남아 있어 탈탈 털었다. 테리 마이크론이 그 모습에 안절부절못한다. 부주의한 유재원의 잘못인데 미리 주의를 환기하지 못한 자기 잘못 같았던 탓이다.
이게 헤프닝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유재원의 인식에 AMD가 밉보이면 비즈니스에 큰 타격이 온다는 게 문제다. 컴퓨터 업계에서 절대적인 갑이 ID 테크놀로지였다. 작년엔가 보안 패치가 적용되었을 때, 인텔의 성능이 다른 회사들의 제품보다 좀 더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인텔의 매출이 하락했다.
물론 하락한 수준은 무시한다면 할 수 있을 만큼 작긴 했지만, AMD 같은 인텔의 1/10 크기밖에 되지 않는 회사엔 충분히 의미 있는 수치였다.
그렇기에 ID 테크놀로지와의 협력이 중요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더욱 잘 돌린다면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그만큼 상승하는 것이니 말이다.
“꽤 뜨겁네요.”
테리 마이크론의 바람과 달리 유재원은 뜨거운 CPU에 확 꽂혔다.
겉으로 봤을 땐 그다지 뜨겁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눈이 적외선을 보지 못하니 뜨겁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엔 어폐가 있다. 그래도 금도금을 한 것인지 반짝거리는 게 참 탐스러웠다.
“예, 코어 클럭이 상승한 만큼 발열도 높아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코퍼마인 공정 덕에 크게 낮아져서 작동속도가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테리 마이크론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맞는 말이다. 반도체의 작동속도가 높아지면 발열도 상승한다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모습에서 유재원은 의문이 생겼다.
“쿨러는 안 쓰세요?”
“쿨러…라니요?”
유재원의 물음에 테리 마이크론이 오히려 반문했다.
반도체의 작동속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전자가 밀집하고 저항도 커져서 발열이 높아진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니 저항값이 낮은 구리를 쓰면 작동속도를 보다 향상할 수 있다는 것에서 코퍼마인 공정이 출발했다.
동시에 역으로 발열을 잡으면 작동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된다. 그리고 발열을 잡는 건 반도체 소재나 설계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방금 언급한 쿨러를 장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AMD의 최고기술책임자가 쿨러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걸 달아도 그다지 큰 향상은 없었습니다만.”
존재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테리 마이크론이 생각하는 쿨러와 유재원이 생각하는 쿨러의 모습이 많이 달랐을 뿐이다.
테리 마이크론의 쿨러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납작하고 작은 팬이 달린 것이었다. 서버용 제품에나 달리는 제품이다. 반면 유재원이 말했던 쿨러는 히트파이프까지 달린 크고 우람한 형태의 쿨러였다.
안 되겠다 싶은 유재원은 벌떡 일어나 서재로 갔다. 말이 서재이지 작업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실제로 책보다 컴퓨터 부품이 훨씬 많이 있었다. 서재에서 나온 유재원의 손에 들린 건 타워형 공랭 쿨러였다.
“그건 뭡니까?”
“쿨러죠. 제가 만들어 봤어요.”
직접 만들었다고는 해도 모양새는 전혀 허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트닝 볼트에 의뢰해서 만들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탄소섬유로 자전거 틀을 만들 만큼 손재주가 남다른 라이트닝 볼트사였다. 얇은 구리판과 히트파이프를 다루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유재원 본인이 쓸 물건이라고 하니 마이클 볼튼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
이건 부족한 컴퓨터 성능을 어떻게든 끌어 올려 보려는 유재원의 노력 중 하나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돈과 노력을 기울인 것과는 별개로 컴퓨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진 않았다. 애초에 한계가 있었던 제품인 탓이다.
“이거 달고 다시 측정해봅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쿨러와는 차원이 다른 쿨러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 테리 마이크론을 두고 유재원은 쿨러 장착을 시작했다. 써멀 그리스를 잘 바른 다음 쿨러와 CPU의 접촉면이 딱 붙도록 메인보드와 단단히 결박했다.
이후 다시 한번 벤치마크를 돌렸다.
“1만500점이네요.”
쿨러 장착만으로 5%의 성능 향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초대형 쿨러의 진가는 모름지기 오버클록에서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유재원은 과감하게 오버클록을 시작했다.
이 시대의 오버클록은 완전히 기계식이었다. 바이오스에서 간단히 버튼 하나로 할 수 있었던 21세기와는 달리 메인보드의 FSB 점퍼를 조작해야 했고, 배수를 높이기 위해서 CPU의 저항에 연필로 선을 그어줘야 한다.
컴퓨터 지식이 만점인 유재원에겐 쉬운 일이었지만, 컴퓨터 초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작업이었다.
작업을 끝낸 유재원은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변숫값이 달라진 CPU를 바이오스가 인식하진 못했지만, 부팅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빠릅니다!”
눈 크게 뜨고 모니터에 집중하던 테리 마이크론이 바로 반응했다.
신형 K6 CPU 개발을 주도했던 그는 안드로이드 부팅 화면을 몇백, 몇천 번은 보았다. 그러니 바탕화면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칼같이 각인되어 있다.
유재원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쿨러를 달고, 오버클록이라는 금단의 기술을 쓴 지금 나타나는 속도는 테리 마이크론이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시스템보다 빨랐다. 이어 곧장 벤치마크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헙!”
2분 정도 걸린 둠 2 벤치마크가 끝나고 점수가 모니터 위로 뜰 때, 테리 마이크론 CTO는 헛바람을 집어먹고 말았다.
“1만3천 점! 세계 신기록이네요.”
인터넷을 선도하는 ID 그룹이었고, 그러한 특성은 고스란히 계열사에도 이어졌다. 덕분에 둠 2의 멀티 플레이 기능은 극한에 이를 만큼 발전했다. 당연히 벤치마크 점수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는 기능도 만들어졌다.
시대를 불문하고 자신의 시스템을 자랑하려는 사람들은 늘 있었기에, 벤치마크 점수를 등록한 사람은 수만 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쌓은 기록을 케이스도 없이 대충 만든 HPC가 완벽하게 능가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CPU의 공정 변경 없이 단지 쿨러 하나 추가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해법이 있었다니.
테리 마이크론은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본인의 실험실로 돌아가 제대로 데이터를 뽑아 보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선물로 드릴게요.”
이에 유재원은 보드에 장착되어 있던 쿨러를 뜯어 테리 마이크론에 안겨 주었다.
“고맙습니다!”
테리 마이크론은 넙죽 쿨러를 받았다. 원래 서양 사람들은 선물을 받을 때 의례적인 거절을 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테리 마이크론은 마치 절대 반지를 얻은 골룸처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가슴에 푹 안았다.
유재원은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 AMD로부터 받은 부품값만 해도 3천 달러는 쉽게 넘을 지경이다. 수제품이긴 해도 원가는 100달러도 안 되는 부품을 얻고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선물로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쿨러라는 건 CPU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부품이었다. 이번 선물 교환을 통해 고급형 쿨러가 일찍 대중화가 되면 그것으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흠, 그러면 제대로 만들어 볼까?”
쿨러를 소중히 품은 테리 마이크론을 배웅한 유재원은 서재로 돌아왔다.
HPC 클래스 CPU까지 다 모였으니, 이제 한데 모아서 제대로 된 신제품을 만들어 보려고 자세도 제대로 잡았다.
A4용지 한 팩과 함께 부드러운 필기감을 자랑하는 4B연필을 손에 쥔 것이다.
고성능 컴퓨터 두고 웬 연필인가 싶겠지만, 유재원이 전생에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었던 것이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태블릿을 쥐면 그나마 좀 나았지만 연필로 그리는 것보다는 못했다.
덕분에 스케치나 콘셉트를 그리는 건 무조건 연필이었다.
연필을 잡은 유재원의 손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선이 생겨났고, 그러한 선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다.
직사각형처럼 네모나고 넓적한 물건이었다.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졌고, 그런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안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직사각형이 다시 한번 그려졌다. 사각형 아래쪽엔 다시 손톱 크기의 자그마한 네모 버튼을 넣었다.
여기에 세로로 선을 넣어서 입체감을 불러일으켰다.
“됐다.”
선 몇 개로 그려낸 너무도 간단한 모습이다. 동시에 유재원에겐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도형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아직 아니다. PC용 CPU를 비롯한 부품을 손바닥만 한 크기에 넣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였지만, 크기는 훨씬 더 큰 것. 태블릿 PC였다.
“일단 태블릿 PC를 만들고 크기만 줄이면 그게 바로 스마트폰 아니겠어.”
유재원의 로드맵은 간단했다.
태블릿 PC를 완성하고 크기를 줄여 스마트폰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완성한 스케치는 스마트폰의 기본적 형태와 똑같았다. 화면 하단에서 크게 보이는 홈 버튼과 옆쪽 면에 붙어 있는 볼륨 조절 버튼이나 각종 단자도 그대로 그렸다.
3.5mm 이어폰 단자는 상단에 넣었고, 그 옆으로 충전용 USB 단자도 막 그려 넣던 유재원은 순간 뭔가 잊은 게 떠올랐다.
“응? 그러고 보니 아직 USB도 없잖아.”
생각해보니 현재의 컴퓨터 메인보드에는 시리얼 포트만 가득하다. 조금 전 AMD의 테리 마이크론 CTO가 상자에 넣어 가져온 최신판 메인보드를 살펴봤는데 역시나 USB 단자는 없다.
“으, 그러면 이것도 내가 만들어야 하나?”
컴퓨터를 잘 모르는 초보라도 편리하게 주변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USB였다. 꼽기만 하면 알아서 작동하니 이보다 편리할 수가 없다. 반면 현재의 시리얼 포트는 기기마다 충돌나지 않도록 점퍼도 적절히 맞춰줘야 했다.
“기왕 만들 거 서둘러야겠다!”
유재원의 마음이 빨라졌다.
조만간 HPC 인증 부품들이 쏟아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유저들이 컴퓨터를 교체하게 된다. 미리 USB 포트를 만들어 공급하면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가했던 시절도 다 끝인가?”
USB 포트는 시작에 불과했다.
키보드나 마우스가 없는 태블릿 PC에 맞춰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그리고 이를 지원하면서 PC용보다 훨씬 가벼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눈코 뜰 시간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