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국민 PC =========================================================================
○ 국민 PC
대전 엑스포 전야제는 그야말로 화려했다.
폭죽이 쉬지 않고 터졌고, 서치라이트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여기에 90년대 기술의 극한을 보여주는 레이저 쇼가 하늘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게다가 모든 전시관이 불을 환하게 밝히니 불야성이 따로 없었다.
엑스포 광장에서는 개장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한창인 가운데, 어마어마한 귀빈이 방문한 전시관도 있었다.
바로 ID 그룹이 준비한 테크노피아 관이었고 손님의 정체는 대한민국 총리 전명헌과 미국 부통령 앨 고어였다. 둘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수십 명이지만, 실질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은 유재원이였다.
“이것이 입장권입니다. 여기 창구에서 예약 번호를 말하거나, 저기 무인 창구에 입력하면 나오죠.”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가 완벽한 유재원인 덕에 불편함도 확실히 덜했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의 행사인지라 전명헌이나 앨 고어도 동시통역사를 준비했기에 유재원이 없더라도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겠지만, 통역을 거쳐 듣는 것과는 확실히 생생함이 달랐다.
유재원은 직접 예약 번호를 무인창구에서 입력했다.
앨 고어와 전명헌의 방문은 취재진도 동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보여주는 시범은 곧 내일부터 방문할 일반인들에게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라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고, 그리고 덜 번거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확인되었습니다.
16자리로 된 번호 입력이 끝나자 짧은 메시지와 함께 입장권이 쫘르륵 나왔다.
줄줄이 나오는 입장권이 좀 많았다. 유재원을 포함한 전명헌, 앨 고어 그리고 그들의 수행원들 몫까지 한 방에 나왔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사람들에게 한 장씩 입장권을 나눠줬다. 이게 전시관 안에서는 체험용 부스의 이용권과 같은 것이란 부연설명도 했다.
“와, 무인 발권이라니. 사람이 몰렸을 때 간편히 뽑을 수 있겠군요.”
앨 고어는 전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감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00년대만 되도 무인 발권기는 많이 볼 수 있는 장치였지만, 93년인 지금은 유재원이 처음 보여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온라인 예약 기능과 더해지면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IT 기술이 실생활을 어떻게 바꿀지 입구에서부터 보여주는 장치였으니 IT 마니아인 앨 고어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 이 정도로 놀라긴 이른데요. 전시관 안에는 더 깜짝 놀랄 게 많거든요.”
“유 회장이 장담할 정도라니.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데요? 전 총리님은 어떠신지요?”
앨 고어는 유재원의 말에 반응을 보이면서도 전명헌까지도 알뜰히 챙겼다.
“허허, 유 회장은 빈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장담한다는 소리도 쉽게 하지 않지요. 대신 그 말이 나오면 절대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전명헌도 기다렸다는 듯 덕담이 이어졌다.
짜고 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민망할 정도였다. 유재원은 바로 입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테크노피아 관의 첫 번째 손님으로 앨 고어와 전명헌, 유재원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역시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앨 고어는 감탄을 자아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무려 세로 5m, 가로로 20m나 되는 벽이 압박적으로 나타나는데, 이게 다 LCD로 만든 디스플레이 장치였다.
샤프에서 만든 최신 버전인 24인치 LCD를 거의 천 개 가까이 이어 붙여서 거대한 멀티비전을 완성했다. 초기와 비교해 좀 나아지긴 했어도 베젤은 여전히 두꺼웠다. 멀티비전을 만들기에 치명적인 단점이었는데, 유재원은 이걸 굴절률이 높은 유리를 베젤에 덧대는 방식으로 최대한 눈에 거슬리지 않게 했다.
세밀한 화면을 띄우면 베젤 부분이 확 드러나지만, 구름이나 안개 낀 모습 등을 띄우면 그럴싸하게 보인다.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참작해서 몽환적인 동영상을 만들었다. 속세에서 벗어나 유토피아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동영상으로, IMAX 필름을 이용했기에 화질은 무척이나 좋다. 게다가 좋은 스피커를 입체적으로 배치하고 앰프도 좋은 걸 사용했으니 음향도 완벽했다.
“인피니티 디스플레이 기술입니다. 지금은 이 정도 크기지만, 원하는 만큼 LCD를 추가해서 크기를 무한정 늘릴 수 있지요.”
유재원은 천연덕스럽게 기술을 설명했다.
설명했던 것처럼 무한정 화면 크기를 늘릴 수 있지만, 그럴수록 화질은 떨어지고 소비전력과 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적당한 크기에서 멈추는 게 좋다. 게다가 베젤 문제도 있어서 화면에 왜곡이 심하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가장 큰 디스플레이로 인정해주기엔 충분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지금은 한가하기에 찬찬히 감상하면서 들어갈 수 있지만, 당장 내일부터 어마어마한 인파가 쏟아지면 제대로 감상도 못 할 거라는 것이다. 그래도 기술 하나는 확실히 구현했으니, 관심이 있는 기업이나 사업가라면 분명 문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를 지나면 커다란 로비가 나타난다. 아직 발매도 하지 않은 뉴 에그 2 PC 200대가 깔린 거대한 로비다.
테크노피아 전시관의 전체 구조는 3층짜리 U자형인데, 가운데 텅 빈 곳을 피시방 스타일로 차린 것이다.
관람객의 동선은 여기서 곧장 PC로 달려가던가, 아니면 시계 방향으로 둥글게 돌면서 ID 그룹이 준비한 체험 부스를 즐기면 된다.
“이건?”
“IT 문화공간입니다. 최신의 컴퓨터 기술을 체험하려면 직접 해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요.”
유재원은 가까운 PC로 두 분을 안내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입장권을 이용해 PC를 사용하는 법을 보여줬다.
책상 한편에 자판기에서 지폐를 넣는 투입구가 있는데, 그곳에 입구에서 받은 입장권을 쓱 넣으니 잠금 상태였던 컴퓨터가 풀리며 안드로이드 2.0의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여기서 약간 다른 모습인데, 바탕화면이 움직였다. 뉴에그 2로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특별히 만든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간 특별한 바탕화면이다.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정적인 화면에만 익숙했다가 막 움직이는 화면을 보면 분명 대단히 신기할 거다. 아마 21세기 컴퓨터를 쓰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비주얼적인 화려함 말고는 컴퓨터의 리소스만 먹는 기능이기도 했다.
유재원은 곧장 넥스트컴 2.0으로 접속해서 앨 고어의 대전 엑스포 방문에 대한 기사를 띄워 보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기사에 손바닥만 한 동영상까지 나오니, 앨 고어는 껌뻑 죽었다. 반면 전명헌은 덤덤한 표정이다.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모습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확실히 느낄 테지만, 전명헌과 같이 컴퓨터 쪽으론 백지상태인 분들에겐 감동은 남의 집 이야기였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다.
부우웅!
적당한 중저음 소리를 내면서 허공에 나타난 물체가 있다.
“재원아! 저게 뭐시냐!”
전명헌은 진심으로 놀란 듯, 평소엔 잘 쓰지 않던 사투리가 다 튀어나왔다.
“드론이라는 거예요. 프로펠러가 4개 달렸다고 해서 쿼드콥터라고 하죠. 무선으로 조종하는 무인기입니다.”
정체는 드론이다.
하이테크 연구소에서 덕테이프로 덕지덕지 감아 날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거듭난 드론이 로비의 천장에서부터 내려왔다.
프레임은 라이트닝 볼트사에 의뢰해 만든 탄소섬유였기에 매끈하게 잘 빠졌고, 모터는 신 일본투자은행 소속의 일본 중소기업에서 만든 저전력 고성능 모터였다. 비행안정성을 위한 센서는 ID 테크놀로지 산하의 마이크로센서 전문 기업의 제품이다.
중앙 하단부에는 떨림 방지용 짐볼과 함께 고성능 디지털카메라도 달려 있다. 당연히 이러한 장치도 ID 테크놀로지와 하이테크 연구소의 작품이다.
그야말로 ID 그룹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첨단 기기였다.
“저기를 보세요.”
유재원이 가리킨 로비의 중앙에도 인피니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크기는 입구에 설치된 것에 비해 1/3이지만 멀리서 봐도 사람의 구분이 확실히 될 만큼 화질이 좋았다. 그 화면에 유재원과 앨 고어, 전명헌의 모습이 나타났다.
드론이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도 놀라운 모습이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각 사람의 얼굴에 사각형 테두리가 곧 찍혔고, 테두리 왼쪽으로 이름까지 표시된 것이다.
이른바 실시간 영상 분석 기능이다.
21세기에 드론을 이용한 기본 기술 중 하나를 구현한 것으로 앨 고어는 물론 컴퓨터 쪽으론 경험이 없는 전명헌까지도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당연히 함께 취재 중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꼼수가 없는 건 아니다.
일단 광대역 무선 데이터 전송 기술이 없는 관계로, 드론은 컨트롤러, 서버와 유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오작동에 대비해 안전용 로프를 연결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원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용도가 훨씬 컸다.
그렇지만 임팩트를 주기엔 충분했다.
현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차원이 다른 기술임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체험 부스를 돌아볼까요?”
유재원의 제안을 두 사람은 마다하지 않았다.
현장에 귀빈들이 오면 체험관은 대충 둘러보고 식사나 연회를 거하게 치르는 게 보통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이처럼 호기심이 넘친 상태였기에 제대로 체험을 해보겠다는 열기를 유재원도 확실히 느낄 정도였다.
이어서 유재원은 체험용 부스로 앨 고어와 전명헌을 안내했다.
거기에서 두 분은 보정이 확실하게 들어가 최소 20년은 어려 보이는 스티커 사진기도 체험했고, 사진도 나누어 가졌다.
곧이어 태블릿 PC로 셀카를 찍어서 이런저런 효과를 넣고, 즉석 출력도 하고 넥스트컴에 올리기도 했다. 단번에 인기 게시물 TOP 100에서 1등을 차지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더욱이 리플을 달 수 있는 게시물이어서 한국과 미국의 네티즌들이 성지처럼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최초의 셀카 인증이라고 기록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큰 게시물 등극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그룹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체험 부스는 10개가 훌쩍 넘었고, 앨 고어와 전명헌 두 분은 만찬 시간이 코앞까지 올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체험했다.
두 사람의 반응은 그날 9시 뉴스를 탔고, 당연히 큰 반응이 일어났다.
보도용 영상은 유재원이나 전명헌의 입김으로 최대한 인물을 부각하는 구도로 찍혔지만, 그래도 드론이나 인피니티 디스플레이가 빠지진 않았다.
-회장님, 예약 사이트가 마비되었습니다!
엑스포 기간 서버 관리를 맡은 김택수의 급한 연락이었다. 뉴스가 나간 지 불과 1시간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진짜요?”
유재원도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반응이 컸으면 전시관 예약 사이트가 마비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예 서버가 다운되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넥스트컴 서버는 IBM에서 샀던 메인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당시엔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샀지만, 지금은 유재원이 만들어낸 클라우드 서버 시스템에 밀려났던 그 메인프레임이다. 역시 안정성에 있어 전통의 메인프레임은 믿음에 부응했다. 그러니 은행과 같은 곳은 21세기 초반까지도 메인프레임을 주 시스템으로 돌렸던 것이기도 했다.
“얼마나 몰렸는데요?”
-분당 5만 명이 넘습니다!
“세상에!”
이건 유재원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 접속자 숫자가 5만이라는 이야기였고, 이는 넥스트컴의 동시 접속자 숫자의 2/3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직은 인터넷 사용자와 PC 통신 사용자 사이에 구분이 있으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단 다 몰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단순한 예약 사이트였을 뿐이다. 테크노피아 전시관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어서 뭘 구경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뉴스에 주소가 나오니 그저 신기해서 다 접속해본 모양이다.
그러면 진짜 예약을 할 사람들과 단순한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사람을 구분해줄 필요가 있다.
사실 테크노피아 온라인 사이트에 대한 기획이 있긴 했다. 하지만 사전 조사 결과 수요는 얼마 없을 것 같았고, 유재원도 대전 엑스포 인터넷 사이트를 둘러 본 기억이 없어서 뒤로 미뤄졌다. 그것도 엑스포가 끝나면 흥행이나 행사 기록을 정리한 아카이브 사이트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늘 반응을 보니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온라인으로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테크노피아 온라인 관을 개설해야겠네요. 그것도 최대한 빨리.”
예약 사이트와 확실히 구분해 놓지 않으면 애써 만든 온라인 예약 기능을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못해서 현장이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예! 준비한 게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현실에 맞게 계획을 수정하는 건 유재원과 ID 그룹의 장점이다. 김택수도 유재원에게 전화 보고를 하기 전에 대책을 다 세워놓은 듯 대답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전화를 끊은 유재원은 이 상황에 대해 잠깐 머릴 굴려 보았다.
며칠간 혼란스럽긴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 전시관 예약은 일주일 전부터 받는 중이었다. 이미 많은 학교가 예약했기에 지금부터 며칠간 예약 사이트가 좀 혼란스러워도 전시관이 텅 빌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덕진 국민학교나 여주의 중고등학교는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다. 아쉬운 점은 유재원은 내일모레 출국인지라 호스트가 되어 그들을 맞이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덕진 국민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은퇴하셨지만, 담임 선생님은 아직 그대로 계셨기에 참 아쉬웠다. 출국을 미룰 수도 없는 것이 한국에 오래 머무는 동안 미국에서의 일이 더는 미룰 수 없을 만큼 쌓였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총괄해야 할 굵직한 일도 많아서 엑스포 개막식에 참여한 후에 곧장 미국으로 가는 것이 내일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이 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 법이다.
개막식도 잘 마친 유재원이었지만, 출국은 다시금 늦춰졌다.
변수 하나는 이맘때쯤 터질 줄 예상했던 일이다. 바로 금융실명제의 전격적인 실시였다.
다른 하나는 그룹 차원의 비즈니스였다. 최현희 회장의 전격적인 방문이었다. 코퍼마인 기술 거래에서 김혁수를 내세웠다가 물만 잔뜩 먹고 나서야 진짜 주인인 최현희 회장이 그 무거운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