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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주신 과제에 대해 생각 좀 해보셨어요?”
최강욱은 김택준과 본인의 사무실에 자리를 잡자마자 질문부터 날렸다.
“아, 고민이 길지 않아서 만족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김택준의 얼굴에 곤란함이 바로 올라왔다. 이메일을 받고 고민하기 시작한 게 어제부터였으니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나올 리 만무했다.
“평가는 회장님이 하시는 거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공통점은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 보려는 거니까요.”
부담 갖지 말라니. 회장님이 평가한다니 더더욱 부담이다. 그래도 눈앞의 최강욱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니 마음은 좀 편안해지는 김택준이다.
“아, 네. 그러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쉘 북을 써도 되나요?”
더욱이 김택준은 어제 메일을 받고 일단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처럼 끄적여 놓은 것들이 항상 들고 다니는 쉘 북 안에 저장해 놓았다.
“그럼요. 그런 건 물어보지 마시고 편하실 데로 하세요.”
최강욱의 허락에 김택준은 본인의 쉘 북을 꺼냈다. IT회사에 다닌다, 그 회사가 ID 테크놀로지다 그러면 쉘 북 하나 장만하는 건 필수가 돼버렸다. 지금처럼 뭔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하면 쉘 북처럼 편한 도구는 없으니 말이다.
세팅이 끝나자 김택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장님의 지시를 받고 처음엔 좀 뜬금없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사교육 사업이라니 완전 다른 업종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좀 생각해 보니 제법 괜찮은 아이템이었습니다.”
발언 그대로 김택준은 처음엔 웬 사교육이란 말인가 싶었지만, 짧은 고민만으로도 인터넷과의 시너지가 있는 분야라는 걸 인식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넣을지, 그게 과연 구현 가능할지 검토가 끝난 건 아니지만, 일단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쌍방향 통신이라는 인터넷의 강점은 컸다. 게다가 대역폭이 커진 ADSL을 이용한다면 제법 괜찮은 화질로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도 가능하니 제법 괜찮은 아이템이 나온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네요. 그런데 쌍방향 소통이라는 건 좀 어려울 수 있겠다 싶습니다.”
최강욱이 거들었다.
그 역시 유재원의 메일을 받고 난감하기도 했고, 웬 사교육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실시되었던 수능시험으로 학교들이 한 바탕 난리가 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대학 입시 체제가 수능으로 개편되면서 앞으로 사교육 시장이 크게 일어날 거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2차 수능이 11월이니 유재원이 준 인터넷 강의도 수능 중심으로 일단 만들어 서비스를 시작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쌍방향 소통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과목 하나에 강사가 한 명인데 수백 수천 명의 수강생들의 질의를 다 감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자고 하면 보조 강사를 두는 것인데, 그러면 큰 의미가 없어진다.
인터넷 강의의 핵심은 좋은 강사였고, 질문도 그 강사에게 듣고 싶어 하지, 평범한 강사로부터 답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즉, 최강욱은 인터넷 강의의 핵심을 뛰어난 강사에게 방점을 찍은 것이고, 김택준은 본인의 특기 그대로, 인터넷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둘은 함께 이야기를 해보니 어째서 회장님이 둘에게 동시에 인터넷 강의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지시를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면 종로에서 유명 강사를 모셔와야겠네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려고 할까요?”
“낯선 분야니 꺼리는 분이 많겠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회적 난제는 돈으로 풀 수 있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서비스 과목을 국영수로 한정한 대신, 강사님들의 연봉을 대폭 올려드리면 될 거 같네요.”
“아, 그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최강욱의 말에 김택준은 적극 동의했다.
기능만 생각하면서 정작 내용은 뒷전이었다. 사실 인터넷 강의 시스템을 실제 구현해야 할 사람은 본인과 팀원들이었으니, 그쪽으로 먼저 생각이 나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강욱의 말처럼 전 과목을 다 하는 건 무리였고, 수능에서 다루는 과목 중에 국영수만 다루면 훨씬 수월했다.
“아, 그리고 국민 PC 사업과도 결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시점을 조금 바꾸니 김택준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보조금으로 컴퓨터 가격이 상당히 내려갈 테지만, 결국 주머니를 여는 건 부모님들이었다. 유재원 덕에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게임기에서 뭔가 사회적 성공을 도와줄 도구로 업그레이드가 되긴 했는데, 그래도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지갑을 열어주실 부모님이 많을 거다.
본인의 부모님 포함해서 한국의 학부모님들이 내는 교육열이란 무시무시했으니 말이다.
“큰 그림은 다 나온 거 같네요? 그러면 정리를 해서 회장님께 이메일을 보내 볼까요?”
대략적인 그림이 나오자 최강욱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기의 할 일을 미루는 법이 없는, 리더의 덕목을 확실히 보여주는 최강욱이다.
다음 날.
유재원은 새로운 집, 서재에서 평소의 일과를 시작했다.
집이 고급스럽게 바뀌었다 뿐이지, 아침을 가볍게 먹은 유재원의 일상은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발가락으로 컴퓨터를 켜고, 뉴스 페이지에 가서 어젯밤에 새로 올라온 토픽을 좀 보다가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ID 톡을 켜니 언제나처럼 이메일이 가득했다. 이메일의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스팸메일도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ID 톡이 버전 업이 되면서 스팸메일을 자동 차단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덕분에 유재원이 보는 메일함은 업무용 메일만 가득했다.
스크롤을 해가면서 먼저 볼만한 걸 찾아보는데, 최강욱과 김택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이메일이 딱 보였다. 엊그제 공동 과제 하나를 주었는데, 벌써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유재원은 고민 없이 바로 해당 메일을 열었고, 첨부된 파일의 암호를 풀고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읽어보기 시작했다.
몇 분이나 집중해서 보았을까.
“와, 대단하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유재원이다.
인터넷 강의라는 타이틀 하나만 주었는데, 돌아온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현대적인 인터넷 강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수능 대비 특강이라는 콘텐츠까지도 확실히 담겨 있었다.
대치동의 이름난 강사를 고용해 비싼 학원 강의를 대중화하는 게 핵심이다. 다음으로 중점을 둔 건 ADSL의 대역폭을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강의의 집중도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ADSL이 원래 VOD를 위해 만들어진 기능인인데도, IT 전문가 중에 이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택준이 동영상 스트리밍을 떠올린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줘도 과하지 않았다. 다만 김택준은 동영상 스트리밍 강의를 위해 자체적인 클라이언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동영상 스트리밍이 기본 지원되는 ID 웹브라우저 3.0이 나왔단 말이지.”
유재원이 뜬금없이 인터넷 강의에 대한 과제를 준 원인이 바로 ID 웹브라우저 3.0 때문이었다. 조직 개편으로 조금 소란스러웠을 법도 한데, 레드먼드의 안드로이드 개발 팀은 열일을 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차기 패치는 물론이고, 동시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가 무척이나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ID 웹브라우저였다.
처음엔 그저 그림과 텍스트 그리고 링크만 지원했던 ID 웹브라우저는 지속적인 버전 업을 통해 많은 기능이 추가되었다. 당연히 그러한 기술은 즉각 공개되어 W3C를 통해 웹 표준이 되었고 덕분에 ID 웹브라우저의 라이브러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파생 웹브라우저들은 별다른 기술 개발 없이 메이저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최근 개발이 마무리되고 한창 베타테스터 중인 3.0에 추가된 핵심 기능은 바로 동영상 재생이었다. 웹서버에 파일만 올리고, 링크를 걸거나 웹페이지에 객체로 삽입하면 ID 웹브라우저가 알아서 스트리밍을 해준다.
유재원이 만든 안드로이드 동영상 코덱이 미리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최신 업데이트만 제때 해주면 기본으로 설치되니 큰 문제는 없다.
동영상 스트리밍 기능에 환호하면서 가장 먼저 활용할 곳은 보나마나 성인물 업체일 것이다. 그곳은 인터넷이 탄생과 함께 역사를 맞춰 오고 있었고, 신기술 사용에도 적극적인 곳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ID 그룹은 그런 성인물 업체를 운영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스트리밍이라는 게 성인물 전용 기능으로 인식될 것 같았다.
동영상 스트리밍을 성인물 말고도 정상적(?)으로 잘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바로 인터넷 강의 아니던가.
유재원은 직접 팀을 꾸려 서비스를 준비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한 만큼, 현 시대 사람들의 의식도 발전했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최강욱과 김택준을 콕 찍어서 과제를 내주는 식으로 테스트를 해보게 된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
컴퓨터 기술 발전이 3년 정도 가속화된 것처럼, 사람들의 의식도 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두 사람만 확인했으니 전체로 확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일단 앞선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측근이라는 게 좋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 PC 그리고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 수능과의 결합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까지 잘 집었다. 이건 유재원도 생각지 못한 것인지라, 기대 이상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이런 건 팍팍 밀어줘야지.”
유재원은 서비스를 완벽하고도 빠르게 준비할 수 있게 큰 힘을 실어 줬다. 바로 예산이다. 대치동의 스타 강사를 바로 모셔올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몰려도 터지지 않을 빵빵한 서버를 만들 수 있도록 풍족한 예산을 즉각 집행했다.
“다음은…, 퀄컴이네.”
기분 좋게 첫 번제 보고서를 처리한 유재원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로 열린 이메일은 요즘 유재원의 최대 관심 사안인 휴대폰에 관한 것으로, 퀄컴의 CDMA 모뎀칩 개발에 대한 보고였다.
1세대 아날로그 휴대폰과는 차원이 다른 휴대전화를 만들 준비는 끝났다. 물론 유재원이 원하는 둠 1을 돌릴 만큼의 고성능 휴대폰은 모바일용 CPU, 일명 AP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건 이제 겨우 개발을 시작했다.
다만 폴더 폰이나 막대기 형태에 4줄 혹은 8줄짜리 LCD를 넣어 문자를 확인하거나 그림을 볼 수 있는 정도의 휴대폰을 만들 준비는 거의 끝났다.
배터리부터 LCD까지 웬만한 부품은 다 나온 것이다. 딱 하나 모자란 게 바로 퀄컴에서 개발 중인 모뎀 칩이었다.
퀄컴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기술까지 지원 중이었다.
전생의 경우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기술지원을 거의 염가봉사 수준으로 계약한 탓에 퀄컴의 로열티 횡포에 그저 당하기만 했다.
이번엔 다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기술지원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했고, 기술을 지원한 한 만큼 지분을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퀄컴의 지분 상당수를 가진 유재원의 의지 덕이었다.
유재원은 빠른 기술 완성을 원했고, 능력이 모자란 퀄컴에게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이어준 거다. 여기에 제대로 된 계약서를 만들도록 어시스트도 했다.
덕분에 퀄컴의 CDMA 기술 지분 중 12% 정도가 한국의 몫이 되었다. 조금 작아 보이긴 한데, 전생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나은 결과였다.
다만 이렇게 한국전자통신연구원까지 기술 지원을 하도록 했음에도, 아직 모뎀 칩 실물이 나오지 못했다.
“아직도 마찬가지네.”
이번에 온 메일 역시 저번과 같았다.
기술 실증은 이미 끝났고, 조그만 IC칩을 만드는 중인데 아직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수신율이 부족했고, 패킷의 오류도 많이 생기는 것이다.
유재원이 시작한 기술 가속은 컴퓨터 분야엔 고르게 적용되었는데, 이동통신 분야는 아니었다. 원인을 찾자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만큼 해법도 다양했다. 물론 유재원이 직접 참전하면 빠르게 해결될 것이다.
“내가 몸이 두세 개도 아니고 그것까진 무리지.”
퀄컴의 모뎀 칩은 시간과 돈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이미 독자적인 모바일 CPU개발을 시작했으니 여기에 집중하는 게 나을 거라 판단한 유재원은 기술개발을 독촉하는 답신을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열심히 현안을 처리한 유재원이 자신의 PC에서 반도체 설계 프로그램을 실행한 건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최영식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인사했다. 그리곤 곧장 자신의 방으로 와서 책가방을 던져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윙윙거리면서 작동을 시작한 486 컴퓨터는 최영식의 보물 1호였다.
지금이야 586에 밀리고, 몇 주 전부터는 HPC라는 게 밀려 구식 취급이지만, 1년 전쯤 어머니가 큰마음 먹고 PC를 사주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물 1호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부팅이 좀 오래 걸리는 게 불편했을 뿐이다.
바이오스 화면이 넘어가고 나서 곧 안드로이드 깡통 로봇이 나와 로딩 중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로딩률을 보여주는 막대기가 올라가는 속도가 거북이였다.
이때가 영식이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경우엔 이상하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영식이의 아버지는 영식이가 기억도 못할 때 돌아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는데, 범인은 지금도 못 잡았다. 이 때문에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집안을 책임져야 할 어머니는 일찍 생업에 뛰어드셔서 평일 낮 시간엔 집에 없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영식이네 어머니가 그렇게 성실히 일을 했어도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겨우 먹고 사는 정도였다.
영식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그랬다.
국민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재원이가 자기 일을 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대서 주저하지 않고 참여한 것도, 일찍 집에 가봐야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땐 유재원이 뭘 한다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국민학생이 무슨 사업이란 말인가. 그냥 얼굴만 아는 같은 반 친구지만, 친구끼리 잘 지내라는 어머니 말도 따르고, 재미도 있을 거 같아서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 재원이를 따라 나선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그땐 무슨 사업이 어른들 부업하는 상자 접기냐 싶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간식이 나오니 그냥 좋았다. 게다가 이날을 계기로 재원이에게 컴퓨터도 배웠고,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재원이의 사업이 진짜 엄청나게 성공했고, 덕분에 영식이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재원이가 만든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만드는 공장이 여주 시에 크게 생겼고, 어머니가 그곳에 취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위태했던 영식이네 가계부에도 드디어 저축이라는 항목이 생겼다. 어머니도 밤늦도록 식당일을 할 필요 없이 오후 6시쯤엔 퇴근을 하셨고, 일요일은 꼬박꼬박 쉬셨다. 명절과 국경일에도 칼 같이 쉴 뿐만이 아니라 선물도 나왔다.
그렇게 살림이 나아진 덕분에 지금 영식이 앞에 있는 컴퓨터도 생겼다. 이와 함께 영식이에게도 큰 목표가 생겼다.
열심히 공부해서 친구인 재원이를 옆에서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런 생각은 혼자만 하는 건 아니었다. 국민학교 때 재원이에게 컴퓨터를 함께 배웠던 주민이나 수경이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이 마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재원이와 ID 톡으로 종종 채팅도 했는데 자기가 오른팔이 될 거라니, 자기는 왼팔이라니 하며 노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아, 됐다.”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드디어 부팅이 끝나고 바탕화면이 나왔다. 그냥 검은색에 아이콘도 몇 개 없다.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배경화면도 끄고 아이콘도 줄였다.
영식이는 곧장 모뎀을 켜고 터미널을 실행했다. 그리곤 본인이 자작으로 만든 프로그램도 동시에 실행해서 터미널과 연동시켰다. 그러자 원격 접속화면이 터미널에 나타났고, 아이디와 암호를 자동으로 넣으면서 접속을 시도했다.
영식이가 하는 건 바로 제2회 시큐리티 챌린지였다.
시작할 땐, 접속화면 보는 것도 어려웠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도전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금은 이렇게 쉽게 로그인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영식이는 본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시큐리티 챌린지를 뚫어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단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하나라도 찾아내면 만족이었다. 며칠 전 작은 실마리를 찾았고, 오늘은 제대로 시도를 해볼 작정이었다.
띵~!
타이밍 나쁘게도 제대로 뭔가 해보려는데 알람이 울렸다. ID 톡에 이메일이 왔다는 알람이었다.
“어?”
친구들이 보냈나 싶어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친구가 맞긴 했는데, 영식이의 가장 특별한 친구 유재원이 보낸 이메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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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진짜 불금입니다. 불타는 청춘 때문이 아니라, 공기가 불타는 진짜 불금이네요. 다들 더위 먹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저도 오늘 아침에는 컨디션이 살짝 나빴는데, 그나마 오후에 들어 괜찮아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