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84화 (284/1,007)

00284  인터넷 전쟁  =========================================================================

시작은 국민PC사업이었다.

국민 PC사업은 무슨 거대한 노동력이나 설계 따위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준비해야 할 건 그저 돈이었다. 그리고 국민PC 사업에 쓰일 예산은 이미 실제 국고에 남아 있었다. 노 전 대통령 때에 요리조리 빠져나간 돈이 좀 있었지만, 매년 조 단위 예산이 떡떡 집행되었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상당한 돈이 예비비로 남아 있었다.

덕분에 10월 중순부터 국민 PC사업은 체신부의 주도로 시행될 수 있었다. 방식은 체신부의 국민PC사업단이 선정한 PC를 구매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국민PC사업단은 중소기업 위주로 12개의 PC 모델을 선정했는데, 고급형으로 대기업 제품 4개, 중급으로 4개, 보급형으로 4개 모델이었다. 중급과 보급형은 모두 중소기업 제품으로 세진 전자랜드는 중급, 보급형 2개 모델에 발탁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PC사업단은 PC를 선정할 때 저가 낙찰 방식을 썼는데, 미리 준비했던 세진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 심지어 성능도 좋았다. 다만 CPU와 메모리칩을 세 제품이 아닌 중고품을 쓴다는 다는 게 걸리는 점이었다.

같은 펜티엄급 컴퓨터를 세진 전자랜드가 경쟁사보다 20만 원쯤 저렴하게 출시할 수 있었던 게 미국에서 사들인 중고 부품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엔 리퍼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방식인데 93년도엔 낯설고 괜히 꺼림칙한 부분이었다.

물론 모두 신상 부품으로 만든 제품도 있는데, 그게 중급형 모델이다. 다만 20만원이란 돈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리퍼 부품이라는 걸 무시하고 보급형을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월등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이렇게 국민PC사업단이 선정한 PC를 사면 끝이다. 보조금은 정부가 해당 업체에 직접 꽂아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민PC사업단은 투명성을 위해 구매자에게 주는 방안도 처음엔 고려했었는데, 조그만 조직으로 수십 어쩌면 100만이 넘을지도 모를 구매자들에게 일일이 돈을 줄 방법이 없었기에 업체에 주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업체에서 가격을 부풀려 놓고 보조금을 타가는 우려가 크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는 없었다. 정부가 보조하는 30만 원만큼 확실히 가격은 내려갔다.

이와 함께 데이콤의 ADSL 신청자들의 숫자도 폭증했다. 보조금의 크기가 ADSL 신청할 때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체에 직접 꽂아주는 국민 PC사업단과 달리 ADSL 지원금은 고객 통장에 꽂히는 방식이라서 국민 PC사업보다 데이콤의 ADSL 신청자가 훨씬 많았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컴퓨터도 없으면서 신청하기도 했는데, ADSL 보조금은 실제 컴퓨터에 회선이 설치되고, 그 컴퓨터로 데이콤 서버에 인증을 해야 입금이 되기에 유재원이 피 같은 돈이 엄한 데 빠지는 일은 없었다.

10월 중순부터 시작한 사업인데, 불과 10여일 사이에 신청자는 수십만이 넘었다. 그 숫자는 줄지 않았고, 더욱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로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좋았다. 유재원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유재원은 한국 텔레비전과 신문의 단골 소재였다. 유재원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원인 분석이 이어지기도 했다.

분석 기사는 백이면 백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이었다. 유재원의 몸속에 전생을 초월한 IT내공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했으니, 그런 식의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분석 기사의 결론은 컴퓨터 조기교육 권장으로 끝나는 게 보통이었다.

일찍 컴퓨터를 할수록 자녀가 유재원처럼 될 수 있다는 거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헛웃음이 날수밖에 없는 기사였지만, 부모님들은 진지했다. 다만 컴퓨터가 워낙 비싼 물건이다 보니 구매하는 데 부담이 컸는데, 국민PC사업과 ADSL 지원금 제도가 생기면서 그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반값 컴퓨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게다가 컴퓨터 주변기기를 만들던 기업들도 폭발하는 수요에 행복한 비명이 터졌다.

김 대통령의 압도적 존재감에 밀려 보이지 않았던 전명헌 총리의 인기가 다시 한 번 치솟아 올랐다.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국민 PC사업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생겼다.

-한국 ID 테크놀로지, 입시학원 빅3 김태형, 손주흥, 최대성 영입! 일인당 최소 3억 원!

-ID 테크놀로지 인터넷 강의 업체 기가스터디 출범.

-빅3의 첫 강의 수능 마무리 특강, ADSL 가입자라면 무료로 볼 수 있을 것.

유재원의 지시로 최강욱 비서실장과 김택준이 구체화했던 기획서가 한국 ID 테크놀로지 산하의 기가스터디라는 사내벤처기업으로 구체화되었다.

거물급 강사를 낯선 조직에 영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최강욱이 장담했던 것처럼 어려운 문제는 돈으로 풀면 되었다.

신문기사엔 3억으로 나왔지만 실제 내역은 살짝 다르다. 이목을 끌려는 언론과 그대로 놔둬도 딱히 손해가 없는 기가스터디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서 나온 기사였고, 실제 계약된 1년 연봉은 1억 5천만 원이었고 2+1 계약이다. 2년까진 무조건 1억 5천만 원이고 서로가 동의할 경우 1년을 연장할 수 있다. 1년 연장을 할 때 성과에 따라 연봉의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최저가 봉사 수준이네.”

유재원이 김태형, 손주흥, 최대성의 연봉 계약서를 보고나서 나온 평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 특급 강사들의 어마어마한 연봉을 생각한다면 1억5천만 원은 염가였다. 다만 사교육과 인터넷 강의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그때와 이제 겨우 시작을 하는 지금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대신 21세기의 스타 강사들이 받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잘 알고 있던 유재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김택준이 올린 강사 3명의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자금도 바로 집행했다.

억 단위 금액이 찍힌 통장을 받아든 강사들은 곧장 수업을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의 장점이 콘텐츠만 확실하다면 별다른 준비는 할 게 없다는 점이었다.

작은 교실, 강사 사무실과 영상 편집자 그리고 편집용 장비만 있으면 끝이다. 심지어 기가스터디의 빅3는 그 명성답게 11월 말 수능을 앞두고 진작 마무리 강의를 준비했기에, 입금이 확인되자마자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카메라 앞에서 혼자 수업하는 건 영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데이콤 ADSL 가입자 중에 종로 근처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생들을 급히 모집했다. 공개적인 방식은 아니었고, 사용자 개인 정보 중에 주소 항목을 보고 쪽지를 보내 모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금방 마감되었다.

그렇게 강의 영상을 찍고 별다른 편집 없이 바로 서버에 올려서 기가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버는 넥스트컴 서버에 올라갔지만, 도메인이나 회원은 완전히 독립된 별도의 서비스였다. 대신 누구나 접속하면 바로 볼 수 있는 무료를 표방했다.

한창 한국에서 이슈로 떠오른 게 바로 ‘무료’였다.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사교육을 조장해도 되나!

-대기업이 영세한 학원을 죽이려고 든다!

비서실에서 올린 오늘자 한국 신문의 스크랩 중에 가장 상단에 있던 기사였다.

종이 신문을 오려서 붙인 후에 고화질 스캐너로 디지털 변환해 이메일로 보내면 유재원이 필요한 것만 찾아보는 방식이다. 말은 좀 복잡한데 직접 해보면 어려울 건 없다. 덕분에 유재원은 미국에 앉아서 한국의 언론 이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료로 푸는 건 나도 싫었다고.”

인터넷이 막 나온 초창기에 사람들의 인식을 잘못 심어준 것이 바로 무료 서비스들이었다. 워낙 무료가 많으니 인터넷에선 뭐든 무료라는 인식이 심어졌다. 심지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경쟁자들이 점유율을 얻기 위해서 유료로 잘 운영하고 있던 것까지 무료로 풀면서 출혈 경쟁이 이어졌다.

여기에 처참한 지적재산권 인식이 더해지면서 혼돈의 카오스가 열려버렸다. 음반, 도서, 영화 등등의 콘텐츠들이 여기저기 올라와 공유되었으니 말이다.

음반은 사서 들어야 하는 것, 책은 사 읽는 것, 영화도 사서 보는 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인식을 바꿔야 했다.

유재원이 넥스트컴을 처음부터 유료로 서비스한 것 역시 인터넷은 공짜와 등치되는 게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이어져서 넥스트컴의 서비스에 유료가 많았던 것이다.

당연히 기가스터디 역시 유료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달랑 한 달 분량의 마무리 정리를 가지고 돈을 받기엔 무리였다. 게다가 과금 시스템도 정비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지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ID 테크놀로지로부터 벗어나 기가스터디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쓰는 만큼, 인지도 확보가 중요했다. 인터넷 강의하면 바로 기가스터디라는 이름이 연상되게 만들어야 성공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유료 서비스는 내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일단 마무리 강의를 진행한 다음, 내년부터 수능에 특화된 강의를 집중해서 다루고, 강사진도 확대해서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을 위한 커리큘럼도 만들기로 했다.

“그나저나, 영세한 학원이라니, 무슨 말이 이래”

유재원은 기사를 보고 기가 찼다.

마치 세계적 글로벌 기업인 ID 그룹이 한국에 변종 사기업 시장에 진출하면서 영세한 학원을 말려 죽일 것처럼 쓰여 있었다. 인터넷 강의에 대한 몰이해는 부차하고 영세한 학원이 말라 죽는다니.

지방의 학원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인강이 대중화되고 나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본 업계가 지방의 입시 학원들이었다. 그런데 기사에서 인터뷰한 원장은 종로의 거대 학원 원장이었다. 거긴 '영세'라는 단어와는 1만 광년 쯤은 떨어진 곳이었다. 마치 ‘양심적인 조폭’과 같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종로의 학원가는 한참 전부터 기업 형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인기 강사들의 연봉도 일반 직장인의 수준을 한참 전에 넘어섰다.

물가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학원비가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문장이었을 만큼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인터넷 강의가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비싼 학원비 역시 한 몫 했다. 게다가 인기 강사의 수업은 바글바글한 수강생들로 가득하니 질문하나 하기에도 불편했다.

접근성도 좋고 강의의 질 좋은 인터넷 강의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결정적으로 기가스터디의 수능 특강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 이용자 숫자가 아직 1만 명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 서버가 다운될 줄 알고 최신형 HPC 3백대로 클라우드 서버를 구성해 놓은 게 무색할 지경이다.

“이거 누가 쓴 거야? 보나마나 거기겠지?”

슥, 스크롤을 내려 보니 역시나 출처 항목에 대한일보라는 네 글자가 떡하니 보인다.

유재원과 대한일보와의 악연은 이미 대중도 알고 있었다. 덕분에 ID 그룹에 안 좋은 기사가 뜨면 역시 대한일보구나 하는 생각이 한국 사람들에게도 생겨날 정도였다.

대한일보의 ID 그룹에 대한 공격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이번 기가스터디 건부터 시작해 그룹 본사 빌딩, 계열사 빌딩 등을 가지고 계속 딴죽을 걸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ID 그룹이 지출하는 마케팅 예산은 무려 수백 억 원 단위였다. 여기서 지면 광고로 나오는 돈도 거의 100억 원이 넘는다. 그러면 당연히 발행부스가 가장 많은 대한일보에도 최소 수십억 은 들어가야 하는데, 예전부터 0원이었다.

유재원은 그랜저를 날려먹게 만든 그 사고에 대해 철저한 사과가 있기 전까지 인터뷰부터 광고까지 모든 교류를 끊어버리겠다고 했고, 대한일보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당연히 유재원의 말은 철저하게 지켜지는 중이었다.

ID 그룹의 마케팅 비용은 날로 확대되는 추세였고, 이에 비례해서 광고비도 늘어나고 있다. 단적으로 전명헌의 대통령 프로젝트를 위해 생겨난 문화신문이란 곳은 원래 미래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버티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ID 그룹 덕에 윤전기를 돌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것들을 확 조저 버려야 하는데.”

그때의 사고 말고도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악연도 있는 유재원은 대한일보에 이가 절로 갈렸다.

참 아쉬운 건 아직은 발톱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진다는 건 결국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거고, 결국은 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의 법원에 대한 장악력은 유재원보다 기존 기득권의 힘이 컸다.

단적으로 김&정이 맡은 지 거의 2년은 다 되가는 정신대, 위안부 배상 소송이 겨우 1심인데도 아직까지 판결이 미뤄지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정보팀을 동원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법원에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고 했는데, 이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윗선이 상당해서 결심이 늦춰지고 있는 거라고 한다. 이와 연관된 문제가 군부독재시대까지 이어져 있고, 이때 협력한 법조인들에게도 후폭풍이 미치게 된다.

덕분에 사법계에서는 이미 끝난 일을 왜 다시 꺼내 껄끄럽게 하느냐면서 유재원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고 했다.

“김 대통령에게 한 번 말이나 해볼까?”

김 대통령의 방미는 11월 말로 결정되었다.

유재원도 워싱턴 만찬에 참석하기로 했고, 거기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눌 자리도 만들어질 거다. 김 대통령이 공도 큰 만큼 과실도 크지만, 친일 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총독부 건물 철거 때, 총독부 건물을 일본으로 옮겨가겠다고 했던 일본에게 버르장머리를 뜯어 고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기가스터디 기사를 보던 유재원이 대한일보를 거쳐 결국 일본 문제까지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 사법부가 미적거린다면 대통령이 나서면 끝나는 시대이지 않은가. 시대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건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인강이 대중화 되도 학원 자체가 사라지진 않으니, 학원들 엄살은 깔끔히 무시하는 게 상책이지.”

학원에 공부만 하러 가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만들지 못한 친구를 학원에서 만들 수도 있고, 일찍 집에 가도 부모님이 없는 집은 아이를 학원에 맡겨 놓는 게 좋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다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온 유재원은 바로 기가스터디 홈페이지에 관리자로 접속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가입자 숫자로 1만 2천 명 정도를 찍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9천 명 수준이었으니, 3천명 가까이 늘어났다.

이메일 회원 가입이라는 간편한 가입 방법을 채택했기에 가입이 쉬운 게 첫 번째일 거다. 다음이 며칠 간 대한일보 등의 어그로성 기사 그리고 친 ID 그룹 매체의 지원성 기사 덕에 학생과 부모님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 인구가 적은 한국에서 10일 만에 1만 명 돌파니, 제법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인터넷 강의 사이트의 본질은 결국 강의다.

좋은 강의가 올라와야 하고, 그걸로 학생들의 공부 실력이 향상됐다는 게 증명이 되면 가입자는 폭발할 거다.

“음, 꼼수 하나만 쓸까?”

유재원은 살짝 유혹을 느꼈다.

작은 꼼수 하나면 기가스터디 가입자를 대폭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수능 예상문제였다.

빅3 강사가 준비한 동영상 강의와는 별도로 기가스터디에서는 수능 시험 5일 전에 파이널 예상문제집을 내기로 했다. 출제 문제는 문제집을 전문으로 만드는 출판사로부터 사오면 간단하다.

거기에 유재원이 알고 있는 기출 문제 몇 개만 넣으면 반응은 엄청날 거다.

“아직 그 정도로 급한 상황은 아니니 좀 더 두고 보자.”

국민 PC가 팔릴수록, ADSL 보급량이 늘수록 기가스터디의 가입자도 늘어날 거다. 수능까지는 여유가 좀 있으니 유재원은 두고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 9시쯤, 유재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탓에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유재원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들은 10명도 되지 않을 만큼 소수였고, 그 사람들 모두 일반적은 관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재원아! 11월 5일이다.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전명헌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11월 5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무척이나 흥분된 목소리였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흥분하셨어요? 찬찬히 말씀해주세요.”

유재원은 덩달아 흥분하지 않고 평소보다 차분한 말투로 되물었다.

-아아, 방북 말이다! 소떼 방북!

“예에! 소떼 방북이요?”

차분했던 유재원도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소떼 방북이었으니 당연했다.

사실 유재원은 전명헌의 소떼 방북이 이제껏 감감무소식이라 일이 틀어졌다 생각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명헌의 금의환향은 1998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98년 6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1,001마리를 가지고 올라갔다.

북한에서 만났던 인물도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이었다. 1994년도에 김일성이 사망했고, 후계자로 김정일이 등극하고 정치적 안정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본인의 개입으로 한반도의 정치 흐름이 크게 달라진 만큼 5년 일찍 올라가는 게 나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적극 추진했는데, 이제껏 무소식이라 기대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직전 판문점 연락소를 통해 전명헌의 방북을 승인한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우와! 축하해요!”

-흐흐, 고맙구나. 사실 이게 다 네 덕이지!

이건 정말 의미가 컸다.

5년 일찍 금의환향의 꿈을 이루게 된 전명헌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지만, 남북의 역사도 크게 달라질 변수였다.

-그래서 말인데 염치없지만 부탁하나만 하자.

“네? 무슨 일인데요?”

-너희 회사에서 나온 신제품이 있잖느냐. 뉴에고인가 뭔가 말이다.

“뉴에그2요?”

-그래! 내 알아 보니 김 씨 일가도 너에 대한 관심이 높다더라. 게다가 북한이 부족한 게 컴퓨터잖니. 뉴에그 한 대 정도는 선물로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기왕이면 네가 직접 사인이라도 해서 주면 더욱 좋지 않겠니.

영식이에게도 한 대 준 뉴에그2 프로였다. 사비로 한 대 더 내주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럼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양산품에 비해 특별히 더 공을 들인 스페셜 에디션은 좀 뒤에 선보일 제품이었는데, 소떼 방북을 기념해 하나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맙다! 역시 재원이 너 밖에 없다. 아, 그리고 영수증 꼭 주거라. 총리실에서 비용처리 해줄 테니까.

“네네, 걱정 마세요.”

일이 바쁜 전명헌은 평소보다 훨씬 짧은 이야기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야, 11월에 이벤트가 많네.”

김 대통령의 방미, 엑스포 폐막식에 이어 소떼 방북이라니. 당분간 넥스트컴 뉴스페이지가 뉴스거리고 걱정 할일은 없겠다.

“응? 이거 나도 한 발 걸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다가 문뜩 유재원의 뇌리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루트 킷이란 단어였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북한과 접촉하기 전부터 밑장빼기 중인 재원이네요.

해적, 테러범 따위와는 협상도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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