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7 인터넷 전쟁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분단과 긴장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열리는 날입니다. 비록 말 못하는 소들이었지만, 우리의 염원을 꼭 전해줄 것만 같은 눈망울이었습니다. 먼저 전명헌 총리와 방북 수행단과 2,501마리 소떼가 판문점에 도착해 군사분계선을 넘기까지의 과정 전명헌 총리의 표정 등을 박상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유재원의 가족들과 큰집 식구들까지 모여 뉴스 특보를 시청 중이었다. 텔레비전 방송국은 당연히 KBS에 맞춰져 있었다. 부모님 세대에게 텔레비전 뉴스라는 건 KBS가 기본이었다.
기둥 빼고 싹 바꾼 리모델링 덕에 제법 많은 일가친척들이 모였지만, 집이 좁아 보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집안 사정이 달라졌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간식거리로 바나나와 사과, 오렌지 등이 풍족하게 나왔다.
바나나 가격이야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1991년부터 현실화되었지만, 오렌지는 아직 아니었다. 생 오렌지는 값이 문제가 아니라 구하기 힘든 것이지만 유재원의 부모님 집에는 박스째 굴러다닌다.
큰집이라고 다른 건 아니다. 선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송이는 항상 일본에 전량 수출되었고, 덕분에 엔화가 큰집과 친척들의 통장에 쏙쏙 쌓이는 중이었다. 저번 유재원의 새집 집들이를 한다고 큰집 식구들과 친척들이 왔을 때에도 유재원의 도움은 일절 없었음에도 다들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왔다.
유재원의 원대한 목표 중에 제가(齊家)의 기본은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야 소떼 봐라 장관이네.”
잠깐 딴생각을 했던 유재원은 큰아버지의 감탄에 텔레비전을 봤다.
소들이 5마리씩 실려 있는 화물차가 끝을 보이지 않고 늘려져 있었다. 새만금 농장에서부터 출발한 소떼 행렬이었다.
유재원도 경탄을 마지않았다.
자기가 일찍 소떼 방북을 제안했고, 그 규모를 예전보다 10배는 키웠다. 서류상에 보이는 숫자는 그저 자릿수 하나가 늘었을 뿐이었는데, 텔레비전으로 전달되는 그림을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해졌다. 더욱 경탄에 마지않는 건 저런 소떼 수송이 아직 3번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준비는 전명헌 총리가 개인적으로 준비했다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자동차는 본인이 직접 일군 미래 자동차에서 만들었고, 소떼 수송을 위한 특별 개조도 추가되었다. 소떼 준비 역시 전명헌 회장의 개인 농장인 새만금 농장이었다.
곧이어 판문점 귀빈실에 대기 중이던 전명헌 총리와 미래그룹 사장단이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말이 총리와 사장단이지, 그보다는 전명헌 일가들이다. 이번 방북에 자식들도 미래그룹 사장단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동행한 것이다.
본래보다 5년은 빨라진 덕에, 유재원의 기억 속 모습보다 훨씬 정정한 모습이었고, 미래그룹 사장단들도 전보다 긴장한 얼굴이었다.
-총리 님, 지금 어떤 기분이신가요?
-고향 가니까 좋지요. 뭐, 어제 돼지꿈을 꿨어요.
살판난 건 기자들이다.
전명헌과 미래그룹 사장단에 질문이 쏟아졌고, 기분 좋은 전명헌은 평소와 달리 그 질문도 다 받아줬다.
-북한은 인건비가 싸고, 일도 잘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말이 통하는 한민족이라는 게 최대 강점입니다. 대규모의 경협 사업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경제 협력에 대한 질문에도 바로 답이 나왔다.
분명 문민정부와 협의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답이었으니, 이와 관련한 논의도 이미 끝난 게 확실하다.
잠시 후,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새만금 농장에서 제일 잘생긴 소 한 마리를 전명헌 회장이 끌고 직접 군사분계선을 넘는 행사였다. 도로변에는 미래그룹에서 직원들 거의 1천명에 가깝게 환송을 나와 현수막과 꽃가루를 날렸다.
추울 텐데 참 고생이다.
실질적인 소떼 방북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 첫 번째 트럭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북측 경비병 휴게실 동쪽 공터를 통해 북한으로 넘어갔다.
포장된 도로도 아니었고, 군사분계선을 표시한 얕은 시멘트 턱이 있어서 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곧이어 수많은 화물차가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남측 관계자와 북측에서 나온 선글라스 낀 요원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한국의 방송국뿐만이 아니라 CNN같은 외국 방송국에서도 파견이 나와 전 세계로 생중계 되고 있었으니 다들 긴장한 표정이다.
특히 이번 소떼 방북을 모두 조율한 김철순 미래건설 총무담당 이사 겸 새만금 농장 사장은 한 여름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진두지휘 중이었다. 화물칸에 실린 소떼가 난동을 부린다거나, 차가 퍼지면 세계적 망신이다. 이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철저한 점검과 준비뿐이었고, 그만큼 김철순의 업무는 과중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막중한 임무를 꾸역꾸역 해냈다는 점이다.
다행이라면 북측 판문각까지만 옮기면 그의 일은 일단 끝이라는 것이다. 미래 새만금 방목장 직원들이 차를 몰아서 올라갈 수 있는 건 판문각까지였고, 여기선 북측 기사들에게 인계하고 운전수들은 다시 남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실제 남측 인원이 평양까지 가는 건 전명헌의 수행단 10여명 내외가 전부다.
“북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겠구먼.”
“그것도 그거지만, 전 총리님이 무사히 내려오셨으면 좋겠네요.”
아직 어른들의 의식에는 남북대결 구도와 북한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모양이다.
유재원도 동의했다. 이번 일로 남북경협이 얼마나 확대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명헌과 방북단이 무사히 다녀오는 게 우선이었다.
남북문제나 경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래도 전명헌은 연륜도 가득했다. 게다가 유재원은 방북하기 직전 전명헌과 직접 통화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 주었다. 당연히 전생의 기록에 기반을 둔 정보였으니 어지간한 문제라면 잘 처리하시고 내려올 거라고 기대했다.
다음 날.
텔레비전에서는 아직도 소떼 방북 뉴스로 시끄러울 때, 유재원은 외출에 나섰다. 뒷산에도 올라가 보고, 동네도 돌아보며 국민학교 때 보았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졌나 몸소 체험했다.
전생이었다면 몇 십 년이 지나도 달라질 것 없었던 덕진리였는데, 현재는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고 해야 할 만큼 변화의 폭이 컸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보도블록이 깔렸고, 배수로도 정비되었다. 또한, 마을에 일부 남았던 석면슬레이트 지붕도 다 걷히고 황토 기와로 바뀌었다.
수돗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비된 길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가로등도 생겼고 밤마다 꼬박꼬박 켰다.
심지어 뒷산 정상까지 가는 산책로까지 정비되었다. 그냥 누런 흙바닥과 돌길이었는데, 지금 나무 계단이 만들어졌다. 경사가 큰 일부만 정비한 것이지만, 뒷산을 오르는 데 한결 수월해졌다.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동시에 즐기는 취미의 결과물이다. 자기네 마을을 가지고 하는 현실판 심시티인 것이다.
큰 아버지는 마을로 끝이었지만, 아버지는 보다 통이 컸다. 핸드볼 협회장이 되었는데, 이를 기념해 유재원이 준 10억 원을 그달에 다 써버렸다고 한다. 일단 88올림픽 그리고 92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음에도 포상금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그때 지급하지 못한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하셨다.
최강욱 비서실장에 따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리수는 아니란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금메달 포상금 같은 건 선수 명단 기준으로 줘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지급된 건 결승전에 뛴 선수들에게만 나왔던 것이다.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들은 국물도 없었다.
주력 선수들이야 항상 나오지만 체력안배나 부상으로 주전이 빠지면 기용되는 선수들에게는 가혹한 처사였다.
아버지는 공평하게 4억 원을 올림픽 엔트리 선수들에게 1/n으로 나누어 주었다.
핸드볼이란 팀워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팀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라며 특출한 하나를 우대하는 것보다 팀워크를 강조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코치진도 배려했다. 감독부터 팀닥터의 몫으로 1억을 배정했고 선수들과 달리 약간의 차등을 두어 지급했다.
나머지 5억 원은 핸드볼 팀을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 발전기금으로 보내주었다. 꿈나무들을 위해 핸드볼 용품이나 운동복, 심지어 회식비로 쓰라고 했다.
유재원은 대책 없는 나눔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버지는 그러면서 94년도 세계선수권 대회를 기대하라고 떵떵거렸다. 다들 목적의식이 엄청나니 올림픽과 달리 매번 죽을 쓰던 세계선수권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낼 거라는 기대가 컸다.
유재원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아무래도 저 돈 중에 제대로 쓰인 돈은 반도 안 될 거 같은데.”
돈이 아까운 건 아니다.
ID 그룹이 굴리는 거대한 자금의 흐름 중에 한국 돈 10억 원의 비중은 매우 작았다. 다만 아버지가 핸드볼 발전을 위해 내놓은 돈이 엄한 놈들 입으로 들어갔을 거 같다는 게 문제다.
“감사실에 말 좀 해놔야겠다.”
아버지가 ID 파운데이션의 이사장이고 ID 파운데이션은 ID 그룹의 소속이다. 핸드볼 협회는 독립된 협회지만, 아버지가 협회장이니 외부 감사를 추진하고 ID 그룹 감사실에 요청을 하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진다.
“비오는 날 먼지 나듯 털리겠지.”
유재원의 기억에 한국의 스포츠 협회 중에 잘 돌아가는 건 양궁 협회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문제가 되는 이들을 탈탈 털어낸 후에 능력이 제대로 검증된 인사를 등용한다면 핸드볼 협회도 양궁협회처럼 될 수도 있다.
내년 94년도 사업의 큰 구상을 위해 산행에 올랐던 유재원은 엄한 핸드볼 협회 감사 계획만 생각하고 내려왔다.
다음 스케줄은 국민학교 친구들과 만남이었기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은 즐거웠다.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래봐야 내년은 되어야 고등학생이 되는 녀석들이라 파릇파릇했다.
주민이나 영식이 같은 녀석들은 슬슬 수염이 나고 여드름도 나는 등 2차 성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이다.
수경이나 은혜 등등 여자 친구들은 선머슴 같았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며 예뻐졌다. 자기들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각자의 매력을 강조하며 최대한 꾸미고 나온 듯 했다. 안타깝게도 티파니가 유재원의 눈높이를 높여 놓은 탓에 이성적 끌림은 미미했다.
하여튼 다들 사춘기라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는데, 유재원이 보기엔 그저 풋풋했다.
의외로 모임은 금방 끝났다. 사업의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 유재원의 나이 대에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된 탓이다.
여주에서 아이들 사이에 제일 뜨겁다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해치웠고, 노래방에 가서 몇 곡 좀 부르다가 나오니 어둑해져 있었다. 어른이었다면 3차로 호프집 같은 델 갔을 텐데 그럴 수는 없었다.
PC방이라도 있으면 가서 멀티 게임이라도 할 텐데, 아직 PC방이 생겨날 시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락실에 갈 수도 없었다. 93년도의 오락실은 모두가 가서 즐기기에 적합한 환경도 아니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코 묻은 돈 강탈하는 깡패들도 많았다. 물론 유재원이야 무장 경호원들과 함께 다니니 깡패가 건들 틈이 없지만,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 어울려서 게임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차라리 유재원이 한국에 있는 동안 자주 보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유재원은 내오마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유재원이 도착한 곳은 영식이네 집이었다.
영식이의 목소리엔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마저 숨기지 못한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 여주시 서쪽 남한강 강변로에 있는 영식이네 집은 방 2개짜리의 낡은 집이었던 탓이다. 낡은 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영식이가 유재원과 동행하게 된 건, 햄버거를 먹으며 했던 잡담이 발단이었다. 친구들도 유재원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고, 당연히 제2회 시큐리티 챌린지도 언급될 수밖에 없었다.
상금이 무려 1억 달러였으니, 이게 한국 돈으로 얼마냐부터 해서, 뚫는 사람이 나왔으면 진짜 주려고 했느냐 까지 물어봤다. 거기에서 영식이가 자기도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도전해봤는데, 접속 속도가 느려서 실패했다고 푸념했다.
영식이는 단지 아쉽다는 이야기였는데, 유재원은 그렇게 쉽게 넘겨듣지 않았다. 영식이가 떠올렸다는 아이디어를 들어 보니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궁금한 건 못 참은 유재원은 직접 영식이의 시범을 보기로 하고 집까지 것이다.
영식이네 집은 겉은 낡았어도 안은 아늑했다. 그리고 영식이의 방에 유재원이 선물한 뉴에그2 프로 버전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었다. 예전 유재원이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가 커버에 씌워져 있었는데, 아마도 영식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듯 했다.
본인의 선물을 친구가 잘 쓰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얼른 보여줘.”
“어, 알았어.”
커버를 벗긴 영식이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곧장 설명에 들어갔다.
“이야! 엄청난데!”
잠시 후, 유재원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예상대로다. 영식이의 방식은 확실히 달랐다. 다른 도전자들은 대부분 금고 번호가 든 컴퓨터의 사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 혹은 루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으려고 했다. 덕분에 유재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도 했고, 과거에 공개된 암호로부터 패턴을 찾겠다고 난리였다.
영식이는 아예 방식을 바꿔 로그인 시스템의 오류를 유도하려고 했다.
“암호를 넣다가 문뜩 어디까지 길어질 수 있을 지 궁금해지더라.”
개인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아이디는 최대 12글자, 암호는 최대 8에서 16글자까지 숫자, 영문 대문자, 소문자 그리고 특수문자를 사용해 만들어야 한다고 공식 매뉴얼에 기재되어 있다.
영식이는 문뜩 그 이상으로 긴 암호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고 한다. 당연히 너무 긴 암호라고 에러 메시지가 나온다. 대부분 여기에서 이것도 막혔나 하고 생각하고 방향을 바꿔 볼 텐데 영식이는 달랐다.
“그러면 긴 암호가 들어왔을 때 정상적인 길이의 암호와 긴 길이의 암호를 구분하는 기능이 있겠다 싶었어. 그래서 그 기능이 얼마나 잘 작동하나 보는 중이었거든. 그런데 어쩌다가 그게 오작동을 하더라.”
영식이는 16글자보다 길면서도 특별한 패턴의 비상식적인 문자열을 여러 개 고안해냈고, 그걸 가지고 반복적으로 입력하자 처음 보는 메시지가 튀어나왔단다. 유재원이 보니 그건 에러 메시지가 아니라 사용자 인증 과정이었다.
유재원에겐 다행이었고 영식이에겐 안타깝게도 영식이가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대회가 끝나버렸다.
몇 가지만 더 보완하고 시기만 좀 맞았더라면 영식이가 최초로 로그인 단계는 돌파한 녀석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일단 프로그램은 완성이 된 상태였기에 영식이는 집안 한구석으로 밀려난 486컴퓨터에 놓고 실험을 했고, 그걸 지금 유재원 앞에서 재현했다.
“이건 버퍼 오버플로라는 기술이야.”
“아, 원래 있던 기술인거야?”
유재원에겐 익숙한 기술이다. 프로그래밍 중에 변수 설정이나 메모리 관리를 잘못하면 볼 수 있는 에러였다. 대신 발생한다면 대단히 큰 문제로 발생한다. 오작동은 물론 심하면 프로그램이 다운될 수도 있다.
진짜 능력을 갖춘 엘리트 해커들은 영식이와 같은 방식으로 버퍼 오버플로 에러를 유도해내려고 했지만, 진짜로 성공한 이는 영식이뿐이었다.
“그래도 대단하네. 너만큼 날카롭게 들어온 도전자는 없었거든.”
“와! 진짜?”
“응! 안되겠다. 미리 계약서 좀 쓰자. 고등학교 졸업하면 어디 가지 말고 바로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당연히 그래야지!”
영식이는 장난처럼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재원은 진심이었다. 영식이처럼 믿을만하고 실력도 있는 동료를 구하는 건 참으로 어렵다. 레밍턴과 최강욱 등등 창립멤버들도 아직 창창한 나이이긴 해도, 유재원보다 훨씬 일찍 은퇴하게 된다. 이후를 함께 할 이들을 미리미리 키워놔야 하는데, 영식이가 최초로 유재원의 커트라인을 넘었다.
진심인 유재원은 종이와 펜을 들고 간이 계약서라도 만들려는데,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집 문일 열렸다.
영식이 어머니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신 것이다.
“엄마! 재원이 왔어.”
유재원이 허겁지겁 자필 계약서를 만드는 걸 보고 있던 영식이가 바로 달려가 어머니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영식이 친구, 유재원입니다!”
유재원도 일단 종이와 펜은 두고 영식이 부모님께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영식이 어머니는 이런 유재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적으로 보자면 ID 테크놀로지 한국지사 여주 패키지 공장에 근무하는 영식이 어머니께 유재원은 까마득한 곳에 있는 회장님이었으니 말이다.
영식이 어머니도 집근처에 도착했을 때 설마 하긴 했다.
유재원이 한국에 들어와서 고향에 머물고 있다는 건 아침 조회시간이나 뉴스를 통해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집 앞 공터에 대놓은 고급스러운 자동차도 그렇고 덩치가 산만한 외국인 경호원까지 있었다.
“편하게 아들 친구처럼 대해주세요.”
그렇지만 친구 어머니께 인사 같은 걸 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는 유재원은 그저 깍듯이 대했다.
“어, 음. 그래. 편히 놀다 가요.”
영식이 어머니께 허락을 받은 둘은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나란히 앉아 자기들끼리 뭔가 복잡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에는 참으로 낯설고도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로그인 시스템 해킹에 대해 전문가분이 보시면 허술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거 같아 걱정이네요. 실제 원격로그인의 메카니즘은 훨씬 정교하고 안전장치도 잘 마련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너그러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요.
아, 그리고 북한 독재자들 호칭에 관한 건 주인공의 인식이 21세기 중반, 그러니까 2020~2050 때의 시점이 디폴트라서 그리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루뭉실하게 묘사된 건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이야기는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밝혀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