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8 인터넷 전쟁 =========================================================================
그날 유재원은 영식이네 집에서 간식은 물론이고 저녁까지 배불리 먹고 왔다.
친구들과 먹은 햄버거로 배가 상당히 차 있었지만,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영식이 어머니 덕에 배에 뭔가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배만 채워서 돌아오면 유재원이 아니다. 영식이 어머니와 영식이에겐 장난처럼 보이지만, 계약서에 도장도 확실히 받았다.
오늘 하루는 몸과 마음이 배불러지는 일정이었다.
다음 날.
북한 소식은 끊임이 없었다. 그러나 어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전명헌 총리와 방북단 그리고 소수의 기자들이 한국으로 실시간 뉴스를 보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전화망이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1992년부터 한중수교가 되었고 통신망도 생겨나면서 중국을 거친 연락은 가능했다. 그렇다고 중국을 100%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기엔 무리였다.
그저 단편적인 이야기만 가지고 전명헌 총리의 방북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전명헌 총리의 방북 지휘였다. 소떼 1만 마리의 경우엔 개인적인 선물과도 같았다. 국가 간에 소를 준다는 건 양쪽에서 다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그 지긋지긋한 퍼주기 논란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고, 북한이라면 체제 비교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잘 살면 소 1만 마리를 그냥 주냐는 것이다. 물론 전명헌 개인이 이를 마련했고, 보내는 게 더 대단한 일이지만,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포장할 수 있으니 그나마 나았다.
그렇다고 전명헌 총리가 완전히 개인 자격으로 방북한 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 특사라는 공적인 지위도 있었다. 덕분에 북한이 전명헌 총리에 대한 의전도 국빈급이었고, 회담 파트너도 대한민국 총리라는 격에 맞춰 북한 내각총리 강경산으로 정해졌다.
전명헌 총리에겐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보내는 친서가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친서였다.
이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논의는 한참 전에 진행되고 있었고, 실제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정하는 구체적인 단계에 이르렀는데, 유재원은 전명헌이 지닌 친서에 날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름이 되기 전에 만나야 하는데.”
유재원은 그 날짜가 최소한 내년 여름이 되기 전에 해야 한다고 누차 전명헌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기억의 궁전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1994년 가장 큰 사건은 김일성 사망 아니겠는가. 그러니 김일성이 죽기 전에 만나서 최소한의 합의나 선언을 만들어 놓는 게 제일 좋았다.
북한이 겉으로 보면 그야말로 아무런 체계도 없는 불량 국가처럼 보이지만, 거기 안에도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김일성의 유훈이었다.
후계자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 혹은 형식적으로나마 그 말은 지키려고 했다. 유훈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딱 박아 놓으면 21세기에 있었던 불행한 사건들과 소모적 경쟁은 예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 대통령이 워낙 마이웨이라 조언이 잘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유재원은 기대고 컸지만, 그렇다고 이전과 달라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2대 세습자로 김정일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고, 김정일의 은둔성향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컴퓨터는 안 켜보나? 아니면 거기엔 인터넷도 없나?”
아직도 루트킷이 작동했다는 신호가 없었다.
소떼 방북 기념 스페셜 에디션 컴퓨터는 전원이 켜지고 인터넷이 연결만 되면 특정 패킷을 발생하도록 설계되었다. 평범한 인터넷 속도 점검용 패킷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루트킷이 제대로 동작한다고 알리는 신호였다.
당연히 발신된 PC의 아이피가 담겨 있었고, 이걸 가지고 루트킷에 접속해 기능을 제어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도 신호가 없으니 참 아쉬웠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아, 벌써요?”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대전 엑스포의 상징 은색의 한빛탑이 가깝게 보였다.
역시 시간 때우는 데 제일 좋은 건 딴생각이다. 여주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대전이라니 말이다.
오늘 유재원이 대전까지 내려온 건 바로 엑스포의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서다. 끝나지 않은 잔치가 없는 것처럼, 한 여름 뜨거운 열기로 시작했던 대전 엑스포는 오늘 11월 7일 화려한 막을 내린다.
오명 조직위원장의 우려와 달리 엑스포는 대성공이었다.
전국의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중이라면 최소 한 번 이상은 엑스포에 다녀갔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복 관람도 많았다. 규모가 상당해서 하루 방문으로 모든 전시관을 다 돌아볼 수 없었던 탓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화제의 전시관은 ID 그룹이 운영했던 ID 테크노피아관이었다. 체험 형으로 꾸며졌고, 처음엔 20분으로 시작해 10월 말에 이르러 30분으로 늘어난 넉넉한 관람시간은 인기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스티커 사진기도 찍고, 인터넷도 해보고, 다양한 IT기기를 다뤄볼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서 튀어나온 드론까지도 볼 수 있는 전시관이었다. 사은품도 두둑해서 넥스트컴 1달 무료 이용권은 기본이고 추첨으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혹은 ID 오피스까지 주었다.
그렇다고 논란이 없는 건 아니었다.
100% 예약제로 인해서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게다가 조직위원회는 빡빡하게 운영되는 다른 전시관에 비해 하루 받는 관람객 숫자가 적으니 좀 더 많은 사람을 받아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제일 큰 논란은 도우미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ID 테크노피아관의 도우미들은 교대근무는 물론 월급도 나왔지만, 다른 전시관은 그저 자원봉사였고 엄청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전시관을 운영하는 회사들이나 도우미들 사이에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유재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명 위원장은 유재원 편이지만, 다른 조직위원들은 아니었다. 여기에 다른 대기업들에서도 단체로 뭔가 압력을 넣어 보려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ID 그룹이 본사는 한국에 있어도, 주요 활동 무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가 무대였다.
결국 백기를 든 건 조직위원회였다.
일단 자원봉사자이니 월급을 줄 순 없지만, 대회 성공 운영을 기념한 금일봉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액수는 인당 300만 원인데, 조직위에서 뽑은 도우미 숫자는 대략 1천명이었으니 30억의 지출로 충분했다.
예정에 없던 지출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적자는 아니었다.
아직 최종결산이 나온 건 아니지만, 조직위나 언론은 이미 흑자 행사라고 발표를 했으니 말이다. 입장료, 복권, 휘장 등등의 각종 수익사업 그리고 국고 지원 등을 포함해 모두 4,500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집계했다.
여기에서 박람회장 건설비용과 행사 운영비 등의 지출을 빼면 500억 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국가적 행사에서는 적자의 폭을 줄이는 게 기본일 만큼, 지출이 크다. 엑스포 역시 마찬가지로 흑자는 생각도 안 했는데, 돈이 남았다.
흑자로 남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이었고, 덕분에 도우미들에게 금일봉을 주는 건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
성공적인 행사였던 것만큼 대전 엑스포의 피날레도 화려했다.
유재원은 ID 테크노피아관의 운영 위원들 그리고 도우미들과 함께 피날레 행사를 관람했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단체 사진은 물론이고 원하는 사람과 1대1로 셀카도 찍어줬다.
셀카라는 건 아직 세상에선 낯선 단어였지만, 이곳 테크노피아관에선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될 만큼 익숙해졌다. 당연히 셀카는 필름 카메라가 아닌 타블렛 PC에 달린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도우미들도 다들 이메일을 만들었기에,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ID 테크노피아관은 곧장 해체 작업을 하기로 했다. 건물로 남겨봐야 딱히 쓸데도 없다는 걸 잘 아는 유재원은 전시관을 처음부터 H빔을 이용한 가건물로 지었기에, 해체도 금방이다. 전시관 안에서 사용된 기기들 중에 대중에 공개돼도 문제가 없는 것들은 기부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뉴에그2 PC들이다.
현존 최고사양이라서 아이들이 쓰기엔 과하다 싶었지만, 대전의 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뉴에그를 써봐야 나중에도 ID 제품을 찾을 거 아니겠는가. 다만 태블릿 PC와 스티커 사진기, 드론 등과 같은 중요한 기술이 담긴 건 미국으로 회수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유재원은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챙겼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꿈돌이 배지와 인형 같은 것들이다. 티파니를 위한 선물이다. 이게 티파니의 취향인지는 아리송하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티파니가 생각나서 일단은 샀다.
그렇게 산 게 벌써 한꾸러미는 되는데, 그래도 부족한 느낌이었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모으게 될 것 같다.
유재원이 다시 여주에 돌아온 건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엑스포 성공을 위해 수년 간 달려 온 오명 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위원회 사람들, 기업가들이 남아서 뒤풀이를 즐겼지만, 유재원은 대충 빠져 나왔다.
뒤풀이는 자연히 술판으로 이어졌는데, 유재원은 아직도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잡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일부 불콰하게 취한 양반이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하는 법이라면서 억지로 술을 먹이려 들기도 했다. 유재원이 먼저 거절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뜯어 말려서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제 왔니? 야식이라도 챙겨줄까?”
부모님은 주무시지 않고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행사장에서 먹고 왔어요. 컴퓨터 좀 하다가 잘 테니 먼저 주무세요.”
그렇게 대전에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유재원은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씻는 건 귀찮아도 컴퓨터는 하루라도 빼먹을 수가 없다.
ID 그룹이 계열사 확장을 하고부터 ID 톡의 쪽지와 메일함이 쌓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특히 새롭게 출범한 ID 엔터테인먼트와 독립한 안드로이드 사에서는 유독 보고할 게 많았다. 그러니 자주 접속해 살펴봐야지, 며칠이라도 쉬면 메일함이 폭발한다.
“많기도 해라.”
역시 예상대로였다.
컴퓨터를 켜고 자동으로 실행되는 ID 톡에 접속해 보니 수십 개의 보고 문건들이 쌓여 있었다. 슬쩍 보기만 해도 제법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ID 엔터테인먼트의 스테판 바버 사장이 올린 오리진 시스템즈의 리처드 게리엇과 미팅 결과 보고서나 실리콘 시냅스의 마이크 모하임이 올린 워크레프트 데모판 같은 것들이다.
스테판 바버는 원래 ID 인베스트먼트의 영화파트에 있던 매니저였다. 월스트리트 출신이었고, 무척이나 공격적이고 감각적인 투자 성향이었다. 영화파트의 매니저였던 스테판 바버가 ID 엔터테인먼트라는 ID 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를 담당하게 된 건, 그의 안목이 상당히 뛰어났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마스터 플랜을 통해 선정한 1994년 개봉작 리스트와 스테판 바버가 추린 리스트의 일치율은 무려 48%였다.
안타깝게 하나 차이로 50%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열 개를 투자해 하나만 성공해도 대박이라는 영화판에서 거의 반타작을 한다는 건 놀라운 성과였다.
그건 스테판 바버의 취향이 철저히 상업적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뭔가 독특한 성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무난한 대중적 취향이었다. 덕분에 예술성은 부족해도 성적은 좋을 것 같은 영화를 잘 골라냈다.
놀라운 건 이러한 선구안은 철저히 학습된 거라고 한다.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완성도도 좋은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했고, 여러 모로 부족한데 뜨는 영화가 1년 사이에 몇 편이나 쏟아졌다.
둘 사이의 차이를 따져보다가 어느 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이 왔다고 한다.
ID 엔터테인먼트는 게임뿐만이 아니라 영화, 음반 심지어 텔레비전 쇼와 드라마에도 투자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지양하는 만큼 스테판 바버가 적격이었다.
그런 기대에 부합하듯 스테판 바버는 ID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되자마자 열심히 활동했다. 유재원은 ID 엔터테인먼트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 실력은 있지만 크기가 작은 게임 개발사를 흡수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오리진 시스템즈를 찾아간 것이다.
윙 커맨더라는 인터렉티브 우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살인적인 사양을 요구했고 그만큼 그래픽도 탁월했다. 그보다 더 유명한 건 바로 울티마 시리즈인데 그야말로 초창기 컴퓨터인 애플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게임을 내고 있었다.
원래는 1992년쯤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인수를 했는데, 유재원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는지 지금까지 자체 생존 중이었다.
원인을 따져보니 유재원 본인 때문이었다.
그때 일렉트로닉아츠는 둠에 모든 걸 걸고 있던 때였다. 둠에 확 꽂힌 호킨스 사장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프로모션을 진행했었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된 도박이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런데 그렇게 투자를 하고 보니 다른 회사들을 합병할 여력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둠이 크게 성공하고 나서 일렉트로닉아츠는 돈방석에 앉았다. 합병 능력이 한 차원 더 높아졌음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후에는 오리진 시스템즈에 문제가 생겼다.
오리진 시스템즈가 사력을 다한 윙 커맨더가 둠이라는 복병으로 크게 망했다. 그 여파로 오리진 시스템즈의 사정이 크게 나빠졌고, 능력 있는 개발자들도 퇴사했다. 그렇게 되자 일렉트로닉아츠는 아예 인수를 포기하고 다른 개발사로 눈을 돌렸다.
기가 막힌 후폭풍이었다.
포식자 일렉트로닉아츠에게서도 외면 받을 만큼 오리진 시스템즈의 능력이 추락했지만, 유재원은 그래도 좋았다.
다른 유명 개발진이 다 나가도 상관없다. 오리진 시스템즈의 사장 리처드 게리엇만 건재하다면 말이다.
최초의 MMORPG를 언급할 때 무조건 나오는 것이 울티마 온라인이었고, 이 게임은 리처드 게리엇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인터넷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보급된 덕에 많은 부분이 혼란이지만,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리처드 게리엇이 이전과 같은 대박을 터트릴 확률은 매우 높다.
오리진 시스템즈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해진 상태이니 인수 가능성은 높았다.
“워크래프트 데모판이라니.”
유재원은 곧장 마우스를 조작해 실리콘 시냅스에서 보낸 워크래프트의 데모판의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데모판임에도 용량이 60메가바이트로 꽤 컸다. 더욱이 미국 서버에서 전송되는 거라서 ADSL의 최대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모뎀을 쓰던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나 다름이 없었으니 몇 분만 기다리면 된다.
“아쉽게도 최초의 전략 시뮬레이션은 아니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은 이전에도 듄 2라는 게임이 있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든 명작인데, 듄 2에서 쌓은 기술력은 커맨드&퀀커라는 전략게임으로 이어진다.
지금 유재원이 받고 있는 워크래프트와 대대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만큼 워크래프트의 완성도가 높았다. 게다가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노우볼 굴리듯 엄청나게 커나갈 게임이었다.
“첫 번째 데모판 퀄티티가 얼마나 좋아졌으려나?”
컴퓨터의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한 만큼 게임의 수준도 올랐다. 당연히 워크래프트도 이전과 대폭 달라졌을 거라 기대하며 다운로드가 끝나길 기다렸다.
띵!
“응?”
다운로드가 막 되는 중에 ID 톡의 알람이 울렸다.
ID 그룹 법무실장인 앨런의 쪽지였고, ‘긴급’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었다. 다른 부서라면 긴급 같은 태그를 붙이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런데 법무실에서 긴급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법무실장 앨런이 본인 이름의 아이디로 보내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재원은 곧장 쪽지를 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바로 납득해버렸다.
-넥스트컴캐스트와 ID 테크놀로지가 일렉트로닉아츠 외 20여개 회사에 공동으로 고소당했습니다. 고소 이유는 자사의 지적재산권 침해로 불법 복제 조장과 방조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고소라니.
불법복제 조장과 방조라고? 게다가 일렉트로닉아츠라니.
유재원은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바로 호킨스 사장에게 전화하려다가 자세한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 일단 휴대폰은 내려놓고 ID 톡으로 앨런에게 음성 통화를 연결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낮에 무더위와 싸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기록적인 무더위였네요. 이제 오늘만 버티면 피크는 지난다고 하니까 조금만 더 버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