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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44화 (34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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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SPEED 010(5)

발신인을 확인한 유재원은 바로 박스 해체를 시작했다. 주소나 보낸 사람, 그리고 보낸 이유도 명확하니 폭탄일 확률은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포 트라우마가 살짝 있는 유재원이지만, 박스를 해체하는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이게 게임기였어? 일본에서 직접 산거야?”

티파니의 물음에서 알 수 있듯 박스를 해체하자 드러난 건 게임기였다.

대신 게임기를 보기까지 유재원은 총 3개의 박스를 해체해야 했다. EMS라는 마크가 박힌 박스 안에는 애어캡으로 둘둘 말린 종이 박스가 있었고, 다시 그걸 해체하니 플레이스테이션의 리테일 박스가 있었다.

엄청나게 꼼꼼한 포장이다. 아마도 배송 중에 굴러다니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인가 싶어서 박스와 애어캡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다.

“산 게 아니라, 개발자가 보내준 거지. 내가 켄 씨랑 인연이 깊거든.”

정겨운 모양의 플레이스테이션을 꺼내면서 유재원은 바로 변명했다. 마치 아내의 상의도 없이 게임기를 샀던 남편이, 나중에 들키고서 애써 변명하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애초에 티파니는 그다지 강하게 추궁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재원이 1만 달러짜리 USB메모리를 보여줬을 때와 같이 신기한 걸 보는 눈빛이었다.

티파니는 컴퓨터공학도인 만큼, 전자 기기에도 관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게임도 좋아했고, 심지어 잘 하기까지 했다.

유재원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과 관련된 이야기를 티파니에게 풀어주었다.

“와, 이것도 비즈니스였던 거야? 자기가 아무도 모르게 깔아놓은 떡밥이 엄청나게 많네.”

플레이스테이션에 탑재된 초소형 OS를 유재원이 튜닝해준 안드로이드라는 것부터 쿠타라니 켄과 관련된 이야기나, 플레이스테이션 용으로 둠을 포팅 중이라는 듣자 나왔던 티파니의 반응이다.

음, 많지, 많고말고.

유재원은 IT의 주요 분야의 길목 길목에 촘촘한 그물을 쳐 놓았다. 앞으로도 어떤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더라도 ID 그룹과 연관이 되도록 말이다.

“한 번 해볼까?”

“응! 얼른 연결해봐!”

게임을 좋아하는 티파니였기에, 바로 조이스틱 하나를 집어 들고 유재원 옆에 앉았다.

유재원도 곧장 플레이스테이션과 텔레비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플레이스테이션 본체나 주변기기를 자세히 관찰했는데, 기억 속의 물건과 99% 흡사했다. 가격 문제 때문에 번들용 조이스틱엔 라이브 포스피드백이 빠져서 무척이나 가벼웠다. 설명서를 보니 라이브 포스피드백이 있는 고급형 제품을 따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유재원의 기억과 똑같았다.

본체 역시 회색톤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데, 고급스러운 느낌은 하나도 없다. 파워 버튼과 CD롬 오픈 버튼이 큼직한 원형 버튼으로 본체 양쪽에 있는 것도 일치했다.

본체에 조이스틱을 끼우는 자리에 세이브용 메모리칩을 끼우는 것도 일치했다. 비디오 출력 단자도 콤포트 단자뿐이어서 고화질 출력이 안 된다는 걸 딱 보여준다.

디자인이 투박하고, 부가 기능이 부족하다는 건 이 시대 기기들의 특성이라서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신 유재원의 눈에 딱 보이는 단점이 보였다. 바로 전용 규격이라는 것이다. 조이스틱이나 메모리칩을 끼우는 단자는 요즘 주변기기의 대세인 USB 방식이 아니라 이상하게 생긴 소니만의 독자적인 형태였다.

원래 소니는 독자 규격을 참 좋아하는 회사였다. DAT부터 베타맥스까지 자신들의 방식을 대중화하려고 무수한 노력을 했음에도 모두 실패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그 방식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나중에 소니도 독자규격을 버리고 USB를 채용할 테지만, 그건 21세기에 진입하고 나서다. 지금이야 의욕이 넘칠 때이니 그냥 두고 보는 게 답이었다.

“게임기 치고는 굉장히 세련된 모습이네?”

더욱이 이 시대 감성을 가진 티파니의 눈에는 괜찮다고 하니, 유재원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제품에 담긴 쿠타라니 켄의 정성도 보통이 아니었다.

SCPH-1000이라는 특별한 모델명에 시리얼 넘버도 000000번이었다. 게다가 CD롬 뚜껑에 쿠타라니 켄의 사인이 있었고, 뒤집으면 보이는 바닥면에는 다른 개발자들의 사인이 담겨 있었다.

리테일 버전을 완성하고서 제일 먼저 유재원에게 보내준다며, 재미있게 플레이 하셨으면 고맙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짧은 쿠타라니 켄의 편지도 있었다.

ID그룹과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공식적인 비즈니스는 안드로이드의 튜닝 버전을 공급하고, 라이브 포스피트백 기술의 라이센스를 주는 것에서 끝났다. 둠을 플레이스테이션 용으로 포팅 중이지만, ID 엔터테인먼트의 주력 시스템은 PC라는 게 명확했다.

쿠타라니 켄의 편지를 읽고 괜히 감성적이 된 유재원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잘 팔린다고 하면 제2의 지원 시스템으로 삼아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다 했다! 이제 켠다!”

그렇게 연결을 다 하고 나서, 전원을 켰다.

역시 처음엔 검은 화면이다. 그 단계에서 몇 초가 지나자 지이잉 하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의 노란 로고, 그리고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 사업부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렇게 로고 화면이 나타난 다음, 매우 단순한 메뉴가 나타났다.

플레이 게임, 플레이 비디오&포토, 메모리 관리, 마지막으로 시스템 설정. 유재원이 게임기용으로 튜닝한 안드로이드 임베이드 버전의 바탕화면이다.

그냥 CD를 넣고 전원을 켜면 바로 게임이 실행되는 데, CD 없이 켜면 이렇게 설정을 볼 수 있다. 물론 게임 중에 선택 버튼을 누르면 이 화면을 불러 올 수 있다. 유재원이 직접 운영체제를 만들어줬으니, 메뉴얼 같은 걸 볼 필요도 없다.

달라진 건 딱 하나 플레이 비디오&포토 항목이다.

원래 유재원은 VCD재생 기능만 넣었기에 플레이 비디오 항목인데 지금은 포토라는 단어까지 함께 붙어 있다. 아무래도 메모리칩이나 공CD에 그림파일을 넣어놓으면 텔레비전으로 재생해 볼 수 있게 만든 모양이다.

그것 말고는 자신이 만들어준 것 그대로였다. 이 상태에서 컴퓨터처럼 이것저것 해볼 만한 것도 없었기에, 유재원은 동봉된 게임 시디를 뒤적거렸다.

플레이스테이션 발매와 함께 출시될 소프트웨어가 좀 많은 모양인지, 동봉된 CD는 10장이 넘었다.

“자기야! 이거 봐, CD가 검은색이야! 신기하네! 컴퓨터에선 인식을 못하는 CD인가봐!”

티파니도 같이 게임CD를 뒤적이다가 CD를 꺼내보고서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 CD 뒷면을 보여주는데, 광택이 있는 검은색 플라스틱이었다. 보통 CD의 뒷면은 홀로그램처럼 광택이 있었는데, 티파니가 케이스에서 꺼낸 CD는 온통 검은색이다.

재미있는 건, 저렇게 검은색으로 한 건 플레이스테이션 전용 CD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고, 기능적으로 특별한 건 하나도 없다. 일반 CD를 넣어도 플레이스테이션에서는 그대로 인식한다. 그냥 일반 CD롬이니 말이다.

“아냐, 그냥 검은색 플라스틱을 쓴 CD라서 컴퓨터에도 잘 읽혀.”

유재원은 쉘북에 이동식 CD롬을 연결하고서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 파일 시스템이 다르긴 해도 개발자용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문제없이 읽어진다. 물론 실행파일 구조는 완전히 달라서 PC상에서는 실행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컴퓨터상에서 접근이 가능한 까닭에 복사 CD가 쉽게 만들어졌다. 당연히 플레이스테이션에는 복사방지 칩이 부착되어 있긴 한데, 간단한 개조로 너무나 쉽게 무력화되어서 복사 CD가 범람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이거 먼저 해볼까?”

유재원이 설치한 플레이스테이션에 가장 먼저 들어간 게임CD는 티파니가 선택한 것이었다. 바로 배틀아레나-투신전이라는 게임이다.

칼을 들고 싸우는 대전 액션게임으로 원래는 아케이드용으로 나온 게임인데 3D 시대라는 트렌드를 잘 맞췄다. 타격감도 좋았고, 조작성도 훌륭했다. 특히 3D 게임의 특징인 자유 이동을 대전 액션게임에도 도입했는데, 그것이 바로 횡이동이었다.

단순히 커맨드만 따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입체적인 기동으로 회피도 가능해서 고수끼리는 머리싸움이 복잡해졌다.

다만 인지도에서는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본 게임인 버추얼 복서에는 한참 모자란다.

재미있는 점은 글라이드X를 최초 발표하고 나서, 3D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데모 게임이 버추얼 복서인데, 유재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열성팬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캐릭터도 둘 밖에 없고, 게임 방식도 액션의 탈을 쓴 가위바위보 게임인데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후속작이 언제 나오냐고 문의도 많이 들어오는데, 안타깝게도 유재원은 아직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언젠가는 만들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캐릭터 숫자도 대폭 늘리고, 기술도 권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격투기술을 도입해 이종격투기 게임을 만들 계획은 있었는데, 유재원이 바라는 수준의 그래픽 기술의 발전은 이뤄지지 못했다.

적어도 HD시대가 되고, 고화질 텍스처와 실시간 광원, 하이폴리콘 처리 능력이 되는 3D가속카드가 준비되면 만들 생각인지라,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왔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로딩이 끝나고 드디어 투신전 게임이 나왔다.

생각보다 그래픽 수준이 괜찮았다. 텍스처가 매끄럽게 처리되었고, 하늘하늘 거리는 옷자락의 움직임도 괜찮았다. 투명 효과라던지, 광원 효과도 그럴듯했다. 추억은 다 좋게 보인다지만, 실제로 낡은 서랍을 뒤져 플레이 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지금은 진짜로 유재원이 알던 투신전보단 좋아 보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스펙이 이전의 것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3D 가속칩의 성능은 대폭 향상되었고, CPU의 경우 MIPS 컴퓨터의 R3000이라는 모델을 그대로 쓰긴 했는데, HPC 공정 덕에 작동속도가 올라 처리 능력도 좋아졌다.

이러한 성능의 향상이 곧 그래픽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확실히 긍정적인 요소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건 유재원뿐이라는 것이다. 전생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이 어떤지 알고 있어야, 지금 나온 건 훨씬 좋다고 인지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아는 사람은 지금 전 세계에 유재원 혼자이지 않은가.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쟁자는 닌텐도나 세가의 비디오게임기가 아니라 최신의 PC였다. 유재원보고 성공의 가능성에 돈을 걸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쪽에 기울어질 것 같다.

“난 얘가 마음에 들어.”

티파니가 고른 캐릭터는 금발에 여리여리한 여자 캐릭터였다. 캐릭터에서 알 수 있듯, 스피드형 캐릭터인데, 티파니는 그냥 자기랑 비슷해서 선택한 게 분명했다. 이에 유재원은 큰 칼을 쓰는 덩치를 골랐다.

보는 바와 같이 여자 캐릭터와는 극상성이 있는 캐릭터였다. 캐릭터 선택만 봐도 유재원이 이길 생각은 없는, 접대 게임을 해주려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자기 생각해서 먹을걸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와 줬는데, 게임으로 무참히 깨버리면 괜히 미안해서 일부러 골랐다.

다만 티파니는 자기를 봐주면서 게임을 하면 무척이나 싫어했다. 물론 계속 지는건 더 싫어했기에, 접대 게임을 해주는 것도 노하우가 절로 생겨난 유재원이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인터넷으로 사이버공간에 모여 게임을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도 하고, 리액션도 하니 컴퓨터 게임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유재원의 마음속에서 콘솔 게임기의 성공 확률이 크게 올랐다.

월요일이 되면서 모든건 일상으로 돌아왔다.

티파니는 집으로 돌아갔고,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본사에 있는 본인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숙소인 호텔과는 10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고, 그것도 준비된 자동차에 타면 알아서 데려다 주는 출근길인데도 힘들었다.

“이건, 월요병인가?”

불타는 주말을 즐긴 후유증이었다.

순간 월요일 출근 시간은 한 시간 미룰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기에, 그냥 생각만 하고 말았다.

“오늘도 힘차게 돈을 벌어 보자!”

더욱이 출근을 마치고 본인의 자리에 앉으니,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다.

“그러면, 급한 일부터 먼저 할까.”

월요일의 경우엔 처리할게 많은 날이어서 바로 프로그래밍에 들어가진 않았다. 대신 주말에 새롭게 갱신된 사안부터 처리했다.

티파니 폰 생산과 데이터센터 관련 사안이었다.

7월 15일에 시범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 전에 제품이 만들어지도록 부품을 준비해서 TG 컴퓨터쪽으로 보내줘야 하고, 티파니&Co와의 콜라보레이션과 관련 프로모션도 이 때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박힌 휴대폰을 좋아하려나 몰라.”

콜라보레이션 제품은 간단했다.

티파니폰 뒷면은 미국 코닝 사와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한 고릴라 글라스가 통짜로 적용되었다. 고급스러운 금속 질감의 도료가 안쪽에 칠해져 있어서 그대로 충분히 멋있었다. 여기 상단부에 CCD카메라가 있고, 그 아래에 ID라는 로고가 레이저로 심플하게 각인되어 있다.

티파니&Co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은 I라는 글자 위에 2캐럿(0.4g)짜리 다이아몬드가 압박적으로 박혀 있다. 그리고 하단부에 깨알만한 글씨로 티파니&Co와 ID 테크놀로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는 2가지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기능적으로는 일반 제품과 완전히 동일하다. 대신 가격은 차원이 다르다.

티파니&Co와 콜라보레이션이 된 제품의 가격은 일반 제품의 10배인 500만 원으로 책정했다. 가격을 들은 레밍턴이나 다른 임원들이 깜짝 놀랄만큼 비쌌지만, 애초에 시장에 팔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티파니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은 총 200대 정도를 만들 예정이고, 일부는 시장에 내놓겠지만 나머지 100개는 회사 차원에서 프로모션용으로 쓰고, 몇 개는 유재원이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목적이니 가격을 따지진 않았다.

사실 500만원을 받고 팔아도 다이아몬드 값이 비싸서 남는건 없다. 무게당 가격이 제일 비싼 보석인지라 콩알 반쪽보다 작은 2캐럿짜리의 원가만 해도 수백만원이다. 게다가 티파니라는 미국의 하이주얼리 브랜드에서 고급스러운 브릴리언트 커팅을 해준 것이니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나마 다이아몬드의 등급을 좀 낮은 걸 쓰고, 물가도 낮아서 500만원을 맞췄지, 21세기 물가였으면 1천만원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IT기기에 금이나 은, 보석으로 치장된 건 무척이나 싫어하는 유재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명 좋아할 것이다.

“티파니&Co에서 런어웨이 소품으로 쓴다고 했으니, 광고도 잘 되겠지.”

티파니와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히 이름만 빌려 쓰고, 다이아몬드를 때려넣은 제품을 출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식이면 아예 콜라보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다. 티파니가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여 신제품을 발표할 때, 티파니 폰을 중요한 소품으로 쓰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잘 될줄은 몰랐는데, 티파니 측에서 ID 테크놀로지와의 협연을 반긴 건 낡은 이미지가 강한 티파니 브랜드에 신세대적 감각을 부여하고 싶다는 목적이 부합하면서 이뤄진 행사였다.

마음만 먹으면 진작 시작할 수 있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진행을 멈춘 상태였다. 시범 서비스 시작 날짜도 나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 때가 되었다.

유재원은 앨런에게 이메일을 보내 티파니&Co로 콜라보레이션 행사 일정에 대해 논의를 해보자는 문서를 보내라 지시했다. 회사와 회사의 비즈니스였기에, 정식 공문이 나가야 하고 공문을 허투루 쓸 수 없으니 앨런을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은……. 데이터 센터 건인가?”

타이밍 좋게도 데이터센터를 증설할 시점에 CPU와 하드디스크 등등의 주요 컴퓨터 부품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한다. 이에 맞춰 서울과 유럽의 데이터센터는 완전 최신 부품으로 도입하면 딱이다.

신제품이라 값이 비싸겠지만, 아직도 주식 매각 대금이 상당히 남아있는 유재원에게는 큰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이번엔 25,600백대씩 넣자!”

인터넷의 발전속도는 유재원의 예상을 뛰어 넘은 상태다. 인터넷을 이용한 네트워크 게임도 쏟아지고 있다. 아예 계속 접속상태를 유지하는 온라인 게임도 준비 중이었으니, 처음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게 낫다.

서울과 유럽 담당에게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기 좋은 부지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하고, 컴퓨터 부품 업체에 견적서를 요청하도록 했다.

그렇게 일정이 급한 일을 처리한 유재원은 다시 본업인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소스코드 관리 서버에 접속했고, ID톡에도 로그인하자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던 일감들, 알파팀 소속 개발진들의 대화 요청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몸이 바쁘긴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대로만 쭉 가면 연내 출시도 가능하겠네!”

소스코드 검토와 대화 요청을 하나하나씩 처리하면서 속도를 낸 유재원은 이제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개발팀을 보며 만족했다. 이쯤 되면 개발 일정을 좀 바싹 조여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미처 감안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한국이다.

6월 말, 박상한이라는 자가 저지른 끔찍한 패륜범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여파가 엉뚱하게 ID 그룹 쪽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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