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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안드로이드 95(7)
-3년이면 충분하답니다.
“3년이라고?”
사무엘 아서 국가안보부 국장은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안드로이드 사 본사의 기자회견이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고, 거기에 사람까지 보낸 국가 안보부였다.
ID 그룹은 미국의 첨단기술 안보를 위해서 보호조치가 이뤄진 기업이었고, 창업자인 유재원 역시 미국이 보호를 명시한 국가인재였다. 국가안보부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가 아니다. 국가안보부보다 상위에 있는 미국 국가 정보국 위원회에서 정해진 방침이었다.
국가안보부 역시 유재원의 보호를 명분으로 회견장에 기자로 둔갑한 요원을 직접 보내서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었다.
현장에 나간 요원을 통해 유재원의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전달 받는 사무엘 아서 국장이 받은 충격은 훨씬 생생했다.
3년도 약과였다.
수만 대의 컴퓨터가 연결된 클라우드 서버의 연산력을 동원하면 DES 방식의 암호는 하루도 안 되어 풀 수 있다고 말하는 유재원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런 DES 방식을 차기 안드로이드의 보안영역에 탑재하면 미국까지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아예 보안영역 자체를 서드파티에 개방하겠다는 발표까지 이어졌다.
해외의 PC만이라도 보안영역의 암호화 수준을 낮춰서 해킹의 난이도를 낮춰 보려는 국가안보부의 의도는 완벽하게 좌절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만 확인해 봐야 하는 건 있다.
진짜 요즘 PC로 DES의 해독이 3년이면 끝나는 지 확인해 봐야 한다.
유재원의 논리 전개와 명분은 DES의 쉬운 해독에 있기 때문이다. 그걸로 애써 만든 공문의 논리를 무력화시켰고, 보안영역을 여러 보안 업체에 개방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요즘 PC 성능이 그렇게나 좋은가?”
사무엘 아서가 알기로 요즘 나오는 PC의 성능이 대단히 좋아졌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DES가 구식이긴 해도 PC로는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해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빈 박사를 불러주게.”
아서 국장은 책상 위 인터폰을 누르고 마빈 박사라는 인물을 호출했다.
“또 무슨 일입니까?”
마빈 박사라는 사람은 한창 일하는 데 호출되서 띠껍다는 티를 확실히 내었다. 놀랍게도 사무엘 아서 국장은 그런 마빈 박사의 태도에 안색이 나빠지는 것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빈 박사는 그래도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60이 넘어서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됐지만, 마빈 박사는 아직도 국가안보부 소속 최고의 수학자였고, 컴퓨터 전문가였다. 그동안 마빈 박사가 국가안보부에서 쌓은 업적을 문서로 남긴다면 국장의 책상이 수북해질 정도로 많았다.
더구나 그것도 국가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고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그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걸 좋아했을 뿐이다. 특히 암호를 푸는 걸 좋아하는 데, 국가안보부에 적을 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간다고 하면 잡을 수도 없는 사람이기에 국장에게 좀 무례해도 충분히 참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유재원 회장이 DES 해독을 3년이면 충분하다고 했소.”
“3년이나 걸린단 말입니까?”
아서 국장의 말에 마빈 박사가 오히려 되물었다.
“아, 며칠 전 출시된 PC 한 대로 풀었을 때, 3년이라 하오.”
그렇게나 오래 걸리냐는 마빈 박사의 의문은 이어진 아서 국장의 보충 설명에 풀어졌다.
“흠, 흥미롭군요.”
마빈 박사가 3년도 길다고 생각한 건, DES의 경우 국가안보부가 보유한 슈퍼컴퓨터로는 며칠 만에 해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에 세팅된 암호해독 프로그램도 마빈 박사가 만들었고, 최적화도 시킨 것이다.
PC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존심 높은 마빈 박사지만 3년은 턱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ID 테크놀로지가 자랑하는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1024대 정도만 동원하면 하루면 끝날 수도 있다고 했소.”
“하루만에요?”
마빈 박사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더니 잠깐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병렬처리에 대해선 저도 연구하고 있던 분야죠. 그런데 PC 두 대를 연결했다고 1에 1을 더해 2가 되는 것처럼 200%의 성능 향상이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효율을 높이는 게 관건인데, 제가 아는 유재원이라면 가능하겠지요. 게다가 ID 테크놀로지가 가진 컴퓨터가 오죽 많아요? 2만대가 넘는다면서요?”
“그렇소.”
“그걸 하나로 모아 단일 프로젝트를 돌리면 연산력이 어마어마하겠죠. 우리도 이 기회에 이제 구식인 단일 시스템 방식의 슈퍼컴퓨터는 버리고,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들여놓읍시다.”
어째서 이야기의 끝이 그쪽으로 되는지 몰라도, 마빈 박사가 가능하다고 하니 아서 국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서 국장도 클라우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CIA가 빅데이터 검색을 위해 ID 테크놀로지로부터 구매한 클라우드 시스템에 매우 만족하고 있고, 이보다 훨씬 큰 규모로 재구매를 위해 타진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중이니 말이다.
“뭐, 국장 반응을 보아하니 우리 정책에 유재원 회장이 오늘 반응을 보인 모양이네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끼리 아웅다웅 할 게 아니라, 직접 가서 그게 가능한지 보면 되는 거 안겠습니까?”
마빈 박사는 이번에도 핵심을 뚫었다.
아서 국장이 보기에도 그 말이 정답이었다. 진짜로 평범한 PC로 DES를 깨는 데 3년밖에 걸리지 않고, 클라우드 시스템을 동원하면 하루만에 풀 수 있다는 걸 확인해야만, 앞으로의 방침을 정할 수 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그러면 우린 망한 거죠. 일단 국회의원님들이 난리를 치시겠네요. 그 많은 예산 어디에 다 썼는지 따져 보는 것부터 시작이겠지요. PC 몇 천 대로 끝날 일을 수천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가 꼭 필요했느냐고 분명히 물어볼 텐데, 답변 준비 잘하셔야겠습니다.”
“박사, 지금 실없는 농담 따먹을 때가 아니오.”
엄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의 아서 국장에게 마빈 박사도 놀리는 건 그만 두었다.
“출구전략을 물으시는 거라면 간단한 거 아닙니까? 유재원의 능력을 인정하기만 하면 깔끔하게 끝나죠.”
마빈 박사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아서 국장의 근엄한 표정이 탁 풀렸다.
괜히 물어봤나 싶었다. 그런데 잠깐 생각을 해보니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DES의 경우 유재원의 특별한 재능 덕에 그동안 감지하지 못한 취약성이 이제야 드러났다고 하면 된다. 더욱이 공문을 보면 DES를 강제한 것이 아니라고 잡아 때면 그만이다.
다만 아서 국장의 입장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유재원에게 국가안보부가 또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제일 안타까운 건 아직까지도 난공불낙인 AES가 일반 사용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보급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대중 사이에 숨은 위협 인자를 포착하는 게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니 미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러한 생각은 아서 국장의 개인성향이 반영된 것이고 국가안보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단언하는 건 무리가 있다.
“알겠네.”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한 아서 국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며칠이 지났다.
미국에 때 아닌 보안 이슈를 터트려 한바탕 난리를 만든 유재원 평소처럼 알파팀 사무실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다. 그러다가 잠깐 짬을 내어 컴퓨터에 웹브라우저를 띄워 놓고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에 접속했다.
-안드로이드 사, 연방정부 조치 꼼수로 회피하나?
수많은 기사들 중에 유재원의 눈에 딱 보이는 건 꼼수와 회피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써서 만든 기사였다.
“이건 엊그제 나온 건데 아직도 상위에 있네.”
넥스트컴 게시판의 장점 중 하나가 기간별로 조회수, 추천수 등을 기준으로 하는 별도의 랭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기능이었다. 이 기능에 최근 더욱 발전했는데, 사용자가 원하는 기준을 선택해서 게시물을 정렬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게 뉴스 기사까지도 확대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 기능은 넥스트컴 개발진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넥스트컴과 검색 엔진 사용 계약을 맺은 야후가 만든 기술이라는 점이다.
바로 페이지 랭크 기능을 바탕으로 확장시킨 기술이었다. 유재원은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빨라짐에 따라 원래보다 일찍 나올 줄 알았는데, 자신과 계약한 야후로부터 만들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다만 야후의 제리나 데이비드는 이 기술을 단지 웹사이트 수준으로만 적용하려고 했다. 유재원은 더 좋은 응용법을 제시했고, 이렇게 넥스트컴에 적용시켰다. 물론 별도의 이용 계약을 맺기도 했다.
아쉬운건 페이지 랭크 기술과 함께 제리와 데이비드가 넥스트컴으로부터 독립할 의사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굳은 마음을 확인했기에 95년까지만 함께하고, 이후부터는 깔끔하게 결별하기로 했다.
유재원도 검색엔진은 대체할 엔진을 다시 찾던가, 아예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하여튼 지금 유재원에게 띄워진 리스트는 지난 일주일간 가장 많은 댓글을 기준으로 정렬된 리스트였다.
“아직도 싸우고 있나?”
보통 넥스트컴의 뉴스페이지 첫 화면에 나오는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은 몇 백개 수준이었다. 반응이 좋은 건 천 단위를 넘기기도 한데, 그런 기사는 몇 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 단위를 가볍게 넘겼다.
21세기에 댓글 로봇이 한창이던 시절에 비견될 만큼 화끈한 화력이었다. 유재원은 굳이 기사를 클릭해서 댓글을 확인하진 않았다. 인터넷 댓글로 벌어진 논쟁이 다 그렇듯 끝이 없는 도돌이표였다.
-DES, 19년 전의 구시대적인 암호 체계, 현대에선 PC로도 해킹 가능!
-연방정부 1년 전부터 기밀문서 암호화에 DES 사용 금지 조치!
-국가안보부, DES 강제가 아닌 권고일 뿐.
-국가안보부는 어떤 조직인가?
-시만텍 등, IT보안업체 줄줄이 신고가 갱신!
댓글이 많은 나머지 기사들 역시나 ID 그룹과 관련이 있는 것들뿐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국가안보부에서 사람이 찾아온다거나 공문이 또 내려오진 않았다. 대신 유재원 앞으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암호를 분실한 파일 몇 개 있는데, 이를 풀기 위해 유재원의 협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개당 1천 달러라는 보수까지도 명시되어 있는 이메일었다.
딱 봐도 이건 유재원이 장담했던 발언을 증명해보라 뜻이다. 비굴함을 감추기 위해 생각해낸 다는 게 암호를 잃어버렸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 뿐이다.
그냥 가뿐하게 무시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본인이 한 말도 있으니, 파일을 받아 해독을 시작했다.
물론 파일에 이상한 바이러스 같은 게 담겨 있는 지 확실히 검사한 후에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클라우드 서버에서 해독 프로그램을 돌린 지 3시간 만에 첫 번째 암호가 나왔다. 무작위로 암호를 대입해 보는 방식으로 푼 것이라 운이 좋으면 초반에 딱 나오기도 한다. 그 후로 24시간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암호를 모두 찾았다.
유재원은 그렇게 찾은 암호를 가지고 해독한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줬다. 그 이후엔 별다른 응답이 없었다. 대신 연방정부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고, 이렇게 기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재원이 본인의 말을 입증한 걸 확인하고는 DES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버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DES를 채택하라고 압박하라고 했던 일은 편안하게 지워버린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네.”
레밍턴이나 케빈 존슨 등등의 임원들은 사과 한 마디 없는 행태에 분개했지만, 유재원은 그나마 말이 통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는 잘못된 걸 뻔히 보여줘도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 꿋꿋이 밀고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가라고 다르지 않았는데, 이번엔 그나마 잘 넘어갔으니 말이다.
대신 다른 쪽으로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터넷 일각에서는 폭등하는 IT보안업체 주가를 보고 유재원이 짜고 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유재원이나 ID 그룹은 그럴 필요가 없었고, 그렇기에 짜고 치는 일도 없었다.
시만텍이나 맥아피, 트렌드마이크로 등등. 여러 컴퓨터 보안 업체에 대한 투자는 ID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작년에 끝낸 상태였다.
ID 인베스트먼트의 IT관련 주식의 투자 규모는 무려 100억 달러를 넘었다. 유재원 개인 자금과 한국, 미국 등에서 일반 투자자에게서 모금한 자금을 모두 합친 금액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 월스트리트에는 이보다 훨씬 큰 사모 펀드들이 여럿 있지만, IT섹터 하나에 이 정도 규모를 투자하는 건 ID 인베스트먼트가 유일했다.
덕분에 월스트리트에서는 전통도 없는 ID 인베스트먼트가 두 번의 성공에 정신을 못 차리고 크게 지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측은 여지없이 틀리는 중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상장과 함께 IT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의 IT관련 주식들의 상승은 다른 섹터보다 훨씬 높았다.
ID 인베스트먼트도 벌써 5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투자자들이 더더욱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IT붐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지.”
유재원은 자신을 향해 투덜거리기 전에 차라리 작은 금액이라도 투자를 하라고 하고 싶었다. IT붐이 제대로 터지면 작은 돈이라도 눈이 쌓인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날 게 100% 확실하니 말이다.
“지금은 더욱 활활 타오르라고 장작이나 넣어줘야 할 타이밍이잖아.”
불평불만 많은 사람들에게 투덜거리면서 유재원이 꺼낸 건, 차기 안드로이드 보안영역에 참가를 원하는 IT보안업체들의 제안서들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하나 없었는데, 제대로 된 방침을 발표해서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