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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안드로이드 95(8)
-안드로이드 사, 보안영역 관리 지침 발표.
-능력만 확실하다면 벤처기업도 참가 가능!
IT 보안업체의 문의가 쏟아지는 가운데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보안영역을 관리하는 지침에 대해 발표했다. 이를 지킬 수 있는 회사라면 이제 막 시작한 벤처기업이라도 참여가 가능하다.
가격 결정권도 보안업체에 주었다. 자기 제품에 자신이 있는 회사라면 높은 가격을 설정해도 상관없고, 전략적으로 낮은 가격을 매겨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가격이라는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기본 탑재된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용자가 서드 파티 업체의 제품으로 교체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배포용 CD에 들어갈 기본 탑재되는 제품이 되려면 가격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지역별로 기본 탑재될 보안 프로그램도 다르게 만들 예정이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었다지만, 각 나라 네티즌마다 주로 접속하는 사이트가 다 다르다. 더욱이 해당 나라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나 멀웨어도 특색이 있으니, 세계를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그 지역에서 제일 능력이 좋은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러한 관련 지침이 발표되자 미국의 보안업체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아시아지역의 업체까지도 덩달아서 주가가 뛰어 올랐다.
유럽이나 아시아지역 보안업체들은 유재원의 발표에도 남의 집 잔치 이야기처럼 그저 부럽기만 했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지만, 결국 가장 큰 파이는 배포용 CD에 기본으로 들어갈 제품이었다.
아직은 보안 의식이 그다지 높지 않기도 했고, 아시아 시장의 경우에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희박했던 탓이다. 그런데 로컬 우선 정책으로 자기의 제품이 배포용에 기본 탑재될 수 있다고 하니 만약 선정만 되면 어마어마한 대박이 터지는 것이었다.
덕분에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도 IT회사들의 주가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번 일 때문에 원래보다 훨씬 일찍 거품이 끼는건 사양인 유재원은 구체적인 일정도 발표했다.
번들 탑재를 희망하는 업체들은 8월 말까지 보안영역 관리 지침에 맞는 제품을 안드로이드 사에 보내라는 것이다. 회사가 이를 검토해서 선정된 업체에게 늦어도 9월 말까지는 연락을 줄 거라는 간단한 일정이다.
보안문제 해결을 위해 정신없이 달린 유재원에게도 좋은 소식 하나가 들어왔다.
“사무엘 아서 국가안보부 국장이 경질될 거라고 합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김대석이 정보의 출처에 대해 줄줄 이야기했다. 맨 처음 온 곳은 백악관이었고, 이후 정보팀을 비롯한 복수의 정보들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백악관이라고 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정보를 준건 아니다.
백악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 속칭 빨대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원래 발표보다 한두 박자 빠르게 정보를 전해줬다는 이야기다.
“진짜요?”
유재원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의외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국가안보부가 의견을 접었으니, 그걸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국장까지 교체라니.
“전해진 이야기를 들어 보니 원래 클린턴 행정부는 아서 국장에 대해서 껄끄러웠다고 합니다. 특히나 아서 국장의 전직이 육군 출신 3성 장군이어서 군부의 지지가 대단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딱히 교체할 타이밍도 아니어서 속앓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이번 회장님의 사건을 계기로 업무 적합성이 모자라다는게 밝혀지면서, 자발적 사퇴의 방식으로 퇴진할 거라고 합니다.”
김대석의 이어진 설명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3성 장군, 그것도 육군 출신이라니, 어쩐지 너무 고지식하다고 했다. 동시에 이런 사람을 국가안보부 국장을 시킨 부시 전 대통령의 과감함에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따지고 보면 본인이나 기업에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번 일로 소모한 심력은 프로그래밍에 차질을 빚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게다가 아직 일이 끝난 것도 아니다.
IT보안업체에 대한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탓이다.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길 보안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검증되지 않은 업체까지 남발할 수는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지, 백도어 같은 걸 심어두지 않았는지 따져본 다음에 허락을 해줘야 하는데, 이게 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사무엘 아서의 시대착오적인 보안의식 때문에 피곤해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안보부 국장은 제발 시대의식에 맞는 사람이 왔으면 하는 유재원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뭐예요?”
좋은 소식을 가져온 김대석은 빈손으로 유재원을 찾아온게 아니었다. 혼자 들기에 버거울 만큼 커다란 박스도 함께 들고 왔다.
“ID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온 것들입니다.”
ID 엔터테인먼트라는 소리에 유재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오리진 시스템, ID 소프트웨어 같이 쟁쟁한 게임 개발사들이 속한 그룹이 바로 ID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러니 거기서 보낸 거라면 딱 봐도 짐작이 되는 물건들이었다.
유재원을 대신해 김대석이 박스를 개봉했다.
그러자 여러 개의 작은 박스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상자가 원채 커서 작은 박스라고 해도 웬만한 책가방보다는 커다란 부피를 자랑했다. 상자의 겉에는 유재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게임사의 로고가 딱딱 박혀 있어서 구분하기는 쉬웠다.
“어떤 걸 먼저 보시겠습니까?”
김대석의 목소리에도 호기심과 흥분이 살짝 묻어 나왔다.
유재원과 몇 년을 함께 일하고 있는 김대석이지만, 아직도 20대였다. 더욱이 유재원과 함께 있으면서 컴퓨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게임과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당연히 게임에도 푹 빠진 상태였고, 그렇게 푹 빠진 게임들은 ID 엔터테인먼트가 발매한 게임이었다.
“블리자드 박스부터 열어볼까요?”
여러 상자 중에 유재원은 블리자드 로고가 박힌 상자를 제일 먼저 골랐다. 그러자 이번에도 김대석이 나서서 박스를 개봉했다.
누런 박스 안에는 또 박스가 있었다. 이쯤 되면 똑같은 인형들이 겹겹이 든 러시아 인형이 생각날 정도였지만, 이번 박스는 진짜 알맹이었다.
매우 크고 고급스러운 게임 패키지였다. 이른바 한정 소장판 패키지라는 것이었다. 상자의 상단에는 판타지물의 제목으로 잘 어울리는 약간의 변형이 된 고딕체로 워크래프트라 크게 박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해당 게임에 등장하는 두 진형인 인간과 오크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그림이었다.
하단부에는 여러 가지 로고가 박혀 있는데, 15세부터 가능이라는 콘텐츠 등급부터, AAC코덱 로고, 글라이드 X2 로고, 인터넷 로고 등등 게임에 적용된 수많은 컴퓨터 기술을 의미하는 로고들이 잔뜩 붙어 있다. 또한 CD로고가 2개 겹쳐져 있는 것도 있는데, 모양 그대로 패키지가 CD 2장짜리라는 의미였다.
블리자드의 보고에 따르면 완성된 순수한 게임 데이터는 360MB정도인데, 유재원의 파격적인 지원으로 시네마틱 동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용량이 CD 2장으로 불어나버렸다.
아쉽게도 최초의 기가바이트 게임은 아니다. 범인은 ID 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오리진 시스템즈였다. 실사로 촬영한 영상과 게임을 합친 인터렉티브 게임이라는 걸 창안한 회사가 오리진 시스템즈였다. 당시에는 코덱의 효율이 좋지 못해서 용량 낭비가 심했다. 작년에 나왔던 윙 커맨드 3이란 게임은 CD 4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용량을 자랑했다.
워크래프트는 2장이지만, 윙 커맨드 3보다 훨씬 좋은 화질의 풀 CG영상으로 시네마틱 동영상을 만들었다. 화질은 아직 나오지 않은 DVD보다 좋은 수준이었고, 더빙도 수준급 성우들을 동원했다. 음악도 오케스트라를 써서 그 퀄리티는 유재원도 인정할 정도였다.
오히려 이렇게나 많은 멀티미디어 요소를 사용하면서도 CD 2장으로 끊은 것은 블리자드의 기술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CD는 디스켓보다 훨씬 생산단가가 비싼 물건이었다. 한 장이 더 추가되면 그만큼 마진이 떨어지기에 용량은 최대한 절약하는게 맞다.
“그러면 열어 볼까요?”
패키지를 뜯어 먹을 듯 훑은 유재원은 곧이어 개봉을 시작했다.
“우와.”
유재원이 상자를 개봉하자 김대석이 탄성을 터트렸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높이 25cm정도의 울프라이더였다. 워크래프트의 오크 진영에서 기병 역할을 하는 유닛이다. 말은 오크를 무서워해서 탈 수가 없으니, 말 대신 다이어울프라는 거대한 늑대를 길들여 탄다는 설정이다.
게임 속에서는 데포르메 기법으로 표현되어 단순하게 나타나지만, 레진으로 만든 피규어는 실사처럼 정교함을 자랑했고, 이것이 한정 소장판 패키지의 최대 특전이다.
한정 소장판에 들어가는 피규어의 종류는 울프라이더 하나로 고정되지 않았다.
인간 진영의 기사 유닛도 있고, 망치나 검과 같은 주요 무기들도 들어 있다. 물론 해당 피규어의 품질은 유재원이 보장할 만큼 뛰어나다.
양산품이 아니라 일본의 피규어 장인에게 직접 의뢰한 것들이라서 같은 유닛이라도 똑같은 모양은 없고, 살짝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퀄리티다. 양산품은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 만들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유닛과 배경 그리고 여기에 담긴 이야기가 있는 콘셉트북과 게임 속 OST를 묶은 오디오 CD, 풀컬러 인쇄된 두툼한 메뉴얼 등이 들어 있다. CD키 역시 단순히 CD케이스 안쪽에 스티커를 붙여놓는게 아니라, 플라스틱 카드로 만들었다.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 패키지 구성 덕분에 팔아서 남는게 없다.
도매가는 25만원, 판매가는 29만9천원이다. 4만9천원의 마진이 있는데, 이건 소매상을 위한 몫이라서 ID 엔터테인먼트는 팔면 팔수록 손해다.
돈벌자고 만든 것이 아니라,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서 마진 따지지 않고 듬뿍 담았다.
대신 생산량은 적었다. 총 300개를 제작했고, 지금 넥스트컴이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는 중이다. 아쉬운건 값이 비싸서 그런지 몰라도 판매 속도가 그다지 좋은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 7월 말을 기준으로 100여개 정도가 팔린 것에 불과하다. 아무래도 블리자드라는 이름이 낯설고, 시리즈를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라서 선뜻 구매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돈 벌자고 만든 한정판이 아니라서 유재원은 판매량에 실망하지 않았다.
더욱이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고, 나중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확대된다면 이번 한정판의 가치도 확실하게 달라진다. 그때 각종 행사의 경품으로 내놓으면 인기는 대폭발할 것이다.
“그럼 다음 걸 열어 봐요.”
워크래프트 한정 소장판 패키지 개봉을 끝낸 유재원은 바로 다음 타자로 넘어갔다. 이번에 걸린건 오리진 시스템즈에서 보낸 박스였다.
거기엔 울티마 온라인 패키지가 여러 개 담겨 있었다. 워크래프트 한정 소장판보다는 작은 케이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보는 백과사전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온라인 전용 게임이 패키지로도 나오네요.”
게임에 대해 잘 아는 김대석이 한 마디 했다.
“이게 미국 스타일이죠.”
한국에서 혈맹 온라인을 필두로 여러 온라인 게임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유재원의 기억에 있는 게임들은 물론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게임들이 런칭 했고, 발매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특징은 패키지 없이 온라인으로만 가입한다는 것이다. 홍보를 위해 무료 CD를 뿌리지만 정식 패키지는 아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의 경우엔 온라인 게임이라도 실제 패키지 게임과 같은 걸 만든다.
울티마 온라인 패키지도 일반 패키지 게임과 똑같은 구성이다.
CD 1장, 메뉴얼, 대륙 지도, 3개월짜리 이용권이 있다. 여기서 돋보이는건 대륙 지도인데, 한쪽은 울티마 온라인의 포스터였고 다른 한쪽은 정교하게 그려진 대륙 지도가 있다. 재질은 부직포 비슷한 것이라서 내구성이 아주 좋고, 벽에 걸어 놓았을 때 인테리어 효과도 종이 포스터보다 훨씬 높다.
“3개월이면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리처드 게리엇은 사장이 그러는데 보통의 플레이어가 메인 퀘스트와 보조 퀘스트를 풀면서 만랩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3개월 정도라더군요..”
단순히 어림대중으로 나온 시간은 아니다. 얼리액세스로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로 도출된 데이터였다.
패키지 하나를 사서 싱글 게임을 하는 것처럼 3개월을 즐기고 나서, 온라인 방식이 마음에 든다면 월간 정기 요금제를 선택하면 된다는 의미가 담긴 패키지를 구성했다.
컨텐츠 소모 속도가 경이적인 한국 게이머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는 적합한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이 패키지 하나로 끝이 아니라, 매년 하나 이상의 확장 팩을 내기로 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의 볼륨은 점점 커지는거죠. 그리고 일반적인 업데이트는 별도로 계속 하는 거고요.”
이어진 유재원의 설명에 김대석은 비로소 울티마 온라인의 운영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머지 박스에 담긴 물건들도 확인했다.
ID 소프트에서 보낸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과 퀘이크가 있었고, 작은 소프트웨어 업체에 포팅을 맡겼던 플레이스테이션용 둠 1 확장판이 마지막이었다.
ID 소프트웨어가 보낸 두 가지 패키지는 소장판 버전이라 그런지 거의 워크래프트 한정 소장판에 비견될 크기를 자랑했다. 차이점이라면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문구가 없다는 점이다.
이제 막 시리즈를 시작하는 워크래프트와 다르게 리턴 투 캐슬울펜슈타인이나 퀘이크의 인지도는 엄청났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말 할 것도 없고, 퀘이크 역시나 게이머들에겐 둠2의 멀티플레이의 강화판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일반 패키지보다 훨씬 비싼 소장판인데도 엄청난 속도로 예약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울펜슈타인이나 퀘이크 소장판 패키지 가격은 워크래프트 한정 패키지보다 훨씬 저렴한 10만원이다.
가격이 좀 저렴한 만큼 피규어의 질에도 차이가 있다. 워크래프트의 경우 값비싼 재료인 레진인 반면, 울펜슈타인이나 퀘이크는 고무였으니 말이다. 디테일이 좀 부족하긴 한데, 마니아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주문했으니,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스테이션용 둠 1 확장판 패키지는 모습을 드러낸 패키지 중에 제일 작고 간단한 형태였다.
따로 종이 케이스도 없이 저렴한 플라스틱 케이스 하나로 끝이다. 그럴듯한 모양의 타이틀 화면이 인쇄된 종이가 겉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소장판과 비교하면 참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개봉하면 안쪽 면에는 CD 한 장이 있고, 반대편에는 작은 메뉴얼이 들어 있다.
이렇게 간단한 패키지였지만, 가격은 저렴하지 않다. 일반 둠 시리즈와 비슷한 4만9천 원으로 책정되었다.
비디오 게임이 원래 게임기 본체는 싸게 팔고, 소프트웨어를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형태였다. 유재원이야 가격을 낮게 잡을 수도 있는데, 소니에서 정한 가격 정책이 있어서 4만9천원이 되었다.
“다 괜찮네요.”
구성은 물론 사소한 마감까지도 하나하나 살펴본 유재원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패키지는 모두 메이드인코리아라는 생산지를 확실히 표시하고 있었고, 그 의미 그대로 여주의 패키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혹시나 데이터를 담는 매체가 디스켓에서 CD로 변하면서 일손이 남아 돌았고, 이로 인해 감원이 될까 혹시나 했던 임직원들의 걱정은 고급형 패키지 주문으로 싹 날아갔다.
오히려 ID엔터테인먼트 산하 게임사의 패키지 생산까지 몰리면서 필요해진 일손이 더더욱 많아졌다.
냉정히 따지면 아웃소싱으로 쉽게 돌릴 수 있는 공정이긴 했지만, 직영체제로 두면서 패키지의 퀄리티를 최고조로 높인다는 게 유재원의 생각이었다.
곧이어 유재원은 각 패키지들의 발매 순서들을 따져 보았다.
8월 초, 플레이스테이션 출시와 함께 둠 1 확장판이 발매되고, 이후에 워크래프트를 시작으로 한 달의 텀을 두면서 울펜슈타인과 퀘이크가 발매된다.
한꺼번에 발매하면 마케팅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소비자의 구매력에도 영향이 갈 수 있으니, 일부러 날짜를 조정한 것이다.
이러한 발매 스케줄의 화룡점정은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다.
보안정책 개방 스케줄을 짜면서 자연스럽게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발매일도 확정되었다.
바로 11월 넷째주 월요일이다.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간으로 어마어마한 매출이 발생하는 주간이었다.이렇게 날짜가 확정되면서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이름도 정해졌다.
안드로이드 95!
2.0 다음에 3.0이 순리지만, 이제 와서 3.0이라고 붙이면 좀 낡은 느낌이었다. 94년도도 얼마 남지 않은 날에 발매하는 것이니 95라고 붙여도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네이밍 전문가들도 3.0대신 95를 붙인다고 하니 세련된 느낌이라면서 적극 동의했다.
이렇게 정해진 안드로이드 95에 버전별 접미사가 붙으면서 최종적인 이름이 완성된다.
안드로이드 95 게이밍에디션 같은 식이다.
2.0버전의 경우엔 여기에 기업용인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이 있었다 .95에는 한 가지 버전이 더 추가되는데 i웍스을 통해 예고된 워크스테이션 에디션이다.
이렇게 다 풀어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신제품 러시였다.
덕분에 괜히 마음이 졸리는 유재원이다.
모두 다 흥행이 증명된 콘텐츠였지만, 유재원도 사람이다 보니 혹시나 실패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유재원 곧바로 풀어 놓은 패키지 꾸러미를 본인의 작업용 책상에 놓았다.
불안감을 느낄 시간에 키보드 자판 하나를 더 누르는게 더 이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만에 하나 그럴 일이 일어나면 책상 위의 패키지들을 보고 자신을 채찍질 하기 위해 시선이 잘 가는 곳에 떡하니 놓았다.
업무 외적으로 귀찮게 했던 국가안보부의 일도 잘 해결되었으니 이제 남은 안드로이드 95 성공을 위해 유재원은 막판 스퍼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