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67화 (36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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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워크래프트와 아이들(3)

-1994년 10월 1일.

-당신이 PC 게이머들이라 자부한다면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울펜슈타인의 정식 후속작인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이 정식으로 출시되었다.

전작에서 나치의 생체실험이 자행되던 울펜슈타인 성을 어렵사리 빠져 나왔던 주인공 윌리엄 조셉 블라즈코웍즈, 통칭은 BJ라 불리는 주인공이 나치의 유적 조사대 추격과 V2로켓 발사 저지, 신무기 개발 차단, 결국엔 완성된 생체병기 슈퍼 솔져 제압 등을 위해 다시 울펜슈타인 성에 돌아가서 모든걸 때려 부순다는 이야기를 담은 게임이다.

한층 강력해진 3D 가속 카드의 힘을 100% 활용해서 94년 기준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그래픽을 선보였고, 이를 적극 활용해서 FPS에 RPG의 속성도 첨가했다.

“이 리뷰는 볼만 하네.”

유재원은 모니터에 뜬 컴퓨터 게임 전문 잡지인 게임스팟의 리뷰 기사를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직전에 봤던 기사의 경우 어그로를 끈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혹평을 썼던지라, 더욱 대비가 되었다.

유독 이번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을 가지고 어그로를 끄는 기사들이 많은 느낌이다.

전작의 명성에 워낙 드높아 수많은 리뷰가 쏟아지는 중인데, 일단 클릭수를 늘려보려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놓은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나아가 본다면 경쟁사들의 재뿌리기인거 같기도 하다.

지금 보는 리뷰는 배경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기술적인 분석까지 제법이었다. 덕분에 슬쩍 제목만 보고 지나가지 않고 끝까지 읽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완벽한 오픈월드는 아니다.

-퀘스트에 선택지를 줘서 분기를 선택하는 정도였지만, 인게임 화면에서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건 대단한 혁신이다.

-영화에서나 쓰던 모션 캡처 기법을 도입해 주인공은 물론, 화면에 등장하는 적들의 움직임에 사실성을 부여한 것도 게임성을 한층 배가 시켰다. 특히 퀘스트가 진행될 때 클로즈업되는 캐릭터의 입모양과 대사를 맞추기도 했다.

“후후, 이게 다가 아니지.”

이번엔 제대로 라이벌을 넘어 보겠노라 칼을 갈았던 로메로는 멀티플레이에도 힘을 바싹 주었다. 최대 16인이 한 맵에서 데스매치를 치를 수 있게 넷코드를 강화했고,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통신 주기도 초당 30번으로 확 끌어 올려 싱글 플레이와 비슷한 수준의 타격감이 나오도록 했다.

-여기에 땅따먹기인 퀀퀘스트, 특정 거점을 두고 공격과 방어를 번갈하 하는 오퍼레이션, 팀 데스매치 등 다양한 형태의 멀티플레이를 담았다.

-이러한 멀티플레이의 핵심은 병과가 나뉘었다는 것이고, 병과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능력도 차이를 두면서 전략성을 한층 끌어 올렸다.

-재녹음된 아름다운 배경음악, 사실적인 사운드 효과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럼그럼, 사운드를 무시하면 게임성이 확 깨진다고.”

-베타테스트 중, 유 회장의 지적을 받았던 사운드 파트를 갈아엎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에피소드다.

-큰 충격을 받은 총괄 개발자 로메로는 개발진이 만들었던 작업물을 다 버리고, 아예 전문 스튜디오 업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유 회장의 의견을 100% 수용해 오케스트라는 물론 실력파 락밴드를 데려와서 배경음악을 만들었다. 사운드 역시 실제 총기가 발사되는 소리를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녹음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론은?”

-대규모 FPS의 완성형이 무엇인지 ID 소프트웨어가 확실한 답을 보여줬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평가한 게임스팟의 최종 점수는 98점!

-ID 로고 하나만 믿고 구매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화려한 그래픽만큼 고성능 컴퓨터를 요구하는 것이 유일한 단점.

리뷰를 끝까지 본 유재원이 휘바람을 불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점수네.”

리뷰어와 마찬가지로 유재원이나 ID 엔터테인먼트에서 RTCW에 거는 기대가 컸다.

덕분에 ID 엔터테인먼트 내에서는 작은 내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8월부터 순차적으로 발매되는 게임 중에 어떤게 제일 성적이 좋을지를 맞춰 보는 내기였다.

가장 적은 배당률, 거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도 역시나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이었다. 이 뒤를 바싹 쫓는 것은 퀘이크였다.

반면 직원들의 지지가 약해서 역배당이 된 게임은 워크래프트와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나온 둠1 확장판이었다.

유재원 역시 당연히 이 내기에 빠지지 않았다.

ID톡 단체 대화방 안에서 만들어진 내기인지라 접근 권한이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에 빠지는 법이 없는 유재원은 당연히 배팅에 참가했다.

다만 다수가 선택하는 걸 유재원마저 고르면 재미가 없어지기에, 유재원은 역배당 상태인 워크래프트를 골랐다.

“얼마나 팔렸나 볼까?”

정식 발매를 시작한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내기의 향방이 궁금해진 유재원은 곧장 배틀넷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판매량을 정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판매량 집계는 불가능했고, 3개월 후에나 유통사가 정산해주는데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패키지 제작을 100% 자체적으로 하기에, 주문량으로 바로 알아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게이머가 구매한 CD키를 배틀넷에 등록하게 하면서 실사용자 숫자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널리 퍼트러야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다음 달 출시를 앞둔 퀘이크는 물론 앞으로 ID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올 PC게임들은 모두 배틀넷으로 멀티플레이를 통합할 예정이다.

배틀넷에 대한 유재원의 계획은 원대했다.

지금이야 멀티플레이만 지원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런처로 확대할 예정이다. 여기에 ESD.com의 온라인 판매까지 더하면 소프트웨어의 구매부터 실행까지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간편해지고, 제작사 역시 소비자를 하나의 창구에서 만날 수 있으니 효율성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사들이나 소매점에는 제법 타격일 것이다.

곧이어 배틀넷과 연결된 모니터링 프로그램은 곧바로 RTCW에 등록되는 CD키들의 숫자를 띄워주었다.

“오! 벌써 등록된 키만 10만개가 넘었어.”

정식 판매를 시작한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게이머들의 구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역시 인지도가 어마어마한 게임이었고, 고정 팬층도 확고부동한 덕인지 발매 첫날 CD키가 등록되는 속도가 워크래프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이러한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직원들과의 내기에서 진다는 이야기였지만, 결국 누가 이기던 유재원의 주머니는 두둑해지는 것이니 그저 웃음만 가득 나온다.

동시에 RTCW도 워크래프트에서 봤던 경향이 똑같이 이어지는 것도 확인되었다.

“어휴, 이것도 멀티플레이를 먼저 찾는 사람들이 많네.”

유재원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의 수치를 보며 혀를 찼다.

플레이 타임이 1시간도 안되는 사람들이 다들 멀티플레이에만 들어가 있는 것이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의 싱글플레이도 워크래프트만큼이나 공을 들였다. 시네마틱한 CG는 없지만 인게임 화면으로 이벤트신을 만들어내는 혁신을 담았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인 싱글플레이를 건너뛰고 멀티플레이부터 시작하는 게이머들이 이번에도 상당했던 것이다.

“이 게임은 먼저 멀티를 시작한다고 인센티브를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흠, 그냥 사람이랑 맞붙는 게 재미있다는 건가?”

워크래프트는 그래도 금은동과 같은 등급이 있다.

일찍 멀티플레이를 시작해서 높은 등급을 받아 놓으면 후발주자보다는 손쉽게 상위 등급에 오를 수는 있다. 등급을 나누는게 단순한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라서 처음엔 조금만 잘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반면 RTCW는 등급을 따로 나누진 않았다.

FPS인지라 등급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매치를 치를 때마다 경험치를 받고, 경험치 점수의 누적 수치에 따라서 계급이 올라가는 식이었다. 이등병부터 국가원수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승급할 때 필요한 경험치의 양은 점점 많이 들어가서 별이 보일 때쯤에는 등급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계급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게임 매칭에서 계급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탓이다. 숨겨진 수치로 ELO랭킹은 따로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승을 이어가면 잘하는 사람끼리 붙여주고, 연패를 하면 초보들과 매칭을 시켜서 승리를 맛볼 수 있게 해주도록 설계했으니 말이다.

“뭐, 게임 못하냐고 핀잔먹는 것처럼 싫은 것도 없지.”

게이머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 중에 제일 큰 건 즐기고 있는 게임 자체를 누군가 디스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게임 실력을 가지고 태클을 거는 것이었다. 일단 랭킹이 있으면 높이고 보는게 진리였다.

공들여 만든 싱글플레이를 많이 생략한다더라도, 게임을 사준 고마운 분들이니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여튼, 이런 기세면 5일이면 100만개는 찍겠네.”

오프라인 유통망을 통해 선주문된 수량만 150만개였다.

출하량이 곧 판매량은 아니지만, RTCW의 CD키 등록 속도를 보아 하니 재고 소진 속도는 매우 빨라질 것이 확실했다.

“음, 덕진리 공장이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덕분에 유재원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패키지 생산 쪽으로 흘렀다.

한국에 있는 ID 그룹 조직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건 ID 디스플레이였다. 티파니 폰에 탑재될 모바일 패널과 노트북이나 LCD모니터용 패널을 열심히 양산 중이었다. 여기에 별도로 LCD기술을 심화 발전시킬 연구소 조직도 있다.

ID 디스플레이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게 덕진리 패키지 공장이었다. 별도의 조직은 아니고 ID 테크놀로지 소속인데, 그 규모가 1천명을 넘겨버렸다. 디스켓 공정을 없앤다고 했을 때 혹시나 인원 감축이 있지 않았을까 했던 직원들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해진 것이다.

오히려 패키지 공장에서 신규 채용을 크게 하니, 여주시는 물론이고 경기도권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을 정도다.

한국의 경제가 매우 활황인지라 어디서든 불야성이긴 했다. 그래도 ID 그룹처럼 생산직도 잘 대우해주는 곳은 없었기에 인기가 매우 좋았던 것이다.

이렇게 인력을 수급함과 동시에 자동화 공정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하루에 수만개의 패키지를 쏟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찍어내야 할 패키지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워크래프트부터 퀘이크까지, ID 엔터테인먼트가 발매하는 패키지들은 이미 생산중이었고, 여기에 11월 말 추수감사절에 맞춰 출시를 앞둔 안드로이드 95 운영체제와 ID 오피스 95도 있다.

안드로이드와 ID 오피스는 컴퓨터 제조사들이 CD키만 받아가서 자체적인 번들판을 만드는 식이었다. 이제부터는 일부 대형 제조사 말고는 무조건 패키지 공장에서 만든 박스형 제품을 탑재하도록 할 예정이다.

근본이 없는 제조사들 몇몇이 이렇게 받은 CD키를 짝퉁 시장에 풀어서 엉뚱한 피해자들을 양산했던 탓에 일부 CD키는 인터넷에 그대로 유포되기도 했다. 덕분에 수천 대의 PC가 하나의 CD키로 등록해놓기도 했다.

이들은 개인사용자가 분명했기에, CD키를 파기하는 식의 조치는 하지 않고 있지만 화가 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덕분에 TG와 델, HP, 컴팩을 비롯해 각 나라의 대기업 전자회사들은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에 선택권을 주기로 했고, 나머지 회사들은 협상의 여지없이 모두 패키지 방식을 쓰기로 했다.

그러면 용산전자상가처럼 작은 부품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조립형 컴퓨터를 만들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공짜로 설치해주는 방식이 문제로 남는다. 이 경우엔 비정기적인 저작권 단속으로 철퇴를 날려서 경각심을 심어주는 수밖엔 없다.

“하여튼, 사람들이 ESD닷컴에서 좀 많이 사주시면 패키지 공장에 부담이 좀 줄어들텐데.”

유재원은 ESD닷컴을 떠올린 김에 곧장 웹브라우저의 즐겨찾기를 이용해 해당 사이트로 이동했다.

메인페이지에는 한달 전 발매했던 워크래프트는 물론, 오늘 발매 된 RTCW까지 큼지막한 광고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패키지 제품과 함께 다운로드 제품도 동시에 발매된 것이다. 스크롤을 계속 해보면 ID 그룹이 발매했던 소프트웨어들이 가득 있다. 오래된 소프트웨어일수록 할인율도 커져서 ?90%짜리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신작의 경우에도 패키지 생산비용 절약이라는 의미로 ?10%의 할인을 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역시 오프라인이랑 판매량 격차가 너무 심하네.”

RTCW의 판매량을 보면 차이가 너무 심했다. 패키지의 경우 선주문만 100만개가 넘었는데, ESD닷컴에서 팔린 수량은 5천 개 정도였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개시 후 최고치를 찍다가 쭉 하향세를 타는게 ESD닷컴의 패턴이기도 했다. 워크래프트도 첫날에 2천개 정도를 팔았는데, 한 달 조금 못되게 지난 지금은 겨우 3, 40개 정도를 파는 수준이었다.

“전송 속도가 제일 큰 문제겠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치명적 단점도 있고.”

패키지를 사놓고 장식장에 넣어두면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패키지가 크고 화려할수록, 부속품도 많을수록 뿌듯함은 배가 된다. 덕분에 RTCW의 한정판 패키지는 일반판의 2배 가격임에도 잘 팔렸다.

용량이 큰 것도 문제다. RTCW의 경우 초당 1메가바이트를 전송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운로드를 완료하는데 20분이고, 이보다 느린 서비스면 1시간은 훌쩍 넘는다. 아직 모뎀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 마당이니 ESD닷컴의 고객층이 매우 얕을 수 밖에 없다.

“음, ESD 매출이 패키지를 넘어서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할 거 같네. 넥스트컴캐스트는 잘 하고 있나 모르겠다.”

ID 그룹이었기에 ESD닷컴을 보다가 넥스트컴캐스트까지 이어졌다. 하나의 현안에 새로운 현안이 이어지면서 생각의 흐름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ID 그룹의 계열사들은 업종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탓에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유재원은 ID톡을 열어 헨리 사무엘 사장에게서 온 최근 보고서를 찾아 봤다.

“한 달 전 상황이 최근이네.”

더구나 이미 읽어 본 문서였고, 단순 보고용이라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

이를 확인한 유재원은 정보고속도로 건설 현황과 브로드밴드 인터넷의 보급률에 현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헨리 사무엘 사장에게 톡을 보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ID톡 알람이 다시 울렸다. 설마 이렇게나 빨리 헨리 사무엘 사장이 답변을 보냈을까 봤더니, 다른 사람이었다.

“아? 알파팀이네.”

요즘은 연락이 뜸했던 알파팀에서 올라온 쪽지였다.

유재원이 레드먼드에서 알파팀과 함께 운영체제 개발에 참여했을 땐 질문이 쉬지 않고 쏟아졌는데,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는 뚝 끊겼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쪽지를 받으니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날아온 쪽지는 사적인 내용은 아니었고,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안영역에 지원한 업체들이 보낸 소프트웨어의 성능과 기능 분석을 마치고 종합해서 보고하는 리포트였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업체 선정에 있어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업체들은 무조건 반발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업체의 경우 유재원과 공통으로 가진 인맥을 동원해서 은근히 부담을 주기도 했다.

이를 테면 스탠포드 대학교의 교수님이나 샌프란시스코 연고의 정치인들이었다. 압박은 아니라고 분명히 할 수 있다. 유재원이야 아쉬울 거 없는 사람이었고, 교수님들이나 정치인들도 ID 그룹의 존재감이 훨씬 컸으니 말이다.

오히려 유재원은 어쭙잖게 인맥을 동원한 업체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팍팍 주었다.

“어디 보자.”

유재원은 첨부된 ID 워드프로세서 파일을 받아서 열었다.

알파팀도 유재원의 스타일에 완전 적응했던 모양인지 문서의 첫 페이지에 바로 가장 중요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바로 1등부터 꼴등까지의 순위였다.

“1등은 역시 시만텍.”

예상했던 그대로 보안업계의 명성과 알파팀 리포트의 순위가 대부분 일치했다.

시만텍은 100점 만점에 93점으로 전체 30여개 업체 중 1등이었다. 2등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기업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코모도였고, 3위는 맥아피였다.

그런데 이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라?”

4위 업체를 보니 매우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다.

바로 킴랩, V6라는 자체개발한 백신으로 한국에서 제2의 유재원으로 명성을 올린 김철수가 만든 보안업체 킴랩이 90.5점이라는 점수로 당당히 4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95의 보안정책을 발표하면서, 지역우선주의를 포함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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