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8화
-선택지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가진 정보고속도로를 지역 네트워크나 경쟁자들에게 임대 해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조직을 늘려 우리의 영업망을 늘리는 거겠네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모니터 속의 헨리 사무엘 사장은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이다. 두 방안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유재원이 핵심만 딱딱 잡아서 먼저 말해버렸던 탓이다.
“사장님 생각은 둘 중 뭐가 좋을 거 같나요?”
-저는 전자입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헨리 사무엘 사장은 망설임 없이 임대를 선택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초창기인지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지만, 21세기만 되어도 시장은 레드오션이 될 겁니다. 그러면 대책없이 늘려놓은 고용인원이 모두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유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컴캐스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전 전성기 시절에는 직접 고용인원만 15만에 달하는 초거대 기업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면서도 고객들의 평판은 언제나 최악이었고, 직원들의 착취도 심했던 대표적인 블랙기업이었다는 점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린 인터넷을 종량제까지 곁들인 비싼 요금을 써야 했고, 통신장애에 대한 AS도 좋지 못했다. 직원들의 경우에는 사용자의 불만을 직접 맞닥뜨리면서 열심히 활동했지만, 움직인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온갖 문제들이 쏟아졌다.
사용자도 고생이고, 직원들도 고생인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장님 말씀이 컴캐스트의 최종 결론인가요?”
-아닙니다. 이사님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많더군요.
이번에도 유재원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구 컴캐스트 출신들은 인력만 조금 늘리면 직접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늘어나는 데, 왜 임대를 해주냐고 했을 것이다.
유재원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곧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보니 이 결정은 넥스트컴캐스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매우 중대한 문제인 거 같아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래서 이렇게 간단한 약식 보고만 받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힘들어요.”
-예,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저도 지금은 간략히 요약해 말씀 드리는 것이고, 상세한 데이터가 담긴 정식 보고서도 즉각 올릴 예정이었습니다.
“네, 그것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부에 반대 의견도 있다고 하니, 사장님이나 그 이사님들도 오셔서 프레젠테이션으로 승부를 보는 게 어떨지요? 마침 한국에서도 관련된 비즈니스가 있으니까요.”
-한국에 말입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서로 자료를 준비하면서 입장도 정리하고, 공동으로 프레젠테이션을해서 결론을 내리면 좋은 결론이 나겠지요.
유재원의 요청에 헨리 사장도 즉각 반응했다.
그룹의 회장이 와달라는 데 가지 못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임직원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헨리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살짝 우려가 되는 것도 있었다. 이번 일로 ID 그룹에서 내려온 임직원들과 구 컴캐스트쪽 세력 간의 알력 싸움이 표면화되는 거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한지붕 아래에 있었던 형제들도 이익에 따라 다툼이 생기는데, 넥스트컴캐스트는 아예 인수합병된 상태인지라 조직문화의 차이가 제법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넥스트컴캐스트는 엄연히 ID 그룹 산하였고, 유재원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따르지 못하겠다 할 정도로 불만이 심하면 그쪽이 취할 방법은 사직뿐이다.
헨리 사장은 차라리 이번 일로 불만 많은 사람들이 한 번 걸러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 회장님. 그런데 한국에서의 비즈니스라는 건 무엇입니까?
“오디오 주문 서비스랑 인터넷 라디오 건이요.”
-아! 이제 기억났습니다. 넥스트 뮤직 서비스 말씀이시군요.
“네! 관련법들이 이제 다 통과가 되었거든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잘 협상해서 라이센스만 받아오면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음반 판매량 집계를 위한 전산망 구축, 이와 연동되어 저작권 정산을 체계적으로 계산하기 위한 통합 시스템을 입찰한다는 공고가 조만간 뜰 예정이다.
음원파일은 물론이고 노래방이나 방송국, 각종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음원에 대한 통합 정산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대형 IT업체는 ID 그룹뿐이었으니, 결과가 정해진 수의계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예, 회장님. 넥스트 뮤직 건도 완벽히 준비해서 한국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헨리 사장과의 ID톡은 여기까지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헨리 사장이 한국에 들어와서 하면 된다. 게다가 아까부터 안드로이드사의 케빈 존슨 사장이 보낸 대화 요청이 깜빡이고 있었기에, 유재원은 컴퓨터를 종료하지 못하고, 톡을 계속 이어서 해야 했다.
-안드로이드 사, 케빈 존슨입니다. 보안영역 서포트 업체와의 최종협상안이 타결되어 보고 드립니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군요. 그래서 가격은요?”
후보가 정해진 건 좀 됐지만, 가격 협상이 시작되자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아예 기억에서 내려놓고 있었는데, 드디어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세 업체 모두 같은 가격으로 맞춰졌습니다. GE는 1달러, WE는 3달러, EE는 10달러입니다. 그리고 최근 사장님께서 추구한 다중 사용자용은 15달러입니다.
“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가격인데요!”
케빈 존슨 사장의 협상력이 제법인 모양이다.
유재원이 예상했던 가격 중에 하단 부분에 있는 것에 맞춰졌으니 말이다. 여기서 GE라는 건 개인용인 게이밍 에디션이었고, 광고 버전도 포함하고 있다. WE는 워크스테이션 버전을, EE는 기업이나 대규모 시스템에 들어가는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을 칭했다.
당연히 가격에 따라 탑재되는 보안 프로그램의 기능도 달라진다.
GE버전에 들어가는 건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 있는 프로그램이 들어가고, EE버전에는 모든 기능이 다 지원되는 풀버전이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보안영역 가격까지 포함한 최종 소비자 가격도 나왔습니다.
케빈 존슨은 그러면서 IDW파일을 하나 전송해줬다.
받아서 열어 보니 안드로이드 95의 여러 버전에 대한 설명이 담긴 카탈로그였다. 가격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데, GE는 12달러, WE는 120달러, EE는 190달러였다.
예전 안드로이드 2.0 때의 가격보다는 대충 30% 정도의 인상이 있었다. 안드로이드 2.0 출시 때와 현재의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제 상승률은 20% 정도였다.
“파트너 회사에도 이 카탈로그를 발송해드렸나요?”
-예, 회장님.
“반응이 어떤가요?”
-당연히 가격 상승에 대해 푸념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래를 끊는다거나 주문량을 축소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케빈 존슨의 메시지에 유재원은 그럼그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완제품 컴퓨터 제조사들이 제일 많이 파는 모델은 가정용 PC다. 여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는 게이밍 에디션이지, 상급 버전들이 들어갈 일은 없다. 그러니 완제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패키지당 2.1달러 정도의 비용이 늘어난 것인데, 최소 천 달러부터 시작하는 완제품 제조사 컴퓨터 가격에서 2.1달러는 무시해도 좋을 가격이었다.
문제가 되는 건 EE버전인데, 120달러가 190달러로 대폭 상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안드로이드 사도 할 말이 많다.
EE버전은 CD 두 장에 이를 만큼 많은 보조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있고, 대형 시스템에 맞춰 안정성은 물론 온갖 최신 기능이 다 들어가 있다. 게다가 유지 보수의 경우에도 필요에 따라 안드로이드 사의 A급 엔지니어들이 직접 해당 회사에 가서 AS를 해주니 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관건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워크스테이션 에디션의 판매량이다.
전문가용으로 만든 것인데, 가정용과 기업용으로 확실히 목표가 정해진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서 타켓이 많이 애매했다.
영상이나 음악 분야에서 활약하는 분들, 혹은 대형 컴퓨터 제조사에서 일부 내놓는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에 들어갈 제품이었다. 그래서 유재원도 i웍스라는 워크스테이션 제품을 이번에 처음으로 내놓는 것이기도 했다.
하여튼, 이런 전문가들의 수요가 얼마나 될지는 유재원도 쉽게 가늠 할 수 없었다.
-애드웨어 버전의 광고슬롯 가격도 드디어 결정되었습니다.
부팅을 마칠 때마다, 혹은 1시간 간격으로 오른쪽 하단에 작은 이미지 광고가 나오도록 했던 애드웨어 정책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대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광고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클릭해보면 단순한 광고 전단정도가 뜨는 형식이거나, 그것도 준비하지 않아서 아무런 반응이 없기도 했다.
지금은 클릭하면 해당 광고주의 사이트가 뜨는 건 기본이다. 홈페이지도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어서, 광고주의 역량에 따라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대기업 완제품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만큼이나 조립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들 대부분은 애드웨어 버전을 썼다.
그들의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게다가 구매력이 좋은 1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집중되어 있었기에 광고의 효과는 언제나 최고였다.
덕분에 광고슬롯 가격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최종 낙찰 결과 슬롯 하나의 단가는 600만 달러입니다.
광고 슬롯은 모두 24개, 그게 하나에 600만 달러라면…….
“그러면 정식 발매를 하기도전에 1억 4,400만 달러의 매출은 찍었네요.”
-옙! 이런걸 대박이라고 한다지요? 그런데 대박은 하나 더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2.0의 피날레 경매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안드로이드 95가 나온다고 해도 2.0 버전에 대한 지원도 한동안 이어진다. 구식 시스템을 꾸준히 사용하는 분들도 계시니 말이다. 그렇지만 보안 업데이트나 버그 수정 정도의 작은 패치가 나오는 것이지, 메이저 업데이트는 끝이었다. 당연히 광고슬롯 갱신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에 슬롯을 낙찰 받으면 안드로이드 2.0의 광고로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기에 전성기 시절만큼이나 치열했다는 케빈 존슨 사장의 전언이었다.
“그래요? 낙찰 가격은요?”
-420만 달러입니다.
휘유~!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이것만 해도 1억 80만 달러였으니 말이다. 안드로이드 95 개발비용을 2.0 피날레 경매와 95의 첫 번째 경매로 간단히 회수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당연히 유재원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본인이 결정한 과감한 결단이 제대로 적중했으니 말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들면서 개인 사용자에 대한 정품 판매는 과감히 포기하고, 애드웨어 체제로 만든 건 최상책이었다. 심지어 유재원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나비 효과를 만들기도 했다.
광고 경매 자체가 이슈가 되었고, 여기에 참가한 회사들의 눈치 싸움까지도 기사화가 될 정도였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고 단가를 자랑했던 슈퍼볼을 능가했으니 뉴스가 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슈퍼볼은 달랑 30초 광고에 몇 백만 달러씩 쓰는 것이고, 안드로이드 광고 슬롯은 100일이나 걸어주는 것이니 시간당 가격으로 따지면 비교 불능이지만, 그래도 이슈의 크기는 거의 비등한 느낌이다.
특히 광고의 질도 한층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