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4화
전력당 성능비는 카이로 프로세서가 최고다. 문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x86을 버리면서 모든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호환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유재원이 안드로이드 사를 가지고 있으니 카이로 아키텍처에 맞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포팅한다면,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애매한 성능이 발목을 잡는다. 전력당 성능비가 펜티엄 2를 능가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전력을 많이 인가할 수는 없었다. 카이로 프로세서가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전력 소비량은 최대 25와트 수준이니 말이다. 펜티엄 2 700MHz의 경우엔 기본 90와트였고, 오버클럭시에는 120와트를 넘게 먹어치우지만, 그만큼 성능으로 뿜어낸다. 그렇기에 PC에 저전력 프로세서를 탑재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러면 저전력이 힘을 발휘하는 노트북 컴퓨터라면 어떨까?
당연히 리사 수는 그것도 고려했다. 단순히 생각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토 타입으로 노트북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프로토 타입인데도 인텔이나 AMD의 저전력 모델을 사용한 것보다 2배 이상의 작동 시간이 나왔습니다.”
인텔과 AMD에서도 나름 저전력 딱지가 붙은 CPU가 나온다. 하지만 아키텍처 자체가 바뀐 건 아니고, 작동 속도를 낮추고, 저전력을 위해 작동 속도를 더 낮추는 식의 기능이 추가된 모델이다.
대충 만들어서 2배 이상이라면, 제대로 만들면 3배 이상의 효율도 낼 것 같다. 문제는 그 x86아키텍처였다.
카이로 프로세서 전용의 운영체제가 필요하고, 여기에서 돌릴 프로그램도 별도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도 x86용 제품처럼 고성능은 아니었기에, 사용 가능한 범위가 더욱 줄어든다.
“잘 만들면 ID 오피스 95 정도는 굴릴 수 있을 것 같지만, 게임은 못할 것입니다.”
리사 수의 말에 유재원은 동의했다.
x86에서 탈피해 완전히 새로운 저전력 프로세서를 만든 이유는 기존의 제품을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새로운 프로세서는 새로운 제품에 들어가야죠.”
유재원은 그러면서 티파니폰을 들어보였다.
“티파니폰 말씀이십니까? 거기에 탑재하기엔 좀 과한 성능인데요?”
“당장은 그렇죠.”
ID 그룹에서도 초특급으로 통하는 리사 수 박사도 본인이 만든 물건이 어떻게 쓰일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무척 쉬운 답이지만, 막상 직접 해보려고 어려운 문제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LCD가 작죠? 그런데 이 LCD화면이 2배, 3배로 커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 그러면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가 많은 만큼 연산력도 높아지겠네요. 문자 메시지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을 테고요.”
역시 리사 수는 하나를 알려주면 10개를 아는 천재였다.
“맞아요. 게다가 해상도도 높아질 거고, 표시되는 컬러의 숫자도 매우 많아질 거예요. 사운드의 품질도 좋아질 거고요. 더욱이 휴대폰이라는 건 애초에 PC와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니 x86호환성이 없어도 상관없지요.”
“그렇네요!”
유재원의 말에 리사 수 박사가 격하게 동의했다.
카이로 프로세서의 치명적인 약점은 애매한 연산 성능에 x86 아키텍처와의 호환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휴대폰에 탑재되는 거라면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 회장님은 처음부터 이 생각을 하시고 저를 불렀던 거군요.”
리사 수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고 찔러 봤는데, 제 발로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와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역시나 배팅은 성공했고,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카이로 프로세서가 튀어 나왔다.
“이런 제품을 그냥 저전력 프로세서로 치부하기에는 아쉽죠.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어때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와우! 괜찮은데요? 회장님의 네이밍 센스는 익히 아는 바였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괜한 일이었습니다. 확실히 기대 이상이네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디스를 받은 유재원이다. 특히나 본인은 항상 최고의 네이밍 센스를 자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타격이 제법 컸다.
“응? 제 네이밍 센스가 어떠했는데요?”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요? 이메일 서비스 사이트는 이메일닷컴, 온라인 소프트웨어 판매 사이트는 ESD닷컴, 컴퓨터의 경우엔 계란처럼 생겼다고 에그, 가리비 같은 노트북은 쉘북.”
“헛!”
리사 수 박사의 팩트 폭격에 뼈가 시린 유재원이다. 나름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듣고 보니 까딱 하면 너무 대충 지었다고 착각할 만한 것이다.
사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유재원의 네이밍 센스는 전생에서 전성기로 활동했던 시절의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도통 연관이 안 되는 제품명이 주류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에 대한 반발로 직설적인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인공지능 연구 관련으로 활발히 사회 활동을 했던 유재원이었고, 자연스럽게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지금도 투영되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나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라는 이름은 기존의 유재원이 보여줬던 센스 이상에 있는 이름인지라 리사 수 박사를 비롯한 카이로 팀에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외람된 이야기이긴 한데,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휴대폰이 대중화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거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죠. LCD 기술도 좀 더 발전해야 하고, 플래시 메모리칩도 대량생산되어야 할 테고, 가장 중요한 이동통신 서비스도 대중화되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총알처럼 빠르게 흘러갑니다. 지금부터 대비하는 딱 좋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준비가 미비한 것보다는, 미리 준비해 놓고 있는 게 훨씬 나았다.
실제로 시간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흘렀다.
#372 빅딜(Big Deal)(1)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1996년 12월 23일.
ID 글로벌해드쿼터 빌딩, 일명 101빌딩의 개장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유재원은 서울 시내를 달리는 동안, 여러 가지 감회에 사로잡혔다.
일단 서울 중심지 어디에서든 보이는 글로벌해드쿼터 빌딩이 전해 주는 묘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전생에서는 서울에 집하나 마련하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군대 전역 후 대학교에 다시 다니고, 30이 가까워진 나이에 신입으로 취직하고,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 버티지 못해 퇴사했을 때는 영영 불가능할 줄 알았다.
이후 마음 다시 잡고 직접 창업한 회사가 대박이 터지고 나서는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문제는 천사일 줄 알았던 투자자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시절은 짧았고 고통은 길었다.
투자를 받고 대박을 터트렸다고 착각할 때 샀던 화려한 집도 나중엔 빨간 딱지가 붙으며 손 쓸 사이도 없이 팔려나갔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융자 한 푼 받지 않고 서울의 금싸라기 땅인 도곡동에 101층짜리 빌딩을 올렸다. 더욱이 빌딩을 완공할 때까지 자잘한 안전사고 몇 건이 있긴 했지만, 사망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럽다.
“재원아? 갑자기 왜 그래?”
그렇게 유재원이 감회에 빠져 있으니 옆자리의 티파니가 괜찮냐는 듯 물었다.
티파니와 애인 사이가 된 지도 벌써 4년째가 넘었다. 101빌딩의 개장식에 티파니가 참석해 유재원의 옆에 서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티파니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도 뒤차에 타고 함께 이동 중이었다.
이번 기회에 서울 구경도 하고, 유재원의 부모님과도 만나서 친분을 다질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결혼식 날을 잡는 상견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유재원이나 티파니나 모두 젊은 나이였으니 말이다.
“아, 오랜만에 귀국해서 그런가 거리의 모습이 많이 달라서 좀 어색했나봐.”
“그런 거야? 서울도 미국의 대도시 번화가 못지않은 모습인데?”
“응. 예전엔 안 그랬거든.”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아직 미국에 비하기는 멀었다. 그렇지만 테헤란로를 비롯해 새롭게 정비가 끝난 지역을 보면 도시의 모습은 티파니의 말대로 미국 대도시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테헤란로 같으면 제2의 킴랩을 꿈꾸며 일어서는 IT벤처 기업들이 저렴한 사무실 임대료와 지원책에 너도나도 입주하면서 저녁 시간이 되었음에도 거의 모든 빌딩들이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건물에 달린 간판을 보면 테크, 텍, 텔, 기술 등등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연구소나 무슨무슨 랩으로 끝나는 이름도 있다.
작년 여름에 출범한 코스닥에서는 위와 같은 이름으로 끝나는 회사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아무리 견실한 규모나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IT 회사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시대였기에, 멀쩡한 회사도 간판을 바꿔 달 정도였다.
그렇게 열심히 간판을 바꿔 달 만큼 코스닥은 뜨거웠다.
미국 나스닥을 본격적으로 벤치마크해서 만든 코스닥은 모든 거래가 전산으로 이뤄지고, 개인도 자유롭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창립 초기의 코스닥 기준 지수는 100포인트였는데, 지금은 200포인트를 넘어섰다.
1년 조금 넘는 사이에 지수가 2배로 상승했다는 것은 코스닥 시장을 구성하는 회사들의 주식 가격이 평균 2배를 올랐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스닥 지수 상승을 이끄는 대장은 킴랩이었다.
안드로이드 95 아시아판에 기본 탑재되는 보안 서포트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면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계약금만 100억 원을 받았고, 안드로이드의 판매 수량에 따라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벌 수 있었다. 대신 보안 영역에 대한 책임을 킴랩이 지게 되었으니, 킴랩의 주인인 김철수는 인력을 확대해 각종 위협에 대해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을 확대했다.
이후 코스닥이 설립과 동시에 상장되어 코스닥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가 되었다. 주당 5천원이었던 킴랩의 주가는 상장 이후 끊임없이 상승하면서 지금은 10만원을 넘어섰다. 1년 사이 20배가 넘는 성장이었다.
주가 총액도 5천억 원을 넘어설 만큼 거대한 회사가 된 것이다. 덕분에 킴랩의 직원들도 대박이 터졌다는 뉴스가 올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회사를 상장하기 전, 김철수 사장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스톡옵션을 나눠 준 것이다.
다만 얼마나 나눠줬는지는 비밀이라고 밝히진 않았는데, 언론들은 다들 억대 부자가 되었다면서 기사를 쏟아냈다.
능력 좋은 정보팀을 가진 유재원은 김철수가 직원들에게 나눠준 스톡옵션이 5%라는 확실한 정보를 얻었다. 직원들 숫자가 50명 정도이니 1/n을 한다면 현재 시가로 5억 원 정도는 될 것이다. 다만 지금이 최고점이니 스톡옵션을 처분할 수 있었던 올 여름에 바로 팔았던 사람은 2억 원 정도를 거머쥔 것이었다.
하여튼, 킴랩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보여준 덕에 코스닥의 기세는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대단했다.
더욱 놀라운 건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불타오르는 분야는 코스닥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96년도 경제 성장률은 6.9%이었고 1인당 소득은 1만 1천 달러를 기록했으며, 경제 규모로는 세계 11위에 안착했다.
민간의 소비 심리도 좋아서 민간소비 증가율은 7%에 이른다.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겨울을 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고,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서울의 거리는 그야말로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끊이지 않았고, 거리의 조그만 가게부터 대형 백화점까지 손님들로 가득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모습도 같았다. 80년대의 낡은 자동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형 세단들이 훨씬 많아졌는데, 그러한 차들 중에는 예전엔 없던 로고를 단 차들이 도로 위에 종종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