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04화 (404/1,007)

제 526화

각 회사의 자산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유재원을 대신한 레밍턴 부회장이 뉴욕에서 타임워너 측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전투에 가까운 미팅인지라 미팅이 끝날 때마다 쏟아지는 소문도 무성했고, 소문에 따라 주가가 요동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합병 소식을 듣고 뒤늦게 타임워너의 주식을 산 사람이나 투자 회사도 많았고, 이들이 뉴스를 열심히 보면서 실시간으로 대응했으니, 주가가 출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한 파급력이 워낙 크니 미국 연방정부에서 합병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다고 해서 잠깐 찬물이 뿌려지기도 했다.

“이쯤 되면 IT 버블 고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봐야겠지?”

월스트리트의 전설 중 하나가 한 투자 회사 사장이 길을 가다가 거리의 구두닦이 소년이 주식을 하는 걸 보고서 그날로 곧장 모든 투자를 청산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며칠 후 그 유명한 대공황이 찾아왔다.

유재원이 일으킨 여러 가지 변화로 IT 버블이 언제 터질지는 이제 본인도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다우존스 산업 지수나 나스닥 지수가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와 요즘 인터넷의 여론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전에 합병은 끝내야지.”

합병의 틀은 정해졌으니, 이제 남은 건 넥스트컴캐스트의 재상장이었다.

재상장을 통해 넥스트컴캐스트에 대한 시장의 평가 가격을 보고 이를 토대로 합병 기업의 지분 분배 비율을 결정하면 끝이다.

유재원은 넥스트컴캐스트의 주가 총액이 타임워너를 넘어설 거라고 확신했다. 전 세계에 IT 붐이 최고조에 이르는 상태에서 인터넷의 황제격인 회사가 출격하는 것이니 유재원이라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합병 회사의 경영권도 유재원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타임워너 측도 다들 여러 가지 억제 장치를 둘 테니 전권을 행사하는 게 어렵겠지만,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기에는 충분하다.

참고로 새로운 합병 회사의 이름은 주체가 되는 쪽의 회사가 뒤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타임워너 측이 선심을 쓰는 척 해준 것이다. 제럴드 회장은 새로운 합병 회사의 이름이 넥스트컴 타임워너가 되더라도 경영권을 갖는 게 실익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새로운 합병 회사의 이름이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될 것이라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띠링~!

유재원이 아침부터 장밋빛 미래에 빠져 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오랜만에 보는 중요 등급의 알람이고, 발신인은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사장이었다.

-회장님, 지금 제 사무실에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이 방문했습니다. 우리가 월초에 발표한 리포트에 관해서 회장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합니다.

쪽지의 내용도 중요 등급이라는 테그에 120%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374 지옥문

조지 소로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헤지펀드의 대부인 존재였다.

그가 헤지펀드인 퀀텀 펀드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90년 영국에서였다.

당시 영국은 유럽 통합의 과정으로 단일통화권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과도기적 체제인 ERM에 가입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영국은 파운드화를 독일 마르크화 대비 상하 6%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고정이 되도록 해야 했고, 이 범위를 벗어날 정도의 상황이 발생하면 영국 중앙은행이 즉각 개입해 변동성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었다.

가입할 때만 해도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들은 2.5% 정도만 인정했으니, 영국도 6% 정도의 수준이라면 괜찮은 변동 폭이라 생각했다.

이를 통해 유로존의 각 나라들의 통화 가치를 안정시킨 후 유로화를 출범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조지 소로스는 이 체제의 취약점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파운드화 공매도 공격으로 영국을 당황시켰다.

공격의 규모는 이전에 없던 규모였다. 조지 소로스가 움직이자 다른 헤지펀드 매니저들도 동시에 움직였으니 전 세계의 핫머니가 전부 영국으로 몰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영국은 단기 금리를 인상하며 파운드화 방어에 나섰지만, 결국 시장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92년 9월 ERM을 탈퇴했고, 이후 파운드화 환율은 직각으로 폭락하고 말았다. 공격을 주도한 헤지 펀드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이 여파로 인해 영국 정부는 유로화를 포기할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이처럼 조지 소로스는 본인이 운영하는 헤지펀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도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한국도 97년 이후로 조지 소로스와 그의 퀀텀펀드는 제법 아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지 소로스의 환투기는 아시아 국가들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작점이라고 평가하는 태국 바트화부터 한국 원화까지도 손을 댔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바닥으로 떨어진 한국의 은행이나 기업을 인수한 후에 되팔기도 했었다.

이러한 모습만 보면 조지 소로스는 냉혹한 헤지펀드의 수장으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지.”

그렇지만 조지 소로스가 대중에 알려진 것처럼 돈만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펀드매니저가 된 것도 원래 다니고 있던 런던 정경대의 철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50만 달러 정도를 벌어 놓으면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펀드매니저를 시작한 것인데, 업계에 뛰어들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은 성공하고 나서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후의 기부 활동을 보면 빈말은 절대 아니었다.

오픈소사이어티 재단이라는 자선 단체를 만들고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는데, 매년 수억 달러씩 기부를 했고, 2017년에는 180억 달러를 통 크게 기부했다. 누적 액수로는 320억 달러에 이르렀다.

돈을 버는 데 냉혹하기 그지없지만, 그렇게 돈을 벌고 나서는 정승처럼 쓴 것이다.

“그런데 나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그런 조지 소로스가 직접 뉴욕의 ID 인베스트먼트 본사를 방문해 대화를 요청했다는 건 유재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잠깐 생각해 봤던 유재원은 이번에 직접 대화를 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화상 미팅으로 연결해주세요.”

-예, 회장님!

빈센트 그린힐의 답신이 있은 후,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화상 미팅 연결 신청이 들어왔다.

유재원은 서재 한쪽에 놓은 거울을 보면서 헤어스타일이나 얼굴의 상태를 점검하고서 곧바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곧 모니터 화면에 빈센트 그린힐의 사무실 모습이 띄워졌고, 화면 한쪽 구석에는 유재원 본인의 모습도 비춰졌다. 상대편에서는 이와 반대로 유재원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나올 것이다.

예전에도 있었던 기능이었지만, ID 톡도 그간 열심히 버전 업을 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일단 최근에 나온 ID 톡의 가장 큰 변화라면 휴대전화와의 연동이었다.

휴대전화 주소록을 그대로 친구 목록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컴퓨터에 접속하지 않은 친구라면 문자 메시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지원되는 통신사가 한정되어 있지만 TG 모바일이라면 ID 톡으로 무제한으로 PC와 휴대폰 사이에 문자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모티콘도 일대 혁신이 있었다.

예전에는 스마일 맨 수준의 이모티콘이었다면, 이제는 동물 캐릭터들이 탑재되었다.

마지막으로 화상 채팅 기능에도 혁신이 일어났다.

당연히 포커스는 고화질과 고음질로써, 예전에는 VCD 화질이었다면 지금은 HD 화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HD 화질을 쓰려면 좋은 웹캠에 오디오 카드도 고급형을 장착해야 하고, 인터넷 대역폭도 좋아야 한다.

ID 그룹 임직원들에게는 표준으로 보급된 사양이었기에 수락을 누르자 바로 최고의 접속 상태로 화상 미팅이 연결되었다.

빈센트 그린힐의 모습과 함께 세련된 모습의 중년이 등장했다.

노익장을 자랑하는 빈센트 그린힐 옆이라서 훨씬 젊게 보이긴 했지만, 조지 소로스만 보면 확실히 반백은 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컴퓨터가 익숙할 텐데도 화상 미팅은 처음인 모양인지, 모니터를 신기하게 보는 조지 소로스의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빈센트 그린힐이 화상 미팅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도 곧 이어졌다.

그렇게 상세한 설명을 받은 후에 조지 소로스는 자리에 앉아 유재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호오, 실시간 화상 통신이라니. 역시 ID 그룹에는 신기한 게 참 많군요.

“그런가요?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이렇게 소통을 하고 있어서 익숙한 방법이거든요.”

-역시 ID 그룹의 본질은 IT 기업이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귀하의 연구소에는 분명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물건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겠죠?

유재원의 자랑을 조지 소로스가 부드럽게 받았다. 그러면서 남보다 한 발 빨리 정보를 얻어내려는 모습을 숨기지도 않았다.

남보다 빠르게 정보를 습득해서 여러 번 커다란 이익을 만들어내다보니, 말투 자체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요! 조만간 보게 될 겁니다.”

당연히 이런 얕은 수에 유재원은 넘어가지 않았다.

ID 그룹의 여러 계열사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템은 수도 없이 많았고, 발표만 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아이템도 있었다. 하지만 대박의 조건에는 압도적인 기술 말고도 필요한 게 많았다.

바로 타이밍이다.

뛰어난 기술로 무장한 아이템들이 때를 잘못 만나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게 바로 시장이었다. 유재원이 미래의 지식으로 무장을 했다지만, 때를 잘못 만나면 과거에 크게 성공했던 아이템이라도 폭삭 망할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실제로 유재원도 이런 아이템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전기 자전거, 넥스트뮤직, P마켓 등등이 있다.

전기 자전거는 실리콘밸리 안에선 유행이지만, 샌프란시스코 밖을 벗어나면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넥스트뮤직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만 런칭한 서비스였는데, 연간 성장률이 30%밖에 되지 않았다.

30%라면 상당히 성장한 것 같긴 한데, 숫자로 따지면 이용자는 아직도 100만 명을 넘지못했다.. 넥스트컴만 해도 매년 신규 가입자 숫자가 수백만 단위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치였다. 그렇다고 유재원은 서비스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음원 서비스라는 게 휴대폰 그리고 MP3플레이어의 대량 보급과 함께 성장하는 분야였는데, 아직 MP3플레이어의 보급률은 그다지 많은 건 아니었던 탓이다.

플래시 메모리칩의 용량 문제도 있었고, 유료로 곡을 다운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아이템을 일찍 내놓아 봐야 호시탐탐 기술 유출만 노리는 경쟁사들이 좋아할 것 아니겠는가. 때가 무르익기 전에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물건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ID 인베스트먼트 본사를 찾아서 저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 거예요?”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 전에 유재원은 중심을 바로 잡았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연초에 발표한 동아시아 경제 리포트가 무척이나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니 이 리포트의 뼈대는 유 회장님이 만들었다는 믿기 힘든 보고가 올라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직접 유 회장님의 견해를 직접 듣고자 실례를 무릅쓰고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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