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권 9화
"그렇지만 지금 미국에서의 보도 만 보면 한국이 당장 망할 것 같지 만,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결과 그렇 게까지 최악은 아닙니다. 물론 잠 재된 폭탄이 좀 보이긴 했는데, 이 미 발견된 만큼 한국 정부가 지혜 롭게 처리할 것으로 봅니다."
"잠재된 폭탄이라니요?"
"상황이 이런데도 대규모의 부실 을 숨기는 대기업들이 좀 있어요. 한국에는 대마불사라는 이상한 믿 음이 있어서 정부 지원만 믿고 그 러는 것 같은데, 그러다간 큰 코 다칠 거예요."
"그런 위험이 잔존한다면 한국 투자는 위험한 거 아닌가요?"
"아니죠. 이미 파악된 위험은 위 험이라고 볼 수 없지요. 나스닥이 오버슈팅이라면 한국은 그야말로 바겐세일 중입니다. 낙폭 과대 상 태라는 거예요. 외환위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해서 멀쩡한 기업까 지도 후려치기가 너무 심해요. 제 가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 데, 지 금 한국에 투자하시면 21세기에 가 장 크게 웃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렇게 불확실한 것을 두고 장담하시는 건 위험한데 말이죠. 게다가 지금 인터뷰는 타임지의 구독자들이 다 기억할 겁니다. 게다 가 기록으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고요."
"그러면 더 좋죠."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나스닥의 IT버블은 붕괴할 것이다. 반면 한 국은 회생할 것이고, 그 차이는 통 장의 잔고로 확실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저는 빈말하지 않습니 다."
"그 말씀은?"
"제가 나스닥에 투자했던 자금을 바탕으로 화이트 타이거 펀드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화이트 타이거 펀드요?"
"한국의 국가 상징 중 하나가 백 호거든요. 이름에서 유츄할 수 있 듯 한국의 저평가된 자산이나 회생 가능성이 큰 기업들을 사들인 다음, 정상화를 시키고 이후에 매각함으 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펀드입니다. 일단 시작은 200억 달러인데, 조만 간 창구를 개설해서 민간 모금도 시작할 겁니다."
"200?, 200억 달러요?"
"네, ID 인베스트먼트의 4번째 히트작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인터뷰를 보고서 분명히 저에게 나스닥이 아닌 한국을 택했느냐고 뭐라 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하 지만 저에겐 나스닥보다 한국이 더 매력적인 투자처일 뿐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하 겠지만, 저는 아직도 선뜻 동의하 기가 힘든 이야기네요."
"그렇겠죠. 하지만 결국은 계좌 잔고가 누구의 말이 더 맞는지 증 명을 해줄 겁니다. 분명한 건 지금 은 소리아를 살 때입니다."
유재원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타 임지 기자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는 이후로도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표지 사진을 위한 사진 촬영도 시작되었다. 타임지에서는 인터뷰 기자 말고도 사진 기자도 파견해 주었다.
사진 기자와의 촬영도 수월했다.
그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하 는 습관을 들인 덕에 무슨 옷을 입 어도 태가 잘 살아났다. 사진사도 실력파였다. 평소에 업무를 보았던 서재에 간단한 조명 몇 개만 추가 한 다음, i웍스 옆에 서서 찍었음에 도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유재원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타임지가 미국 은 물론 전 세계로 뿌려졌다. 화려 한 외모로 가득한 표지의 한켠에는 기계의 신①eus ex machina)이라 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과분한 칭호를 얻은 유재원은 비 슷한 시각, ID 테크놀로지 본사 깊 숙한 곳에 자리한 특수 시설을 방 문 중이었다.
하이테크 연구소만큼은 아니어도 삼엄한 보안 속에서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리 사 수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이 있 었고, 이들은 자랑스럽게 최근 완 성된 작품을 유재원에게 내밀었다.
손바닥보다는 작은 크기의 네모 나고 납작한 직사각형에 LCD화면 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물건이었 다.
"드디어 제대로 된 mp3 플레이 어가 완성되었군요."
"네, 보통의 플레이어와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녀석이지 요. 그냥 mp3 플레이어라고 부르 면 화가 날 만큼 말이지요. 이 녀 석의 이름을 i-DAP로 붙여봤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리사 수 박사가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mp3 플레이어라는 단순한 이름 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기능을 담았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그러면서 리사 수를 비롯한 연구원 들끼리는 i-DAP라는 이름으로 부 르고 있다고 했다.
i-DAP의 뜻을 풀어보자면 몇 년 전부터 ID 그룹이 밀고 있는 인텔 리전트라는 단어의 두에 디지털 오 디오 플레이어 (Digital Audio Player) 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 과 감성이 120% 풍기는 이름이었다.
"음, i-DAP라고요?"
되물어 보는 유재원은 호응이 덜 했다. 딱 봐도 복잡한 이름이라 귀 에 잘 꽂히는 게 없었던 탓이다. 문자 그대로 읽어 보면 아이댑, 혹 은 아이 디에이피이다. 어중간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개발팀이 이 이름을 고 수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치에서 재생할 수 있는 코덱은 mp3뿐만이 아니라 AAC를 비롯해 APE 같은 무손실 코덱까지도 지원 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mp3 플레이어라고 하 는 것보다는 DAP라고 해주는 게 더 좋다는 설명이다.
"그건 그렇긴 하죠."
유재원에게 아쉬운 대목이 여기 였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들면서 영상과 음원용 코덱도 자체 개발해 서 탑재했다. 그것도 무료로 풀었 다. CD음질 기준으로 mp3보다 용 량을 반이나 줄였다. 그런데 정작 사용자들에게 대중화된 건 이전과 똑같은 mp3 였다.
와레즈 같은 곳에 똑같은 노래로 AAC와 mp3 코덱 두 가지로 불법 앨범이 올라오면 사람들이 mp3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AAC가 밀린 이유에 대해 돈까 지 들여가며 알아본 결과, 선호도 의 차이가 생긴 근본 원인은 용량 때문이었다고 한다.
mp3가 두 배정도 크니까 mp3의 음질이 더 좋다고 지레짐작하고 mp3를 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 다. 게다가 광대역 인터넷의 보급 으로 용량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되 면서 다운로드에 시간이 좀 걸려도 큰 문제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사소한 문제점도 있었는데, CD에서 음원을 추출할 때 mp3 압축에 비해 AAC 압축 속도는 3배 정도가 느렸다.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압축 작업이 오래 걸린 것이다. 게다가 모바일 디바 이스에서 AAC 재생을 하면 배터 리 소모 속도도 20%정도 더 빨랐 다.
이러한 이유로 음질이나 압축률 에서 mp3보다 훨씬 앞선 AAC가 보급률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덕분에 디지털 음원 재생기의 이 름은 이번에도 mp3 플레이어가 되 었다.
"처음이라 좀 어색하실 수도 있어요. 하자만 아이팟처럼 여러 번 부르다 보면 DAP도 입에 잘 붙을 겁니다."
아이팟!
리사 수가 말한 아이팟은 DAP와 완전히 반대되는 이름이었다.
아이팟은 제품을 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귀에는 잘 꽂혔다. 아이팟이라고 한 번 들으 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 고, 실제 제품과도 매칭이 잘 됐다.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작 품이라 할만하다.
유재원이 PC 시장에서 승승장구 하는 동안에 애플 컴퓨터에서는 복 귀한 스티브 잡스의 주도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 이맥이라는 새로운 매킨토시가 나 왔고, 최근에는 mp3플레이어인 아 이팟이 출시되었다.
다만 스티브 잡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확연히 갈렸다.
원래부터 애플사를 좋아하는 팬 들은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다면서 열렬히 환영했고, 다른 이들은 달 라진 게 없다면서 혹평하길 주저하 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티브 잡스의 첫 번째 작품인 아이맥은 애플의 단점을 그대로 앉고 있으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물 건이었던 탓이다.
PC에는 이미 TG컴퓨터의 에그 시리즈로부터 시작된 디자인 혁명 이 있었다. 아이맥도 제법 디자인 적인 완성도는 높았는데, 에그 시 리즈의 아류라고 하는 평이 대다수 였다.
21세기 중반의 최신 감성으로 복 원했던 클래식 컴퓨터의 유려한 디 자인을 그대로 에그 시리즈에 적용 했으니, 아이맥과 뉴에그 시리즈의 차이는 디자인에 무심한 사람이라 도 바로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고급스러운 알루미늄 합금에 아크릴 파이프를 채용한 수 냉 시스템, LED 조명 장치까지 활 용했으니, 디자인과 성능의 조화는 에그 시리즈가 더 나갈 수 없을 만 큼 앞선 상태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애플은 본인들 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지켰다. 운영체제부터 시스템까지 완전히 폐쇄적인 컴퓨터 환경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나온 애플의 신제품 아이 팟도 이러한 애플의 정신이 고스란 히 담겨 있었다. 다양한 음원 코덱 중에 mp3 하나만 지원했고, 기기 에다가 음원을 넣고 빼는 것은 애 플 컴퓨터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이 용해야 했다.
PC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IBM호환 PC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덕분에 시중에 나온 mp3 플레이 어 중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완성 도를 자랑했던 아이팟의 점유율은 애플의 사용자 정도에 한정된 상태 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은 드디어 비장의 무기인 i-DAP를 완성한 것 이다.
"음, 제품명에 대해선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지능형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 라는 의미는 알겠는데, 아이팟처럼 꽂히진 않았다. 그렇기에 정식 출 시 전에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을 지 어야 할 것 같았다.
"홈, 저희들이 보기엔 DAP가 참 좋은데, 회장님의 예상이 틀린 적 은 없으니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래요. 이름은 나중에 더 생각 해보기로 하고, 이제 시범을 보여 주세요."
"예, 그럼 바로 시작하죠."
리사 수 박사는 곧장 i-DAP의 전원을 켜면서 프레젠테이션을 시 작했다.
"i-DAP에 전원을 켜고 끄는 것 은 전원 버튼을 5초간 누르는 것입 니다. 원터치로 전원이 켜지고 꺼 지면, 오작동이 일어나서 5초간 홀 드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5초간 전원 버튼을 누르 고 있자, 본체 앞면에 부착된 LCD 화면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마 스코트인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 했다.
로봇은 16비트 하이컬러로 화려했고, 부팅 중이라는 것을 온몸으 로 어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움 직임도 매우 부드러웠다.
아이팟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 로 이 디스플레이 장치였다.
ID 디스플레이라는 LCD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는 ID 테크놀로지 만의 장점이 여기에서 바로 이 지 점이었다.
미래를 보고서 세계에서 손에 꼽 을 만큼 일찍 LCD 사업을 시작한 곳이 ID 디스플레이였고, 기술 개 발에도 열심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용 대형 패널부터 모바일 디바이스 용까지 ID 그룹 내부에서 필요한 수량을 모두 대고도 남아 다른 회 사에 팔아주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LCD 디스플레이 시장의 팽창에 따라 공장도 확장했는데, 처음에 5 천 명으로 시작했던 고용 인원은 지금은 3배를 넘겼다.
IMF 외환위기로 대량 해고의 칼 바람이 몰아치는 한국이었지만, 대 전은 무풍지대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ID 디스플레이 공장 덕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전원 버튼은 스크린 온, 오프의 기능도 있습니다. 전원이 켜진 상 태에서는 원터치로 온오프를 시킬 수 있죠. 그리고 전원 버튼을 볼륨조절 버튼과 함께 누르면 초기화나, 관리용 모드로 들어갈 수 있는 기 능도 있습니다."
이것도 좋았다.
전원 버튼 하나로 여러 가지 기 능을 담아낸다는 아이디어는 단순 하면서도 떠올리긴 어려운 것이었 다. 게다가 버튼은 잔고장이 많이 생기는 부품인데, 이렇게 버튼 숫 자를 줄이면 고장률도 낮출 수 있 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물론 사용빈도가 높은 전원 버튼의 내구 성을 보강해야 할 테지만, 버튼을 추가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저렴 했다.
더욱 만족스러운 건 유재원이 이 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일일이 지 적하지 않아도 팀원들이 알아서 아 이디어를 도출했다는 점이다.
전원 버튼과 볼륨 조절용 +, -버튼 이렇게 3개가 DAP의 하드웨 어 조작 버튼의 전부였다. 그러면 플레이어의 핵심인 음원 재생은 어 떻게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