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51화 (451/1,007)

23권 10화

엠마는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 에서 풀었다. 한국과는 반대다. 그 러자 웬 검은 돌덩이부터 야광 도 깨비방망이, 한라산 모형, 미미 인 형까지 다양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엠마가 사랑 하는 미미 인형은 선물 중에 기본 값이었고, 나머지 물품은 제주도 기념품이었기 때문이다. 야광 도깨 비방망이가 어째서 제주도의 기념 품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이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장난감이 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건 돌하르방이라는 건데, 무 서운 꿈을 꾸는 걸 막아줄 거야."

검은 돌덩이는 돌하르방으로, 중 국산이 아닌 제주도 장인이 직접 만든 수제 물건이었다. 실제 돌하 르방은 귀신을 막고 복을 부르는 부적의 역할도 하니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와!"

제일 좋아하는 미미 인형을 옆구 리에 낀 엠마는 돌하르방을 비롯해 이국적인 물건들에 대해 강한 호기 심을 보였다. 역시 아이는 아이라 서 돌하르방 보다는 도깨비방망이 를 더 좋아했고 유재원은 자연스럽 게 밀려났다.

레밍턴과 섀넌을 위한 선물도 가 져왔다. 제주도 특산물인 한라봉이 다. 일본에서 가져온 품종이긴 해 도 네이밍을 잘해서 마치 한국산인 것처럼 보이는 귤이었다. 생물인지 라 검역을 따로 받아야 했지만, 대 신해줄 사람이 많은 유재원에겐 그 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렌지에 꼭지가 좀 부풀어 오 른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귤이라고 요?"

한라봉 중에서도 제일 상등품만 골라서 가져왔다.

레밍턴이나 섀넌이라면 유재원이 뭘 선물해도 다 좋아할 테지만, 신 기한 모양에 맛도 좋은 과일은 어 디서든 좋은 선물이었기에 반응이 더욱 좋았다.

잠시 후, 섀넌이 저녁을 준비하 는 동안 유재원과 레밍턴은 테라스 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재원이 먼저 북한부터 백악관까지의 일을 대부분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만에 하나 유재원 본인이 부재중인 상황 이 일어나더라도 레밍턴을 통해 안 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비즈니스적인 마인드 말고 도, 레밍턴이라면 속마음을 터놓고 말 할 수 있는 극소수의 존재였다.

"역시, 보스 답네요. 신냉전이라 니. 본격적으로 거창하군요."

레밍턴은 냉전이 본격화할 때쯤 태어난 사림이었고, 그 끝도 확실 히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 게 중국이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과 신냉전을 펼칠 거라는 유재원의 말 에 좀처럼 실감이 나진 않았다. 하 지만 유재원이 그렇다고 하니 레밍 턴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음, 그런데 원래 보스의 타깃은 일본 아니었습니까? 빈센트 사장님 도 일본에 가 있고요. 그런데 정작 클린턴에겐 일본에 대해선 말하지 않으셨네요."

역시 레밍턴이다.

백악관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일본이 빠진 것에 대해 의문을 제 기했다.

"음, 제가 클린턴 대통령과 친분 이 좀 있다지만, 그걸로 미국와 일 본의 전통적 우호 관계까지 넘볼 수는 없잖아요."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적극적인 친미 국가가 되었고, 미 국의 동아시아 전략도 일본을 중심 으로 펼쳐졌다. 그렇게 지낸 지 50 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공고해진 관계를 겨우 클린턴 대통령과의 친 분 하나로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일본 공략은 전적으로 유재원 본 인의 능력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 도, 해보려고요."

"아."

레밍턴은 유재원의 비장한 말에 뭔가 떠오른 모양이다.

"이게 그 동양의 겸손이라는 거 군요."

응? 갑자기 겸손이라니.

"보스에게 불가능한 미션이라는게 있습니까? 이제까지 했던 일들 을 또 말하는 건 입이 아플 정도지 만, 당장 며칠 전엔 텍사스에서 유 전을 터트리지 않았나요? 보스가 일본을 공략하기로 했다면, 틀림없 이 이뤄질 겁니다."

레밍턴이 파이팅 하며 기합을 확 밀어 넣었다.

이거 아무래도 개인에 대한 신뢰 가 믿음으로까지 확대된 게 틀림없 다. 부담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가 장 큰 응원이기도 했다.

레밍턴의 응원에 유재원은 마음 속 한구석에 남았던 작은 불안감을 떨쳤다. 남들이 보기에 일본 공략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전력으로 해보기로 했다.

바로 지금이다.

#378 후지산, 무너지다.

일본 공략의 시작이라는 게 뭔가 거창한 건 아니었다.

일본에 있는 빈센트 그린힐에게 시작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 내는 게 전부였다. 이미 단기의 계 획 정도는 다 세워져 있었고, 유재 원의 결심만 남았었다는 의미였다. 관건은 언제 시작할지 타이밍을 잡 는 것이었는데, 레밍턴의 응원에 용기 100배가 되어 바로 질러버렸 다.

"그나저나, 넥스트 뮤직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이미 질러버렸기 때문일까.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된 유재원은 타임워너 컴캐스트의 현안이 자연 스럽게 떠올랐다.

"우리 쪽 라인은 거의 작업이 끝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외부 음반사들입니다. 특히 메탈리 카 같은 초대형 아티스트들의 mp3 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쁩니다."

메탈리카.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미국 마초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 여주는 양반들이라고 할까. 엔터샌드맨 같은 명곡은 락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유재원도 몇 번은 들어봤던 곡이었다. 이런 메탈리카 는 mp3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했 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냅스터라는 게 아주 골치더군요. 우리 넥스트 뮤직 서비스와 거의 겹치는데, 무 료이니 말입니다. 가뜩이나 업계 사람들에게 인터넷의 인식이 나쁜 데, 이제는 최악으로 떨어졌습니 다."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냅스터라는 건 p2p방식의 mp3

공유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이 프 로그램이 1999년쯤에 나오는 것인 데, 1년 일찍 세상에 모습을 드러 냈다는 점이다. p2p라는 건 이미 생겨난 개념이었고, 냅스터는 거기 에 mp3를 공유한다는 개념을 끼얹 은 것뿐이니 1년 일찍 나왔다고 해 서 뭔가 큰 사고가 난 건 아니다.

다만 음악 업계에 mp3의 나쁜 점을 부각시키고 선입견을 만들고 있다는 게 넥스트 뮤직 사업에 어 려움을 가중시키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치만 넵스터 방식은 불법이죠. 우린 완벽히 합법이고 요."

냅스터는 완벽한 p2p는 아니다.

중계 서버에 사용자들이 가진 mp3 목록을 저장해놨다가, 사용자 들이 검색하면 그 리스트를 바탕으 로 파일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해 주는 것이다. 서버만 사용 중지시 키면 냅스터의 서비스는 무력화시 킬 수 있다.

"음, 그러면 내가 총대를 메고 냅스터를 고소하죠."

원래 냅스터는 미국 음반 협회, 메탈리카, 닥터 드레 등에게 거액 의 배상금이 걸린 소송 끝에 법원 에서 서비스 정지 명령이 떨어졌다.

그게 2001년쯤으로 혜성처럼 나타 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냅스터라는 이름은 계 속 남아서 끝까지 그 명맥을 지켰 다. 그만큼 음악 시장에 가한 임팩 트가 굉장했다는 것이다.

"예? 워너 뮤직이 아니라 보스 단독으로 말입니까? 그러면 보스 이미지가 좀 나빠질 텐데요."

"괜찮아요. 악명 좀 쌓인다고 죽 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음악 을 무단으로 다운 받는 게 아티스 트의 팬이라고 할 수 있나요? 팬이 라면 최소한 앨범은 사줘야 하잖아 요. 그걸 강조하는 거죠."

냅스터와의 소송전으로 악명이 쌓인다 하더라도 유재원은 얼마든 감당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한국은 이미 넥스트 뮤직이 팬덤 문화의 하나로 정착된 거 같더군요."

레밍턴이 넥스트 뮤직의 글로벌 런칭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참고 한 것이 한국의 경우였다. 한국에 서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팬덤과 넥스트 뮤직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결합된 상태였다. 넥스트 뮤직에서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수치가 곧 음악 방송 순 위와 직결된다는 걸 각 팬덤에서 인지했고, 덕분에 새로운 앨범이 뜨면 화력을 집중해 스트리밍과 다 운로드를 폭발시키는 게 요즘 한국 의 팬덤 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았 다.

21세기 초에나 나올 모습이 98 년도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넥스트 컴이 팬덤 문화를 이끄는 성지였기 때문이다.

넥스트컴이 PC 통신 서비스를 하던 때부터 동호회 문화는 있었다. 인터넷 웹 서비스로 바뀐 다음에도 동호회는 더더욱 강화되었다. 그러 면서 가수들의 팬 사이트도 넥스트 컴의 지원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팬덤 문화를 주도하 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 넥스트 뮤직 차트가 아이돌 판이 되었다는 비판이 음악 평론가로부터 종종 나오고 있었지 만, 미래를 좌우할 10대와 20대를 잡았다는 이야기였기에 유재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아티스트들의 처우는 전 생보다 훨씬 좋아졌다.

넥스트 뮤직의 7 : 3 분배 비율, 그리고 저작권 관리 시스템을 통해 파생된 서비스에서도 확실히 정산 이 이뤄지게 되었다. 또한, 연예 기 획사들에 표준 계약서가 강제되면서 노예 계약 문제도 거의 사라졌 다.

앨범을 100만 장 팔았는데, 정작 가수에겐 전체 수익의 1%도 가지 않던 건 이제 옛말이 되었다. 덕분 에 시대의 변화를 함께하지 못한 양반들 사이에서는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느니 하는 소리도 나오는 중이었다.

외환위기로 다들 어려운데, 가수 들의 화려한 삶이 비춰지면서 상대 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된 모양이다.

헛소리는 깔끔하게 무시하면 그 만이다.

"그래도 7월 초에는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라이브러리 1천만 곡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음악 에, 제3세계 음악, 클래식 등등 그 야말로 모을 수 있는 곡들은 죄다 모아서 만드는 숫자지만 말입니다."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출은 대부분 최신곡에서 나올 테지만, 1천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도 대단했다. 음악 스트리밍, 그리고 다운로드하면 곧장 넥스트 뮤직이라는 이름이 떠오르게 만든 다면, 100년을 먹고살 텃밭 하나를 다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 그리고 소니 뮤직 측에서 재미있는 제안이 왔습니다."

소니?

일본의 대기업 소니와 ID 그룹의 관계는 좋다가도 좋지 않았다.

문어발 확장으로 금융부터 엔터 테인먼트 분야까지 무제한 확장을 펼치고 있는 소니와 ID 그룹 사이 에 겹치는 사업들이 많았기 때문이 다.

비디오게임 분야에서만 협력이 있었고, 음반과 영화부터 금융까지 다른 분야에선 극한의 경쟁 중인 회사이기도 했다. 덕분에 소니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만들 때 운 영체제를 바꿀 거라는 이야기도 나 오고 있었다.

요즘 뜨는 리눅스를 채용해서 ID 그룹의 영향력을 완전히 탈피하겠 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운영체제가 PC 와 같은 안드로이드라서 플레이스 테이션의 많은 서드 파티들이 플레 이스테이션으로 낸 게임을 몇 달 후 PC용으로도 발매했던 탓이다.

아직도 불법 복제가 많은 PC 환 경이었으니 발매 후 몇 달만 지나 면 매출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유 재원은 이런 인식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불법 복제는 PC만 있는 게 아니 었다.

플레이스테이션 CD 자체의 복제 도 많았다. 무슨 모드칩을 꽂는 개 조도 필요 없었고, CD를 복제하는 기계로 복제하면 끝이었다. 이걸 PC 탓만 하는 소니의 경영진의 판 단력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리 고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으로 플레 이스테이션의 운영체제를 리눅스로 바꾸겠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인 쿠타라니 켄과도 좀 소원해졌다. 예전엔 ID톡도 자주 주고받았지만, 언제부턴가 끊겼다.

하여튼 소니의 차세대 플레이스 테이션에 대한 유재원의 대응책은 간단했다. 만약 소니가 플레이스테 이션2의 운영체제를 리눅스로 간다 면, 비디오게임기 시장에 직접 진 출한다는 것이다. MS의 과거 행보 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는데, 비디 오게임기도 중요한 아이템이니 일 찍 시작하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이렇게 멀어져 가던 소니 뮤직에 서 제안이 왔다니 귀가 솔깃해지는 유재원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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