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55화 (455/1,007)

23권 14화

유재원 다음으로 ID 인베스트먼 트에 투자금을 장기 예치한 사람이 바로 클린턴 부부였다. 그렇다고 별도의 계좌로 특별 관리를 한 건 아니고, 일반 투자 상품에 다른 일 반 투자자들의 자금과 몽땅 합쳐져 운용되었지만, 그 투자 상품이 바 로 나스닥의 IT 섹터에 대한 투자 였다. 클린턴 부부가 투자 현황에 대해 물을 때마다 빈센트 사장이 설명했고, 그 인연은 여전히 이어 지고 있는 상태였다.

"알겠어요. 그러면 빈센트 사장 님 말대로 하죠. 대신 주변에 경호 도 좀 더 늘리고, 보안에도 신경을 쓰세요."

-예, 회장님. 아, 그리고 섹터A 전량 매도를 통해 실현된 수익에 대해 정리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 니다.

곧이어 파일이 왔고 그것으로 빈 센트 그린힐과의 ID톡은 종료되었 다.

유재원은 파일을 열어보는 대신, 곧장 경호팀에 메시지를 보내서 빈 센트 사장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라 고 지시했다. 수익금은 다시 일본 공략에 쓰이기 때문에, 지금 확인 해봐야 총알이 좀 늘었구나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더욱이 빈센트 그린힐이라면 중 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유재원에 겐 알겠다고 말하고서는 강화조치 에 대해 소극적일 게 분명했다. 그 러니 아예 유재원이 직접 강화 조 치를 먼저 지시한 것이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일주일이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 만, 하루하루가 급한 사람들에게는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일성 전자 사람들이 그랬다.

1차 부도가 났고, 유예 시간이 딱 일주일 주어졌다. 그 안에 20억 달러를 만들어서 만기된 채권을 상 환하면 살아나는 것이고, 아니면 부도 처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이 많았다.

-일성 전자, 부도 확정!

결과는 텔레비전 뉴스 첫 꼭지로 대문짝만하게 속보가 나온 것처럼, 부도 확정이었다. 일성 전자는 아 무리 뛰고 날아봐야 지금 20억 달 러를 급히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 그룹 차원에서 그 돈을 마 련해야 하는데, 일성 그룹의 지원 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일성 전자가 망하게 그냥 둔 거 같네?"

뉴스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던 이 야기까지 다 알고 있는 유재원이니 망하게 뒀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엄청 나게 유망한 분야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영식이가 바로 되물었다.

영식이가 유재원 옆에 있는 건, 이젠 일상이 된 모습이다. 유재원 을 따라 스탠퍼드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영식이는 학과 공부와 함께 주말에는 ID 테크노롤지의 인턴 일 을 하고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 공부량은 살인적이기로 유명하 다. 학업과 인턴을 동시에 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인데, 영식이에겐 큰 무리가 없었다.

유재원이 점찍은 컴퓨터 영재였 던 영식이에게 컴퓨터공학 수업은 큰 부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 수님들이 리포트 과제를 쏟아낼 때 만 좀 힘든 정도였고, 대학교 수업 은 영식이가 충분히 따라가는 중이었다.

지금 유재원이 영식이와 두런두 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ID 테크 놀로지 본사의 지하에 만들어진 데 이터 센터였다.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면 코요테 시티의 첫 번째 데이터 센터가 있 지만, 그곳은 상업용 시설로 대중 에게 공개되어 있는 곳인 반면, ID 테크놀로지 본사 지하에 있는 이곳 데이터센터는 연구 목적으로 만들 어진 비밀 시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설의 규모가 코 요테 시티의 첫 번째 데이터 센터 에 밀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시스템 성능으로만 봤을 때는 이곳이 더 컸다.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연 결된 컴퓨터 대수는 25,600대로 코 요테 시티의 두 배였다. 더욱이 코 요테 시티의 데이터 센터는 이제 구형이 된 CPU인 반면에 이곳에 있는 것은 작동 속도가 1GHz나 되 는 모델이었다. 게다가 인텔의 서 버용 CPU인 제온이 탑재된 터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클라우드 시스템이었다.

유재원은 그런 클라우드 시스템 에 올릴 모종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었고, 영식이도 이걸 돕고 있 는 게 지금의 모습이었다.

"물론 유망하지.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잖아."

메모리칩 가격은 폭락했다.

작년부터 떨어지던 메모리 가격 은 이제 거의 바닥을 뚫을 기세였 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 전자와 미 래 전자로부터 의도치 않은 치킨 게임이 촉발된 탓이었다. 현재 메 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는 한 국, 미국, 일본 이렇게 3국에 있었 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외화가 급하게 필요해진 일성과 미 래는 메모리칩을 대량으로 양산하면서 달러를 충당하려고 했다.

적당한 생산량으로 적당한 마진 을 보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의 업 체가 메모리를 대량으로 양산하자 미국과 일본도 뒤따르기 시작했다.

치킨 게임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메모리 칩 단가는 내려갔고, 지금은 생산 원가에 거의 근접한 상태였다. 이 제는 누가 인건비를 절약하는지, 누가 한 단계 더 높은 고밀도 메모 리칩을 양산하는지에 성패가 달렸 다.

그러자 좋아진 건 컴퓨터 사용자 들이었다. 예전엔 꿈도 꾸기 힘들 었던 용량을 저렴한 가격에 증설할 수 있었다. 완제품 컴퓨터 업체들 도 메모리칩 공급 단가가 내려가면 서 컴퓨터의 가격에도 경쟁력이 생 겼다.

그렇지만 컴퓨터의 판매량이 증 가한다는 신호는 아니었다. 이미 고성능 PC의 보급은 작동 속도 1GHz 달성으로 거의 끝나가는 시 점이었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기술적인 혁신은 아직인 상태였으 니 메모리 가격이 내려간다고 해서 컴퓨터가 많이 팔리진 않았다.

그나마 미래 전자는 다른 메모리회사들보다는 조금 다른 처지였다. 이곳은 숨통이 트일 구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플래시 메모리칩이 었다.

전 세계에 디지털 휴대폰의 보급 이 시작되었고, 디지털 모바일 디 바이스도 점차 늘어나는 중이었다. mp3 플레이어라는 건 이제 익숙한 아이템이 되었고, 대형 업체들도 속속 제조에 뛰어 들고 있었다.

여기에 ID 그룹도 곧 넥스트뮤직 출범과 함께 DAP라는 만능 플레이 어를 내놓을 준비를 끝마쳤다.

덕분에 플래시 메모리칩의 수요 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었는데, 플래시 메모리칩의 양산 체제를 갖 춘 곳은 도시바와 미래 전자뿐이었 다. 심지어 도시바도 대규모 양산 시설은 만들지 않아서 미래 전자가 혼자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반면 일성 전자는 반도체 분야가 황금을 낳던 거위에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치킨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 손해를 보고 메모리칩을 팔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럴 여력 이 없었다.

"헉! 그럼 일성 전자가 망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네가 빌려준 20 억 달러를 날리는 거야?"

유재원의 설명에 영식이가 깜짝놀랐다.

"채권이라 바로 종이 쪼가리로 변하는 건 아니냐. 공장이나 물건 으로라도 20억 달러치를 뜯어오면 돼! 명색이 일성 전자인데, 부동산 이 정도는 있겠지. 나머지는 더 조 사해 보고 상태가 괜찮으면 백호 펀드로 인수하고."

"아. 빨간 딱지 붙인다는 거지? 그나마 다행이네."

영식이는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 정이었다. 20억 달러라는 액수에 대해 제대로 실감은 못했지만, 친 구인 유재원의 아까운 돈이 종이 쪼가리로 변하진 않았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모양이다.

다만 영식이 말대로 당장 일성전 자 공장이나 본사에 빨간 딱지를 붙일 단계는 아니었다. 채권단들이 모여 부도 처리 절차로 돌입할 것 이다. 물론 사정 정지 작업은 이미 끝났으니 채권단 회의는 최강욱이 이끌 것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 해진 건 여기까지지만, 거기서 나 올 결론도 유재원의 이익이 극대화 되는 방안이라는 건 확실하다.

"난 다했는데. 너는 다했어?"

"응? 벌써?"

유재원의 이어진 물음에 영식이가 허둥댔다.

할 말을 다하면서 키보드에서 손 을 떼지 않았던 유재원에 비해 영 식이의 멀티테스킹 실력은 아직 부 족했다. 유재원과 대화를 할 때마 다 작업이 일시 종료가 되었기에, 아직 상당한 양이 남아 있었다.

"아직이야? 그럼 나 먼저 실행한 다."

"잠깐만 기다려줘!"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영식이는 다급히 말했다.

둘이서 프로그래밍 중이었던 건 검색 로봇이었다. 검색 엔진이 운영하는 웹 크롤러라고도 할 수 있 는데, 성격은 조금 다르다. 웹 크롤 러는 검색 엔진의 인덱싱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방문한 모 든 페이지의 복사본을 생성하는 게 기본 작동 방식이었다.

지금 유재원과 영식이가 만드는 검색 로봇은 원하는 키워드를 넣으 면 해당 키워드가 있는 웹사이트만 찾아주는 방식이었다. 인덱싱을 끝 내고서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키워 드 검색을 하는 검색 엔진의 작동 법을 뒤집은 것이다.

크게 보면 인터넷 전체를 실시간 으로 검색하는 것이니, 생생한 데이터를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방 대한 인터넷을 빠르게 검색하는 게 불가능해서 웹 크롤러 방식의 검색 엔진이 나왔다.

유재원도 그 한계에 대해 잘 알 고 있지만, 다른 업체들과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인터 넷의 시작과 함께 운영 중이었던 자연어 기계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프로그 램과 검색 로봇이 결합되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건 유재원 은 익히 알고 있었다.

완성만 되면 원하는 내용을 인터 넷서 즉각 검색할 수 있게 된다.

검색 엔진에서 제공하는 검색 결과 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말이다.

다만 영식이와 검색 로봇을 같이 만들다가 실제 구현 단계에서 몇 가지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유재 원은 영식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 았다. 대신 각자의 방식대로 검색 로봇을 만들어서 누구의 것이 더 우수한지 내기를 하기로 했다.

"재원아! 나도 됐어!"

유재원이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영식이도 세팅을 끝낸 모양이다.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하자."

"응? 그래도 뭘 검색할지 설정은 해야지."

마음이 급한 유재원이 빼먹은 키 워드를 영식이가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면 지역 설정은 일본으로 하고, 검색어로 아베를 넣어."

"했어!"

"자, 그러면 셋에 엔터 눌러. 하 나둘, 셋!"

유재원의 외침에 영식이도 엔터 키를 눌렀다. 그러자 유재원과 영 식이가 다루던 두 개의 모니터 화 면에 URL을 비롯해 일본 글자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검색이 제대 로 되고 있다는 표시었다.

일본에서 아베를 검색하는 이유 는 간단했다.

고베 강철 품질 조작 스캔들에 아베가 연관되었다는 폭로 기사가 뜬 이후 여론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평범한 이 들은 화를 내기도 했고, 부끄러워 했다. 반면 아베는 자신의 가담 사 실을 부인하기에 바빴다. 그러는 사이 고베 강철이 생산한 제품들의 성능 분석 결과가 나오는데, 역시 나 기준 미달이 속출했다. 이런 기 사가 뜰 때마다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제 아베를 완전히 보내버릴 타 이밍을 봐야 할 때였다. 그러니 인터넷의 반응 정도를 보고 분노가 최대치로 끌어오를 때, 완벽한 후 속타를 터트린다는 계획이었고, 유 재원은 그 타이밍을 잡는데 방금 완성한 검색 로봇의 결과를 참고하 려는 것이다.

검색 완료 시간은 영식이의 검색 로봇이나 유재원의 것이나 무려 8 시간이 넘었다.

"오래 걸리네."

"그래도 미국보단 낫지. 일본은 미국의 1/10도 안 되잖아."

"응, 그건 그래!"

일본의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는 다 뒤져보는 것이니, 빅데이터 검 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21세 기의 것과는 달리 매우 원시적이지 만 현재의 시스템으로 빅데이터 검 색을 하는 것도 감지덕지한 일이었 다.

"그러면 이제 게임이나 할까?"

시간을 순식간에 삭제하는 데엔 게임만 한 게 없다. 유재원은 스타 크래프트를 띄워서 영식이와 유즈 맵을 시작했다. 1 : 1 대전은 이제 너무 질렸고, 함께 협동 미션을 하 는 쪽으로 취향이 바뀌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띵띵!

"끝났나?"

작은 알람 소리가 났다. 햄버거 를 먹으며 게임에 열중하던 영식이 는 검색 결과가 나온 줄 알고 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건 아니었다. 알람은 유재원의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는 소리였다.

화면에 뜬 발신인의 이름은 최강 욱 부회장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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