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65화 (465/1,007)

23권 24화

유재원은 이렇게 만들어진 CG 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영화에서 발 견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어비스라는 영화 이후로 CG에 대한 활용이 크게 늘 어나는 중이었다. 최근에 그 정점 을 찍은 게 터미네이터 2와 타이타 닉이라는 영화였다. 터미네이터 2 에서는 액체 금속 로봇으로 비주얼 쇼크를 보여주었고, 타이타닉에서는 CG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 연스러운 활용법을 선보였다.

어쩌다 보니 언급된 영화가 모두 제임스 카메룬이라는 감독의 영화 들이지만, 다른 감독들도 CG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유재원은 ID 엔터테인먼트의 CG 팀이 할리우드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봤다. 그래 서 레밍턴에게 사내 쇼케이스를 좀 해보라고 부탁했고, 조금 전 돌아 온 말이 그에 대한 대답이었다.

타임워너넥스트컴에도 워너 브라 더스라는 할리우드의 대표 영화 배 급사가 있다. 그렇기에 ID 그룹의 첨단 CG 팀과 미디어 업계의 최고 인 워너 브라더스가 힘을 합치면, 타임워너넥스트컴에 대한 의문스러 운 시선을 가진 투자자들이라도 인 정할 수밖에 없는 시너지 효과가 생겨날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레밍턴의 말대로 기존의 이름난 영화감독은 자신만의 제작 방식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CG에 거부감을 보이는 감독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자본의 힘으로 억지로 밀어붙이면 쓰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억지로 쓰게 한다고 해 서 엣지 있는 신이 나올 리는 만무 하다. 그러니 CG에도 선입견이 없 는 신인 감독을 쓰자는 이야기였다.

"매트릭스는 어때요?"

-형제가 메가폰을 잡았다고 해서 좀 의문이었는데, 별 탈 없이 순항중입니다. 중요한 촬영은 모두 끝 났고 이제 후반 작업에 돌입했습니 다. 슬쩍 가서 봤는데 기대 이상이 기도 했고요. 추가 제작비 지원 같 은 건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CG 활용에도 적극적이고요. 물론 최 종적으로 나올 결과물이 제일 중요 하겠지만 말입니다.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SF영화 역 사에 한 획을 크게 그은 작품이었 다.

특히나 1999년에 나와서 세기말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디스토피 아적인 세계관에 매트릭스라는 가 상 세계, 사이버펑크적인 비주얼, 게다가 장자와 같은 동양적 사상까 지도 조화롭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덕분에 21세기가 되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흘러도 유재원처럼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레밍턴이 감독들을 형제 라고 칭하니 살짝 어색한 느낌이 오는 유재원이다. 지금은 형제인데, 나중엔 남매로 바뀌는 탓이다. 유 재원 역시 형제보다 남매라는 말이 더 익숙한 상태였다.

하여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니 다행이다. 덕분에 기대감도 한 층 커졌다. 영화를 위한 컴퓨터 그 래픽이 한층 더 발전했으니, 이번에 나올 매트릭스는 이전보다 비주 얼적인 완성도가 훨씬 올라갈 것 아니겠는가.

레밍턴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타임워너의 VOD도 완성했고, 넥스트뮤직도 모든 작업이 끝났습 니다.

역시 레밍턴이다.

유재원이 각별하게 공을 들였던 두 가지 프로젝트도 연기되는 것 없이 깔끔하게 끝냈다는 보고였다.

"반가운 말씀이네요."

-보스의 지시대로 별도의 프로그 램 없이 그냥 W3C의 HTML 표준을 따르는 웹브라우저로 접속만 하 면 바로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 습니다.

레밍턴은 그렇게 말하면서 ID톡 으로 개발자 모드로 접속할 수 있 는 아이디와 주소를 전송했다. 유 재원은 곧바로 레밍턴이 보내준 링 크를 타고 접속해서 아이디와 패스 워드를 입력했다. 그러자 세련된 형태의 웹페이지 하나가 나타났다.

상단에는 요즘 TBS에서 인기리 에 방송되는 쇼프로그램이 큼지막 하게 걸려 있고,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최신 회차의 방송이 웹페이지 상태에서 플레이된다. 화질은 DVD 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아날로그 방송으 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많으 니, 이 화질도 혁명적인 수준일 것 이다.

다시 초기 화면으로 나와서 스크 롤을 해보면, TV와 영화로 탭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걸 클릭해보면 세분화된 장르들이 나온다.

21세기의 웹사이트처럼 사용자의 취향을 알아서 검색해 흥미를 끌만 한 걸 먼저 보여주는 식은 아니지 만, 제목을 몰라도 원하는 콘텐츠 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져 있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검색할 수 있는 검색바도 빠지지 않았 다.

넥스트뮤직 역시나 VOD와 비슷 한 구성이다. 단지 콘텐츠가 음반 이라는 것만 차이가 있다. 무엇보 다 중요한 건 이러한 콘텐츠를 별 도의 설치 프로그램 없이 웹브라우 저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 VOD 시스템이나 음원 서비스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플레 이어 같은 걸 만들어서 서비스했다.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 닫힌 플랫 폼을 만들어서 돈이 되는 이용자들 을 묶어두려는 심산이었다. 다른 이유라면 기술력이 부족해서 웹브라우저만으로는 유저들이 원하는 기능을 만들 수 없었던 탓도 있었 다.

ID 그룹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 기였다.

1998년에도 VOD 서비스와 음 원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해 낼 수 있는 게 ID 그룹의 기술력이었고, 이를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해 낼 만큼 강력한 자본력까지도 있었 다.

"아우, 좋네요. 그래도 계속 테스 트해 봐요. 특히 대량의 접속자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는 꼭 체크하고요."

클라우드 서버는 여력이 되는 만 큼 늘려나가는 중이었다. 이와 함 께 캐시 서버도 미국과 한국 유럽 등에 열심히 설치했다. 미국서 VOD가 성공하면 한국은 물론 유 럽에까지도 서비스하기 위함이었다.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 려면 인터넷 대역폭이 확보가 되어 야 하는데, 어디서 병목 현상이 발 생할지는 직접 테스트해보기 전에 는 쉽게 알 수가 없었다.

-물론입니다.

유재원의 지시에 레밍턴은 곧장 대답했다.

-그러면, 나중에 또…….

이를 마지막으로 용무는 모두 끝 났으니 레밍턴은 슬슬 대화를 마무 리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하지만 유재원에겐 남은 아이템 이 하나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 올 때 떠올린 아 이디어인데요. 조만간 3번째 챌린 지 시리즈를 열 생각인데요."

-챌린지요? 예전에 했던 시큐리 티 챌린지 말씀입니까?

"네! 근데, 이번엔 종목이 완전히 달라요. 보안분야가 아니라 소설, 만화, 웹툰으로 열거니까요. 이른바 문학용 밀리언 달러 챌린지라는 거 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좋은 이야기가 필수다.

감독의 역량에 따라서는 클리셰 로 가득한 원작을 가지고 맛깔나는 영화도 만들 수 있지만, 그런 감독 이 많은 건 아니다. 대신 좋은 이 야기가 있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확률은 좀 더 높아진다.

유재원의 계획은 재미있고, 매력 적인 이야기를 담긴 소설, 만화, 웹 툰을 공모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상금은 작품 당 100만 달러. 밀 리언 달러 챌린지라는 이름에 어울 리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상금만 주고 마는 게 아니다. 넥스트컴 연 재와 출판은 기본이다. 대중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면 영화화나 드라 마화, 심지어 애니메이션화까지도 추진할 계획이다.

-기간을 두고 각 카테고리 별로 한 개만 고르시는 건가요?

"아뇨!"

가장 중요한 건 선정 기간과 선 정 작품의 숫자인데, 유재원은 100 개를 보고 있다. 그러니까 소설이든 만화든, 웹툰이든 항목 별로 몇 개를 뽑아야겠다는 계획은 없다. 대신 다 합쳐서 100개가 누적되면 챌린지를 종료한다는 이야기다.

-휘유! 이 정도면 웬만한 작가들 눈에 불이 확 켜지겠군요! 당분간 좋은 작품들은 우리가 싹쓸이하겠 습니다.

"예, 당연히 그래야죠!"

유재원은 밀리언 달러 챌린지를 일회성으로 끝낼 생각이 조금도 없 었다. ID 그룹으로 IT판을 싹쓸이 한다면, 타임워너넥스트컴으로는 문 화와 미디어를 싹쓸이하겠다는 포 부가 담긴 계획이었다.

-밀리언 달러 챌린지!

-타임워너넥스트컴에서 wo 만 달러짜리 이야기를 찾는다!

-영화 시나리오에서부터 웹툰까 지, 오리지널 스토리라면 모두 응 모 가능!

-작가들이 새로운 등용문 될까?

레밍턴의 화상 미팅이 있은 지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타임워너넥스트컴의 이름으로 밀 리언 달러 챌린지의 개최를 공식적 으로 알렸다. 홈페이지의 공지는 물론이고, 타임워너의 텔레비전 네 트워크는 물론, 각종 기사를 통해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밀리언 달러 챌린지라니 얼마나 섹시한 제목이란 말인가.

타임 워너 넥스트컴이나 ID 그룹과 의 우호관계가 있지 않은 미디어라 고 해도 이 소식을 모두 실어 주었 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총상금이 1 억 달러다.

한 개의 작품만 100만 달러로 뽑는 게 아니라, 100개의 이야기를 뽑는 것이니 작가들의 가슴이 두근 거릴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런 일에 1억 달러나 쓰는 유재원을 보며 보통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 던 탓이다. 북미의 도서 출판 시장 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는 해도, 100만 달러짜리 작품을 100개나 뽑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나 ID 그룹의 식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좀 있었다.

만약 레밍턴도 유재원이 일본에 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걸 몰랐다면 반대의 의견을 냈을 만큼, 큰일이 었다.

"해리 포터 같은 대박이 하나만 걸려도 남는 장사지."

반면 유재원은 자신만만했다.

21세기는 영상의 시대다. 영상으 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 하나면 1억 달러라는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

아니다. 이미 뽑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말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이 야기인 마법사의 돌은 전생과 똑같 이 작년 6월에 영국에서 출간했다. 열렬한 팬인 유재원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먼저 달려가서 계 약하자고 조르지는 않았다.

원작자인 조앤 롤링은 아직 책 전체를 완결 지은 것이 아니었고, 계속 써나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 이다. 유재원의 존재 자체가 변수 를 마구 만들어내는 사람인 만큼, 먼저 만났다가 원작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유재원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영 화화될 때, 투자자로서 참가하는 것으로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살짝 더 적극적이었다. 바로 타임워너를 합병했기 때문이다. 타임워너 산하 의 워너브러더스에서 해리 포터의 영화화를 진행했다. 다만 전속 계 약을 맺는 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 마법사의 돌이 미국에도 출간되고 나서부터다.

미국의 아이들도 뜨거운 인기를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계약 을 추진했다. 당연히 워너브러더스 처럼 가능성을 확인한 영화 업체는 한둘이 아니어서 경쟁이 치열해졌 고, 가격도 상승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재원은 밀리언 달러 챌린지를 추진하면서, 미국에는 아직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출간되지 않 았다는 걸 확인했다.

미국에 출간되는 날짜는 9월 1일 로, 아직 한 달 하고도 몇 주의 여 유가 있었다. 물론 이미 미국의 출 판사와는 계약을 한 상태다. 하지 만 아직 흥행에는 반신반의한 상태 였고, 마케팅도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았다.

"이럴 때, 얼른 주워 담아야지!"

어차피 유재원이 개입하지 않아 도 워너브러더스와 영화화 계약을 할 테지만, 유재원은 직접 레밍턴 을 움직여 빨리 계약하도록 했다.

먼저 움직여서 경쟁을 피해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그 반대였다. 상당한 계약금은 물 론, 러닝개런티를 약속할 생각이니 원작자는 이전에 정산 받았던 것보 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계약금을 100만 달러에 사 인해준다면, 해리 포터를 밀리언 달러 챌린지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할 작정이다.

밀리언 달러 챌린지의 첫 번째 선정작이 해리 포터로 발표된다면 이번 챌린지의 경향도 확실히 알릴 수 있으니, 유재원의 수고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수고라는 건 바로 쏟아지는 챌린 지에 지원한 이들의 원고를 검토해 보는 일이었다. 첫 번째 선정작이 해리 포터라는 걸 듣고서 자기는 이번 챌린지와 맞지 않다고 지레짐 작하고 돌아설 작가들도 많을 것이 다.

순수문학도 완성도가 충분하면 뽑아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작은 심리적 관문 하나를 만들어서 거름 망으로 쓰기에 딱 좋았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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