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4화
신이 나던 관객들은 갑자기 끊긴 음악에 김이 빠진 표정들이다. 설 마 비즈니스적으로 완벽한 유재원 의 발표에서 음향 사고라도 터진 것인가 하고 술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엔터 센드맨 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끊겼던 부 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의 깨끗한 기타 리프부터 다 시 시작된 것이다.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메인 스 테이지의 관객들은 다시 한 번 꿈 뻑 넘어갔다. 무대가 회전하면서 장막 뒤에 가려져 있던 메탈리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엔터 센드맨을 생으로 연주하면서 말이다.
전미 투어 중이었던 메탈리카였 지만, 이번 행사를 위해 기꺼이 샌 프란시스코로 날아와 준 것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여기엔 유재원과 의 인연도 있었다.
메탈리카는 불법 음원 근절을 위 해 넵스터와 소송도 불사하려고 했 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나서준 이 가 있었으니, 바로 유재원이었다. 소속 음반사가 신기술의 폭풍에 어 쩔 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유재 원은 먼저 행동해준 것이다.
이전에도 유재원을 알고는 있었 는데, 이렇게 먼저 나서주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게다가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메탈리 카를 제대로 챙겨 주었다.
그러나 유재원의 깜짝 게스트는 메틸리카 하나만이 아니었다.
메탈리카가 엔터 샌드맨으로 메 인 스테이지를 뜨겁게 달군 후에 쿨하게 퇴장하자, 마우스 커서는 다시금 움직였다.
다음 선택은 마돈나였다.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 본조비, 셀렌 디옹 과 같은 초특급 아티스트들이 연이 어 출연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나 볼 수 있는 라인업들이 총출동했다.
ID 그룹의 위상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장면 하나로 확실하게 증 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넥스트 뮤직에 대한 환호도 최고조 였다.
"잘 보셨나요? 넥스트 뮤직은 여 러분이 아티스트와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통로가 되어드 릴 겁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시 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면 밖에 선 어떻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뉴 에그가 다른 PC에 비해 이동이 간 편하긴 해도, 들고 다닐 수는 없다 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잔뜩 띄운 유재 원 이제 하이라이트에 돌입했다.
"DAP라는 신개념 포터블 플레이 어라는 개념을 최초로 완성한 기기, 라이브팟을 소개합니다."
이번 IDDC를 준비하면서 넥스 트 뮤직과 궁합을 맞출 DAP에 대 한 고민이 늘 있었다. 준비의 미비 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DAP 라는 이상한 단어를 소비자들이 납 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심지어 개발진 말고는 DAP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마케팅 부서에서는 무조건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폭발했다.
이러한 의견들을 받은 유재원의 고민의 결과로 네이밍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라이브팟'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 다.
라이브라는 좋은 의미의 단어에 단지를 뜻하는 '팟(pod)'이 더해져, 생생한 라이브의 감성을 담은 포터 블 기기라는 의미였다.
유재원의 손끝에서 라이브팟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브팟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 간에 레밍턴은 없었다.
그저 유재원이 오른손을 바지 뒷 주머니로 돌려 뭔가를 꺼냈을 뿐이 다. 카트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작 은 반전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 다.
"이것이 라이브팟입니다!"
유재원은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얼굴로 라이브팟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메인 스크린과 연결된 카메라가 그 손에 집중하면서, 유재원 뒤로 거 대한 라이브팟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곧이어 컴퓨터그래픽으로 실물과 같은 수준으로 랜더링된 영상이 이어졌다. 검은 공간을 배 경으로 허공에서 라이브팟이 천천 히 회전하면서 그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는 그래픽이었다.
메인 스테이지가 순식간에 조용 해졌다.
다들 정교한 CG로 만들어진 그 래픽에 넋이 나간 것이다.
뒷면은 크롬의 화려한 은빛으로 가득했고, 전면부에는 널찍한 LCD 화면이 전부였다. 하드웨어적인 버 튼은 왼쪽에 두 개가 있고, 오른쪽 에는 전원과 스크린 온오프 기능이 되는 것 하나, 이렇게 세 개가 전부였다.
덕분에 라이브팟은 그야말로 단 순했다. 그렇지만 그 단순함에서 다른 기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의 세련됨이 뿜어졌다.
98년이면 일본의 카세트플레이어 는 극한의 다이어트와 돌비 사운드 와 같은 기능들을 몰아 넣기는 타 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특히 소니의 워크맨은 그 정점을 달렸다.
그렇지만 소니의 최신 워크맨이 라도 라이브팟 앞에선 촌스럽게 느 껴질 만큼, 라이브팟의 외형은 더 는 손 볼 곳이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더 놀랄 일은 CG로 만 든 이미지와 실물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카메라의 해상도가 낮아서 칼 같은 느낌이 좀 덜했을 뿐이다. 메인 스테이지 스크린과 연결된 카메라도 방송국 스튜디오에 쓰는 고가의 ENG 카 메라였는데도 해상도가 떨어지니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라이브팟의 무게는 108g에 불과 합니다."
당당히 라이브팟을 선보인 유재 원은 가장 먼저 무게부터 어필했다.
카세트플레이어도 슬림화가 이뤄지면서 무게가 많이 줄었다. 그렇 지만 모터를 비롯해 절대 슬림화가 불가능한 부품들이 많아서 보기와 달리 무거웠다. 게다가 스펙에 무 게를 적을 때 배터리를 빼고 적은 것도 상당수였다.
반면 라이브팟은 배터리 일체형 으로 그 어떠한 꼼수도 없이 정밀 저울에 달아서 계량한 진짜 무게였 다.
"여기에 100곡 이상을 담을 수 있습니다."
유재원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러 자 뒤쪽 스크린에 보다 자세한 정 보들이 떠올랐다. 코덱에 따라 100곡의 기준이 달라지는데, AAC 코 덱 노멀 음질이라면 256MB모델로 충분하고, mp3 코덱이라면 512MB 모델이야 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들 어가 있다.
"자, 그러면 라이브팟에 어떻게 음악을 옮길까요? 쉽습니다. USB 케이블로 연결만 하면 안드로이드 파일 관리자에 라이브팟이란 이름 의 이동식 디스크가 나타납니다."
이동식이란 단어에 살짝 움찔했 던 유재원이다. 영어로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인지라 입에서 나온 발음은 포터블 디스크였지만, 유재 원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동식이라는 말이 나와 버렸으니 말 이다.
참 그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쇼는 계속 되어야 했다. 선생님도 그걸 바라시고 있을 것 아니겠는가.
다시금 심기일전한 유재원은 직 접 라이브팟에 음악을 담는 시범을 보였다.
넥스트 뮤직에서 원클릭 결제로 다운받았던 곡을 드래그&드롭으로 라이브팟 이동식 디스크에 넣기만 하면 끝이었으니,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그러면 제대로 들어볼까요?"
파일 전송을 끝낸 유재원은 라이 브팟의 홀드를 풀고 작동 시범을 직접 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라이 브팟의 다양한 기능 설명이 이어졌 다.
100% 동작하는 실제 기기였기에 시범을 보이는 유재원은 자신감이 철철 넘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런 생각도 들었다.
'스티브 잡스도 보고 있으려나?'
유재원이 ID 그룹을 위협할 강력 한 경쟁자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ID 그룹의 강력한 존재감으로 인해 애플의 상태는 예전보다 더 압박을 받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스티브 잡스의 혁신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ID 그룹의 뒤통수를 후려칠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유재원은 그 뭔가가 얼마나 강력한 한 방일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 으로 끝날지 궁금했다.
"라이브팟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건 바로 터치 인터페이스입니다."
전면부나 후면에 버튼 하나 없는 라이브팟의 기능은 LCD 화면을 직 접 접촉해서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터치 인터페이스는 조만간 출시 될 티파니폰 터치를 비롯해 ID 그 룹이 발매할 포터플 기기의 표준으 로 탑재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라 이브팟을 사용하는 분들이라면, 나 중에 출시될 우리 포터블 기기의 인터페이스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곧장 다룰 수 있으실 겁니다."
유재원은 밀어서 잠금 해제를 시 작으로 홈 버튼, 리스트 검색이나 이전, 다음 곡 재생, 랜덤 재생, 설 정 등 다양한 기능들을 직접 보여 줬다.
메인 스테이지에 있는 사람들은 유재원의 시범 하나하나에 감탄을 하거나, 환호를 보내는 등 열광적 인 반응을 보여줬다.
"이뿐만이 아니라 동영상도 담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라이브팟에 탑재된 강력한 모바일 애플리케이 션 프로세서의 힘으로 무거운 동영 상 코덱까지도 거뜬하게 재생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모바일 디스플레이 모듈 중엔 대 형이긴 해도, 3인치도 안 되는 LCD 화면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지금은 합법적으 로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를 구할 루트도 없다. 타임플릭스 도 VOD를 서비스하는 것이지,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진 않으니 말이 다. 하지만 유재원은 총 책임자의 입장으로 라이브팟의 성능을 모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다들 알아서 영상 콘텐츠는 찾아 서 보고, 또 그걸 이동하면서 보고 싶다면 라이브팟을 이용해도 좋다 는 어필을 확실히 했다.
"물론 음향 기기의 본질인 사운 드의 퀄리티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유재원은 음질을 논했다.
음질이라는 건 사실 아주 주관적 인 영역이었다. 하지만 라이브팟은 음질 보장을 위한 특별한 설계로 확실히 테이프나 다른 mp3 플레이 어들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의 강력하고도 유연한 성능은 차세 대 HD음원이 어떤 포멧으로 결정 되든지, 유연하고 완벽히 대응할 겁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패치를 통 해서 지금은 지원하지 않는 코덱도 재생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라이브팟에 내장된 하드웨 어 오디오 코덱의 스펙이 낼 수 있 는 최대 음질은 16비트 48KHz이니 나중에 나올 24비트 음원이나 96KHz음원을 그대로 재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리샘플링을 통 해 기기의 스펙에 맞는 변환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모바 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처리 하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어 음질의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이어폰인데, 유재 원은 고가의 커널형 이어폰을 번들 제품으로 선택해서 확실하게 차별 성을 부여했다.
"라이브팟은 바로 이틀 후부터 북미 전역과 한국의 ID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재원은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가격을 공개했다.
메인 스테이지 스크린에 최대 용 량인 512메가 버전은 999달러, 256메가 버전은 499달러, 제일 작 은 128메가 버전은 333달러라는 내용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기대하지 않았던 환호 성이 터졌다.
사실 유재원은 리테일판 가격을 결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개발 원가만 해도 256메가 버전이 466 달러였다. 여기에 얼마의 마진을 붙여야 하나 고민이 컸다.
마진이 크면 좋겠지만, 가격 경 쟁력에서 떨어지면 그것도 큰일 아 니겠는가. 결국 유재원은 500달러 에서 1달러가 빠진 499달러로 정했 다.
마진은 겨우 33달러에 불과한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mp3 플레이어보다는 확실히 비싼 가격이었다. LCD 디스플레이 없는 단순한 플레이어들은 시중에 많이 출시되었고, 이들은 주로 200?300 달러 선의 가격을 책정했으니 말이 다.
가격 경쟁력은 포기하고, 그냥
마진이나 크게 보자고 했다면 599 달러를 붙였겠지만, 유재원은 대중 성을 위해서 과감하게 499달러를 선택했다.
"참, 아쉬운 건 준비된 물량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 지만 혹여 한 발 늦었다고 해도 실 망하실 건 없습니다. 인터넷이나 ID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예약을 걸 어 두시면 최대한 빨리 만들어 드 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홍보를 잊지 않는 유 재원이다.
라이브팟은 인수를 끝낸 대호 전 자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생산량이 많을수록 대호 전자 공장의 정 상화도 그만큼 빨리 이뤄지는 것이 었다.
"아, 이걸 깜빡했군요."
그렇게 라이브팟과 넥스트 뮤직 에 대한 발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유재원은 깜빡했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게임 기능 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내장된 게임은 물론, 열린 플랫폼으로 프 로그래밍에 자신 있는 분이라면, 직접 만들어 탑재할 수도 있고 라 이팟 스토어에 등록해 유통할 수도 있습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