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17화
월요일이 새벽이 되자 전국에 조 간신문이 뿌려졌다. 당연하게도 대 한 일보의 조간 판은 가장 먼저 사 람들의 손을 탔다. 예고했던 것처 럼 주말 인터넷 판보다 훨씬 상세 한 내용이 실려 전국에 뿌려졌던 탓이다.
당연히 조간신문이 나오자 여의 도가 떠들썩해졌다.
-민정수석, 접대 받고 미래 자동 차, ID 파운데이션 비리 묵인!
강희석 편집 국장은 섹시한 타이 틀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기사의 제목만 보면 뭔가 거대한 비리가 발생한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미래 자 동차는 한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였 고, ID 파운데이션은 세계적인 자 선 재단이었다. 두 회사가 같이 있 는 것도 이상하고, 민정수석에게 접대를 하고 비리를 묵인 받은 것 도 놀랄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건의 당사자 중 하나 인 청와대는 대한 일보의 월요일자 조간신문을 확인하고도 큰 동요는 없었다.
다만 당황하는 대신, 전명헌은 분노가 탱천했다.
대한 일보의 보도 중 하나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래 자 동차의 비자금 조성이었다.
미래 자동차를 맡은 전재근은 전 명헌의 4남이었다. 전씨 집안의 호 리호리한 체형과는 달리 풍채가 좋 고, 후덕한 인상이었고, 그 모습처 럼 과묵하고 맡긴 일을 묵묵히 해 서 전명헌의 총애도 받았던 존재였 다.
그런 전재근이 전명헌에게 처음 으로 실망감을 안겨줬다.
"영업 이익 중에 대략 120억 원 정도가 단가 부풀리기나, 허위 거 래 등으로 빼돌려진 정황을 포착했 습니다. 그리고 민정수석은 애초에 이러한 비위 자체를 감지를 못했고, 전재근 회장과 골프를 친 것인데, 그것이 마치 골프 접대를 받고 비 위 사실을 무마해준 것처럼 보도가 된 것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전명헌의 얼굴 에 주름이 가득 올라왔다.
짜증이었다.
청와대에 가면서 마지막 가족 회 의를 열었고, 본인이 청와대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잠자코 지내면서 일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취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20 억 원이나 해 먹었다니 기가 찰 노 릇이다.
"그런데, 이 시점은 1997년도입 니다. 전재근 회장이 대통령님의 말씀을 어긴 건……
"이봐, 비서실장. 자네도 재근이 한테 돈 좀 받았나?"
전재근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다 가 바로 전명헌에게 명치를 세게 맞아버린 비서실장이었다.
"1997년? IMF가 한창일 때 회 삿돈을 빼돌렸다는 거 아니야? 그 럼 더 문제지! 무슨 말 같지도 않 은 소리를 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전명헌의 불같은 화에 비서실장은 얼른 머리를 조아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명헌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걸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특히 강조한 것은 돈이 있을 만큼 있는 경제인이니 뇌물수 수 같은 비리는 절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못난 자식 놈 때문에 이젠 그것 도 틀렸다. 이번 주 주말에 나올 정기 여론조사 지지율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했다.
"수사 철저히 하라고 해."
수사라도 확실히 하는 게 답이 다.
"혹시나 봐주면 알지? 엉터리로 나오면 공수처로 보내버릴 테니까. 알아서 잘하라고 해. 빵에 가서 콩 밥 좀 먹고 나면 썩어빠진 정신머 리가 좀 나아지겠지. 최가랑 사이 좋게 가면 딱이겠구만."
피를 나눈 자식인데도 감옥에 보 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전명헌이다.
"예, 확실히 전하겠습니다."
공수처의 대상은 고위 공직자들 이 수사 대상이다. 재벌들 수사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곳이다. 하 지만 전명헌이 굳이 공수처까지 언 급한 것은 부실 수사를 한 경찰이 나 검사는 공수처에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관련법은 이미 통과된 상 태였고, 현재는 조직이 구성되는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내년 1월 1 일부터 정상 가동을 위한 조치들이 착착 이뤄지고 있다. 공수처 수사 관도 공모 중이었고, 검사들 역시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을 고르는 중이다. 더욱이 현직 검사들뿐만이 아니라 법조인 경력이 10년이 넘은 변호사들 중에서도 공수처 검사를 모집 중이다.
가장 중요한 건 공수처장 임명인 데, 청와대는 대략 6명 정도 되는 후보를 두고 검증 중이었다. 공수 처장의 임기는 대통령보다 긴 7년 이고, 헌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에 헌법을 통해 그 임기가 보장되는 만큼, 잘못 임명하면 큰일이기에 내각을 구성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검증 중이었다.
더욱이 공수처장은 대법관 임명 처럼 국회의 과반 동의가 필요한 만큼, 무턱대고 전명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내세울 수도 없었다.
"그리고……. ID 파운데이션은 사실인가?"
자식 일 관련해서는 불 같이 화 를 내던 전명헌이 ID 파운데이션 관련해서는 훨씬 조심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식은 내 키는 대로 처분해도 상관없었지만, ID 파운데이션은 달랐다. 단지 한 국에서만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 라, 전 세계가 활동적인 세계 최대 의 자선 재단이었다. 아프리카 에 이즈부터, 난치병 어린이 지원과 장학 사업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규 모였다.
이곳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 었다고 하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단호한 비서실장의 말에 전명헌 은 안심할 수 있었다.
"유봉만 이사장과 민정수석이 몇 차례 만나서 골프를 치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금품이 오갔다거나, 무슨 청탁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ID 파운데이션의 사학 사업 관련된 일은 전 정부에서 이미 허 가가 다 나왔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은 사실 그대로였 다.
전명헌 듣기 좋으라고 비리가 있 는 데 없는 것처럼 꾸며내지도 않았다.
실제 ID 그룹의 사학 관련된 일 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 다 끝 났다. 유치원이나 공과 대학 설립 에 대한 허가도 다 끝났다.
덕분에 서울과 경기권에 벌써 수 십 개의 유치원이 생겨났고, 경제 형편상 맞벌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 는 가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ID 파운데이션 유치원은 소속 원 아를 위해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지금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공과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우면산 뒤쪽에 자리한 땅을 사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 다.
2000년 개교를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역시 ID 파운데이션 답게 토지 보상부터 공사 진행까지 잡음은 거의 없었다.
"골프 모임도 사실은 민정수석이 먼저 만나자고 해서 성사된 일이라 고 합니다."
전명헌이 생각해 봐도 유봉만 이 사장이 괜히 민정수석을 만나서 민 원을 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식 으로 청탁할 것도 없이, 그냥 진행 하면 웬만한 사업들은 다 무사 통 과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전명헌은 민정수석을 뭐 라고 탓할 수도 없다.
아들놈의 비자금 문제는 1997년 의 일이고, 유봉만은 본인이 잘 챙 기라고 해서 만난 것이니 말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한국에서는 이 미지가 별로이긴 한데, 외국에서는 그냥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 츠였다.
"억울하겠지만 민정도 책임지라 고 해."
" 예."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민정수 석도 책임을 져야 했다. 책임을 지는 방법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말이다.
발 빠른 야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전명헌의 가족 비리인 것처럼 엮어 가고 있었다. 말 좀 험하게 하는 의원들 사이에는 민정수석을 고소 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계속 이슈가 되는 것보다는 그냥 물러나 있는 게 나았다. 물론 민정 수석의 뒤는 의리가 넘치는 전명헌 이 잘 챙겨줄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유 회장, 대단하 지 않나?"
조간신문을 보자마자 소집되어 살얼음판을 걸었던 비서실장은 전명헌의 입에서 유 회장이란 말이 나오자 긴장이 좀 풀렸다.
대통령의 가족들 이야기 나올 땐 그야말로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유재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재원이라면 다르다는 믿음이 있 었다.
"유 회장이 대단한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후후, 대단하단 정도로는 부족 하지."
전명헌은 본인의 티파니폰을 흔 들며 말했다. 그건 비서실장도 마 찬가지였다. 노스트라다무스 정도는 울고 가게 만들 만큼 정확한 유재 원의 예언은 딱 비서실장까지만 공 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비책은 잘 준비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첩보가 사실이라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차질 없이 잘 이뤄질 겁니다."
"그래.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예. 제가 직접 실시간으로 상황 을 보고 받고 있습니다. DH 호텔 나이트클럽에 그 녀석이 뜨면 특별 마약 수사단이 즉각 출동해 현행범 으로 체포할 겁니다. 그리고 그 모 습이 텔레비전에 중계될 것이고요."
비서실장의 설명에 전명헌은 고 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저 빌어 먹을 조간신문 정도는 간단하게 갈 아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노스트라다무스의 대비책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 다.
다이나믹 소리아라는 한국의 타 이틀은 매우 적절했다.
-현장 출동 KBS, 단독 특종!
-한국 더 이상 마약 청정 국가 아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 DH호텔 나 이트클럽에서 재벌 2세들과 연예인마약 파티, -나이트클럽과 검경 유착 정황까 지.
월요일에 청와대 민정수석의 뇌 물 수수 기사가 터져서 전국이 떠 들썩했다면, 딱 이틀이 더 지난 수 요일에는 어마어마한 스캔들이 터 졌다.
서울 강남의 목 좋은 곳에 자리 한 DH 호텔의 나이트클럽 VIP룸 에서 마약 파티가 벌어졌고, 그 현 장을 경찰청 특수 마약 수사대에 덥쳤던 것이다.
심지어 그 모습이 방송국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혀서 그날 9시 뉴스 첫 꼭지부터 시작해 거의 15분 간, 여섯 꼭지가 연속으로 방송되었다.
시작은 DH 호텔 나이트클럽에 잠입한 기자가 VIP룸에 들어가 약 에 취한 사람들을 찍는 것이었다. 당사자 동의 없이 카메라로 몰래 찍는 건 불법이라서 21세기가 되면 사장되는 기법이었지만, 1998년인 지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약에 취해서 널브러져 있는 모습 부터, 코로 하얀 가루를 흡입하는 모습이나 남녀가 뒤엉켜 있는 모습 까지, 엄청난 내용이 담긴 영상이 었다. 오죽하면 뉴스에 보도되었을 때는 화면 반이 흐리멍덩하게 블러 처리가 되었을 정도다.
다음은 화장실에 숨어서 현장을 신고를 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를 VIP룸까지 부른 제보자가 총대를 메고서 티파니폰을 들고 신고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출동해야 할 경찰은 나이트클럽 에 나와 보지도 않았다. 대신 나이 트클럽 운영진들이 VIP룸에 다급히 다가가더니 약에 취한 VIP들에게 피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 야말로 신고를 받은 경찰과 나이트 클럽 사이에 유착이 있다는 강력한 정황이었다.
반전은 곧 일어났다.
경찰과 나이트클럽 사이의 유착 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특수 마약 수사대가 출동해서 나이트클 럽을 덮친 것이다.
뒷구멍으로 도망치려던 VIP룸 손 님들부터 현행범으로 굴비 엮듯 엮 어 연행되었고, 나이트클럽 운영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한 편의 범죄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 직 충격은 다 끝나가지 않았다.
일단 사건의 장소가 DH 호텔
나이트클럽이라는 것부터 문제였다.
DH 호텔은 5성급 호텔이었고, 소유주는 바로 대한 일보였으니 말 이다.
DH라는 호텔의 이름부터가 대한 의 영문 앞머리를 따서 만들었다. 당연히 KBS의 대대적인 보도를 다 른 방송국이 열심히 따라서 재전송 했지만, 대한 일보를 위시한 보수 적 성향의 신문사들은 철저히 외면 했다.
오히려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를 비롯해 관련 비리가 더 있을 거 라는 식의 기사를 가열차게 실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DH 호텔나이트클럽 마약 사건으로 완벽하 게 쏠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청와대 민정수석 비리는 아직 죄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던 사건이 었다. 미래 자동차의 비자금 건이 좀 크긴 한데, 대통령이 철저 수사 를 당부했고, 혹여 의혹이 남아 있 을 경우 공수처에 의뢰하겠다고 약 속했기에 빠르게 진화되었다.
반면 나이트클럽 마약 사건은 그 야말로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일 대의 사건이었다. 더욱이 연예인까 지 끼어 있었으니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VIP 룸에서 마약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 내기 위해 열심이었는데, 제일 먼 저 정체가 드러난 건 바로 마정환 이었다. VIP 룸에 몰래 카메라가 들어왔을 때 100달러짜리 지폐를 말아 하얀 가루를 맛깔나게 흡입하 던 그 남자였고, 대한 일보 사주 가문인 마씨의 손자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