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86화 (486/1,007)

24권 20화

"돈이 전부인 사람에겐 돈으로 때리는 게 최고야."

당연히 유재원은 선처 같은 건 없다.

끝까지 가서 인지세보다도 못한 배상금이 나오더라도 유재원에겐 남는 장사였다.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계속 힘들게 만들어 줄 수 있 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현상이 비단 대한 일보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연예계에도 LSM파산 사건 의 여파는 빠르게 퍼지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일반인의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컴백을 예고했던 여러 가 수들이 일정을 연기하거나, 한창 활동 중이던 가수들도 휴식에 들어 가는 것이었다.

표절에 걸리면 패가망신뿐이라는 게 확실히 증명되었기에, 움찔한 모양이다. 또한, 예전에 표절 논란 이 일었던 가수들도 저작권 클리어 를 위해서 원작자를 만나 합의를 시도한 등 매우 바빠졌다.

덕분에 연말 가요계는 그야말로 썰렁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치러야 했을 일이었다. 이 번 사건 이 한국의 가요계가 한 차원 더 발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변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ID 엔터테인먼트가 LSM을 인수하 고 나면 수십 년은 앞선 최신의 기 법을 선보일 테니 말이다.

"이제 남은 건 표결뿐이네."

이렇게 한국이 다방면에 걸쳐 다 이나믹한 모습을 보여줄 때, 정치 계라고 해서 존재감이 없어진 건 절대 아니다.

전명헌과 통일국민당 그리고 민 주당이 합심해 진행 중인 개헌 작 업은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 전국 에서 공청회도 열렸고, TV 토론회 도 여러 번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수차례 개헌이 있었지만, 이처럼 홍보에 열심히 했던 경우는 처음이 다.

예전 개헌은 소수의 사람이 밀실 에서 쑥덕이며 결정했다면, 현재의 개헌은 하나의 숨김도 없이 공개적 으로 진행 중이었다.

그만큼 말들이 많았다. 지지도도 극단적으로 갈렸다.

특히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결사반대였다. 이런 부류 의 특징이 돈도 많고 사회적 위치 도 높아서 목소리가 크다는 점이었 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이대로 좋으니 바꾸지 말자는 것이 었다.

관건은 야당 소속 의원 중에 49 명이나 동의를 받아와야 한다는 것 인데,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 만 불가능은 없었다. 전명헌식 밀 실 정치와 유재원의 강력한 후방 지원 덕에 49명이라는 숫자를 가져 올 수 있었다.

문제는 표결이다.

이탈 표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공 든 탑이 무너진다. 그렇기에 여당 측은 표결을 주장했고, 야당 측에 선 비밀 투표로 결정하자고 치열하 게 맞섰다.

결과적으로 야당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개헌안을 표결에 부치기 위해서는 최소 200명의 정족수가 필요한 탓이다. 야당에서 아예 불 참해버리면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 기가 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개헌안 표결은 11월 18일이다. 앞으로 딱 일주일 남았다.

D-6.

거대한 태풍이 몰려오기 전의 전 조는 맑은 하늘이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어제까 지 온갖 뉴스들이 쏟아졌고, 한국 사람들은 끝내 따라가지 못할 정도 였다.

나이트클럽 마약 사건만 해도 줄 줄이 엮인 굴비처럼 관련자들이 딸 려왔고, 연예계도 마약 사건에 숨 을 죽일 정도였다. IMF로 행사가 줄었던 건 기본이었고, 여기에 표 절 사태로 인해 찬바람이 쌩쌩 불 던 판이었는데, 마악 사건까지 터 지면서 1998년 연예계는 그야말로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찰도 탈탈 털리는 중이었다.

일단 강남 경찰서는 서장부터 시 작해 DH 호텔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일선 경찰들이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보직에서도 해임되 었고, 혐의에 따라 구속 영장이 속속 청구되었다.

공수처는 공수처장이 공석이고, 일부 인선이 되지 않은 보직도 있 었다. 내년 1월이 원래 정식 발촉 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수사 조직은 완비된 상태인지라 이 번 사건을 직접 맡아서 수사할 수 있었다.

사실 공수처장의 공석은 전명헌 대통령의 꼼수였다.

공수처장은 여당에도 야당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명정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수처장 임명에 국 회의 과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 다. 물론 민주당과의 연정 덕에 야당의 의견은 묵살할 수도 있지만, 연정 파트너인 민주당은 고려 대상 이었다.

민주당의 성향도 고려하면서 검 증을 철저히 한다는 명분으로 공수 처장 임명은 12월 말로 미뤄놓은 상태에서 실무진급 인선은 공수처 차장이 맡게 된 것이다. 당연히 공 수처 차장은 전명헌의 성격에 맞는 화끈한 인물이었다.

공수처 차장은 여러 결제 사안을 공석인 공수처장을 대신해 대통령 에게 인가를 받으면서 처리했다. 자연스럽게 공수처는 전명헌의 입 맛에 맞는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 효과는 DH 호텔 나이트클럽 사건에서 직접 발 휘되고 있는 중이다.

공수처 수사는 경찰이나 검찰과 달리 중간 브리핑이 합법적으로 가 능했는데, 브리핑을 할 때마다 경 찰청장은 물론 검찰까지도 수사 범 위가 확대될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말했다.

이렇게 한국이 떠들썩해진 게 한 참 된 일인데, 어제부터는 뭔가 새 로운 뉴스들이 뚝 끊겼다.

우익적 프레임을 열심히 짜고 있 던 대한 일보는 이젠 자기 방어에 도 급급한 상태였고, 항상 큰 목소리 내기 좋아하는 야당은 전명헌의 유혹(?)으로부터 표 단속을 해야 했기에 전처럼 크게 떠들지 못하면 서 만들어낸 기현상이었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조만간 상상을 초월하는 큰일이 벌어질 거 라는 걸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개헌안 통과 혹은 부결에 따른 후폭풍이 될 것임은 명확했다.

한국이 이렇게 태풍 전 고요함에 빠져 있을 때, 유재원은 오랜만에 자신의 일을 했다.

바로 미디어플레이어의 라이브팟 지원 강화 버전을 완성하고 안드로 이드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배 포를 시작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업데이트 프로그램에 올리면, 인터넷에 연결 된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자동으로 알람을 받을 수 있다. 그 알람을 보고 설치할 사람은 수락을 눌러 설치를 하고, 관심이 없으면 취소 를 누르면 된다.

옛날 MS처럼 강제적으로 업데이 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사용자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 게 했다. 물론 긴급 보안 패치는 강제적이었지만, 이제까지 긴급 보 안 패치를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사용자 숫자를 자랑 하는 만큼 해커들의 공격도 집중되 고 있었지만, 아직도 안드로이드의 보 안체계는 굳건했다. 일부 사용 자의 보안 영역이 파괴되었다는 리 포트가 올라오긴 했는데, 그건 초 기화 비밀번호가 유출된 경우나 본 인이 직접 자기 손으로 보안 프로 그램을 정지시킨 다음, 바이러스가 담긴 프로그램을 실행했을 때의 희 박한 경우였다.

덕분에 아직도 안드로이드 사의 명성이나 유재원에 대한 믿음이 탄 탄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미 디어플레이어 라이브팟이 공개되자 다운로드가 급증했다.

1시간 만에 100만을 돌파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늘었다. 200만을 넘기는 것도 하루가 지나 지 않았을 시점에 달성했다.

"아, 이 숫자만큼 라이브팟도 팔 렸으면 좋겠다."

다음 날이 되어도 실시간으로 빠 르게 오르고 있는 다운로드 누적 숫자를 보고서 유재원은 절로 탄성 이 나올 정도다. 이 말을 뒤집어 보자면 라이브팟의 판매량은 유재원의 성에 차지 않았다는 이야기였 다.

라이브팟은 모든 컴퓨터 매체를 비롯해 고가의 음향 장비를 다루는 전문 잡지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 았다.

디지털을 거부하며 아날로그 감 성을 유지하고 있는 잡지에서만 좀 혹평이 나왔고, 나머지는 모두 칭 찬 일색이었다. 직접 구매한 구매 자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하드웨 어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소프트 웨어의 지원, 그리고 음향기기에 가장 중요한 음질까지 라이브팟은 모두 호평이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비싼 가 격이었다.

유재원은 라이브팟의 가격을 그 야말로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책 정했다. IT 기업이지만 굴뚝 기업 과 같은 10%도 안 되는 마진을 책 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아우성이었다.

특히 애플에서 나온 아이팟과 비 교해서 용량이 1/20에 불과한데도 가격은 비슷하니 더 문제였다. 하 지만 실제 구매하고 나서는 라이브 팟 사용자들은 호평 일색이었고, 아이팟은 불평 일색이었다.

아이팟의 가장 큰 단점은 닫힌 플랫폼이라는 것이지만, 라이브팟은 완전 반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커다란 컬러 LCD를 활용해서 이미 지나 전자책도 볼 수 있었다. 최근 에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도 생겨 서 간단한 게임을 넣을 수도 있게 됐다.

전통의 테트리스나 비주얼드라는 퍼즐 게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었고, 여러 아마추어들이 애플 리케이션 스토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음, 할만한 게임들은 언제쯤 나 오려나 몰라. 기왕 나온다면 그 새총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재원이 말한 새총 게임이란 바 로 모바일 게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바로 그 게 임, 앵그리버드였다.

라이브팟의 M-AP 의 성능이나 메모리 용량으로도 앵그리버드 같 은 게임 충분히 돌릴 수 있다고 봤 다. 물론 그래픽의 수준이나 프레 임 속도 등이 예전과 달리 다운그 레이드 되고, 극한의 최적화도 요 구될 테지만, 그래도 그 재미는 확 실히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게임들이 나와서 히 트를 치려면 라이브팟이 많이 팔려야 하는데, 출시한 지 몇 달이 지 난 지금까지 팔린 양은 아직 200만 을 넘진 못했다.

물론 아이팟의 판매량은 라이브 팟보다 훨씬 적었다. 애플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아직 100만 대를 넘지 못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나마 아이팟이 라이브팟보다 낫다고 평가되는 건 대용량 그리고 아이튠즈였다. 애플의 디지털 음원 유통 채널이면서 동시아 아이팟의 관리 기능도 수행하는 아이튠즈는, 디지털 음원 관리에도 괜찮은 기능 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오늘 미디어플레이어 라이브팟 버전이 발표되 면서 이제는 옛말이 될 것이다. 라 이브러리 기능을 21세기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여기에 고속의 CD 리 핑 기능과 자동 테그 기능까지도 넣었다. 라이브팟과의 연동도 완벽 했다.

"재원아! 그 게임이라는 게 뭐 야?"

순간 유재원은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정장으로 빼입은 티파니가 빤히 보고 있었다.

"어? 언제 왔어?"

"3분 전'?"

방심했다. 모니터에 너무 집중해 있다 보니 티파니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티파니는 이제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라서 경 계심도 크게 옅어져 있었다. 그나 마 다행인 것은 앵그리버드라는 단 어를 직접 입에 담진 않았다는 점 이었다.

"아아, 게임. 라이브팟용 게임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딱히 눈에 띄는 게 없거든."

덕분에 유재원도 간단한 변명으 로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게임? 게임 좋지."

티파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다수 여자친구들은 남자친구가 게임에 빠져 있는 걸 그리 달가워 하진 않지만, 티파니는 좀 달랐다. 티파니는 본인도 게임을 즐기는 성 향이었고, 남들이 게임을 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아했다.

"라이브팟 덕에 비행기 타는 시 간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어. 게 다가 자기가 넣어준 음악도 최고였 고. 진짜 게임까지도 더 추가되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덕분에 라이브팟 칭찬을 열심히 하는 티파니였다.

그녀의 말 대로 티파니는 이동 중에 라이브팟을 손에 놓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충전을 위해서 잠 깐 꼽아 놓는 걸 제외하면 항상 주 머니 혹은 핸드백 속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티파니의 얼굴에서 는 여전히 그늘이 보였다.

"근데 출장 잘 다녀왔어? 결과는 좀 안 좋은가보네"

그걸 못 알아볼 유재원도 아니었 고, 궁금증을 참는 성격도 아니라 서 바로 물어보았다.

"응!"

티파니가 정장으로 빼입은 건 외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출장을 마 치고 돌아온 모습이었다. 바로 몇 주 전부터 출근 도장을 찍듯 다녔 던 텍사스에서 돌아온 것이다. 티 파니는 재킷을 벗어버리고는 유재 원 옆에 앉았다.

"이젠 안 가도 될 거 같아."

살짝 입술이 나온 티파니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 었을 때 볼 수 있는 신호였다. 유 재원은 이렇게 투명하게 본인의 감 정을 보여주는 티파니의 성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미첼 씨의 수압 파쇄법으로도 채산성이 안 나와."

역시나 티파니는 유재원의 물음 에 바로 답까지 해주었다.

티파니가 여태껏 텍사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던 것은 유정을 가로로 개발하는 방법을 확인해보기 위해 서였다. 그것이 바로 수압 파쇄법 이었다.

대단히 혁신적인 기법은 아니다.

수압 파쇄법이 상업적으로 쓰인 건 1950년대부터였으니 말이다. 하 지만 전통의 기술을 현대적으로 발 전시킨 사람이 있으니 조지 미첼이 라는 사람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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