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12화 (512/1,007)

25권 21화

USB케이블을 연결하면 바로 시 그널을 잡았다는 메시지가 떠야 한 다. 그런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무선으로 휴대폰의 화면이 전달 되면 참 좋겠지만, 현재의 기술로 는 USB케이블로 연결을 해야 합니 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되면 언젠 가는 무선으로도 휴대폰의 화면을 공유하는 세상이 올 겁니다."

유재원은 트러블이 생겼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 유롭게 현장을 이끌었다. 물론 머 릿속은 복잡했다. 예행연습을 할 땐 분명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혹역사 하나를 쓰게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엔지니어들이 작업을 하는 시간 을 벌기 위해 유재원은 미래의 스 마트폰에 적용될 좋은 아이디어까 지 하나 말해버렸다.

다행히도 유재원이 시간을 끄는 사이, 문제가 해결됐다. 엔지니어가 케이블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꼽 자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는 신호가 떴다.

유재원은 곧장 전원 버튼을 눌러 서 잠들어 있던 T터치폰을 깨웠다. 그러자 검게 물들었던 화면에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부팅 화 면이 나타났고, 십여 초가 지난 후 에 잠금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도 푸른 바다의 시원한 한 장면을 배경으로, 잠금 화면에 빠 지지 않는 시계와 날씨 위젯이 상 단에 떠올랐다. 날씨 위젯은 스마 트폰의 기본 애플리케이션이었지만, 지금은 처음 선보이는 혁신이었다. 넥스트컴의 날씨 기능과 연동되어 서 스마트폰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잠금 화면을 푸는 법은 간단합 니다."

잠금 화면 하단을 가리키며 유재 원이 시범을 보였다.

휴대폰 화면 하단 왼쪽 구석에 있던 화살표를 밀어서 잠금 해제. 유재원의 손길에 따라 스르륵 움직 인 화살표가 오른쪽에 이르자 잠겼 던 화면이 풀리면서 모바일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의 바탕 화면이 나타 났다.

손짓 한 번이지만, 임팩트는 충 분했다.

숨죽이던 객석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준비된 T 터치폰은 한 번의 오류도 없이 준비한 모든 데모를 완벽히 수행했고, 객석에서 는 시범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박수가 터진 건 모바일 웹브라우저를 실행해서 영화 매트릭스의 홈페이지에 접속 하는 장면이었다. 홈페이지에 접속 하면 매트릭스의 소스코드를 의미 하는 기이한 문자들이 쏟아져 내리 는데, T터치폰에서도 완벽하게 구 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나온 그 어떤 휴대폰도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구현하지 못했지만, T터치폰은 마법을 부린 것 처럼 웬만한 PC보다 빠르게 구동 되었다.

당연히 T터치폰의 발표는 그야말 로 성공리에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즉각 반응이 왔다. 플래그 쉽 스토어가 문을 열기도 전에 긴 줄이 생겼다.

그렇게 남들보다 빠르게 물건을 받아든 이들이 제일 많이 해본 건 밀어서 잠금 해제였다. 다음이 매 트릭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쏟아지 는 녹색의 소스코드를 보며 누구보 다 빨리 미래에 접속한 기분을 만끽해보는 것이었다. 21세기에 진짜 로 등장한 가상현실 세계 매트릭스 로의 접속은 아니었지만, 1999년의 사람들에겐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 다.

#.382 Don't Be Evil

T터치폰의 기세는 무서웠다.

티파니폰2 이후 자잘한 리버전이 나 변종만 출시되다가 완벽한 신제 품이 출시된 것이다. 휴대폰 업계 전체를 봐도 T터치폰만한 혁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새로움에 목이 말랐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ID 플래 그쉽 센터에 줄을 섰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순식간에 줄이 길어지면서 100m를 넘겨버리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 세 계에 있는 ID 플래그쉽 센터 중에 가장 유서가 깊고 규모도 제일 큰 실리콘밸리 지점의 경우엔 줄의 수 백 미터에 이르렀다.

신제품이 출시된다고 줄을 서는 건 일본에나 있었던 문화였는데,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대로 두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시큐리티 직원들을 늘려서 질서 유지만 잘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 을 다하겠습니다.

길게 선 줄 때문에 불미스러운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줄을 해산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엘런 사장의 제안을 유재원은 거절했다.

줄을 선 것 자체가 T터치폰의 인기에 대한 증명이자 거대한 광고 였다. 누구나 선망하는 워너비 아 이템이 되면, 기능과 가격에 상관 없이 구매 욕구가 저절로 생겨나니 말이다. 그렇게만 되면 큰 마케팅 비용을 치를 필요도 없이 엄청난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음, 그런데 좀 미안하네."

엘런 사장과의 통화를 종료한 유 재원은 미안하단 소리가 절로 나왔 다.

스마트폰도 아닌 터치폰에 불과 한 T터치폰에 이렇게나 격한 반응 이라니. 하이테크 연구소 안에서는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될 만한 물건 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채산성이 없는 부품, 양산이 아직 되지 않은 부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나마 양산할 수 있는 최고 수 준의 스펙이 T터치폰이었다. 덕분 에 구매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긴 줄을 서고 있지만, 유재원의 기준 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했다.

유재원은 키보드 옆에 놓여 있던 T터치폰의 전원 버튼을 눌러 잠금 화면을 띄웠다.

기본 배경 화면인 제주도의 맑고 푸른 바다가 4인치 슈퍼 클리어 LCD모듈에 떴다.

"베젤 두께가 무슨 손가락 두께 네."

상단에서 하단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툴툴거리는 유재원이다.

슈퍼 클리어 LCD 모듈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렸지만, 실제 해 상도는 가로 360 픽셀에 세로 720 픽셀로 티파니폰2의 VGA해상도에 서 조금 발전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IPS 방식으로 시야각이 좋 고, 색감이 훨씬 좋아져서 슈퍼 클 리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유재 원이 보기에는 아직도 영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숨이 나오는 건 2G 에 머물러 있는 이동통신 속도였다.

2G도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는 많이 안정화된 상태여서 전송 속도가 꽤나 향상되었다. 잘 나오는 구 간에서는 차에 타고서도 60Kbps를 꾸준히 찍을 수 있었다.

"60이라니. 한숨이 나오는구만."

그렇지만 텍스트 위주의 인터넷 이나 전송량이 적은 온라인 게임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유재 원의 우격다짐으로 데이터 사용 요 금도 굉장히 저렴해졌다. 비단 한 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에 서도 100MB의 용량 정도는 기본 요금에서도 무료로 제공하는 수준 이었다. 덕분에 대학생들도 노트북 에 휴대폰을 연결해 야외에서도 인터넷과 게임을 즐기는 게 요즘의 트렌드였다.

다만 음성통화와 데이터 통신을 동시에 할 수 없기에, 데이터 통신 을 이용하다가 전화라도 걸려오면 연결이 끊기는 단점이 있었다.

IMT2000이 상용화되면 이동 중 전송 속도가 300Kbps 수준으로 대 폭 상승하고, 음성 통신과 데이터 통신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통신 망 문제는 거의 해결될 것이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줄 일인가."

유재원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접었다.

돈을 무제한으로 풀어도 시간은 살 수 없는 법임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었다. 이르 면 내년 말, 늦어도 2001년 초반에 는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는 물건 을 만들 수 있다. 원래의 역사보다 5년은 빠른 속도였다.

엘런 사장과의 통화로 회사 일을 다 끝낸 유재원은 컴퓨터를 끄기 전에 커뮤니티 사이트를 한 번 돌 았다.

이대로 자기엔 뭔가 좀 아쉬웠던 탓이다.

커뮤니티 안에는 T터치폰과 매트 릭스폰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답게 이야기의 내용은 극단적이었다. T 터치폰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 었고,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바 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는 프리미엄이 잔뜩 붙은 매트 릭스폰에 대해 호불호를 표시하는 글도 많았다.

판매가 500달러인 매트릭스폰은 아직 배송조차 되지 않았는데, 리 셀러 사이트에 10배의 프리미엄이 붙어 올라오기도 했다. 심지어 물건도 없는데 팔리기까지 했으니,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 다.

프리미엄이 과하다, 아니다로 불 이 붙어서 꽤나 과격한 말을 주고 받는 게시물도 상당했는데, 유재원 은 그냥 쓱 보고 넘어갔다.

어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자연 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으니 말 이다. 그렇게 커뮤니티 사이트를 순회하던 유재원은 문뜩 이상한 점 을 느꼈다.

"그 버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네?"

전생에 이맘때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밀레니엄 버그였다.

일명 Y2K 문제라고 했는데, 컴 퓨터가 인류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되면서 생긴 문제였다. 옛날 컴퓨터는 날짜 표기 방식을 MM-DD-YY라는 형식으로 표기 했다. M은 달, D는 날, Y는 연도 였다.

오늘 날짜인 1999년 5월 8일을 컴퓨터 형식으로 표현한다면 05-08-99였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이 되면서부터다. 기존 표기 로 1900년과 2000년은 같은 00이라 표기가 되니 여기서 큰 혼란이 생겼다.

전생에서는 세계 금융망이 정지 된다든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 능이 누출된다든가, 각종 자동항법 장치나 위성관제, 통신이 마비되어 비행기가 추락하고 인터넷이 멈출 거라는 등의 이야기가 많았다.

심지어 핵미사일 제어 컴퓨터가 오류를 일으켜 핵미사일이 발사되 고, 상호 확층 파괴 법칙에 따라 러시아가 반격하면서 전 세계가 공 멸할 것이고, 이것이 노스트라다무 스의 예언이라는 식의 괴담도 많았 그렇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뒤져 봐도, 기사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도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 의 없었다.

"음, 나 때문인가?"

유재원은 평소의 성격답지 않게 본인 앞으로 깔때기를 댔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 생과의 차이는 유재원의 등장 말고 는 없었다. 특히 PC 운영체제에서 안드로이드의 독점은 이전 PC 환 경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안드로이드는 도스와의 호환성이 하나도 없다.

알파라는 도스 위에 그래픽 인터 페이스를 얹은 과도기적 물건이 있 긴 했지만, 정식 넘버링인 1.0이 출 시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 다. 하위 호환성은 DOS 에뮬레이 터 방식으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상에서 가상의 PC를 만들어 지원 하는 방식이었고, 안드로이드 커널 은 완벽한 32비트 운영체제였다.

당연히 시간을 다루는 방식도 달 라졌다. MM-DD-YY가 아니라, MM-DD-YYYY가 되었다. 9999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다. 도스에 익숙했던 사용자가 연 도 항목에 00을 입력해도 자동으로 2000으로 입력되도록 하는 센스까 지 선보였다.

일부 특수한 산업 환경에서는 구 형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밀 레니엄 버그를 유발하는 일도 있었 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PC에는 밀레니엄 버그가 있을 수 가 없었다.

과거에는 밀레니엄 버그 소식에 본인의 PC로 혹시 오류가 나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고, 버그가 나는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드로이드 세상이 된 지금은 버그 시연 자체가 되지 않으니 공감이 일어나지 않았고, 밀레니엄 버그 이야기도 일부 산업 환경을 제외하 면 소리 소문 업이 사라지게 된 것 이라는 결론이다.

"다 좋은 일이지만, 공돈 타 먹 던 컨설턴트 업체만 아쉽게 됐네."

과거 밀레니엄 버그가 떠들썩할 때, 제일 많은 돈을 번 업체는 관 련 버그를 고칠 만큼 능력이 좋은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MS도 아니 었다. 밀레니엄 버그 문제에 대해 바람을 넣고 해결책이 있는 업체와 연결을 주선했던 컨설턴트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겁을 먹고, 그렇게 치명적이지도 않았던 버그 를 치명적인 것처럼 꾸며서 한몫을 크게 챙겼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이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대세인지라, 이런 이들이 설 자리 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는 위협 이 이제 곧 개봉하겠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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