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22화
스타워즈 이야기였다.
서양에 엄청난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였다. 4,5,6편 이 먼저 개봉하고서 올해부터 1,2,3 편이 차례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시작이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의 비주얼은 참 훌륭했다.
포드 레이싱 장면은 매트릭스의 전투신과도 비견될 만큼 박진감이 넘쳤고, CG도 잘 활용해서 안드로 이드 로봇 군단의 물량도 잘 표현 했었다.
"이번엔 더 좋겠지?"
ID 엔터테인먼트의 CG는 사람 들의 눈높이를 한껏 올려놨다.
게임 속 CG도 이제는 단순 컷신 정도가 아니라 시네마틱 CG가 들 어가야 게이머들이 반응을 보였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매트릭스를 통해 궁극을 찍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훨 씬 발전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람 들의 눈높이도 더 올라갈 테지만, 그 기준점이 매트릭스가 될 것이라 는 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자화자찬으로 공식 업무의 마침 표를 찍은 유재원은 컴퓨터를 끄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원아! 저녁밥이 다됐어!"
타이밍 좋게 티파니가 저녁을 먹 자고 했다.
이제는 주말 부부처럼 주말이면 항상 유재원의 집으로 오는 티파니 였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 히 오늘은 T터치폰 발표라는 큰 행 사를 치른 유재원을 위해 평소보다 훨씬 성대한 식사를 준비했다.
식당으로 가는 유재원의 발걸음 이 절로 빨라졌다.
"회사는 어때?"
"이제는 좀 정돈된 느낌이야."
한참 식사 중에 나온 대화였다.
지문만 보면 티파니가 유재원에 게 물은 것 같지만, 실상은 거꾸로 였다.
티파니는 몇 주 전 셰브롱을 그 만 두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바로 지질 데이터 분석 업체 창 업이 었다.
셰브롱의 텍사스 23번 유정을 찾 아낸 것은 유재원의 몫도 컸지만, 티파니의 노력도 절대 작진 않았다. 유재원이 적중률 높은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만들긴 했어도, 이를 구현할 시스템을 만든 건 티파니였 다.
유전의 규모가 좀 작았더라면 성 과도 축소되었을 텐데, 23번 유정 은 최근 몇 년, 심지어 10년 전으 로 거슬러 가도 셰브롱이 거둔 탐 사 성과 중 제일 컸다. 덕분에 티 파니의 입지는 셰브롱 내에서 상당 히 커졌다.
단적으로 셰브롱은 티파니의 요 구대로 데이터 분석용 클라우드 시 스템을 구매했다. 물론 구매처는 ID 테크놀로지라는 건 두말 하면 입이 아픈 사실이다. 그렇게 납품 된 시스템을 티파니의 주관 아래 세팅할 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막 가동을 시작할 때, 무 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티파니는 셰브롱을 나와버렸다.
며칠 후에는 T&U 리서치라는 회사를 차렸다. 티파니의 작명이었 다. 丁는 땅을 의미하는 테라에서 따왔다고 했고, 日는 유니버스에서 가져왔다고 했는데, 딱 봐도 티파 니 본인의 이름과 유재원의 U에서 따온 게 분명했다.
물론 이렇게 독립을 했다고는 해 도 T&U리서치가 현재 수주한 분 석 과제는 모두 셰브롱이 준 것이 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터라 다른 석유회사로부터 의뢰를 받을 만한 실력이 있는지 검증받지 못한 탓이다.
그렇기에 크게 보면 셰브롱의 자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운영하던 연구소에 속 해 있던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 졌다.
일단 출근부터 셰브롱 본사가 아 니라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빌딩 으로 했다. 분석 시스템도 셰브롱의 것이 아닌 ID 테크놀로지의 클 라우드 서버를 임대해 쓰는 형태였 다. 필요할 땐 대량의 컴퓨팅 파워 를 쓰고, 그렇지 않을 땐 최소의 운영만 하면서 비용을 절약하는 최 선의 선택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을 뽑 는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충원이 어느 정도 되어서 그나마 기틀이 잡힌 모양이다.
"그나저나 텍사코와 합병도 예정 대로 할 모양이지?"
"응! 외할아버지도 긍정적이고 제이콥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 고, 텍사코도 긍정적이라고 하니 별 탈 없으면 합병될 거 같아."
"아, 또 제이콥이야?"
셰브롱을 잘 다니던 티파니가 뜬 금없는 타이밍에 독립한 건 사내 견제 세력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셰브롱의 후계자인 제이콥을 지지하는 임원들이 티파 니의 성공에 경계심을 보였다. 하 지만 그 수준이 무슨 사극에 나오 는 궁궐 암투처럼 격한 건 아니었 다. 그렇지만 분위기를 읽는 데 남 다른 능력이 있는 티파니가 명백하 게 견제의 분위기를 느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걸 읽자마자 티파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셰브롱을 나와버린 것이 다.
티파니는 후계자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꾸 소리가 나오니 과감하게 셰브 롱을 나왔다.
웃기게도 제이콥의 세력을 자극 한 건 바로 유재원이었다.
유재원의 상승세는 몇 년 째 이 어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유재원의 존재감이 프레더릭에게 다가왔다. 프레더릭이 유재원을 대하는 수준 은 가족 이상이었다. 최근에는 본인의 아들인 제이콥과 비교하기까 지 했다.
제이콥 세력은 본능적인 위기감 이 급격히 뛰었다.
이번에 셰브롱이 추진하고 있는 텍사코의 인수도 유재원과 무관하 지 않을 정도다.
프레더릭 테일러 2세가 유재원에 게 감탄했던 부분은 경영 능력이었 다.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를 보이 는 ID 그룹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동시에 위기감도 느꼈다. 셰 브롱은 제자리걸음 중이었으니 말 이다. 작년에 텍사스에서 신규 유 정을 발견했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석유 업계에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있었다. 석유 업계의 1위 엑슨과 2위 모빌의 합병하면서 엑슨모빌이라는 초거대 업체로 거 듭난 것이다.
이것이 셰브롱의 후계자인 제이 콥은 더한 압박감을 받았고, 그에 대한 돌파구로 텍사코와의 합병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셰브롱과 텍사코의 합병은 원래 의 역사에서도 있던 이벤트인지라 유재원은 딱히 무리수라고는 보지 않았다. 다만 셰브롱에 일어난 일 련의 사건들이 앞으로 본인이나 티파니에게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는 모른다는 게 좀 문제였다.
"자기는 어때?"
"나야 언제나 그린 라이트지."
티파니네 외가가 좀 이상하게 가 는 걸 제외하면 모든 건 다 순조로 웠다.
IDDC 99에서 선보일 차기 안드 로이드 운영체제도 순조롭게 완성 되었고, 게임기 사업도 빠르게 구체화되었다. 한국에서도 대선 때문 에 막혀 있었던 마이크로크래딧 사 업이 정식으로 출범하기도 했다.
이 모든 걸 주관해야 하는 사람 이 유재원이었고, 자연스럽게 언론 노출이 급격하게 줄었다. 칩거 아 닌 칩거를 하며 시간은 홀렀고 어 느새 7월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고, 유재원은 오랜만에 칩 거를 풀고 세상에 나왔다.
푸틴 총리의 초청에 의한 러시아 방문을 위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여정은 길었다.
직항으로도 20시간이 걸리는 길 이었다. ID 그룹의 전용기인 737 NW ER버전인지라 쉬지 않고 날 아갈 수는 있었지만, 장시간 비행 피로는 몸에 좋지 않았기에 아이슬 란드에서 한 번 쉬고가는 것으로 항로를 정했다.
동행도 많았다.
유재원과 함께 전용기에 오른 이 들은 비서실장인 김대석과 경호팀 16명, 그리고 ID 인베스트먼트 리 서치 팀 4명에 ID 테크놀로지의 엔 지니어 4명, 러시아어에 능통한 통 역 직원 6명 등,30명이 조금 넘는 규모였다.
일반 수행원에 비해 경호팀이 상 당히 많은 것 같지만, 러시아의 혼 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렇기에 경호팀장은 러시아 측에 서 국빈급 경호를 해준다는 설명을 듣고서도 자체 경호팀원을 16명이 나 차출했다.
비단 유재원뿐만이 아니라, 러시 아에서 따로 활동할 수행원들도 경 호를 받아야 했기에 16명은 절대 과한 수치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나 많은 수행단이 탑승했지만, 비행기의 자리는 많이 남았다. 일등석이 8석이고 나머지 는 모두 비즈니스석으로 세팅되어서 정원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 도 200명이 넘게 탑승할 대형 제트 여객기였으니 말이다.
일등석은 당연히 유재원의 공간 이었다.
중동 나라의 석유 귀족들은 전용 기를 사서 집처럼 꾸몄다고 했지만, ID 그룹의 전용기는 평범한 비행기 였고, 일등석 공간 역시 마찬가지 였다. 큼직한 의자가 일등석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지만, 특별한 방 이나 샤워실 같은 건 없었다. 일등 석 의자를 쭉 펼치면 편안한 침대 처럼 변하긴 하지만, 진짜 방과 비 교할 수는 없었다.
"흐음."
푹신한 일등석 의자에 앉은 유재 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i웍스 노트 북을 보는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비행시간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유 재원은 회사 일감을 노트북에 잔뜩 담아왔다.
샌프란시스코에 출발할 때부터 유재원은 일감을 하나씩 처리 중이 었다.
처음엔 기분 좋은 이야기들이 있 었다.
출시된 지 두 달 가까이 된 T터 치폰의 판매량이 벌써 500만 대를 넘어섰다는 소식은 유재원을 웃게 만들었다.
당연히 500만 대라는 숫자는 글 로벌 기준이다.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제일 많이 팔렸고, 다음이 유럽, 한국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모델별 비중을 보면 600달러짜리 제품이 80%였고, 512 메가 용량을 가진 900달러 모델이 나머지 20%를 차지했다.
선호 컬러의 경우엔 은색이 검은 색보다 배는 많았다.
아무래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검은색보다는 은색이 사람들의 눈 에 쉽게 띄니 선호하게 된 모양이 라는 마케팅 팀의 분석이 있었다.
유재원을 더욱 웃게 만들어준 건 T터치폰에 내장된 앱스토어의 이용 률 보고서였다.
T터치폰부터는 유료 애플리케이 션이 앱스토어를 통해 판매된다.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게임이었지만, T 터치폰의 우월한 스펙 덕에 일반 휴대폰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의 그래픽 게임 도 즐길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3D 게임은 무리다.
T터치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2세대 제품으로 티파니 폰2에 탑재된 것보다 3배 이상의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프로세서 에 통합된 VGA 모듈에는 3D 가속 칩이 없었다. 기껏해야 2D 가속과 동영상 재생 가속 정도인지라, 3D 게임을 돌리기에는 무리였다.
그렇지만 T 터치폰 사용자들은 3D 게임이 없더라도 앱스토어를 즐겼다.
바로 T터치폰 런칭과 함께 출시 된 비주얼드라는 퍼즐 게임이 앱스 토어 매출의 일등 공신이었다.
게임은 간단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보석을 같 은 모양으로 3개를 만들면 폭발하 는 게임이었다. 단순한 룰이지만 연쇄 폭발도 있고, 4개나 5개를 동 시에 터트리면 보다 큰 폭발 효과 가 나오면서 재미를 더했다.
사실 비주얼드가 단번에 초인기 게임에 등극한 것은 게임성보다는 외적인 요소가 더 컸다. 바로 터치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한 높은 이해도였다.
T 터치폰 발표와 함께 동시에 런 칭된 게임은 수십 종에 이른다. 하 지만 비주얼드만큼 T터치폰의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와 잘 동화된 게 임은 몇 없었다.
비주얼드는 화면 속 보석을 움직 이는 게임이고, 이는 터치스크린을 100%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게다 가 비주얼드는 보석을 선택할 때마 다 본인이 무얼 클릭했는지 시각적 방법과 함께 촉각으로도 알려줬다. 터치가 잘 되면 짧은 진동을 내는 데 일명 햅틱 기능이었다.
햅틱은 T터치폰에 새로 추가된
대표적인 기능이다.
물리 버튼이 전원과 볼륨 조절, 홈 버튼이 전부인 T터치폰인지라 혹여 오작동을 할 경우 진동을 통 해 바로 감지할 수 있게 했다.
비주얼드의 혁신은 이뿐만이 아 니었다. 전화번호부로 연동되는 친 구 목록을 지원해 친구와 함께 협 동 게임도 할 수 있었고, 경쟁 게 임을 할 수도 있었다.
유재원이 ID 그룹의 새천년을 준 비한 비전 발표 행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SNS의 개념을 최초로 구 체화한 게임이 바로 비주얼드였던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유기적으 로 결합했고, 그 결과 다운로드 숫 자가 대폭발했다. 게다가 시기적으 로도 너무 좋았다.
바로 앱스토어 오픈 기념 이벤트 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