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24화 (524/1,007)

26권 8화

톡톡은 IDDC 99와 함께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개인이 인터넷에 뭔가 를 올리는 건 개인 홈페이지를 꾸 미거나, 블로그를 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전 부였다.

톡톡처럼 누군가를 팔로우하거 나, 팔로윙이 된 이들에게 단문의 메시지를 올리는 건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네티 즌들은 톡톡이 안내하는 신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TocToc! It's ME!

할리우드의 차세대 스타 디카프 리오가 톡톡을 이용해 본인의 셀카 와 함께 짧은 메시지를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 음반을 내면 빌보드 상위 권을 차지하는 뮤지션과 아티스트 들도 톡톡을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메이저 스포츠의 유명 선수들도 뒤를 이었고, 큰 명성을 가진 기자 들과 저널리스트들도 톡톡 대열에 동참했다.

-국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앞으 로 종종 톡톡으로 인사드리겠습니 다.

화룡점정은 백악관의 주인 클린 턴 대통령이었다.

이스트윙을 배경으로 클린턴 대 통령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톡톡으 로 대국민 인사를 전했다.

톡톡의 빠른 안착을 위해서 유재 원은 본인의 영향력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그 결 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유재원은 톡톡을 통해 본인의 존 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들에겐 부탁을 했고, ID 그룹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에겐 살짝 권 고했다.

부탁과 권고의 차이는 바로 강제 성이었고, 이제까지 ID 그룹이 보 이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스터플랜을 버린 유재 원은 거칠 것이 없었다.

ID 그룹의 힘은 유재원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컸다. 그리하여 존재감의 바로미터는 바 로 유명 인사들의 가입 러시로 나 타났다.

할리우드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 한 ID 엔터테인먼트 덕에 어마어마 한 팬을 거느리고 있는 배우들이 텅 비어 있던 톡톡의 가입자 리스 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기 시 작했다.

다음은 넥스트뮤직과 관련된 아 티스트가 가입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을 통해 언론 인들이나 정치인들도 톡톡에 본인 들의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클린턴 은 유재원이 가장 공들인 사람이었다.

톡톡이 단지 연예인들의 팬덤 관 리 수단이 아니라 소통의 창구로서 기능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강력 한 상징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뭐지?"

서재에서 톡톡의 모니터링 프로 그램을 통해 가입자 증가폭을 살피 고 있던 유재원은 의문을 터트렸다.

톡톡은 가입자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했다. 인증이 된 사람들과 아 닌 사람들로 말이다.

SNS가 모두 장점만 있는 건 아 니었다.

SNS 의 부작용 중 가장 큰 게 사 생활 침해였다면, 사칭도 제법 큰 문제가 된 사안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었던 유재원은 인증 정책을 서비스 전부터 시작했 다.

강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증을 신청하고 톡톡 서 비스 관리자의 검증을 통과한 이들 의 아이디 앞에는 인증된 셀럽이라 는 의미의 큼지막한 녹색 체크 마 크가 추가된다.

유재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인 증된 사람들의 숫자가 벌써 수천명을 넘어섰다.

유재원이나 ID그룹 차원에서 부 탁한 이들의 숫자는 많아 봐야 몇 백 명 수준이었는데, 이보다 몇 십 배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마치 셀럽들 사이에 톡톡을 시작 하는 게 순식간에 유행이 된 것 같 았다.

개중에는 유재원의 부탁을 받고 인증을 하는 것처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크게 보면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셀럽들은 그렇다 치고, 일반 가 입자 증가 추세도 무섭네."

셀럽들이 마중물 역할을 했고, 그들의 일상이나 생각을 궁금해 하 는 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통합 ID 의 힘이었다.

ID 그룹의 모든 사이트는 이메일 닷컴의 아이디를 공유할 수 있었다.

톡톡도 마찬가지였고, 이메일 계 정이 있으면 긴 개인정보를 입력할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가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물론 통합 계정을 사용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절차도 만들어 놨다.

하지만 대다수 사용자는 통합 아이디로 간단히 가입했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톡톡의 현 가입자 중 86%가 통합 아이디 였으니 수치상으로도 증명된 이야 기였다.

유재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 었다.

"이제 나도 해볼까."

본인의 T터치폰에서 앱스토어에 접속했고, 톡톡을 다운받았다.

그리고는 곧장 앱을 실행했고 이 메일닷컴의 통합 아이디로 가입을 완료했다.

톡톡을 통해 본인의 이름을 걸고 대중과 소통을 하기 위함이었다.

재미있는 건 터치키보드를 누르 는 유재원의 손길에서 약간의 망설 임이 있었다는 점이다.

전생에 SNS로 불지옥을 맛봤던 탓이다.

SNS의 특징이 대중과 직접 만난 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잘나갈 땐 비행기는 기 본이고 대기권 돌파하는 우주선도 능가할 만큼 칭송했지만, 추락할 땐 가차 없이 지옥까지 내려간다.

유재원의 경험도 그랬다.

언론의 왜곡으로 대기업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완성한 신기술을 탈취한 것처럼 보도되었 을 때, 유재원의 SNS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올라온 키보드 워리어들 의 놀이터가 되었으니 말이다.

칭송하는 이들과 비수를 찌르는 이들이 모두 동일 인물이진 않겠지 만, 둘 사이를 구분할 방법도 없었 다.

억울해서 잠이 안 왔고, 하루에 몇 번 씩이나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얻은 정신 적 충격으로 수명이 본래보다 몇 년은 단축된 게 확실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전생과 완전 히 달랐다.

"가입 절차는 정말 쉽네."

조그만 T터치폰의 LCD 화면이 었고, 감압식 터치라 오타가 좀 나 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 다.

그렇게 가입 절차를 완료하자 톡 톡 전용 닉네임을 설정하는 것과 인증을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나 왔다.

통합아이디의 핵심은 이메일닷컴 의 계정이고, 이걸 그대로 노출하 는 건 해킹의 위험이 있기에 톡톡은 별도의 닉네임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본인 인증 방식도 상당히 융통성 있었다.

본인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는 셀 카 혹은 공적으로 인정이 되는 라 이센스 복사본을 제출하면 되는 것 이었는데, 운전면허증이랄지, 사회 보장제도 증명서, 여권 등등 딱히 제한이 없었다.

유재원은 본인의 작업용 컴퓨터 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고, 사진 을 첨부해 업로드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됐다!"

인증 딱지는 아직 붙어 있지 않 았지만, 조금 전 설정한 닉네임이 큼지막하게 박힌 타임라인과 입력 창이 유재원을 반겼다.

"그러면…… 뭐라고 올리지?"

전성기 시절이면 날아다녔을 SNS 였다.

특히 단문의 문장을 올리는 SNS 는 유재원이 유용하게 사용했던 서 비스였다.

그런데 손을 끊은 지 수십 년이 되었기에 감이 오지 않았다.

텅 빈 입력란이 압박으로 다가왔 다.

소스코드를 입력하는 항목이었으 면 문제없이 채웠을 텐데, 참 신기 한 경험이었다.

결국 유재원은 인증을 위해 찍은 사진 하나를 올리고, '샌프란시스코 에서'라는 너무도 평범한 글귀를 입력한 다음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너무도 무난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톡톡에 동시 접속한 이들은 수만 단위였고 이들 중 유재원의 인증 글을 본 사람들은 즉각 자신의 톡톡으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일명 리트윗, 아니 리톡톡이 기 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유재원의 계정을 팔로윙 하는 사람도 급격히 불어났다. 그 결과 유재원의 T터치폰이 난리가 났다.

톡톡!

"응? 벌써?"

팔로워가 늘 때마다, 리톡톡이 될 때마다 톡톡이라는 소리가 났는 데, 유재원의 T터치폰은 톡톡 소리 를 쉬지 않고 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직도 유재원의 T터치폰이 시시 때때로 울리는 톡톡 소리에 불이 난 것을 빼면 세상은 평화로웠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ID 그룹이 이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확 실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참으 로 안심입니다.

ID톡 화상 미팅을 통해 연결된 최강욱 부회장의 목소리는 제법 상 기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슬슬 나오고 있 는 3분기 경제 지표들이 보여주는 수치가 너무 좋았다.

ID 그룹 동아시아 사업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최강욱 부회장의 얼굴에 서는 자신감 그리고 여유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었다.

IMF가 막 터졌을 때만 해도 국 가 부도라는 위기감에 얼굴이 굳어 서 펴질 줄 몰랐던 최강욱이었다.

지금도 부감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겉으로는 하나도 보이지 않 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경제 상 황은 완연한 회복세를 그리고 있었 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마이너스 4, 5%대 의 충격적인 성장률을 보였는데, 올해에는 10%대가 넘는 믿기 힘든 성장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무지막지한 성장률이었다.

여기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 가 작용했다.

이러한 요소 중 가장 크게 작동한 건 유재원의 직접적인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IMF를 통해 들어간 100억 달러, 백호 펀드를 통해 풀린 자금, 그리 고 마이크로크래딧으로 지원된 자 금이 한국의 연쇄 부도 도미노를 멈춘 결정적인 요소였다.

일시에 동원된 자금의 규모도 엄 청났지만,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낸 건 입체적인 지원이었다.

IMF 창구를 통해 나온 자금은 대기업의 급한 불을 끄는 데 대부 분 소진되었다.

백호 펀드는 대호처럼 이미 부도가 나버렸지만, 회생 가능성이 높 고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기 업들을 살리는 데 사용되었다.

마지막 마이크로크래딧은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간 서민들을 위한 귀중한 생활 자금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유재원의 활 약은 있었다.

바로 IMF의 한국사무소에 채워 진 유재원의 사람들 덕이었다.

본래 IMF는 신자유주의의 전도 사와 같았다.

가혹한 민영화에 고용 유연성 확 보를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크게 늘리는 데 힘을 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ID 인베스트 먼트 출신의 인재들이 IMF 한국사 무소의 주류가 되면서 신자유주의 기조가 상당히 옅어졌다.

방만한 운영으로 큰 손실을 일으 킨 몇 개의 공기업이 민영화되었지 만,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설사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정규직보다 많은 임금을 받게 되었 기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는 건 없었다.

여기에 일본의 몰락도 큰 힘이

되었다.

일본에 들이닥친 고베 강철 스캔 들의 후폭풍은 한국에는 훈풍이 되 었다.

일본의 조선업계에 장인정신이 빠지면, 경쟁력이 급감한다.

천연가스 운반선 건조도 한국의 조선소에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 는 물건이었고, 일본 조선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자랑했다.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신뢰도였는 데, 일본이 스스로 발목을 잡으면 서 한국의 추격을 허용하고 만 것 이다.

한국 경제가 99년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마지막 요소는 세계 경제의 활황이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일이 터진 나라에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세계 경제 전체를 보면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아니었다.

마지막에 가서 일본이 흔들렸을 때 세계 경제도 움찔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 세계의 불황으로 퍼지진 않았다.

특히 미국의 견고한 성장세는 한 국에 큰 도움이 되었다.

IT버블 붕괴가 좀 일찍 찾아왔지만, 오히려 일찍 무너진 것이 지금 에 와서는 보약이 된 모양이다.

세상이 다 망할 것처럼 비관론이 퍼졌던 나스닥은 어느새 바닥을 찍 고 반등을 시작했고, 최근엔 제법 큰 상승 랠리 중이었다.

실물 경기도 좋았다.

고용이 안정되었고, 덕분에 소비 자들의 씀씀이도 좋았다.

부동산도 꾸준히 거래되면서 완 만한 상승세를 이뤘다.

여기서 유재원은 서브프라임모기 지의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 음을 인식했지만, 아직 위험한 수 준은 아니었다.

이미 성장이 끝난 유럽이었지만, EU가 결성되고서 거대한 경제블록 을 이루자 제법 성과가 나오기 시 작했다.

다만 올해가 유로화 도입 원년인 지라 혼란이 조금 있어서 목표한 성장률 달성에는 노란 경고등이 켜 지긴 했지만, 전체적 흐름은 양호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의 특급 도 우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북한이 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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