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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29화 (529/1,007)

26권 13화

"버추어파이터 3는 무조건 우리 X박스 진영으로 가져오셔야 해요."

세가의 명성은 21세기에 접어들 면서 빛이 바랬다.

변곡점은 작년인데 야심차게 발 매한 드림캐스트라는 자체 게임기 가 쫄딱 망해버린 탓이었다.

게임기 디자인은 참 좋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의 벽이 너무나 견 고했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 어간 쉔무라는 게임의 실패는 몰 락을 가속화했다.

그나마 버추어 파이터로 이뤄놓은 혁신성은 남아 있었고, 이것을 X박스로 가져오려는 것이 유재원 의 생각이었다.

"캡콤과 코나미와도 접촉해보시 고요. 바이오하자드라는 게임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아! 철권도요."

유재원은 욕심이 많았다.

게임기의 이름을 똑같이 명명하 긴 했지만, 발자취까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 대량의 킬 러 타이틀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세가는 물론이고 일본 의 여러 게임 개발사들과 접촉해X박스용 타이틀을 만들도록 유도 할 작정이었다.

"저희들의 임무가 일본에서의 서 드파티 확보로군요."

역시 오중근은 유재원의 의중을 정확히 알아보았다.

오늘 불려온 이들 중 노트북보드 를 만들었던 한 명을 빼고는 일본 게임사들과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 었다.

유재원이 퉁쳐서 일본 담당이라 고 하니 안절부절못한 상태였지만, X박스의 메인보드 최적화를 위해 데려온 사람이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다.

하여튼 일본은 중국처럼 인맥이 최우선되는 나라는 아니다.

그래도 아예 일면식도 없는 것보 다는 경력직이 훨씬 나았다.

여기에 유재원은 능력이 검증된 서드파티라면 강력한 지원책을 아 낌없이 풀 작정이었으니, 열거된 게임 타이틀을 X박스로 가져오는 데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보았다.

"그럼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일부 터 하도록 하고, X박스 실기를 확 인해보실래요"

이어진 유재원의 제안에 오중근이 깜짝 놀랐다.

X박스가 발표된 지 얼마나 지났 다고 실기가 나왔단 말인가.

놀라움과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 도 피어났다. 오중근이 게임기를 담당하게 된 건 위에서 시키니 한 일이었지만, 이젠 게이머가 다 됐 다.

벌써 구동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과연 세상이 인정한 천재인 유재원이 만든 게임기라면 얼마나 대단할지 너무도 궁금해졌 다.

오중근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다들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났다.

유재원은 그런 이들의 모습에 웃 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비밀스러운 방으로 그들을 안내 했다.

유재원이 멀티미디어룸이라 부르 는 방은 예전 쿠타라니 켄에게 둠 을 비롯해 라이브포스피드백이 담 긴 조이패드를 보여줬던 곳이었다.

그때도 당대 최고 화질의 대형 프로젝터와 최고의 음질을 자랑하 는 전문 AV기기들이 설치되어 있 었다. 이후에도 버전 업은 늘 이뤄 졌다. 유재원은 웬만해서는 서재에 있는 본인의 작업용 컴퓨터를 가지 고 게임을 했지만, 종종 날을 잡아 서 불태울 때면 이곳을 찾기도 했 다.

물론 그때는 혼자가 아니라 티파 니와 함께일 때가 많았다.

티파니도 음악 감상이나 영화 감 상을 할 때 자주 사용했기에, 최근 엔 티파니의 인테리어 취향도 반영 되어 세련됨이 철철 넘쳐흘렀다.

"우와!"

오중근을 비롯한 다섯 명의 팀원 들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공간에선 가성비라는 단어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AV에 관심이 있었던 오중 근은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다.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는 처음 보는 모델이었지만, 크기가 범상치 않았다.

스피커는 딱 보고 알아봤다. 포 칼 사의 그랜드 유토피아 I이였다.

게임과 함께 AV에도 빠져버렸던 오중근의 드림 스피커였는데, 그걸 이곳에서 보다니.

스피커를 구동하기 위한 앰프나 각종 소스를 입력받기 위한 리시버도 범상치 않았다.

그렇지만 오중근의 시선을 한눈 에 잡아끈 건 단연 멀티미디어실 중앙에 놓인 녹색기판이었다.

"이게 프로토타입 X박스에요. 일 단 제가 IDDC 99에서 약속했던 스펙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 놓은 것이죠."

멀티미디어실의 기기들에 눈이 돌아갔던 다른 팀원들도 유재원의 설명이 이어지자, 녹색 기판에 시 선이 모였다.

딱 봐도 임시 기판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메인보드의 상당 부분은 비어 있 는 상태였는데, CPU와 GPU 그리 고 입출력을 담당하는 칩 세트 정 도만이 큼직하게 자리했으니 말이 다. 컴퓨터용 메인보드에서 큰 면 적을 차지하는 확장 슬롯 자리는 아예 슬롯 자체가 없어서 휑하게 보였다.

대신 CPU가 있을법한 자리에 큼 지막한 쿨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8기통 자동차 엔진을 본단 것처럼 큼지막한 크기에 무게도 상 당해 보였다.

또한, CPU 쿨러보다는 좀 작은

크기의 쿨러가 그래픽카드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보여도 부팅도 되고 게 임도 구동돼요. 게다가 스펙도 보 통 이상이죠. 다만 이 스펙이 확정 된 것은 아니니 유념하시고요."

마치 자식 자랑하듯 X박스 프로 토타입을 설명하는 유재원이다.

직원들이 본인을 팔불출로 볼지 도 모른다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실제 자랑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 가 높았다.

IDDC 99에서 처음 발표된 X박

스 프로젝트였고, 이후 한 달이 조 금 지난 사이에 구체적인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ID 그룹의 비상식적인 일 처리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다른 회사라면 아직도 설계 중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만들지도 않 았다.

IDDC 99에서 제시된 스펙 그대 로 CPU는 AMD의 듀얼코어 시스 템이고, 작동 속도는 800MHz다.

GPU의 경우엔 엔비디아 사의 최 신 지포스 모델이 탑재되었다.

시스템 메모리 용량은 128메가바 이트, GPU를 위한 비디오 카드 전 용 메모리는 64메가바이트다.

메모리 용량 부분에 있어서는 최 신 컴퓨터에 비해 조금 부족하다.

1999년 최신 컴퓨터의 경우엔 256메가바이트가 기본이었고, 비디 오 카드도 고급형이라면 128메가바 이트였으니 말이다.

여기에 광학 드라이브로 DVD롬 이 장착되었다. DVD롬엔 금성 전 자의 로고가 선명했다. X박스 DVD롬으로 금성 전자 제품을 채 용한 게 아니라, 컴퓨터 전문점에서 쉽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금성 전자의 것이라 채용된 것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X박스의 스펙 은 게임기 중에선 최고지만, 컴퓨 터와 비교하면 CPU만 최고였다.

출시될 2000년이라면 이보다 고 스펙 시스템의 보급률은 더 높아질 것이고, 메모리 용량이 배는 더 늘 어날 테니, 금방 뒤쳐지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온갖 응용 프로 그램의 안정적인 실행을 위한 범용 적인 시스템이고, X박스는 오직 게 임만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차별성 이 있는 만큼, 최적화의 여력이 훨씬 높았다.

유재원은 X박스 프로토타입에 대한 대략적인 스펙 설명을 마치자 마자 바로 전원을 켰다.

재미있게도 전원 스위치는 조그 만 레버를 올리거나 내리는 토글형 스위치 였다.

케이스도 없는 누드 시스템인지 라 제대로 된 스위치를 장착할 수 없었다.

덕분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준 하이테크 연구소 박사님들은 굴러 다니던 토글 스위치를 주워다 달았 다.

스위치는 구식이어도 시스템은 최신이었다.

전원이 켜진 후 파란 화면만 나 왔던 프로젝터에 바로 부팅 화면이 나타났다.

부팅 화면은 매우 간단했다. 화 면이 녹색으로 변하더니 곧 파도가 치는 것처럼 울퉁불퉁 웨이브가 일 어났고, 쩍 하면서 파열이 생겼다.

파열된 틈으로 진한 금빛이 뿜어 졌는데, 그 형태가 X자였다.

매우 단순한 부팅 화면이지만, 32비트 컬러로 렌더링한 컴퓨터 그 래픽이었기에 봐줄만 했다.

그림자의 그라데이션도 매끄러웠 고, 금빛이 뿜어지는 모양도 매우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드륵드륵.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요란하 게 나면서 부팅이 끝났고, 바탕화 면이 나왔다.

바탕화면의 모습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는 달랐다.

게임, 스토어, 설정이라는 커다란 항목이 나오는 게 전부였다.

앞으로 바뀔 여지는 충분했다. 지금 부팅된 운영체제는 소니의 플 레이스테이션 1용으로 커스텀해줬던 버전에 ME 커널을 이식하고 바 탕화면을 좀 바꾼 정도에 불과했으 니 말이다.

여러 게임기를 다뤄봤던 유재원 이기에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를 구 현하는 건 문제가 없다.

"그럼 게임 데모를 돌려볼까요."

그렇게 부팅이 끝나자 유재원은 DVD롬에 공CD를 넣었다.

모양만 공CD였고, CD라이터로 특정 데이터가 들어간 CD 였다. DVD롬에 CD가 들어가자 시스템 이 이를 인식했고, 자동으로 실행 되었다.

쿵, 쿵! 쿵!

타이틀 화면이 가슴을 울리는 효 과음과 함께 바로 튀어 나왔다.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운 글자 는 DOOM III.

ID 소프트웨어가 한창 개발 중인 둠3의 알파테스트 판이었다.

알파 버전이었지만 게임의 완성 도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 그리고 이를 더욱 화려하게 해주는 폴리곤 과 고해상도 텍스처의 향연이 전작 의 파괴적인 비주얼을 더욱 강화시 켰다.

오중근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

다.

수억 원짜리 스피커가 만들어낸 진동 때문인지, 아니면 게이머로서 의 설렘이 폭발한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했 다.

X박스의 차기 게임기 시장 제패 는 허황된 꿈이 절대 아니라는 것 이다.

몇 시간 후.

멀티미디어실, 사실은 게임방이 라고 해도 무방한 곳에서 프로토타 입 X박스로 실컷 둠3를 즐겼던 오 중근 일행이었다.

비록 스테이지 1만 구현되었고, 듬성듬성 빈 공간도 많았던 게임이 었지만 국민게임 둠답게 다들 재미 있게 즐겼다.

이후 오중근 일행과 유재원은 점 심 식사를 함께했다.

그것이 오중근 일행의 마지막 공 식 일정이었다.

아직 근무 시간이긴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넘어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어서 일찍 쉬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김대석에게 오중근 일행을 숙소 까지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오중근 일행의 숙소는 레밍턴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유재원이 선 물로 준비했던 대저택이었다.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어진 성과 같 은 집이었는데, 부담스럽다고 거절 한 이후 ID 그룹의 직원들을 위한 호텔로 개조된 상태였다.

우수 사원 포상, 혹은 오중근 일행처럼 멀리서 본사를 찾아오는 직 원들에게 임시 숙소로 내어주는 등 쏠쏠하게 활용 중이었다.

이외 동시에 ID 테크놀로지 신축 본사 한쪽에는 X박스 팀 조직이 사용할 사무실이 만들어지는 중이 었다. 유재원이 온라인 업무를 선 호하긴 해도 팀원들이 한데 모여 작업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무실이 완성되면 X박스 팀원 들을 모은 다음 오리엔테이션을 하 고서 정식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전까지 오중근 일행도 호텔에 서 지내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이 지나자, 유재 원의 T터치폰에 ID톡 알람이 울렸 다. 김대석 비서실장이었다.

-오 팀장과 팀원들이 숙소에 잘 도착했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비서실장님도 바로 퇴근하세요."

-아직 근무 시간이 남았는데 말 입니다.

"겨우 1시간이잖아요. 저도 오늘 은 집에서만 있을 거니까 돌아오실 필요 없어요. 날씨도 좋으니 부부 끼리 외식이라도 하면 좋을 거 같네요."

-그렇군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른 부하 직원들을 시켜도 될 일을 굳이 김대석에게 시킨 건 이 렇게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최강욱과의 최근 화상 미팅에서 막판에 분위기가 좀 어색해졌던 그 해프닝 덕에 유재원은 주변을 볼 여력이 생겼다.

예민해진 유재원의 레이더에 김 대석이 딱 걸렸다.

김대석은 유재원이 오작교가 되 어 결혼한 케이스였다.

아직까지도 죽고 못 사는 사이라 는데, 정작 아이는 없었다.

아이가 언제 생기느냐고 물어 보 는 건 오지랖이겠지만, 그동안 김 대석에게 너무 과중한 일을 준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8시간 근무 가 보장이 된 상태고, 이제는 계약 직 임원들도 챙기는 단계였는데,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김대 석만 예외였던 탓이다.

비서실에 인력을 좀 더 충원해서 수행 비서를 여러 명 두는 것도 괜 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일인데, 일만 하다 죽을 수는 없는 거 아닌 가.

다만 유재원 본인은 예외였다.

김대석을 일찍 퇴근시킨 유재원 은 서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절전 모드 상태였던 컴 퓨터를 깨우고 업무에 복귀했다.

멀티미디어실에서 직원들이랑 좀 놀다 보니, 예정보다 업무 처리가 살짝 늦어졌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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