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5화
경제성! 강력한 성능! 재미있는 게임!
무조건 둠!
질문을 던지면 지목하기 전까지 답이 없는 한국과 다르게, 우후죽 순 답변이 쏟아졌다.
유재원은 팀원들로부터 답이 나 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줬다.
그렇게 몇 분 중구난방으로 떠드 는 이야기를 들어주던 유재원은 다 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실망인데요. 디자인을 말하는 분이 없다니요."
디자인!
팀원들이 말했던 요소들은 하나 도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요소였다. 여기에 유재원은 디자인을 추가했 다.
21세기는 디자인의 시대였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보기 좋은 게 더 잘 팔리는 시대다.
심지어 기능이 좀 모자라도 디자 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물건이 월 등히 잘 팔린다.
과거 X박스는 그 디자인이 부족 했다.
검은색 본체는 총알을 튕겨낼 만 큼 단단했다.
오죽하면 고장이라는 건 전혀 모 르는 물건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다.
문제는 그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너무도 빼어난 디자인으로 나온 덕에 더더 욱 비교가 되었다.
이러한 비판에 X박스 차기작은 디자인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환골탈태라고 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너무나 디자인에 신경을 쓴 탓에 하드웨어 결함을 안게 되 었다.
발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치명 적인 문제가 터져버렸다. 일명 죽 음의 레드 링이라는 문제였다.
유재원은 전작의 전철을 밟지 않 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기에 디자인에 듬뿍 힘을 주 려고 했다.
"특히 패드가 무척이나 중요합니 다. 아직도 시각과 청각으로 충분 하다고 생각해서 촉각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촉각 역시 재미에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한 감각이거든요."
과거 X박스가 그나마 호평을 받 은 건 패드였다.
내구성도 내구성이지만, 인체공 학적인 디자인도 좋았고, 진동 기 능도 훌륭했다.
덕분에 X박스가 없는 사람들도 패드를 구매해 컴퓨터에 연결해 사 용할 정도였다.
그 투박한 본체 디자인은 절대 반대였지만, 패드만큼은 계승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현재 X박스 팀을 꾸리 면서 힘을 준 것이 안드로이드 사의 하드웨어 사업부를 맡고 있던 데이비드 커렌더를 하드웨어 팀장 으로 모셔온 것이었다.
"자, 그러면 본격적인 워크숍을 시작해 볼까요?"
대략적인 방향 설정을 마친 유재 원은 바로 심화 과정으로 돌입했다.
바로 개별 팀과의 1대 다 면담이 었다.
조금 전 전체 회의는 공감대 형 성이었다면, 개별 미팅에서는 각 팀마다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임무 를 줄 예정이었다.
제일 먼저 유재원과 대면한 건
역시 하드웨어 팀이었다.
"회장님의 발표, 감명 깊었습니 다. 그런데 우려가 되는 사안이 하 나 있습니다."
유재원과 대면한 데이비드 커렌 더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뭔가요?"
"X박스의 과도한 스펙입니다."
"상당히 고스펙이긴 하죠."
"게다가 회장님께서 300달러 이 하라고 벌써 가격을 못 박아 놓으 시기도 했고요."
유재원의 질문에 제일 먼저 경제 성이라고 이야기한 사람답게 데이 비드는 X박스 프로젝트의 최대 약 점을 지적했다.
AMD, 엔비디아와 공급 계약은 거의 사인 직전까지 왔다.
한 번에 1천만 개씩 대량으로 계 약하기로 하면서 가격을 많이 낮추 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이 400달러가 넘었다.
여기에 메모리 칩도 필요하고, 하드디스크도 넣어야 하고, 랜카드 도 넣어야 했다.
그리하여 데이비드가 산출한 부 품 원가는 무려 600달러 후반대였 다.
시간이 좀 지나 반도체 수율이 오르고, 대량생산이 되면 가격이 좀 떨어지겠지만, 초반 1년 동안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손해를 보는 만큼, 경쟁 사에도 출혈 경쟁을 강요한다는 전 략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나마 ID 그룹 임직원들이 유재원의 결정에 따라주는 건, 이제까 지 유재원이 보여준 성공의 경험도 있었지만,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 었다. ID 그룹의 손해만큼 소니는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ID 그룹과 소니 그룹의 사업 영 역은 게임은 물론 영화, 음반, 전자 까지 겹치는 게 상당히 많았다. 게 임 산업의 부진은 곧 그룹 전체의 위기로 확대할 수 있고, 이는 곧 ID 그룹 전체의 이익과 직결된다.
결정적으로 소니는 이 경쟁을 피 할 수 없다.
출혈 경쟁을 피한다면 차기 게임 기 시장은 ID 그룹에 헌납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완벽한 외통수 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너무도 강 력한 범용성이죠."
범용성이 문제라니?
이어진 데이비드의 추가 설명을 들어보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무리 커스텀 을 해도 PC와 구조가 너무 동일했 기에, X박스를 사다가 개조할 사람 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 였다.
게임기 본체를 팔아 수익을 내는 건 닌텐도 같은 회사나 가능한 일이었고, X박스는 게임 DVD를 팔 아서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런데 손해를 보고 파는 본체를 구매한 이들이 정작 게임은 안 하 고, 개조해서 PC처럼 사용할 가능 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를 막을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데이비드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X박스 팀에 발탁이 되고서, 시애 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올 때 까지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시키지 않아도 X박스 프로젝트
에 대해 공부했고, 단점을 파악함 은 물론 대비책까지도 가지고 왔다.
다만 그 방법이 유재원의 마음에 쏙 들진 않았다.
인터페이스의 비표준화 그리고 암호칩이었기 때문이다.
개조를 위해 바이오스를 수정하 면 기기 자체를 벽돌로 만들어버리 자는 게 데이비드의 의견이었다.
또한, 부품의 전용을 막기 위해 PC와는 다른 인터페이스로 구성을 하자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게요."
무시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유재원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대신 유재원은 데이비드에게도 숙제를 주었다.
압도적으로 세련된 디자인을 가 져 오라는 어려운 숙제였다.
유재원과 만난 다음 팀은 퍼스트 파티팀이었고, 팀장은 마르커스 루 이즈라는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마르커스의 이전 직책은 ID 엔터 테인먼트의 게임 파트 마케팅 총책 임자였다.
맡은 일의 특수성 덕에 ID 엔터 테인먼트 소속 개발사들과 매우 깊 은 친분이 있었다.
인사평가도 당연히 매우 좋았다. 덕분에 유재원과 일면식도 없었던 마르커스가 퍼스트파티 담당이 될 수 있었다.
유재원의 의도는 간단했다.
ID 엔터테인먼트 산하 게임 개발 사들이 내놓는 게임 중에 가능한 많은 것들을 X박스용으로 포팅할생각이었다.
이미 개발 중인 둠3는 물론이고, 블리자드의 디아블로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도 X박스 용으로 발매를 할 예정이다.
"그런데, 회장님. 이미 발매된 게 임을 X박스용으로 포팅한다면 너 무 단조롭지 않겠습니까?"
유재원의 계획을 듣고서 마르커 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게임업계에 오래 있던 사람 답게 감각이 있었다.
이미 출시된 PC게임을 X박스용 으로 포팅하는 건 양날의 검이었다.
PC보다 훨씬 저렴하게 즐길 수 있긴 하지만, 신선한 감은 없었으 니 말이다.
그렇기에 킬러 타이틀이 필요했 다. 이미 헤일로라는 강력한 콘텐 츠를 확보했지만, 유재원은 여기에 하나를 더 준비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죠. 혹시 드라곤볼 아세요?"
"일본 애니메이션 말씀이신가요?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제 아이 도 매우 좋아하는 콘텐츠입니다."
"그 드라곤볼의 게임 라이센스를 우리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네?"
순간 마르커스는 유재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드라곤볼의 게임 라이센스라니. 그건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신 기루 같은 것이었다.
반다이라는 회사가 일찌감치 확 보해서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으 니 말이다.
덕분에 게임의 완성도가 형편없 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공략의 전리품으로 집영사가 신일본 투자은행에 넘어 오면서 반다이와의 독점적 계약을 파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집영사가 가지 고 있는 콘텐츠를 애니메이션부터 게임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루트가 만들어졌다.
헤일로, 드래곤볼. 그리고 둠3.
이것이 X박스 성공을 위해 유재 원이 준비한 트리플 타이틀이었다.
마르커스와 퍼스트파티팀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도 어제 쿠타라니 켄의 인터 뷰를 보았다.
소니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이미 X박스 프 로젝트는 이미 하늘 위를 날고 있 었다. 오히려 소니가 이를 따라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명복을 빌어주는 게 더 인간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마르커스였다.
#384. 21세기 테크노피아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가을이 온지도 어제인 거 같은데, 이젠 바람도 제 법 쌀쌀해졌다.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 도 이제 딱 일주일이 남았을 만큼 겨울도 이제 코앞에 온 것이다.
최근 유재원은 초조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일 이 아니었다.
만약 레밍턴이나 최강욱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깜짝 놀랐을 것 이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의 성적표는 역대 최고를 찍고 있었으 니 말이다.
안드로이드 ME는 유재원의 우려 가 무색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인텔과 AMD는 새로운 CPU와 함께 안드로이드 ME를 광고했다.
진정한 64비트 CPU 그리고 이 를 지원하는 진정한 64비트 운영체 제로 말이다.
32비트 응용 프로그램에 대한 완 벽한 호환성을 확보한 덕에 커널업그레이드에 대한 혼란은 거의 없 었다.
다만 일반인 중에는 64비트 기능 을 온전히 쓰는 건 아직 10%도 되 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대신 기업 시장에서의 호응은 매 우 좋았다.
4기가 메모리 문제는 개인에겐 큰일은 아니었지만, 기업이나 대형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는 조직에는 당면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대형 인터넷 업체들이 여럿 생겨 났고, 이들의 서버에 수만, 수십만 이 몰리는 건 이제 평범한 일상이었다.
당연히 대량의 메모리가 필요해 지는 상황이었다.
64비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빠르게 안착했다.
ID 오피스 ME 역시 마찬가지였 다. 64비트 버전도 탑재했고, 덕분 에 대량의 데이터도 빠르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끊임없는 혁 신으로 기업에서 요구하는 신기술 이 더해지면서 생산성이 더욱 올라 갔다.
뉴에그3와 i웍스 2세대도 뜨거운 반응이 몰아치고 있었다. 가정용고급형 컴퓨터로 자리 잡은 뉴에그 시리즈의 명성은 여전했다.
일반 대기업 컴퓨터보다 100만 원은 더 비싸지만, 끝판왕인 디자 인 하나로 엄청난 팬층을 형성해버 렸다.
디지털 콘텐츠 생산자에게 필요 한 성능을 모두 갖춘 i웍스도 마찬 가지였다.
본체만 500만 원 후반대에서 시 작하는 I웍스였다.
주문할 때 부품을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는 탓에 마음만 먹으면 1 천만 원은 가뿐하게 넘기는 가격을 자랑하기도 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가성비는 형편 없는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진정 한 가성비는 시간이었다. 데드라인 전에 수정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느 냐? 프레임 한 컷이라도 더 렌더링 을 해낼 수 있느냐는 곧 수입으로 결정이 된다.
i웍스 2세대의 생산성은 개인용 워크스테이션 중 최고였다.
더욱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점 점 과부하가 걸려 성능이 떨어지고, 안정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프로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복잡한 영상 편집 중에 다운이라 도 되면, 그야말로 제대로 일하기 힘들어지니 말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덕 에 i웍스는 예약을 해서 받아야 할 실정이었다.
ID 일렉트로닉스 컴퓨터 생산 라 인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중 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수요가 밀 린 탓이다.
ID 그룹의 순항은 IDDC 99에서 발표한 신제품뿐만이 아니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케이블 가입자는 어느덧 1,500만 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져서 이제 단조로운 공중파만 보기엔 너무도 따분해졌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드라마, 쇼프로그램 등 둥 양질의 콘텐츠를 보려면 케이블 TV 가입은 필수였다.
타임플릭스 가입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9달러만 내면 등록된 모 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 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었다.
타임플릭스의 보급이 제대로 되 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가정용 프로젝터의 판매량이었 다. 타임플릭스가 없던 시절과 지 금을 비교하면 배 이상 차이가 났 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임플릭스가 켜 진 셋톱박스와 프로젝터를 연결하 기만 하면 영화관 부럽지 않은 화 면을 즐길 수 있었다.
T터치폰 역시 날개가 돋힌 듯 팔리고 있었고, 라이브팟의 누적 판매량도 제법 커다란 수치가 되었 다.
한국에서 백호 펀드로 인수한 기 업들도 한국 경제가 나아지면서 성 과를 내놓기 시작했고, 신일본 투자은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ID 그룹은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가고 있었다. 당연하게 도 유재원이 느끼는 초조함은 비즈 니스 측면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서 온다는 이야기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