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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36화 (536/1,007)

26권 20화

야웅!

유재원이 한창 컴퓨터 앞에서 열 을 올릴 때, 선 굵은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며칠 전 새 식 구가 된 디디가 서재의 문턱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재원을 빤히 보고 있었다.

"뭐냐?"

야웅?!

디디는 고양이였기에 유재원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일단 말귀는 알아듣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다만 일반적인 날렵한 몸매의 고 양이와 달리 통통한 체형이었고, 성대에도 살이 쪄 있는 모양인지 울음소리가 야웅이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디디라는 이름 대신 아웅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티파니가 디디라고 고집했기에 뜻 을 접었다.

디디는 티파니가 데려온 고양이 다.

티파니의 집 차고에 숨어 살던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품종은 노르웨이 숲으로 누군가 기르다가 버린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1년 전쯤에 새끼를 여 럿 낳았다고 한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티파니가 돌봐줬는데, 어느 날 갑 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디디만 빼고 말이다.

태어날 때 좀 허약하게 태어난 탓에, 다른 새끼들처럼 어미를 따 라가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이후 티파니는 디디를 모시는 집 사가 되었고, 디디는 티파니의 극 진한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허약하다고 해서 잘 먹였다는데, 덕분에 별 탈 없이 자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만 너무 잘 먹이다 보니 일반 고양이보다 통통해졌고, 울음소리도 뭔가 달라졌다.

더욱이 아빠 고양이의 품종이 뭔 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노르웨이 숲 고양이들과는 좀 다른 모양새로 다리가 좀 짧았다.

유재원도 고양이가 생긴 게 나쁘 지 않았다.

출근길에 나설 때 옷에 고양이털 이 한두 가닥 묻어 나오는 게 문제 였지만, 털에 대해 알레르기는 없었다.

오히려 자택 근무를 하면 가끔 적적할 때가 있었는데, 디디가 오 고 나서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 이 한 번도 없었다.

"디디야! 재원이에게 밥 먹으라 고 전해줬어?"

곧이어 나타난 티파니가 야웅에 담겨 있던 의미를 풀어줬다. 저녁 밥 먹으라는 말이었다.

유재원도 급한 일은 다 끝냈기 에, 컴퓨터를 바로 대기 모드로 전 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란한 한때였다.

1999년 공포의 마왕이 내려와 지구를 끝장낼 거라는 예언이 무색 해질 만큼 평화로운 겨울의 밤이었 다.

2000년 1월 3일.

ID 그룹은 전 계열사 사장이 주 관하는 시무식과 함께 새해를 맞이 했다.

매스컴, 인터넷에서 그렇게 이야 기했던 새천년인데, 막상 그날이 오자 특별한 일은 없었다.

유재원이 체감할 수 있었던 변화 는 며칠 전 있었던 새해맞이 행사 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 진 것 정도가 전부였다.

며칠 전 레빈의 경고대로 샌프란 시스코 지역 신문인 캘리포니아 와 치에 ID 그룹의 명암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역시나 레빈의 보고대로 ID 그룹 의 성공 신화를 조명하는 듯하면서, 편중된 인종 분포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하는 기사였다.

안타깝게도 큰 반향은 없었다.

미국의 유서 깊은 유색인종 차별 에 있어서 아시아의 비중은 너무도 작았으니 말이다.

만약 흑인을 차별했다고 하면 엄 청난 여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 만, ID 그룹의 정직원 인종 분포는 미국 평균보다 훨씬 균일했으니 말 이다.

임금에 대한 차별 역시 오직 성 과만으로 이뤄졌다.

그렇다고 성과가 미미한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1999년도 결산과 함께 지 급된 보너스 파티는 기본 보너스를 깔고서 그 위에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니 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죽어라 성과를 내면 되는 것이고, 일과 휴 식의 밸런스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 도 무방한 회사가 ID 그룹의 계열 사들이었다.

결정적으로 밸런스를 선택했다고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ID 그룹의 인건비 비중은 실리콘 밸리 기업 중 최고였으니 말이다.

덕분이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IT 기업 중에 구직자들이 가장 선망하 는 기업으로 ID 그룹이 등극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동시에 언론들은 ID 그룹의 신년 사에 주목했다.

매년 유재원이 했던 한 해의 비 전 선포는 단지 ID 그룹 내에만 영 향을 주는 게 아니었다.

IT 업계 전체에 울림을 자아내는 화두였다. 작년 SNS에 대한 비전 역시 틀리지 않았다.

톡톡은 최고였고 비슷한 서비스 가 우후죽순 나오면서 인터넷의 판 도를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언론 은 물론이고 IT 업계 사람들의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올해에는 시스템 통합과 인공지 능 분야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할 겁니다."

역시나 유재원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ID 테크놀로지 본사에서 유재원 의 실물을 마주한 사람이나, 사내 방송을 통해 멀리서 시무식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나 다들 똑같이 머릿 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시스템 통합이라니?

말은 간단했는데, 선뜻 의미를 파악하는 건 어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유재원이 말한 통합은 어 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하 나의 서버 시스템에 ID 그룹의 모 든 인터 서비스 그리고 업무 처리 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은 여러 가지의 서버 로 나뉘어져 있었고, 계열사마다 업무처리를 하는 방식과 전산화의 방법도 저마다 달랐기에 들고 나온 이야기였다.

몇 년 전 도입된 ERP도 계열사 마다 활용의 범위가 다 달랐다.

그나마 이메일과 ID톡으로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전산처리를 했 지만, 이젠 한계라는 게 유재원의 평가였다.

"올해 안에, ID 그룹의 모든 서 비스 그리고 업무처리 시스템은 하 나의 서버,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 벽히 통합할 겁니다."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 라, 할 거라고 말했다.

이미 사장단들과 이야기도 끝났 다. 올해 안에 무조건 통합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열사 간의 소통 강화, 그룹 전체의 자원을 한 번에 파악하기 수월하다는 것, 이를 통해 거대한 전략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열거하지 않은 수많 은 장점은 더 있다.

이러한 통합 시스템은 X박스 프 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간절해졌다.

유재원은 X박스 프로젝트를 수 행하기 위해 TF팀을 구성했고 전 문 부서에서 사람들을 차출해 조직 을 만들었다.

비록 구조가 간단한 비디오 게임 기지만 새로운 시스템 하나를 대량 으로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은 상 당히 거대한 과제였다.

유재원은 말 한마디로 끝낸 지시 였는데, 실무진 레벨에서 이를 수 행하기 위해선 수많은 절차가 필요 했다.

이를테면, X박스에 장착되는 DVD롬은 현재는 ID 일렉트로닉스 의 가전 부문에서 생산했다.

일단 ID 그룹이란 깃발 하나로 뭉쳐 있긴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아직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 었다.

덕분에 제품을 주문할 때에도 외 부 회사와 소통하는 것처럼 복잡한 서류가 오고갔다.

시간이 생명인 프로젝트였다.

올해 E3쇼에서 시스템을 보여주 겠다고 못을 박아 놨다.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X박스는 하드웨어 설계 도 진작 끝났고, 디자인도 완성됐 다.

게임만 지원하는 커스텀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도 컴팩트하게 잘 뽑 혔다.

특히 3D라이브러리인 글라이드X 는 X박스용으로 따로 기능을 추가 하고 커스텀 하드웨어에 맞게 튜닝 을 했다.

글라이드X를 분리한 이유는 게 임 성능의 향상과 함께 X박스용 게임이 PC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구동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PC의 가장 큰 단점이 불법 복제 다.

인터넷 게임이 대세가 된 덕에 불법 복제는 조금 줄긴 했는데, 완 전 박멸된 건 아니었다.

더욱이 콘솔게임은 싱글플레이가 많아서 불법 복제에 치명적이었다.

소니가 안드로이드 진영을 이탈 한 명분으로 삼았던 게 쉬운 불법 복제 때문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아예 글라이 드X 자체를 PC용과 X박스용으로 분리해 불법 복제를 줄여보고자 한 것이다.

하여튼, X박스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시스템 통합의 필요성을 강 하게 느꼈고, 유재원은 올해 통합 을 끝내버리겠다고 확정을 지었다.

다만 통합에 단점도 존재하는 건 인정했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만큼, 보안체계 하나가 뚫리면 다 뚫리게 된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었다. 시스템 장애가 생길 경우, 그룹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치명적인 문제 가 발생할 일은 매우 희박했다.

인터넷 업계 1위인 ID 그룹에는 온갖 해커들의 공격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통합 아이디로 사용되는 이 메일닷컴의 경우엔 그 정도가 심각 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뚫린 적은 없었다.

유재원도 컴퓨터에 관해서 보통 능력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인터넷 보안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들로 꾸린 카스퍼스키 팀 은 드림팀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욱이 시스템 통합은 빠르면 빠 를수록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합에 드는 비 용이 점점 늘어나고, 직원들이 구 식 시스템에 고착화되면 이를 고치 는 것이 더 힘들어지니 말이다.

또한, 시스템 통합을 해야 할 이 유는 또 있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습니다."

이어진 인공지능 이야기에 ID 테 크놀로지 본사 대강당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통합이이야기가 나왔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이 실리 콘밸리에서 중요 이슈로 떠오른 건 상당히 오래된 일이었다.

컴퓨터가 등장할 때와 비슷하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컴퓨터의 최대 장점은 반복 작업 의 빠른 수행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 았다. 보다 많은 일을 컴퓨터를 통 해 해결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벤처기업 중에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회사들 도 여럿 있었지만, 아직 기초 단계 였고, 상용화는 눈에 보이지도 않 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인공지 능을 꺼낸 것이다.

컴퓨터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인공지능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기 에 대강당에 모인 ID 테크놀로지 본사 직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ID 그룹은 벌써 2개의 인공지능 알 고리즘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유재원의 폭탄선 언.

ID 테크놀로지 직원들은 서로 얼 굴을 돌아보며 '우리가?'나 '언제?' 와 같은 말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ID 테크놀로?지 직원들은 유재원 이 요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 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인공지능에 관해 연구한 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하이테크 연구소 역시 마 찬가지 였다.

"욕설 필터링 시스템, 이미지 검 색 알고리즘. 알고 보면 모두 인공 지능 기술이 적용된 기술입니다."

유재원은 ID 그룹의 오랜 비밀 중 하나를 공개했다.

욕설 필터링 시스템은 2CH.com 이 만들어졌던 1992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서비스였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에 가장 큰 단점이 저열한 감정의 분 출, 그중에서도 욕이라는 걸 잘 알 고 있던 유재원은, 욕을 필터링한 다는 명분으로 모니터링 프로그램 을 만들었고, 사용자가 게시글, 혹은 댓글로 욕을 올리면 자동을 '***'로 처리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에 이르러 욕설 필터링 시스 템은 ID 그룹의 인터넷 서비스 전 체에 적용된 상태였는데, 작년에 시작한 따끈따뜬한 톡톡에도 적용 되었다.

"욕설 필터링의 작동 알고리즘에 대해 아시는 분?"

유재원은 대강당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차단이려나?

그중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 다.

네거티브 차단이란 간단하게, 욕 을 할 때 사용하는 키워드를 데이 터베이스로 만들고, 해당 단어와 일치되었을 때 차단하는 방식이다.

간편하고 확실하다. 결정적으로 시스템 리소스도 많이 소모하지 않 는다.

-설마!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 간 단한 방법을 쓸까?

반박이 바로 이어졌다.

유재원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만큼, 목소리도 컸고 지지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네거티브 차단 방식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네거티브 차단, 정확합니다."

유재원의 말에 웅성거림이 커졌 다.

네거티브 차단 방식이면 인공지 능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니 말이 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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