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권 13화
"우리 때문에 먼 길 오시게 해서 미안하네요."
"별말씀을. 회장님과 저희의 인 연은 보통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정도 수고는 당연하죠."
유재원의 말에 마화텅이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먼 길을 왔다는 건 유재원 부부 뿐만이 아니라 마화텅에게도 적용 되는 이야기였다.
마화텅이 이끄는 텐센트 본사는 상하이가 아닌 중국의 남쪽 끝인 광저우 선전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재원과 만나기 위해서 마화텅 도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까지 날아 와야 했다.
그렇지만 텐센트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 싶 을 정도로 ID 그룹에 편중되어 있 었다.
현재 텐센트의 주력은 게임과 메 신저 였다.
게임에서는 워크래프트와 스타크 래프트가 주력이었고, 메신저인 QQ는 ID톡에 스킨만 바꾼 것에 불과했다.
숫자로 보면 3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텐센트는 중국의 수많은 IT 기업 중에 가장 빠르게 성장하 는 회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워크래프트 시리 즈가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선견지명 덕에 워크래 프트 합본 판매량이 신기록을 찍었 습니다."
"오 대단하네요."
담담한 유재원의 반응과 달리 마화텅은 2천만 장이란 숫자에 잔뜩 흥분했다.
중국에서 유재원을 만난 것 자체 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떨어질 줄 모르는 판매량은 그의 기대치를 훌 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정품 구매에 소극적이다 못해, 왜 정품을 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이었다.
그렇지만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정품을 구매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 가 있었다.
바로 멀티플레이와 정식 레더 때문이었다.
블리자드 게임은 싱글 미션도 대 단했지만, 핵심은 멀티플레이에 있 었다.
정품이 아니면 배틀넷에 접속할 수가 없었다.
숨은 공로자는 PC방이었다.
중국의 PC방은 한국과 규모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100석이 넘었 고, 200?300석 규모의 PC방도 많 았다.
어떤 곳에서는 1천 석이 넘는 메 가톤급 규모의 PC방도 있었다.
시설은 매우 열악했지만, 그런 PC방에 사람들이 가득할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이러한 PC방들은 불법으로 크랙 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면서 도 게임만큼은 정품을 갖춰놓았다.
마지막으로 판매량을 이끈 요소 는 완벽한 중국어화였다.
북경어, 광둥어.
문자와 음성까지도 완벽하게 2가 지 중국어에 맞췄고, 게임 속에 등 장하는 아이템이나 각종 기술도 중 국인의 눈높이에 맞췄다.
덕분에 2천만 장 판매라는 신기 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
흥분한 마화텅에 비해 유재원이 비교적 덤덤한 건 원래 워크래프트 의 글로벌 판매량이 4,500만 장 정 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크래프트가 가장 인기 있는 나라는 중국이었다.
그러니 전 세계 판매량의 반이 중국에서 나온다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2천만 장 판매고 달성 시점 이 이른 건 고무적인 일이긴 했다.
4,500만 장을 팔아치운 건 워크 래프트3에서 달성한 기록인데, 지 금은 1, 2의 합본만으로 이룩했으 니 말이다.
물론 이번에 발매된 워크래프트 2는 3의 스토리까지 대거 포함하고 있고, 그래픽 강화를 통해 오리지 널 3보다 훨씬 나은 퀄리티를 자랑 한다는 차이가 있긴 했다.
반면 마화텅은 2천만 장이라는 숫자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는 전략적 판단까지 내렸다.
마화텅은 거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야망을 실현할 능 력도 있었다.
텐센트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도 바로 찾아냈고, 그것이 ID 그룹과의 파트너쉽 강화라는 결론 이었다.
그것은 바로 ID 그룹의 정식 중 국 유통책으로 텐센트가 되는 것이 었다.
마화텅은 직접 진출에 서두르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ID 그룹은 이상하게도 중국 진출 소식이 아예 없다는 걸 감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마화텅에겐 희소식이었다.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말고 도 ID 그룹이 만들어내는 각종 소 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중국 의 수요는 대단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판권이라 든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T터 치폰과 같은 제품의 중국 정식 유 통망이 된다면 텐센트는 어떤 위기 에도 쓰러지지 않을 완벽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화텅이 이번 유재원 부부의 상하이 관광에 공을 들인수준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야말로 최선의 대비를 했다.
유재원과 티파니의 취향을 알아 내 관광 코스를 짰고, 숙소도 제대 로 잡아놓았다.
준비된 식사도 대륙의 기상을 제 대로 보여주도록 힘을 주었다.
안타까운 건 유재원 부부의 상하 이 체류 기간이 겨우 1박 2일에 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최소 3일 이상 을 보냈지만, 중국은 사업장이 없 었기에 짧은 관광만 마치고 출국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화텅은 본인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를 준 비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유재원 부부의 상하이 여행은 매 우 호화로웠고, 동시에 상투적이기 도 했다.
방문한 장소가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와 난징루 보행가, 상하이 박물관, 인민 광장이었으니 밀이다.
그나마 특색이 있었던 곳이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 헌화를 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빼곤 특별할 것 없는 코스였던지라, 파 워블로그닷컴의 상하이 게시물에 달린 댓글도 적었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거 의 실시간으로 파워블로그닷컴에 게시물이 올라가는데, 금강산에 비 하면 이번 상하이는 너무 평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재원에겐 이 모습 자체 도 특별했다.
2000년의 상하이는 과거의 중국 과 미래의 중국이 공존하는 공간이 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이 기억하는 전생의 화려 한 상하이의 모습도 있었고, 기억 에 없었던 미개발 지역의 모습은 처음 본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후 일정을 마치고 숙소 로 돌아오니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 만찬은 상하이 호텔의 최상급 룸인 프레지덴셜룸에 딸린 9평 정도 되는 작은 식당에서 진행되었 다.
상하이 사람들이 자주 찾는 대중 적인 음식점도 괜찮았는데, 마화텅 이 본인이 대접을 하겠다면서 이곳 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밥만 먹고 마는 게 아니 라, 유재원 부부에게 프레지덴셜룸 전체가 숙소로 주어졌다.
규모는 작았어도 청나라 황실 스 타일로 고급스럽게 채워진 인테리 어 덕에 제대로 대접 받는다는 느 낌은 확실했다.
준비된 음식도 너무 기름지거나 너무 맵지 않은 유재원과 티파니의 입맛에 맞춰진 것들이었다.
숨겨진 손님이 등장한 것은 가벼 운 음식으로 입가심을 하고, 본격 적인 음식과 술이 나오기 직전이었 다.
VIP의 정체는 중국 공산당 중앙 군사위를 역임하고 있는 후진타오 부주석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에 의해 유 재원의 오른쪽에 후진타오 부주석 을 위한 자리가 추가되었다.
"내가 너무 늦은 거 아닌지 모르 겠구려."
인사 후에 자리에 앉은 후진타오 부주석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마화텅 사장이 만찬에 큰 기대 를 하라며 자부하기에 무슨 거창한 음식이 나오려나 싶었는데, 부주석 님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떠오 르는 중국의 차기 지도자님을 뵙게 되어 제가 더 영광입니다."
텐센트가 200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한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의 전 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만 중국 공산당에서 누구의 손 을 잡고 있었느냐 하는 건 의문이 었는데, 후진타오가 등장하면서 그 퍼즐이 완전히 풀린 것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군사위 부주석 인 후진타오는 2002년 11월에 당 총서기에 오르면서 중국의 5대 최 고 영도자가 된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실권을 행사 하고 있을 것이다.
군사위원회 부주석이라는 자리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중국은 총에서 권력이 나온다 고 믿는 이들이 건설한 나라였으니 말이다.
전 세계가 유재원의 거침없는 행 보로 인해 수많은 후폭풍이 일어나 고 있지만, 중국의 경우엔 워크래 프트 합본이 많이 팔렸고,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 복제품이 범람하고 있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니 후진타오 부주석은 예정 대로 2002년 11월부터 중국의 일 인자가 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차기 지도자에 오른 후진타오는 IT 기업들의 지원에 도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알리바바, 바이두 그리고 텐센트와 같은 기업들이 크게 성장 했다.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 개방을 완성하고 대국 굴기를 이룬 괜찮은 지도자라는 것이 유재원의 간단한 평가였다.
한 시간 뒤.
티파니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먼 저 식사 자리를 뜨고 나서, 마화텅 이 본론을 꺼냈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판매량으 로 우리 텐센트의 탄탄한 유통망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봅니다."
"그래서요?"
"텐센트를 중국의 정식 유통사로 선정해주십시오. 텐센트의 탄탄한 유통망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나 클라우드 시스템, T터치폰 등등, ID 그룹의 그 어떤 제품이라도 중 국에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마화텅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로 머릿속에 그리던 사업 계획을 말했다.
i웍스 노트북까지 펼쳐 보이면서 간단하게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
그러면서 관공서, 기업 그리고 PC방에 정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가 100% 보급시킬 수 있다는 자신 감을 보였다.
하긴, 옆에 앉은 후진타오가 제 대로 밀어준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천하의 후진타오라도 중 국 정부의 전산 시스템을 미국산운영체제로 도배하는 건 어려울 것 이다.
중국 공산당 안에는 후진타오에 반대하는 세력도 상당한 수준이었 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자체 개발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 력했다.
마화텅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는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격 이었다.
"중국의 개방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오. ID 그룹도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준다 면 유 회장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 두겠소."
후진타오가 마화텅을 거들었다.
"물론입니다. ID 그룹도 중국의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습 니다. 특히 후진타오 부주석님처럼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가 이끈다 면 G2에 등극하는 건 순식간이겠 지요."
유재원도 둘의 장단에 합을 맞춰 주었다.
물론 중국의 직접 진출에 대한
유재원의 마음이 변할 일은 없지만, 마화텅의 제안대로 품목을 늘리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텐센트에 유재원의 지분 은 반이니 텐센트의 성장이 곧 유 재원의 성장이었다.
문제는 후진타오의 다음에 국가 주석에 오르는 시진핑이었다.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이지만, 시 진핑에겐 자본주의 논리는 전혀 고 려의 대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밉보이면 중국인 창업자들도 쫓 겨나는 판인데, 외국인에 대한 지분 보장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텐센트에 대한 투자를 늘 리더라도, 시진핑 시대가 되면 비 싼 값에 처분하는 게 바람직할 것 이다.
"아, ID 그룹은 금융 부분에도 세계적인 회사를 보유했다고 알고 있소. ID 인베스트먼트였나? 지금 중국에 취약한 것이 금융 부분인데,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ID 인베스 트먼트가 들어와 선진 기술을 전파 해준다면, 특별히 신경을 쓰겠소."
이어진 후진타오 부주석의 말이 었다.
"아, 금융 부분 말씀이십니까?"
제조업이나 연구 개발이라면 달 라질 건 없지만, 금융이라면 이야 기는 달라진다.
유재원의 눈빛이 반짝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