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68화 (568/1,007)

28권 2화

청와대는 비단 재벌들뿐만이 아 니라 수많은 기업, 조직들로부터 온갖 청탁이 다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거대하게 오는 것은 대한일보 건과 일성전자 건이었다.

그나마 대한일보는 ID 그룹이 동 원한 불도저로 사택이 밀려버리고 나서 좀 약해졌지만, 이제 곧 자기 차례임을 직감한 일성전자는 최현 희 회장 구명을 위해 전방위적인 압력이 밀려들고 있었다.

불호령을 받고 있는 비서관들 역시 온갖 부탁을 하는 지인들부터, 대기업 간부들 그리고 정치인들의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그런데 한광욱의 말처럼 ID 그룹 쪽에서 들어오는 부탁은 하나도 없 었다.

"너희들은 ID 그룹을 털면 다른 기업들처럼 먼지가 날 줄 알겠지만, 그럴 일도 없을 거다."

심지어 한광욱은 정권인수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국세청 자료도 확인 했었다.

전대 대통령이 유재원 회장과 사적 친분이 높은 전명헌이었으니, 세무적으로도 도움을 주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거기서 뭔가 나온 것으로 ID 그 룹이나 유재원을 겁박하겠다는 것 은 아니었다.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혹시 몰라 알아두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명헌 대통령 시절에도 ID 그룹의 세무는 완벽했다.

구멍이 많은 한국 회계 기준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인 미국식 회계 기준을 준수했고, 절세도 무리해서 챙기지 않았다.

더욱이 ID 그룹의 세계적 위상 수준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법인세 와 지방세를 매년 납부했다.

만약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모두 ID 그룹을 본받아 세무 처리를 했 다면, 한국 정부의 재정 건정성은 지금보다 몇 배는 좋아졌을 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IMF 시대에 가장 중 요한 고용 창출 효과는 또 어떤가.

즉, ID 그룹은 털어서 먼지 날 것도 없다. 오히려 비상식적이라할 만큼 한국에 푸는 게 훨씬 많으 면서 바라는 것도 없다.

반면 정부로서는 ID 그룹에 아쉬 운 소리를 해야 할 게 많았다. 이 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비서실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광욱이지만 유재원과의 통 화에서 저자세일 수밖에 없는 이유 도 여기에 있다. 엇나가기 시작하 면 잡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천둥벌거숭이 같은 행정 관 녀석들이 너무도 안일하게 일을 망치고 있었다.

게다가 일성이나 금성 혹은 미래 나 부산과 같은 재벌들로부터 연락 이 오면 호들갑을 떨면서 그보다 비교할 수조차 없는 ID 그룹을 대 하는 건 너무도 부주의했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할 청와대 근무자들의 시야가 우물 안 개구리 같으니 열불이 날 수밖에.

한광욱 비서실장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고, 그제야 얼마나 큰 실 수를 했는지 실감하게 된 행정관들 의 얼굴은 죽상이 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12월 28일부터 29일까 지 경제인 연말 간담회 개최.

-첫날에는 국내 10대 기업인들 과. 둘째 날에는 ID 그룹 유재원 회장과 단독 접견.

한광욱 비서실장 밑에 있는 행정 관들은 죽다 살아났다.

형식은 원래 계획과 많이 달라졌 지만, 유재원이 청와대의 초청에 응하면서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유재원은 청와대의 실수를 빌미 로 초청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응했다. 여러 가지 이 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 안함이었다.

이전과 현재의 역사를 비교한다 면,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아졌다. 대기업이 쓰러지고 은행들이 통폐 합하긴 했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이 더 많았다.

반면 일성 그룹처럼 상황이 더 나빠진 기업도 있었다.

전자 부문을 ID 그룹에게 넘기면 서 일성 그룹의 규모는 전성기의 2/3으로 줄어들었다.

최현희 회장의 일생의 꿈이었던 자동차 사업 진출은 성공했지만, IMF로 인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게다가 전자회사의 공백을 메우 기 위해 신세기통신을 인수했지만, 수익을 보기엔 멀었다.

TG모바일은 55%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며 앉은 자리에서 돈을 갈퀴로 벌어들이고 있지만, 신세기통신을 인수한 일성 통신은 오히려 차세대 이동통신망 경쟁을 위해 대단위 투자를 준비해야 하는 터라 돈을 만져볼 새도 없었다.

일성 그룹처럼 유재원이 써내려 간 새로운 역사 때문에 피해를 본 인물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노벨 평화 상과 같은 굵직한 업적은 전명헌과 클린턴에게 돌아가 버렸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마스코 트라 할 수 있는 IT 혁명의 경우엔 아예 노태우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 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의 조기 졸 업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 황이었다.

유재원이 최강욱 부회장에게 IMF 조기 졸업에 대해 처음 들었 을 때는 화를 냈지만, 지금은 이해 되는 측면이 있었다.

동시에 약간의 미안한 감정도 생 겼다. 속도에 중점을 두고서 큰 그 림을 그린 탓에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과 성과가 대단히 축소되었으 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청와대의 초 청을 수락했다.

다만 재벌들과 함께 가는 건 내 키지 않았다. 일성의 최현희 회장 이나 미래건설의 전재근 회장 같은 반갑지 않은 사람들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식을 좀 바꿔 달라고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면서 2000 년의 마지막 공식 스케줄이 청와대 가 되었다.

12월 30일.

유재원은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 춰 청와대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의전 절차를 거치고서 김대중 대통 령과 대면했다.

"나에겐 깊은 고민이 하나 있습 니다. 우리 한국이 외환 위기와 같 은 치욕을 다신 겪지 않으려면 경 제가 발전해야 하는데, 도무지 정 답이 보이지 않는군요. 유 회장이 라면 좋은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아만남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김대중 대통령은 유재원 과 악수를 나눈 후, 자리에 앉자마 자 본론을 꺼냈다.

순간 유재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화에 많이 나왔던 그 사건을 떠 올렸다.

원래보다는 2년쯤 늦은 시점이었 고, 초대받은 사람도 손정의 소프 트뱅크 회장이 아닌 본인이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때와 매우 흡사 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답을 했는지, 기억의 궁전에 들 어갈 것도 없이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유재원이지만, 그와 똑같은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손정의 회장이 답했던 브로드밴 드 인터넷은 이미 한참 전부터 실 현 중이었으니까.

조금 뜸을 들이며 고민하던 유재 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작은 손정의 회장과 같았다.

"3가지?"

김대중 대통령은 3가지나 된다는 말에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네, 하나는 인터넷입니다."

그런 김대중 대통령을 보며 유재 원은 인터넷을 담담히 언급했다.

그러자 큰 기대를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표정에 실망감이 살짝 실 렸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시 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인 터넷이라고 3번이나 강조했던 전생 의 경우엔 부연 설명 없이도 찰떡 처럼 알아들었다.

반면, 지금 유재원이 인터넷을 말하자 반응이 싱거운 이유는 간단 했다.

인터넷이라면 이미 한국은 세계 최고의 환경인 탓이다.

수도권 지역에는 lOOMBps라는 엄청난 속도의 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 시범적으로나마 제공되고 있었 다.

광랜이란 이름으로 컴퓨터 옆까 지 광랜을 놓아서 엄청난 속도를 선보였다. 나라 전체적으로 보자면 가장 대중적인 서비스는 8MBps의 ADSL이었다. 그리고 '시' 규모의 도시라면 40?50MBps의 VDSL이 놓였다.

심지어 전기가 겨우 들어가는 산 간 지역이라도 인터넷은 된다. 바 로 위성 인터넷 서비스였다.

독도와 울릉도 그리고 서해 섬 지역은 유선 인터넷을 놓는 게 어 려우니 위성 인터넷을 국가에서 지 원했다.

이처럼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가 장 적극적이었기에 한국 인터넷의 평균 속도는 세계 최고였다.

무려 12MBps라는 수치를 자랑 하는데, 2등인 일본에 2배가 넘는 속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속도를 올리려면 집마다 광랜을 놓아야 하 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인터 넷을 말하는 유재원에게 실망할 수 밖에.

재미있는 건 실망감이 떠오른 김 대중 대통령을 보고도 유재원의 표 정 변화는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실망할 것까지 예상한 듯 보 였다.

"제가 말하는 인터넷이란 단순한 인터넷 인프라를 칭하는 게 아닙니 다."

"아니라고요?"

유재원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 갔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며 전 세계가 치켜세우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속 빈 강정일 따름입니다."

차분한 말투와 달리 내용은 상당 히 도발적이었다.

"한국은 인터넷 소비 강국이라고 해야 하는 게 정확합니다. 인터넷 을 구축하는 장비는 모두 외산입니 다. 그렇게 구축된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 되는 콘텐츠도 다들 단순하 지요. 게다가 인터넷을 이용한 혁 신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너무 부족합니다."

유재원은 착실하게 뼈를 때렸다.

전생에 제일 아쉬운 것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빠른 인터넷 서비스 국가라는 타이틀에 방심해 이후의 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lOOMBps 까지는 외산 장비를 쓰더라도, 이후의 차세대 서비스는 한국의 기기로 구축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유선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선 인터넷도 시장성이 상당히 큰 분야인데, 거기에도 정 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유재원의 설명에 비로소 감을 잡 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열린 사고방 식이 김대중 대통령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인터넷을 이용한 서비스 개발에도 집중하십 시오. 인터넷 장비는 미국이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인터넷 기반의 혁 신 서비스는 아직도 무주공산입니 다. 이 분야를 선점한다면 좋은 결 과가 나올 겁니다."

"음,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걸로 부족합니까?"

"네, 아주 많죠."

고속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는 서 비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 고 있는 건 정보 검색이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날씨와 뉴스를 확인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정 보 검색도 많이들 사용하는 기능이 었다.

당연히 이 분야에서 제일 앞서고 있는 건 넥스트컴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 아에서도 넥스트컴은 1등 포털 사 이트였다.

고품질의 콘텐츠 서비스를 먼저 선보였고, 빠른 현지화를 통해서 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압도적인 점 유율을 달성했다.

덕분에 후발주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넥스트컴을 넘어서는 게 쉽 지 않았다. 게다가 양질의 유료 콘 텐츠는 넥스트컴만의 강점이었다.

한국식 웹툰과 미국의 코믹스가 넥스트컴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 중이었고, e북의 판매도 활성화되었 다.

밀리언 달러 챌린지의 수상작들 은 번역을 통해 북미에도 서비스 중이었는데, 역시나 좋은 콘텐츠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히트작이라 할 만한 것도 나왔는데, 역시나 직 관적인 웹툰이 반응이 좋았다.

아무래도 그림으로 전달되는 재 미는 만국 공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반응이 나 오는 건 실시간 증권 시세 확인 서 비스였습니다."

실시간 증권 시세 서비스는 넥스 트컴의 유료 콘텐츠 중에 가장 효 자 상품이었다.

무료는 30분의 딜레이가 있지만, 월 3,3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면 증권 거래소의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부가적인 서비스도 있으니, 주가가 미리 설정해 놓은 가격 에 다다르면 ID톡으로 알람을 보내 주는 것부터, 해당 주식과 관련이 있는 뉴스가 뜨면 알려주는 기능도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江)인베스트 먼트에 주식 계좌가 있다면, 이와 연동해 두세 번의 터치만으로 주식 을 사고팔 수 있게 했습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혁신도 현재 진행 중이다.

원래 ID 인베스트먼트의 존재 의 미는 유재원의 자금 운영이었다.

지금도 그 역할에는 변함이 없어서 20()1년 9월 11을 대비한 포트폴리 오를 구성 중이었다.

이처럼 ID 인베스트먼트가 운영 하는 주력 자금은 여전히 유재원의 개인 재산이지만, 민간에서 유치한 금액도 상당했다. 그리고 민간 분 야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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