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권 3화
그러한 서비스 확대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HTS 프로그램이다.
개인이 직접 ID 인베스트먼트의 창구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것과 넥스트컴이 연동해 만들어진 것이 실시간 시세 확인 시스템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애써 개발한 서 비스인데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실시간 시세 확인은 되지 만, HTS와 연동이 쉽지 않습니다."
"규제 때문입니까?"
"예!"
유재원은 짧게 대답했다.
과거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큰 족쇄였던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는 없었다.
그러면 인터넷 뱅킹이나 온라인 증권 거래 활성화에 큰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니 전보다 빠르게 활성 화되어야 할 텐데, 유재원은 가시 적인 변화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금융 서비스 회사들의 마 인드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던 탓이 다. 온라인 거래 중 만에 하나 사 고가 나면 이를 소비자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지 역시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본인 확인 절차다.
미국에선 알람을 설정해 놓으면 터치 한 방으로 가볍게 주식 거래 를 할 수 있지만, 한국은 본인 확 인 절차를 거쳐야 하니 실시간이라 는 말이 무색해졌다.
미국의 주가 지수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게 한국 시장이었기에, IT버블이 붕괴할 때 한국의 코스닥 에서도 곡소리가 나왔다. 반대로 미국 나스닥이 바닥을 찍고 상승하자 한국에서도 제2의 IT랠리가 시 작되었다.
자연스럽게 주식 거래량도 많아 졌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개 미 투자자들은 기민한 반응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면 주식 거래에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까?"
"저는 하나의 예를 든 것뿐입니 다. 앞으로 인터넷은 모바일 기기 와 결합해서 어마어마한 혁신을 만 들어 낼 것입니다. 원터치로 주식 을 거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자 상거래에서도 간편 결제가 쓰일 겁니다. 그때마다 규제들이 발목을 잡게 될 겁니다."
유재원은 해 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다.
ID 그룹은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아귀가 아니었다. 핀테크까지 ID 그룹이 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대신 이런저런 규제로 인해 인터 넷 기술이 중국에도 밀리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서 언급한 것이다.
"두 번째는 문화입니다."
"문화?"
"정확히는 대중문화겠죠."
유재원이 김대중 대통령의 성과 를 선점하게 되었지만, 모두 다 가 져간 건 아니었다. 지금 언급된 문 화는 김대중 대통령만이 할 수 있 는 정책이었다.
"인터넷 분야도 규제 덩어리지 만, 대중문화 분야만큼은 아니죠."
"그렇지!"
인터넷에 대해 설명할 때는 경청 에 집중하던 김대중 대통령이 키워드가 문화로 바뀌자 바로 반응을 보였다.
대중문화에 걸린 규제만 보면 인 터넷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슬 퍼런 검열이 살아 있던 건 아니었 지만, 게임부터 영화까지 온갖 규 제가 걸려 있었다. 게다가 해외 콘 텐츠를 정식으로 들여오는 일도 힘 들었다.
"전 세계가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대입니다. 광대역 통신망 을 통해 드라마, 음반, 영화를 빠르 게 주고받습니다."
그 방법은 대부분 어둠의 경로라 는 불법적인 통로를 이용하지만 말 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의 벽을 높 게 쌓아 봐야, 국내 환경만 어려워 집니다."
군부 독재 정권이 열심히 펼친 대기업 육성 정책이 오히려 온실 속 화초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은 결과였다. 국내 시장에서 적당히만 만들면 알아서 팔렸기에, 기술 개 발보다는 수익성에만 집중했다.
"규제의 과감한 철폐와 적극적인 개방으로 토종 콘텐츠가 건강하게 자라날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한 국의 저력은 한층 탄탄해질 겁니 다."
"과감한 개방이라. 그러면 어떤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까?"
"가까운 곳에 선진국이 있지 않 습니까? 일본 말입니다."
" 일본?"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반응을 보 였다.
원래 역사에서도 일본 문화 개방은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0년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아직 일본에 대한 문호가 크게 열리지 않았다.
원인을 따지면 역시나 유재원 본 인이 일으킨 변수였다.
바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과 위 안부의 배상 판결 때문이었다. 소 송 당시 반일 감정이 대단했고, 일 본도 반발하면서 한일 관계가 남북 관계보다 냉각되어 버렸다.
게다가 유재원이 일본 공략에 성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보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기업에 전가되었다.
당연히 한일 관계가 나빠질 수밖 에 없었다.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도 일본 문 화 개방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최악으로 흐르진 않았다.
이는 소송에 걸린 일본 기업들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일본제철이 주도적으로
배상을 시작했는데, 역시나 유재원 의 힘이 컸다. 신일본제철의 최대 주주는 신일본투자은행이었고, 신일 본 투자은행은 ID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였다.
우익 성향의 신일본제철 경영진 을 상식적인 인물로 갈아치운 것도 유재원의 지시였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말이 많았 다. 제대로 우익인 산케이신문부터 요미우리까지 발광했지만, 그뿐이었 다.
경영진 교체 명분은 경영 실패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신일본제철의 최대 주주는 신일본투자은행이었기 에 기존 경영진이 정치권과 언론에 기대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 었다.
더구나 현재 일본의 총리인 오부 치 게이조는 친한 성향이었고, 김 대중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일 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반성하 는 태도를 보였기에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진 않았다.
"괜찮겠습니까?"
대신 김대중 대통령이 전과 달리 자신감이 덜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태도 역시 유재원의 영향 이 아주 없진 않았다. 바로 RATM 과 구 LSM의 저작권 소송 결과의 후폭풍 때문이었다.
해당 소송이 있기 전까지 표절 소송은 크게 비화된 적이 없었다.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 았기에 승소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이 크지 않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 던 탓이다.
이런 상황이 LSM의 패소 판결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표절 승 소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커지자, 그동안 잠잠했던 원작자들이 움직 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 가요계가 난리가 났 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표절 소송의 규모에 대해 윤곽이 나왔는데, 일본의 비중이 상당했다. 드라마 OST부터 대중음악까지 아 주 광범위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이나 소설에서도 일본의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온 게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문화를 전면 개방하면 온 나라가 왜색으로 물들 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드 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 처음이야 조금 힘들겠지만, 우리 문화는 곧 자생력을 갖출 겁 니다. 그리고 인터넷 통신망을 타 고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거라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미래에서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왔던 유재원이었기에 말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의 걱정도 상당히 풀어졌다.
"그러면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 입니까?"
"인공지능입니다."
"음, 인공지능이라."
인터넷과 문화에 대해선 쉽게 공 감했던 김대중 대통령이었지만, 마 지막에 나온 인공지능에 대해선 쉽 게 납득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기왕 좋은 자 리가 만들어졌기에 크게 질러 보기 로 했다.
만약 대통령이 본인의 의견을 받 아 인공지능 개발과 응용에 대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면, 역사는 달 라질 테니 말이다.
더불어 유재원 본인도 인공지능 개발에 들이는 노력을 많이 절약하 고 말이다.
이후 유재원은 최선을 다해 인공 지능에 대해 설명했고, 김대중 대 통령도 귀를 기울였다.
과연 이번 회견으로 한국의 역사 가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지만, 유 재원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푼 것이나 다름이 없 었다.
띵!
청와대에서 대통령과의 단독 회 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유재 원은 전원을 꺼 놓았던 T터치폰을 켰다.
그러자 수십 개의 메시지가 나타 났는데, 그중에서 제일 먼저 유재원의 손길이 닿은 건 대전 공장의 반도체 FT팀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회장님! 대박입니다! 목표 수율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유재원의 얼 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하지만 이 어진 문장으로 인해 좋았던 기분이 꺾여 버렸다.
-샘플 J3로 목표 수율을 달성했 습니다.
샘플 J3가 원인이었다. J3라는 알파벳에서 알 수 있듯, 일본산 원 자재로만 구성한 생산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뒤에 붙은 3이라 는 숫자는 오로지 일본산 원료만으 로 찍어낸 샘플이라는 의미였다.
비슷한 시각. ID 일렉트로닉스 대전 반도체 공장.
"홈홈?."
현미경의 접안렌즈에 집중하던 리사 수 박사는 콧노래가 절로 나 왔다.
요즘처럼 한 가지 일에 집중한 때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제 일 좋아하는 작업은 반도체를 만들 어 보는 일이었다.
게다가 온갖 파라미터를 조절해 가면서 하루에 수십 장의 웨이퍼를 찍어냈던 적은 과거를 다 돌아봐도 몇 번 없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소규모의 실험실에서 깨 작깨작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정 식 생산 라인과 똑같은 규모의 시 설을 내 집처럼 쓰는 경우는 처음 이었다.
함께 TF팀으로 참여한 반도체 연구팀들은 테스트 기기에서 웨이 퍼가 나올 때마다 변하는 결괏값에 전전긍긍했지만, 리사 수 박사는 느긋했다.
다들 회장님이 찍어주신 수치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는 터라, 숫자가 크게 차이 날 때마다 세상 무너진 것 같은 반응이었다.
반면 리사 수 박사는 반도체 공 정 향상이라는 게 원래 지루한 작 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완벽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더라도 사소한 요인 하나로 수율이 변하는 경우가 있었다.
리사 수 박사는 그러한 변수를 찾아 하나씩 잡아내 가는 것이 마 치 추리 소설 속 탐정이 되는 기분 을 만들어 줬기에 즐거웠다.
물론 이런 리사 수 박사의 기분 을 다른 사람이 알았더라면 변태 소리가 나올 게 분명 했기에 리사 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수 박사님. 이걸 한 번 보시지 요."
현미경에 집중하던 리사 수 박사를 누군가 불렀다. 이종효 교수였 다.
"막 나온 J3 샘플인데, 재미있습 니다."
"리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죠."
이동용 카트리지에 담긴 웨이퍼 를 받아든 리사 수 박사는 바로 교 체했다.
한 달 전쯤 요란 법석하게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팀에 합류한 이종효 교수는 유재원 회장의 강력 한 추천으로 들어온 인물이었다.
역시 유재원의 이름값은 가볍지 않았고, 팀에 합류하자마자 미세 공정 개발에 큰 보탬이 되었다.
동시에 리사 수 박사는 이종효 교수로부터 강한 동질감을 받았다. 이종효 교수의 반도체에 대한 열정 은 함께 손을 맞춰본 지 얼마 되지 않는 리사 수 박사도 인정할 정도 였다.
또 다른 J3 샘플을 살펴보는 데 여념이 없는 이종효 박사를 잠깐 바라보던 리사 수 박사도 다시 현 미경에 집중했다.
"호오!"
보자마자 리사 수 박사는 다른 샘플과의 차이점이 딱 보였다.
칼처럼 떨어지는 회로도라니!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반 도체는 최첨단의 산물이니 회로도 도 직각으로 딱딱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반도체 회로도의 모습은 생각처럼 매끄럽진 않았다.
이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작업이 모두 아날로그 방식이 었던 탓이다.
구식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어떤 부 분은 각이 잘 떨어졌고, 어떤 부분 은 회로의 형태가 좀 부실하게 찍 히는 부분도 있었다.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찍혀 나와 야 양품이었고, 배선이나 트랜지스 터가 선명하게 구현되지 않으면 오 작동 혹은 전력 누수, 발열 등의 문제가 터진다.
이번 웨이퍼는 달랐다.
회로의 배선이 깔끔하게 떨어졌 다. 논리 회로를 구성하는 트랜지 스터는 물론이고 LI, L2 캐시 메모 리에서도 균일하게 찍혔다.
경험치가 많이 쌓인 리사 수 박 사는 이 웨이퍼에서 나올 칩들이 끝내주는 성능을 보여줄 거라는 걸 딱 알아챘다.
리사 수 박사의 손을 통과한 웨 이퍼는 곧 테스트 장비로 넘어갔고, 올 그린 판정을 받고서 패키징 공 정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테스트용 보드에 올라간칩은 모두의 기대 속에서 작동을 시작했다.
곧이어 모니터에 칩의 성능을 측 정한 결괏값이 떴고, TF팀의 환호 성도 동시에 터졌다. 유재원에게 문자로 긴급 보고가 들어간 것도 이때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