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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79화 (579/1,007)

28권 13화

유재원의 기억에 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다만 기억과 100% 일치하는 화 면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화질이 지저분했는데, 지금은 너무도 선명 했다.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이 쌍끌이 로 이끄는 스마트 시대였다. 과거 에는 영상을 촬영하려면 번거로운 캠코더를 들고 다녀야 했지만, 이 제는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충분했 다.

화면이 달라졌지만, 전해지는 충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911에 대한 대응 방침은 한참 전에 정해졌고, 그에 따라 행동했 던 유재원이다. 그런데 전과 똑같 은 양상이 전개되는 걸 보니 마음 이 약해졌다.

-아!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이건 사고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사고가 아닙니다! 동시다발적인 비행기 납치 테러이 고, 상황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합 니다!

갑작스레 들어온 영상만으로 사고인지 아니면 다른 최악의 상황인 지 몰라 당황하던 아나운서의 멘트 가 다급해졌다.

놀랍게도 무척이나 정확한 정보 를 빠르게 전파했다. 이전에는 없 었던 일이었다.

-현장 화면이 들어왔습니다! 바 로 전환하겠습니다.

화면의 좌상단에 CNN과 LIVE 라는 큼지막한 마크가 박힌 현장의 영상이 들어왔다.

세계무역센터와 가까운 빌딩 옥 상에서 찍고 있는 듯, 충돌 지점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와 붉은 화 염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그때 갑자기 카메라가 하늘을 비 췄다.

설마 두 번째 공격인가 싶던 유 재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은 긴급 발진한 것처럼 보이는 전투기 편대였다.

날개 밑에 미사일이 장착된 걸 똑똑히 본 유재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전엔 없던 모습이었다.

전투기의 등장으로 유재원은 기 세가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 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 여주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두 번째다!"

그때, 화면에 푸른색 도장의 보 잉 767 여객기가 나타났다. 유나이 티드 항공 175편이 확실했다.

더구나 정상 비행 고도를 한참이 나 벗어난 저고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게 카메라에 똑똑히 잡혔다.

그런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을

향해 전투기들이 빠르게 접근해 노 란 섬광을 뿜으며 기관포를 발사한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에 보잉 767 여객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긴 급 속보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을 때.

가장 패닉에 빠진 곳은 백악관도 아닌,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였다.

이름 그대로 미국과 캐나다가 손 잡고 창설한 항공 우주 공동방위조 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 상공의 감시와 관리의 임무가 부여된 곳이었다. 1958년에 창설되었으니 상당 히 오래된 군 조직이었고, 부여된 권한도 그만큼 막강했다.

더욱이 북미 항공우주방위 사령부 를 포함해 미군 수뇌부에 대규모 하이재킹 테러가 있을 거라는 첩보 가 전달된 건 한 달도 전쯤이었다.

그리고 9월 11일 오늘 오전 8시 30분경, 아메리칸 항공으로부터 보 스턴 출발 로스앤젤레스 도착 예정 인 아메리칸 항공 11편, 등록번호 N334AA 항공기가 정상 경로를 벗 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지어 비행기에 연락을 했을 때, 익숙한 조종사의 목소리가 아 닌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우리는 비행기들을 납치했다. 조용히 있어 라. 그러면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까지 받았다고 전해졌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첩보 로 받았던 하이재킹 테러가 일어났 다는 걸 인지했고, 즉각 보스턴에 서 제일 가까운 미 공군 기지에 긴 급 발진을 명령했다.

출격 명령을 받은 공군 기지는

평소 훈련보다 빠르게 발진했고,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위치를 추적 했다.

긴급 발진된 전투기는 F16이었 고, 테러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 던 만큼 무장도 완벽했다.

하지만 출동한 전투기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목격할 수 있었던 것 은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을 맹렬 하게 내뿜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었다.

"오, 마이 갓!"

긴급 발진한 F16 편대의 편대장하버트 플레밍은 충격을 감추지 못 했다.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실전 경험도 풍부했지만, 뉴욕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 여객기가 다이렉 트로 충돌하는 식의 테러는 처음이 었으니 말이다.

-모비우스 2, 모비우스 2. 여기 는 워십.

"여기는 모비우스 2."

함께 긴급 발진된 비행기는 하버 트가 이끄는 편대뿐만이 아니라 조 기경보기 워십도 있었다.

평소에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워십의 오퍼레이터였는데, 지금 하버 트를 부르는 목소리는 다급하기 그 지 없었다.

-납치된 항공기가 하나 더 있다! 레이더에 표시하겠다.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으로 정상 경로를 벗어 나 뉴욕에 진입 중! 빌딩에 의도적 충돌 가능성 매우 높음! 무기 사용 허가! 전력으로 저지하라!

"모비우스 2, 라져."

하이재킹 당한 여객기가 하나 더 있다는 정보에 하버트는 충격을 추 슬렀다.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모비우스 편대! 아직 상황은 끝 난 게 아니다!"

더욱이 비행기를 하이재킹 한 테 러범은 보통의 비행기 납치범과 완 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워십으로부터의 통신은 이번에도 빌딩과 충돌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 고, 무기 사용까지 허가했다.

맑은 알람 소리가 울린 것도 그 때였다.

-유나이티드 175편 포착!

조기경보기가 먼저 유나이티드 175편을 포착했고, 모비우스 편대 의 레이더와 공유시킨 것이다.

유나이티드 175편은 벌써 뉴욕시 에 진입했고, 항공기의 기수는 세 계무역센터를 향하고 있었다.

"유나이티드 175편! 유나이티드 175편! 여기는 미 공군. 정상 경로 를 벗어났다. 당장 가까운 공항으 로 기수를 돌려라!"

모비우스 편대는 스크롤을 최대 로 올려 접근했고, 공용 주파수로 무전을 쳤다.

"젠장!"

속도는 더 빨라지는데, 응답은 없었다. 항공기와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가까이 다가가 위 협 비행까지도 해 봤지만, 그 순간 조금 흔들렸을 뿐 하이재킹 테러범 들은 꿋꿋하게 기수를 유지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기총으로 오른쪽 엔진를 공격한 다."

미사일이라는 간편한 선택지 대 신 하버트는 기관총을 선택했다.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에 탑승한 선량한 승객들이 생각나 도저히 미 사일은 선택할 수가 없었다.

-GUNS! GUNS! GUNS!"

편대 통신망에 기총 사격을 의미 하는 신호가 떴고, 하버트의 F16에 서 징착된 20mm M61A1 발칸이 노란 불꽃이 터트렸다.

텔레비전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깜짝 놀랐다.

화면은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 다. 미 공군 전투기 편대는 뉴욕시 북쪽에서 접근했고, 이 모습을 찍 으려면 최대한 줌을 당겨야 했던 탓이다.

카메라에 흔들림 방지 기능도 없 을 때였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 이 출렁거렸다.

그런 줌 화면에서 깨알처럼 보이 는 것이 긴급 출동한 미 공군 F16 전투기 였다.

예전 기억을 열심히 뒤져 봐도, 그때에는 분명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저공 비행으로 빠르게 접근 중인 푸른 동체의 여객기도 보였다. 덩치가 전투기보다 훨씬 컸기에 잘 보였다.

갑자기 등장한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는 위화감이 넘쳤다. 여객기 가 다니는 고도는 무척이나 높았는 데, 지금 카메라에 비치는 여객기는 그야말로 저공 비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유나이티드 여객기를 향해 F16 전투기가 다급히 접근했고, 위 협 비행을 하는 것도 보였다.

서로가 위험할 만큼 초근접 위협 비행이었다.

그럼에도 유나이티드 여객기의 세계무역센터를 향한 위험한 항로 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노란 불꽃이 터지는 것도 그 순 간이었다.

화면 속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어 느덧 새끼손가락만 하게 보일 만큼 현장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였다.

덕분에 유나이티드 항공기의 오 른쪽 날개에 기관포 총알이 박히면 서 엔진이 터져 나가는 모습이나 긴 화염이 일어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고한 승객이 탑승해 있는 동체 에 미사일을 쏘는 건 너무도 부담 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선택은 여객기의 날개와 엔진을 파괴해 불시착하게 만든다는 것임을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잉 767 기종의 안정 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F16 전투기 에서 발사된 기관 포탄은 정확히 오른쪽 엔진을 강타했고, 박살을 내 버렸다.

그렇지만 엔진 하나 박살났다고 비행 안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은 아니었다.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는 오른 쪽 날개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세 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으로 쭉 날아왔다.

화면에는 그저 깨알만 하게 보이 는 F16 전투기 편대였지만, 당황한 기색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기민하게 움직였던 전투기의 기 동이 순간 느슨해졌고, 기관포 사 격도 멈췄으니 말이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여객기와 가 장 가까웠던 F16 전투기가 다시 기 관포를 발사했다. 이번엔 엔진만이 목표가 아니라 날개를 겨냥했다.

비행기 날개에는 보통 연료 탱크 가 들어 있다. 총알이 잘못 박히게 되면 폭발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상황이 너무도 급박했기에 그것까 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순간 커다란 섬광과 함께 여객기 의 오른쪽 날개에 거대한 화염이 일어났다.

유재원의 우려대로 연료 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대신 엔진이 터졌음에도 비행 안 정성을 유지하던 유나이티드 175편 여객기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표로 겨냥했던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으로 어떻게든 기수를 유 지하려고 했지만, 날개 한쪽이 박 살난 상태에서 이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베테랑 조종사라면 이야기가 달 라졌을 수도 있지만, 하이재킹을 한 테러범들은 실제 비행 경험이 없었고,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간단 히 배운 수준이었기에, 기민한 대 처가 불가능했다.

"어어!"

넋을 놓고 텔레비전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깜짝 놀랐다.

오른쪽 날개를 잃은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은 급격히 추락하기 시 작했는데, 그 위치는 세계무역센터 앞을 가로지르는 허드슨강이었다.

보잉 767이라는 거대 동체가 그 대로 박힌 허드슨강에 물보라가 크 게 일어났고, 뒤이어 항공유가 기 화되면서 커다란 폭발로 이어졌다.

한발 늦긴 했지만 미 공군의 대 처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은 무 사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컸다. 여객기의 오른쪽 날개가 폭발하면서 항공유 가 사방으로 뿌려졌고, 불타올랐다.

하필이면 그 지역은 저지시티란 이름의 주거 지역이었다.

게다가 허드슨강에 박힌 유나이 티드 175편도 폭발하면서 그 파편 이 사방으로 튀었고, 강가에 지어 진 건물을 덮쳤다.

파편 중엔 불이 붙은 게 있었으 니, 화재의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세상에."

이미 한 번 911을 경험을 했던 유재원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또 달랐다.

CNN에서는 날개가 터지고서 추 락하는 비행기의 모습이나 항공유 에 불이 붙어서 불비가 내리는 듯 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그 모습을 몇 번 이고 리플레이했다.

CNN은 유재원과도 이제 긴밀한

사이가 된 테드 터너가 만든 진보 적 성향의 뉴스 전문 채널이었지만, 시청률을 위한 자극적인 보도는 폭 스TV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앞서 나가고 있었다.

긴급 속보를 맡은 앵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지만, 뉴스 화면 자체는 그 어떤 채널에 뒤지지 않 을 만큼 자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 상황은 그대로 전 세 계에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띵띵띵!

과거와 다른 건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은 무사하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는 없었던 SNS가 있었다는 점이다.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은 알람이 쉬지 않고 울렸다.

티파니부터, 한국에 계시는 부모 님과 최강욱 부회장, 심지어 큰아 버지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당연히 공적인 연락도 많았다.

레밍턴과 빈센트의 연락도 있었 고, 정보팀의 긴급 보고도 있었다.

유재원은 지인들에게 빠르게 답 장을 했고, 곧이어 인터넷이나 톡톡으로 세계무역센터를 검색했다.

넥스트컴을 비롯한 포탈 사이트 는 물론 톡톡과 같은 SNS 서비스 는 무척이나 버벅거렸다.

안드로이드폰만 그런 게 아니라 PC로 접속하는 사이트 역시나 마 찬가지 였다.

"이거 뭐야? DDOS를 아직도 해 결 못 한 건가?"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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