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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82화 (582/1,007)

28권 16화

띵!

유재원이 결심을 하고 나서 몇 분이 지났을까. ID톡 알람이 울렸 다.

-앨 고어 대통령, 긴급 기자회 견!

메시지를 확인한 유재원은 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하루 종일 CNN으로 채널 고정 된 텔레비전에는 그야말로 마네킹 처럼 딱딱한 표정의 앨 고어 대통 령이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배경도 평소와 달랐다.

일단 규모가 협소해 보였다. 아 무래도 백악관의 기자회견장이 아 닌, 백악관 지하의 안전벙커 내에 만들어진 무대처럼 보였다.

"부시보단 빠르네."

과거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 령일 때, 911 테러의 수습은 그야 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당일 미국 정부의 시스템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건 소방과 경찰 정도였고, 나머지는 혼선이었다.

그로 인해서 온갖 유언비어가 넘 쳐났고,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직접카메라 앞에 나와 긴급 성명을 발 표한 시간도 느렸다.

반면 앨 고어는 즉각은 아니었지 만, 그래도 상당히 빨리 텔레비전 앞에 모습을 드러내 불안감에 빠졌 던 미국인들을 추슬렀다.

-오늘 2001년 9월 11일의 미국 도 평소처럼 굿모닝이라 인사하며 시작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불행히 도 그 소박했던 바람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일상이 비행기 납치 자살 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에 파괴되었습니다.

앨 고어 대통령의 발표문은 시작 부터 파격적이었다.

유재원과 어울린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부터 본론이었 다. 이어지는 말도 간략했다.

-여객기 납치 계획을 포착했지 만, 참담한 자살 테러로 이어질 줄 은 예상하지 못했음. 진심으로 사 죄.

-테러의 배후로 알 카에다 유력.

-국가적 위기 상황이지만, 미국 은 건재! 모든 안보 시스템 정상 가동 중!

-테러 수습을 위해 연방 정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임.

그야말로 짧고 굵은 긴급 성명이 었다.

무엇보다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배후를 포착해 낸 것 은 대단히 혁신적인 일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지만 거기 에는 유재원이 만든 프리즘 시스템 이 대단한 공을 세운 덕이었다.

일찌감치 하이재킹 계획을 포착 한 것도 프리즘 시스템의 활약 덕이었고, 911테러에서 알 카에다라 는 키워드를 추출해 낼 수 있었던 것도 프리즘 시스템의 가공할 분석 능력 덕이었다.

다만 절대 비밀로 해야 할 점이 있으니, 프리즘 시스템에 전해진 로우 데이터에 유재원의 인위적 가 공이 있었다는 점이다.

프리즘 시스템이 강력한 분석 도 구이긴 해도, 로우 데이터 자체가 엉망이면 제대로 된 정보를 가공해 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영식이와 함께 만든 넥스트 트랜드라는 도구를 이용해 알 카에다에 대한 보다 자 세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시켰고, 이를 프리즘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전달함으로써 사전에 감지했다.

앨 고어 행정부의 뼈아픈 오판은 하이재킹의 목적이 인질 교환이라 고 판단했던 것뿐이었다.

오후 5시.

"다들 퇴근하세요. 아무래도 때 가 때이니만큼, 바로 집으로 가세 요."

유재원은 퇴근을 지시했다.

본인 역시 가방을 쌌다. 뉴욕과 워싱턴 DC에서는 아직도 테러 수 습이 한창이었지만, 더는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것도 없었다. ID 그룹도 빠르게 혼란을 정리했고, 정상 운영 중이었기에 유재원은 안 심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어휴, 긴 하루였다."

피곤이 절로 밀려왔다.

과거 911 테러 당시에는 태평양 건너에서 그저 한 명의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 해야 했던 탓이다.

사고 현장에서 유독성 먼지와 연 기를 마시며 수색과 구조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소방대원이나 허드 슨강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수색 작업 중인 잠수부만큼 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피 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띵!

아쉽게도 회장실을 나서는 유재 원을 안드로이드폰의 알람 소리가 붙잡았다. 넥스트컴 911 특별 페이 지와 연결된 알람이었다.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성명 발표!

"벌써?"

알람을 확인한 유재원은 벌써라 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앨 고어 대통령의 성명이 있은 지, 몇 시간이 지났다고,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한단 말인가.

과거 911 테러의 몸통인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킨 이유 에 대해 직접 설명한 건 사건이 있 은 지 3년이 지난 2004년 10월이 었다.

그런데 테러가 일어난 지 만으로 하루도 지나지 않은 지금 비록, 인 터넷상이지만 직접 얼굴을 드러낸 건 엄청난 이변이었다.

당연히 유재원은 퇴근을 멈추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한 인터넷 방송 주 소에 접속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린 듯, 영상은 거의 멈춰진 상태였다. 아 무래도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접속한 모양이다.

-9월 11일 오늘 일어난 의거는 알 카에다의 위대한 지하드이자, 위대한 승리이다!

대신 음성만큼은 깨끗하고 확실 하게 들렸다.

친절하게도 영어로 말하고 있는 터라, 유재원도 통역 없이 바로 알 아들을 수 있었다.

"미친."

역시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 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모든 나라는 911 테러가 속보로 전해지 자 위로의 말을 전하는 중이었다.

덤으로 테러는 나쁜 것이라며 입 을 모았다. 심지어 급진적 테러 단 체까지도, 본인들의 소행이 아니라 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은 직접 스트리밍 방송을 켜고 본인이 맞다며 확인해 주고 있다.

이어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 오사마 빈 라덴이었기에, 유재원은 더 는 듣지 않고 꺼 버렸다. 대신 어 째서 이렇게 일찍 전면에 등장한 것인지 생각을 해 봤다.

더욱이 아침부터 ID 그룹 데이터 센터를 공격한 DDOS의 배후로 오 사마 빈 라덴이 있을 수도 있다는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이 예전과 달리 911 테러와 동 시에 미국의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테러까지도 계획했다는 이 야기가 된다.

그만큼 인터넷 기술에 자신이 있 으니, 성명 발표를 본인이 직접 인 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정체를 공개 한 것이다.

"오만하군."

반대로 유재원에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은 유재원의 영토였으니 말이다.

오사마 빈 라덴 포획 작전에 참 가할 명분이 필요했는데, 이보다 적절한 건 없었다.

따르릉!

역시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은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알람 소리 가 다르다. 이번엔 유재원에게 직 접 걸린 전화였다.

"티파니네?"

티파니로부터의 전화였다. 무슨 전화인가 생각할 것도 없이 유재원 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무슨 일이야? 응? 언 제부터?"

티파니와 통화를 하던 유재원은 깜짝 놀랐다. 티파니로부터 생각지 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휴대폰 저편에서 걱정 가득한 티 파니의 목소리로 전해진 소식이란 그녀의 외삼촌 제이콥의 행방불명 이었다.

"아니! 제이콥이 행방불명이라니, 무슨 말이야?"

유재원은 한달음에 집에 먼저 퇴 근해 있던 티파니에게 다가왔다. 티파니는 평소의 밝은 모습이 아니 었다.

"그게 어젯밤부터 제이콥 외삼촌 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 지금도?"

"응! 핸드폰이 꺼져 있대."

티파니의 말에 유재원은 본인의 안드로이드폰을 열어서 직접 제이 콥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통화 연결음이 잠깐 나는가 싶더 니 곧 상대방의 핸드폰이 꺼져 있 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알 림이 떴다.

"제이콥에게도 내 꿈 이야기 전 한 거 맞지?"

"응!"

티파니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만 자기에겐 말하지 않았 는데, 외삼촌이 내 말을 귀담아듣 지는 않았어."

이번엔 유재원이 티파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콥은 이상하게도 자신을 무 척이나 경계했던 사람이었다.

생각을 해 보면 티파니를 위해 지질 데이터 알고리즘을 레벨 업 시켜주고, 이를 통해 텍사스 23번 유정을 찾고 나서부터 경계심이 심 해진 것 같았다. 오죽하면 티파니 도 셰브롱에서 나와 독자적인 회사를 차렸겠나 싶다.

더욱이 제이콥의 행실은 모범적 인 후계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의 막장 재벌 3세 같은 급은 아니지만, 세계구급 기업인 셰브롱 의 적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 라왔다고 한다.

기억의 저장소 안에 있는 신문 아카아이브에서 제이콥의 이름을 찾아보면 여배우들과의 스캔들이나 약물 중독 의혹 등의 기사가 제법 나왔으니 말이다.

대신 그 이상으로 셰브롱의 차기사장이 되어 기업을 경영하고, 각 종 행사에 참가해 이름을 올린 기 사도 많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티파니와의 결혼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티파니랑 결혼한다더라도 셰브롱의 상속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행방불명이라 니.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지금은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 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어."

본능적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이 상했지만, 유재원은 한발 앞서 나 가는 건 경계했다.

아직도 9월 11일이었다.

아침부터 엄청난 사건이 터졌고, 그 수습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인터넷 사용량이나 통신망 접속률 은 아직도 피크치를 찍고 있는 와 중인데, 여전히 DDOS 공격이 이 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커버하고 있는 지역은 괜찮았다.

나머지 45% 지역이 문제다.

북미의 인터넷은 정보 고속 도로 망을 일찌감치 깔아둔 덕에 유재원 은 북미의 백본망을 손에 넣었다.

그렇지만 인터넷은 백본망으로만 운영되지 않고, 사용자의 안방이나 사무실 책상까지 가는 모세혈관 같 은 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미세한 인터넷망까지 포 함하면 타임워너 넥스트컴은 55% 를 점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45% 는 2~5위 경쟁사들이 나눠먹기 중 이다.

이들 업체와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서비스의 질적 차이는 열거하기 시작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매년 발표되는 미국의 블랙 기업 리스트 중에 2?5위 업체들은 빠지지 않았 을 정도다.

거기에 속한 종사자들의 대우도 나빴고,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도 나빴다.

해당 회사들의 고객 게시판을 가 보면, 온갖 불만 덩어리다.

물론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라도 고객 불만은 늘 접수되긴 하는데, 처리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유재원이 넥스트컴의 C/S 센터 를 한 번 뒤엎은 다음부터는 적어 도 접수 후 3일 이내에 해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직원들의 대우도 매우 좋았고, 고객을 위한 최신 장비도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제일 먼저 도입했다.

DDOS 방어 장비 도입 역시 마 찬가지 다.

영식의 평가로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라고 했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제법 도움이 되었 다. 아예 DDOS 방어 장비가 없는 다른 ISP 업자들은 그야말로 난리 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 느낌이 안 좋아."

유재원의 위로에 티파니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남 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 전 세계 사람들이 겪은 911 테러는 인 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최악의 테러 였다.

멀쩡한 여객기를 납치해 세계무 역센터, 펜타곤, 미국 국회의사당에 꼬라박는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저 소설 속에나 몇 번 나오고 말 일이었다.

이 때문에 톰 클랜시라는 작가는 오늘 매스컴에 그 이름을 몇 번이 나 올렸다. 그가 쓴 적과 동지라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기장이 여객기를 몰고 대통령 취임식이 진 행 중인 미국 국회의사당에 돌진해 미 정부 요인 반수 이상이 사망하 는 장면이 나왔으니 말이다.

"오늘은 혼란스러우니 연락이 닿 지 않을 수도 있지. 내일이면 좀정리가 되면서 제이콥에게도 연락 이 올 거야."

"자기 말대로 그랬으면 좋겠다."

유재원의 희망적인 말에 티파니 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911이라는 게 그렇게 쉽 게 정리가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었 다.

제이콥 관련 사안 역시 마찬가지 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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