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권 20화
"그러면 계속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거야'?"
-내가 누구야? 취약점 패치를 만들었지. 배포만 하면 돼. 지금 배 포할까?
영식이의 듬직한 대답이었다. 다 만 유재원은 즉각 배포하라는 소리 대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웅! 대신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 라면 무조건 강제 업데이트되도록 배포해."
-진짜? 한 번에 트래픽이 몰릴 텐데?
"그러니까 캐시 서버에 미리 업 로드시켜 놓은 다음에 배포를 시작 해야지. 지금 엄청 중요한 작업 수 행 중이라 절대 방해받으면 안 돼!"
DDOS 공격을 수행하는 전제 조 건이 바로 인터넷 연결이다. 그러 니 영식이가 만든 취약점 패치를 강제 업데이트하도록 하면 좀비 PC는 순식간에 박멸될 것이다.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해커가 이 를 파악해 다시 변종을 만드는 데 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레인보우 테이블을 완성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 패치 대상은 게이밍 에디션 만 한정해."
-알겠어!
패치가 이뤄지면 강제 재부팅이 된다. 그러니 기업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까지도 재부팅되면 난리가 날 것이기에 패치 대상을 한정시키 는 유재원이다.
"무슨 일입니까?"
다급히 주고받는 대화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스키너 요원이 통화가 끝나자 마자 바로 물었다.
"중국발 DDOS 공격이 재발했다 네요."
유재원은 그렇게 말하며 새로운 ID 웹브라우저를 실행해 넥스트컴 에 접속해 봤다. 레인보우 테이블 을 만드는 중에도 큰 지장이 없었 던 넥스트컴 홈페이지의 로딩 속도 가 크게 느려졌다.
"중국? DDOS?"
"응? 일이 터졌을 때 정부에도 전달했었는데, 스키너 요원에겐 전 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911 테 러가 벌어지기 몇 시간 전부터 우 리 회사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DDOS 공격이 있었어요. 아시아 쪽 라인을 끊으면서 막긴 했죠."
유재원은 스키너 요원에게 911 당시에 있던 DDOS에 대해 설명해 줬다.
중국의 해킹 그룹 스키드로우가 퍼트린 크랙을 멋모르고 받은 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보안 프로 그램을 해제시키고 실행하면, DDOS용 좀비 PC가 되는데, 스키 드로우의 DDOS 툴을 누군가 구입 해 신나게 쓰고 있다고 말이다.
"911 테러 상황에서 인터넷까지 마비되면 혼란이 극대화되겠죠. 이 를 노리고 알 카에다가 구입해 돌 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에 요."
"그러니까 중국이 911 테러에 심 대한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게다가 저는 이 정보를 이 자리에 서 처음 접하고 있군요."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조금 활력이 돌아왔던 스키너 요원의 목소리가 다시금 딱딱해졌 다.
911 테러 합동 수사본부의 첨단 기술분석팀을 맡고 있는 스키너 요 원이라면 당연히 DDOS 관련 사안 도 인지하고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곧이어 차가웠던 그의 얼굴에 분 노가 차올랐다.
"무엇보다 DDOS 공격은 현재 진행형이란 말씀이시죠?"
유재원은 스키너 요원의 기세에 고개만 끄덕였다.
"상부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이에 스키너 요원은 다녀오겠다 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스키너 요원이 사라지고 나서 30 분쯤 지났을까.
-911 테러 합동 수사본부 긴급 발표!
-911 테러, 사이버세상에서는 현 재 진행 중!
-넥스트컴을 비롯한 여러 대표 사이트 접속 불가.
-중국 해커 그룹 ID 그룹 데이 터센터를 향한 대규모 DDOS 공격 중!
-미국 정부, 중국에 사이버 테러 에 대한 정식 해명 요구!
911 테러에 대한 여파는 중국에 도 튀었다.
-배포 시작했어!
갑작스러운 미국 정부의 긴급 발표에 중국이 뒤집어지는 동안, 유 재원과 ID 그룹은 제 역할을 확실 히 수행했다.
영식이의 ID톡이 있고서 잠깐 시 간이 흐르자, 데이터센터 모니터링 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인터넷에 접속 중이던 안드로이 드 게이밍 에디션의 재부팅이 연쇄 적으로 일어났고, 그에 따라 코요 테 시티 데이터센터를 빨갛게 물들 이던 DDOS 공격력도 사라지면서 점차 색이 옅어졌다.
그에 따라 레인보우 테이블 생성속도도 빠르게 복구되었다.
덕분에 몇 시간 후, 스키너 요원 이 지친 얼굴로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찾았어요."
유재원은 당당한 모습으로 담백 한 한 마디를 할 수 있었다. 찾았 다는 한 마디 말은 스키너 요원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올라오게 했다. 역시 스키너 요원답게 평범 한 미소는 아니었다.
입은 웃는데 눈빛은 그대로인지 라 너무도 섬뜩한 미소였다.
미국이 늦은 밤 백악관 공식 발 표를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중국 역시나 미국의 해명 요구에 깜짝 놀랐다. 태평양 너머 중국은 한창 일할 시간이었기에 밤잠 설칠 일은 없었지만, 사이버 911 테러라 는 무지막지한 타이틀에 깜짝 놀라 며, 주석궁이 뒤집어졌다.
그때, 유재원은 비싼 돈 들여 구축한 데이터센터의 압도적 컴퓨팅 파워로 예상했던 시간에 정확하게 레인보우 테이블을 완성했다.
레인보우 테이블을 완성함으로써 게임은 끝났다.
용의자의 애플 ID에 등록된 해시 값을 검색하는 것으로 끝이다.
빙고!
-하나의 데이터 값 일치!
데이터베이스 파일 용량이 8.5테 라바이트나 되는 탓에 검색하는 데 만 몇 분이 걸렸지만, 일치된 결괏값 하나를 정확히 찾아냈다.
"이 휴대폰의 암호는 이겁니다."
유재원은 본인의 모니터에 찾아 낸 암호를 큼직한 크기로 띄웠다.
암호만 보고도 굉장히 용의주도 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했다. 8자리 자릿수를 가득 채웠고 알파 벳 대문자, 소문자는 물론 숫자까 지도 조합한 난수였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Q1W2E3R4나 ZXCV1234, 1111 따위와는 백만 광년쯤 앞에 있는 높은 수준의 난수였다.
"당장 입력해 봅시다."
스키너 요원의 말에 유재원도 고 개를 끄덕였다.
아이폰드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르 자 잠금화면이 떴고, 그걸 스키너 요원에게 내밀었다. 암호는 스키너 요원이 직접 입력하라는 의미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유재원으로부터 아이폰드를 받은 스키너 요원은 신 중한 태도로 모니터에 뜬 난수를 차근차근 입력했다.
띵!
8자리 암호를 정확하게 입력하자 투명한 신호음과 함께 아이폰으의 홈화면이 나타났다. 너무도 그리웠 던 그 화면이었다.
마음을 졸이던 팀원들은 그 화면 을 확인하고서 환호 소리와 휘파람 을 터트렸다.
"일단 그룹 서버에 백업부터 하 겠습니다."
스키너 요원이 감격을 느끼는 것 도 잠깐이었다.
암호화가 풀렸으니, 가장 먼저 하는 건 아이폰으의 저장소를 컴퓨터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다. 수 십 명의 전문가로 팀을 만들어 놓 은 상태에서 아이폰S 한 대를 붙잡 고 일일이 뒤져 보는 건 미련한 일 이었다.
이미지를 띄운 다음, 팀원들에게 모두 전달해서 분석하도록 하는 게 가장 우수한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유재원도 빠지지 않았다.
도움을 약속할 때, 스키너 요원 으로부터 받은 조건 중에 정보의 차별 없는 제공을 받기로 하여 브리핑 자리에 함께 서는 것도 있었 으니 말이다.
이미지를 받은 유재원은 바로 해 체에 돌입했다.
"호오. 바이퍼였군."
제일 궁금했던 것은 ID톡 대신 사용한 메신저였다.
용의자들의 통신 기록을 보면 i 메시지를 통해서는 일반적인 내용 을 주고받았지만, 그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ID톡을 사 용하지도 않았으니, 이를 대신할 다른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썼다는 게 유력했다.
그렇다고 애플 앱스토어 설치 내 역을 보면 메신저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앱스토어에도 없는 앱을 사용자가 직접 설치했다는 뜻 이었는데, 암호를 해제함으로써 밝 혀 졌다.
비밀 대화 전문 메신저라는 바이 퍼 였다.
러시아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 었는데, 성능은 이번 일로 확실히 검증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유재원이 레인보우 테이블을 만들어 암호를 뚫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으니 말이다.
"응?"
당연히 유재원은 바이퍼 앱을 즉 각 실행했다.
그러자 ID톡과 유사한 구성이 나 왔다. 친구 목록, 대화 목록이 별도 의 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미 만들어진 대화방이 5개 정도 되었 다.
유재원이 의문의 소리를 낸 건 아이폰으의 암호나 비밀 대화에 특 화된 사설 메신저를 설치해 사용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던 용의자였 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대화방 목 록이나 친구 목록은 그대로 둔 상 태였다는 점이다.
친구 목록에는 알 카에다의 행동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으로 유력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등 록된 이름이지만, 대화방으로 들어 가 보면 이름이 딱 보였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동영상 클립이 었다.
비행기 조종실을 장악하고서 10 초 분량의 짧은 영상을 녹화해 전 송한 것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사 진과 동영상 파일의 전송을 시도했 다.
대도시 위를 지날 때 고고도로 올라간 것만 아니라면, 비행기 안 에서도 인터넷과 전화가 터졌고, 그 틈을 이용해 파일 전송을 시도 한 모양이었다.
제대로 전송된 게 1/3 정도 되 고, 전송 실패가 뜬 게 2/3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전송된 동영상 클립 중 하나를 유재원은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 봤다.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 러의 몸통이라는 걸 자처했던 스트 리밍 방송에서였다. 거기서 오사마 빈 라덴은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제 시한 영상이 있었는데, 그 파일이 지금 아이폰드에서 발견된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 다.
다른 비행기를 납치한 팀은 3개 가 더 있었고, 이들과 9월 11일 새 벽까지 대화하면서 사건을 모의한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유 회장님!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동합시다."
스키너 요원도 데이터분석 전문 가의 도움을 받아 같은 내용을 동 시간대에 확인했다.
수사에 특화된 그는 이 정도면 911 테러의 범인들을 완벽히 밝혀 냈다고 확신했다. 이것 이상으로 결정적인 증거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잠깐만요."
그런 스키너 요원을 유재원이 막았다.
"무슨 일이 또 있습니까?"
"몸통을 추적해야죠."
몸통이라 하면 당연히 오사마 빈 라덴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911 테러를 터트린 범인들의 정 체를 찾았다고 해서 사태가 마무리 되는 건 아니었다. 비행기를 납치 했던 이들은 죄다 현장에서 사망했 으니 말이다.
결국 911 테러는 오사마 빈 라 덴을 잡아야만 마침표가 찍히는 것이다.
회귀 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 는 빈대를 잡겠다고 했다가 아프카 니스탄이라는 초가삼간을 다 태우 고도 모자라, 미국의 경제에도 엄 청난 타격을 안겨 주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았고, ISIS의 발호 로 인해 중동의 정세는 더욱 혼탁 해졌으니 말이다. 치솟는 전비는 90년대 말부터 회복될 기미를 보였 던 미국을 다시금 넘어뜨렸다.
유재원은 21세기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우경화 움직 임의 시발점을 911 테러라고 분석 했다.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게 유재원의 목표였다. 그러자면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기획 한 몸통이라는 걸 알리고, 최대한 빨리 생포해야만 했다.
하늘이 유재원을 돕는 듯, 오사 마 빈 라덴은 원래보다 훨씬 빨리, 스스로 등판해서 본인의 악명을 키 웠다.
원래대로라면 테러를 벌인 이후 3년쯤 지났을 때,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본인의 정체를 공개하는데, 이번에는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직접 등판했다.
그것만으로도 유재원의 부담은 대폭 줄어들었다.
인터넷 스트리밍 역시 녹화된 동 영상 파일을 프록시 서버와 IP 조 작 등의 방식으로 본인의 소재를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유재원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유재원이 과거 회귀를 준비하면 서 공을 들인 게,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비밀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 다. 미국은 사건 발생 후 수십 년 이 지나면, 비밀 문서를 공개하는 정책이 있는데, 이를 통해 911에 담긴 비밀도 상당 부분 드러났다.
특히 열심히 수집한 건 911 테 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이 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현재 오사 마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장소에 대 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 었다. 여기에 스트리밍 방송을 통 해 얻은 정보가 더해지면서 그 위 치는 좀더 좁혀진 상태였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것 이 가능한 겁니까?"
"그럼요!"
더욱이 아이폰으에는 유재원이 어 림대중으로 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위치를 정밀하게 추적할 단 서가 남아 있었다.
기존의 오사마 빈 라덴의 정보와 아이폰드에서 추적할 수 있는 정보 가 더해지면, 당장 크루즈 미사일 을 날려도 될 만큼 정확한 위치가 포착될 것이다.
"세상에!"
스키너 요원은 감탄을 금치 못했 다.
80년 중반부터 FBI에 들어와 활 동을 시작했던 스키너 요원에게는, 유재원의 설명은 공상 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유재 원은 곧바로 자신의 말을 증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