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3화
백악관에 보좌관들 그리고 펜타 곤의 장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토 르의 해머 작전의 후속 대책을 논 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면 토르의 해머 작전에 대 한 평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러면 유재원이 언급되는 건 자연 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앨 고어 대통령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에 이야기를 나누 는 중이라 다소 가벼운 분위기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했 지만,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한 덕이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의 알 카에다를 향한 폭격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주고 있었기 때문 이다.
폭격에서 제일 큰 문제는 민간인 오폭이었는데, 알 카에다의 시설들 은 아직 민간에 스며들지 않고 산 악에 마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하 면서 단순히 신병만 확보한 게 아 니라, 안가 안에 있던 컴퓨터와 휴 대전화 등의 중요 정보를 탈탈 털 었다.
거기에서 새롭게 추출한 정보를 바탕으로 폭격의 효율을 보다 높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유재원 회장이 911 테 러에 대해 일찍 경고했다고요?"
시작은 델타포스의 특수전 사령 관의 물음이었다.
"그렇습니다. 올해 1월 대통령 각하 취임식 직후에 러시아로부터 첩보를 받았다고 하며 전해 주었지 요."
데이비드 국가 안보 보조관이 답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까지 첨부 된 첩보였다. 폐차장에서 나온 재 료들로 항공기 내부를 얼기설기 만 들어 놓은 세트장 사진이었다.
덕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하이재킹을 시도할 거라는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자살 테러로 이어질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한 게 뼈아픈 실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아쉬운 일 이었다.
그나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일찌감치 할 수 있었 고, 덕분에 알 카에다라는 베일에 가려진 조직도 파악이 가능했다.
"그나저나 스텔스 드론의 성능에 대해선 만족하십니까?"
이번엔 국가 안보 보좌관이 특수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예!"
특수전 사령관은 아주 간단히 대 답했다. 그러나 이게 답변의 전부 는 아니었다.
"잠입 작전의 제일 큰 난관은 낯선 지리죠. 아무리 정확한 지도라 도 직접 출동해 보면 현실과는 늘 달랐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먼저 작전 구역에 진입해 정보를 전해 준 모 선 덕분입니다. 마치 조기 경보기 의 서포트를 받는 전투기의 느낌이 었죠. 게다가 스마트폰과의 연동은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하더 군요."
군인이고 원래 과묵한 성격이었 던지라 웬만해선 긴 답변을 듣기 힘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갑작스레 전개된 오사마 빈 라덴 생포 작전이었지만, 작은 오점도 없이 그야말로 깔끔하게 진행되었 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델타포 스 대원들에게 스마트 장비가 지급 되었다는 점이다.
첩보용 드론과 연동된 스마트 장 비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안가에 대 한 정보를 빠르게 대원들에게 전달 했다.
무전으로 전송되는 정보보다 영 상으로 전송되는 게 정보량에 있어 훨씬 밀도가 높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이번에 유용성을 확실히 확인했 으니 대대적인 도입을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주시면 너무도 감사하지 요."
국가 안보 보좌관과 특수전 사령 관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스텔스 드론의 도입에 힘을 실었다.
스텔스 드론의 전면 도입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일부 인사들은 둘이 왜 저러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론 도입에는 소극적인 미군이었지만, 연구 사업 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공격용 드론인 프레데터부터 글 로벌 호크라는 고고도 무인 정찰기 사업도 진행 중이었다. 그런 와중 에 침투형 스텔스 드론이 먼저 둥 장한 것이다.
토르의 해머 작전은 그야말로 번 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진행 되었다. 스텔스 드론이 있었기에 수행이 가능한 작전이기도 했고, 이를 위해 ID 하이테크 연구소로부터 징발 형식으로 가져다가 작전에 투입하게 된 것이다.
"음! 저도 동의합니다. 침투 작전 을 보조하는 데 스텔스 드론만 한 기체는 없죠."
여기에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끼 어들었다.
신중론자들이었던 이들에겐 뜨악 할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 령 비서실장 밴더빌트는 엊그제만 해도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돌변하다니.
뭔가 자기를 빼놓고 공감대가 형 성된 것 같아 불안해졌다. 실제 스 텔스 드론의 도입에 적극적인 의견 을 피력했던 이들끼리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부터인가 인터넷상에 이상한 여론이 돌고 있 다는 거 아십니까?"
"911 음모론 말입니까?"
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음모론이 란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 다.
처음에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온 가벼운 이야기였다. 특히 유재 원과 911을 엮어 온갖 루머를 만들 어 내고 있는데 사건의 전모를 아 는 이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이 야기뿐이었다.
그런데 음모론이 전파되는 속도 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은 공화당 성향의 일부 지식 인들 사이에서 그럴듯하게 각색되 어 퍼지고 있다고 하니,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911 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음에도, 미국은 빠 르게 안정을 찾고 있었다.
세계 최강 대국임을 증명하는 것 처럼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왔고,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는 쑥대 밭이 되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911 테러 희생자 들을 위한 기부금이 기업과 국민들 로부터 답지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억 달러가 모였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이번 테러가 잘 수습된다면 미국 의 불안 요소였던 분열의 기운이 크게 약화되고 다시금 하나로 뭉칠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민주당의 강한 지지세도 덤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회의에서는 유재 원 회장에 대한 처우에 대해 집중 적으로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군 요."
"그렇습니다. 911 테러 전반에 걸쳐 유재원 회장의 서포트가 없었 으면 지금의 성공적인 대처는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더욱이 ID 그룹이 우리 미국 경 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 없지요."
"이런 일은 있어선 안 되겠지만, 만약 음모론에 실망한 유재원 회장 이 미국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사업 영역을 축소한다면 이는 단순 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익에도 큰 손실이 될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제는 유재원 회장의 존재감에 대해 서도 제대로 인정해 줘야 할 때라 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기 회에 유재원 회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데이비드 국가 안보 보좌 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스텔스 드론의 도입에 대해선 신 중한 태도를 보였던 군부의 일부 인사들 역시, 유재원에 대한 정확 한 재평가는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 했다.
"대통령 각하 입장하십니다."
때마침 앨 고어 대통령이 회의실 에 입장했다.
간단한 인사 후 본론으로 들어갔 고, 사전에 논의된 유재원 관련 이 야기가 전해졌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지적이군. 바로 시작하지."
앨 고어 대통령도 이견 없이 바 로 동의했다. 대통령의 재가가 떨 어졌으니 머뭇거릴 일이 없었다. 즉각 정보기관과 싱크탱크 등에 유 재원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명 령했다.
그리고 십여 분이 지났을 때.
팩스와 이메일, 인편 등으로 백 악관에서 요청한 유재원에 대한 리 포트들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 정보기관인 CIA부
터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까지. 극과 극으로 갈린 보고 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거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앨 고어 대통령을 비롯한 이들은 책상에 쌓이는 출력물이 점점 많아 지는 걸 보고서 이 작업이 하루 만 에 끝날 일이 아님을 실감할 수밖 에 없었다.
며칠 후.
앨 고어 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보좌관들 그리고 펜타곤의 장성들 이 다시 모였고, 몇십 분의 토의 끝에 하나의 문장에 동의했다.
-유재원은 이레귤러다.
이레귤러의 뜻은 이례의 존재, 규범을 벗어난 존재로 말할 수 있 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검토 된 리포트만 해도 책상을 가득 채 울 만큼 높았다. 다양한 기관에서 작성된 리포트는 해당 기관의 성향 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공통의 사실 은 유재원이란 인물이 보통의 천재 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재라면 당연히 특출난 사람들 이었다.
하지만 이런 천재들을 다시 하나 의 카테고리로 묶으면 어느 정도의 규칙성이 보인다.
하지만 유재원은 그런 천재라는 카테고리로도 묶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게 확실히 드러났다.
이제껏 세상에 등장한 천재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유재원처럼 세상을 급 격히 바꾸는 존재는 없었다. 보통 천재들은 특정 분야에서 특정한 능 력을 특별하게 발휘했다.
그렇기에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는 보통 사람보다 못한 능력을 발 휘할 때가 많았다. 컴퓨터 분야의 천재들도 그랬다.
덕분에 그들 옆에는 천재들의 단 점을 보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성공했다.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도 스티 브 잡스와 만나면서 천재성이 발휘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재원은 이 러한 통설이 통하지 않았다.
직접 회사를 경영했고, 회사를 경영하는 수완은 잭 웰치 같은 전 문 경영자보다 더 좋았다.
이러한 존재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것이 앨 고 어 대통령과 백악관 사람들의 공통 된 결론이었고, 이레귤러라는 특별 한 칭호까지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번에 이어진 회의는 이레귤러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논의해 보는 것으로 주제가 정해졌 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앨 고어 대통령의 물음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손을 들었 다. 데이비드 국가 안보 보좌관이 었다.
"위대한 미국의 일원으로 만드는 게 최선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귀화를 권유하자 는 이야기였다.
미국의 수뇌부가 유재원에게 갖 고 있는 최대의 불안감은 바로 국 적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다른 적성국에서 활동하는 것보 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나 은 건 맞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미 국에서 활동하는 게 제일 좋았다.
비록 ID 일렉트로닉스와 ID 디 스플레이라는 거대한 공장이 한국 에 있긴 했지만, 그래도 ID 그룹의 주요 활동 영역이 미국이라는 건 불변한 사실이다.
그러니 귀화를 시켜서 미국인으 로 만들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이야기였다.
"부시 전 대통령이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걸 몰랐을까요?"
간단하고 확실한 대책이었지만, 반론은 즉각 일어났다. 오늘 회의 를 위해서 특별히 모셔 온 외부 인 사로, 미국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나단 록스 소 장이었다.
"여기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전대 이사장인 에드윈 풀러 님이 작성한 보고서로군요."
앨 고어를 비롯한 백악관 보좌진 들은 모두가 민주당의 핵심 인물이 었다. 조나단 록스 소장 역시 마찬 가지다.
그런데도 꺼내 든 리포트는 공화 당의 대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 단의 문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에드윈 풀 러는 유재원의 천재성을 제일 처음 발견한 미국의 인사였기 때문이다.
에드윈 풀러는 유재원에게 우호 적인 인사였고, 부시 대통령 시절 본인의 판단을 믿고 유재원에게 적 극 힘을 실어 주었다.
덕분에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와 ID 오피스가 연방 정부 기관에 공 식 보급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ID 그룹의 매출도 확 늘어났다.
"에드윈 풀러 이사장은 유재원 회장에게 귀화를 권유했다고 했고, 유재원 회장은 그에 대해 확실히 거부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에드윈 풀러 이사장은 그렇게 거절의 의사를 확인하고는 그 뒤로 다시는 귀 화를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군."
"예.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천 재란 사람들의 특성이 자신이 싫어 하는 건 절대 하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진 조나단 록스 소장의 말에 다들 아 소리를 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