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16화
#392. 무모한 도전, 압도적 응징전 세계 극장가를 반지의 제왕이 한창 접수하고 있을 때.
"돈이 모자라."
유재원의 입에선 신기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평일 업무 시간이었기에, 서재의 전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유재 원이다.
그런데 컴퓨터에 실행되고 있는건, 평소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래 밍 툴이 아니었다. 그룹 통합 전산 망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으로, 그 룹 전체의 자금 상황에 대한 정보 가 표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작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시 작으로 해리포터에 이어 반지의 제 왕까지. ID 그룹의 신규 런칭 서비 스나, 개봉작은 유래가 없는 인기 를 끌면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중이었다.
비단 신규 서비스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포트폴리오도 탄탄한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돈이 모자라다고 하는 건 유재원이 앞으로 지출할 일들이 무지막지한 것들이었던 탓이다.
며칠 전 ID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뒤집어 놓았던 판 타지 유니버스 게임의 제작비 때문 은 아니다.
개발비라든가, 캐릭터 라이선스 비로 지불될 몇백만 달러 정도의 금액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막대한 자본력이 필 요한 일로 하나는 셰브롱의 지분확보, 두 번째는 NBC 인수 혹은 합병이었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가 출범 한 다음부터 세븐 시스터즈의 존재 감이 많이 엷어진 건 사실이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공시 유가는 세븐 시스터즈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지만, 오펙이 출범 하고부터는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석유의 개발과 유통 등에 서는 그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 있 었다.
셰브롱은 세븐 시스터즈 중에 4번째 순위를 차지하는 중이다. 엑 슨모빌과 로열 더치 쉘이 1등을 다 투고, 다음이 브리티시 페트로늄과 셰브롱이 2순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데, 늘 브리티시 페트로늄에 2% 밀리는 형국이었다.
셰브롱의 현재 주가 총액은 대략 1,200억 달러인데, 원래 역사에서 보다 대략 240억 달러 정도 고평가 된 상태다.
911 테러 이후 한껏 가중된 중 동의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상승하 면서 주가도 크게 오른 것이다.
여기에 IT 버블 붕괴 이후 굴뚝 산업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면서 작년 3분기부터 주가가 꾸준히 상 승 중이었다.
참으로 거대한 셰브롱이다.
이러한 셰브롱의 후계 구도에서 외부에 무슨 변수가 생기더라도 티 파니가 프레더릭의 뒤를 이을 수 있으려면 최소 17%의 지분을 확보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년부터 꾸준하게 지분을 모아 1%를 확보한 상태인데, 앞으로도 10%< 더 모아야 한다. 10%는 현재 주가 기준으로 120억 달러나 된 다.
만에 하나 유재원이 셰브롱의 주 식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난 다면 주가가 더 폭등할 테니, 120 억 달러도 최소한의 가격이었다.
셰브롱 다음으로 노리는 NBC도 비슷했다.
NBC는 처음엔 유니버설과 접촉 한 상태였다. 여기에 뒤를 이어 타 임워너 넥스트컴이 인수전에 참전 을 선언했다.
매물은 전 세계에서 딱 하나인
데,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복수라 면? 물건값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 운 일이었다.
특히 구매자가 둘도 없는 라이벌 관계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뒤로 물러날 수가 없다.
NBC가 딱 이런 상황이었다.
그러니 후발 주자는 최대한 조심 스럽게 접근하는 게 상책이겠지만, NBC 같은 특별한 매물에는 적용 될 수가 없다.
일단 공중파 방송국의 인수에는 연방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어떤 기업들은 보안을 유지한다 고, 연방 정부의 승인을 마지막 단 계에 놓는 경우도 많았는데, 보통 은 문제없이 승인이 떨어지지만 만 에 하나 거부라도 되면 날벼락을 맞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 유재원은 회귀 전 미국의 거대 기업 간 합병 중에 연방 정부 의 거부로 합병 성사가 물거품이 된 경우를 많이 보았다.
NBC 인수도 최대 고비는 연방
정부의 승인이었기에, 타임워너 넥 스트컴에서 정식으로 인수전 참여 를 선포하고 바로 연방 정부에 승 인을 문의했다.
문의를 넣은 지 3개월이 지났지 만, 아직 공식 답변이 돌아온 건 아니다. 그래도 전망이 어둡진 않 았다.
"터너 씨가 승인이 날 건 자신하 고 있으니 말이지."
NBC 인수라는 카드를 처음 떠 올렸을 때, 유재원은 좀 무리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현재의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규모는 상당했으 니 말이다.
그런데도 테드 터너가 자신감을 보이는 건 타임워너에 공중파 채널 은 없었던 탓이다.
HBO, TBS, TNT 등등, 막강한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였지만, 공 중파 채널은 아니었다. 유료 케이 블 서비스를 신청해야만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이었다.
그렇기에 타임워너에서도 공중파 채널을 보유하는 것을 숙원 사업이 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규모 면에서는 거대한 방송 산업이지만, 수익성에 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지금도 타임워너만 뚝 떼놓고 수익성을 따 져 보면, 매출액은 160억 달러에 순이익은 60억 달러를 겨우 넘기는 중이었다.
미디어에서 제일 큰 매출액을 차 지하는 건 광고 판매였는데, 광고 의 주류가 TV에서 인터넷으로 급 격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의 수익성 약화는 약 과다. 타임지를 비롯한 신문사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전통의 라이프지도 최 악의 실적을 기록했고, 폐간에 대 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넥스 트컴 그리고 ID 그룹과 연계해 시 작한 인터넷 사업이 아니었다면 수 익성은 더 떨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아니었 으면 NBC 인수도 유니버설에 넘 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NBC 인수전에 참가할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했으니 말 이다.
"음, 400억 달러 좀 넘으려나?"
간섭받는 걸 싫어하는 유재원은 NBC 지분 전체의 인수를 생각하 고 있었다. 그 가격이 400억 달러 였다.
전통 미디어인 공중파의 침체로 NBC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주 가로만 따지면 200억 달러 조금 넘 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인수전이라 는 게 주가 총액만 지불한다고 해 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보다 먼저 접 근했던 유니버설이라는 경쟁자도 있고, 인수 시에 챙겨 줘야 할 프 리미엄도 따로 있다.
그걸 다 더해 보니 400억 달러 가 좀 넘었다.
물론 가격을 낮출 방법은 있다. NBC의 주식 전체가 아닌 지배 지 분만 인수하는 방식도 있고, 컨소 시엄을 구성해 부담을 나눠 지는 방식도 있다.
대신 이것저것 참견할 대주주도 그만큼 늘어날 터였다.
NBC를 통해 유통할 콘텐츠가 무궁무진한 유재원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러면 둘 다 합쳐서 500억 달 러는 넘게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ID 그룹을 반석에 세운 다음부터 미국 달러화를 억 단위로 만지는 유재원이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500억 달러 이 상을 동원하는 건 무리였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235억 6,340만 달러뿐이네."
사실 그것도 상당한 규모였다.
전 세계 기업 중에 200억 달러 가 넘는 자금을 현금으로 보유한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니 말이 다.
ID 그룹도 타이밍이 잘 맞아서 현금 보유고가 제법 쌓인 것이지, 사내에 현금을 쌓아 놓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235억 달러나 되는 현금 중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작년 911 테러에 대비했던 ID 인베스트 먼트의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을 현금화한 것이었다.
풋 옵션이야 테러 발생 다음 날 최고가로 청산했고, 이번에 현금화 가 된 것은 금과 석유 등의 기초 투자 상품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자금 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을 중 심으로 전 세계에서 투자금이 몰려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 금은 유재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여기에 한국의 IMF 조기 졸업이 란 명분으로 빠르게 상환한 자금이 있었다. 돌아온 자금 중 일부는 덕 진대학교를 만든다고 사용되긴 했 지만, 상당 액수는 그대로 남아 있 었다.
마지막으로 ID 그룹이 2001년 동안 열심히 일해 거둔 순수익이 있다.
이러한 자금을 모두 더했을 때, 지금 유재원의 모니터에 뜬 235억 달러라는 금액이 나온다는 이야기 다.
"260억 달러가 모자라네."
260억 원도 아니고, 260억 달러를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지만, 유재원은 부담이 조금도 없었다.
주식이니 선물이니 하는 극단적 인 투자처가 아니더라도 유재원은 얼마든지 그 돈을 만들어낼 자신감 이 있었으니 말이다.
"뭐, 이 정도는 되어야 비즈니스 라고 할 만하지."
ID라는 이름을 만들고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분명 있었다. 친구 들의 손을 빌린 수제작 패키지를 팔면서 좋아했던 게 바로 어제 같 다.
이제는 미국의 대표 공중파라는 NBC와 세븐 시스터즈의 셰브롱을 노릴 만큼 성장한 것에 대해 뿌듯 함을 느끼는 유재원이었다.
비슷한 시각.
미국의 경제 수도 뉴욕시의 대표 적인 마천루 록펠러 센터 최상층에 마련된 고급스러운 사무실을 독차 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탁월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이곳이 유니버설 미디어의 수장 스 티브 버크의 사무실이었다.
이 넓은 공간을 독점하는 것으로 성공했다는 기분을 제대로 낼 수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스티브 버 크의 얼굴에는 수심이 사라지지 않 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뭐 400억?"
아이폰드를 들고 한창 통화를 하 던 스티브 버크의 목소리가 크게 올라갔다.
수화기 너머로 400억이라는 상상 을 초월하는 숫자가 튀어나왔던 탓 이다. 유재원도 조금 전 보았던 NBC의 인수 예상 가격이었다.
유재원은 덤덤히 넘긴 숫자였지 만 스티브 버크는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3달 사이에 두 배가 오 를 수 있나?"
-400억 달러가 아니라 400억 달 러 이상입니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이 스티브 버 크의 말을 정정해 줬다.
정확히 계산한다면 2배가 아니라 2배보다 훨씬 많이 올랐으니 말이 다.
스티브 버크가 가장 신뢰하는 임 원으로 그를 대리하여 NBC 경영 진과 인수에 대해 논의 중인 사람 이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스티브 버크의 푸념처럼 작년 겨 울만 해도 NBC의 가치는 200억을 넘지 않았으니 말이다.
프렌즈라는 걸출한 드라마로도 개선되지 못한 게 NBC의 재정 상태였고, 비전도 불투명했다.
덕분에 NBC의 가치도 바닥이었 다.
인수 방식도 유니버설에 유리했 다.
일부 대금은 현금 지급이었고 나 머지는 합병된 회사의 지분으로 지 급하는 방법으로 방향이 잡혀 나가 고 있었으니 말이다.
순조롭게 진행 중이던 협상은 어 느 순간 확 틀어졌다.
-타임워너 넥스트컴, NBC 인수
전 전격 참전!
해당 기사가 신문에 난 건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격한 감정은 생생했다.
그때부터 NBC와 협상이 빠듯해 지면서 호가도 미친 듯 오르더니, 이제는 2배 이상이라는 거다.
"망할 유재원!"
신문에 난 건 타임워너 넥스트컴 이지만 스티브 버크는 유재원을 씹 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 위에 누가 있는지는 뻔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중 하나인 유니버설을 이끌고 있는 그 는 유재원에게 쌓인 것이 많았다.
작년 유니버설의 성적표는 형편 없었다.
그나마 최고 성적을 거둔 건 쥬 라기 공원 3이었는데, 북미에서는 1억 8천만 달러, 월드와이드로 3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 다.
반면 워너브라더스의 경우에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만 9억달러를 넘겨 버렸다.
심지어 몇 주 전 개봉한 반지의 제왕도 무시무시한 흥행 대박을 이 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작년에도 그랬다. 더 거슬러 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할리우드에 유재원의 투자를 받으면 최소 쪽박은 차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유재원과 타임워너가 잘 나갈수록 압박을 받는 게 다른 영 화사였고, 거기엔 유니버설도 있었 다.
영화사가 공중파 인수라는 특이 한 활로를 찾은 이유 중 하나가 유 재원이었다.
그런데 NBC 인수에서도 또 딴 죽을 걸다니.
"이번만큼은 질 수 없지."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