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20화
"2002년형 i웍스와 뉴에그도 확 실히 준비했습니다."
이번 i웍스와 뉴에그 시리즈에는 유재원이 큰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제품은 무척이나 잘 나 왔다.
ID 그룹이란 체계적인 조직이 갖 춰지고, 그동안의 역사가 굳건한 아이덴티티로 정립되었기에 유재원 이 일일이 손보지 않아도 믿음직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에 나오는 i웍스도 알루미늄 합금과 수냉, 그리고 LED라는 요소를 적극 활용해 탁월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제품 조립에 사용하는 부품 은 선별된 최고 수율 부품으로, 오 직 ID 그룹만 공급받을 수 있는 최 상의 제품이었다.
덕분에 델이나 HP 등의 완제품 컴퓨터 제조사는 i웍스를 능가할 제품을 만들려야 만들 수 없을 정 도다.
"파운드리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더군요. 비메모리 반도체가 많 이 남는 장사라고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바로 파운드 리 사업에 있었다.
120나노 공정을 인텔과 AMD에 제공하면서 단순히 로열티만 받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업적 편의 도 제공 받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율 선별 제 품이었다. GPU는 더욱 확실했다. ATI와 엔비디아 모두 ID 일렉트로 닉스에 제품 생산을 의뢰했다.
기존의 파트너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율이라는 반도체 업계의 지상 과 제에서 ID 일렉트로닉스를 넘어서 진 못했다.
그렇다고 TSMC의 파트나 관계 가 파탄난 건 아니었다.
ID 일렉트로닉스가 ATI와 엔비 디아의 차세대 GPU 생산 전체를 독점하진 못했고, 일부 모델에 한 해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의뢰한 제품은 두 회사 사 이에 차이가 있었다.
GPU의 경우 빅칩이라는 칩당 면적이 거대한 하이엔드 라인과 스몰 칩이라는 메인스트림 라인으로 이 원화된 상태였다.
빅칩은 한 장에 100만 원이 넘 는 초고가로 최상급 게이머와 기업 등에 공급되고, 스몰칩의 경우 일 반 게이머들, 완제품 컴퓨터, 게임 기에 대량으로 들어가는 칩이었다.
많이 팔리는 건 스몰칩이지만 박 리다매를 해야 했고, 소량 판매가 되지만 단가가 높은 건 빅칩이다.
두 회사가 ID 일렉트로닉스에 생 산을 의뢰한 건 맞지만, 제품군에서 차이가 났다. ATI에서는 빅칩을 엔비디아에서는 스몰칩의 생산을 의뢰했다.
과연 두 회사의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면 재미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결론은 이것이다.
"세계 최고의 완제품 PC는 앞으 로도 i웍스와 뉴에그가 자리할 겁 니다."
완제품 PC 시장의 성장세는 아 직 현재 진행형이었다.
성장세가 꺾이는 건 2010년쯤부 터 시작이니 그전까지 확고한 이미 지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이 최 고다. 가격 경쟁이 치열한 보급형 라인과 달리 로열티가 확실한 프리 미엄 시장은 부가 가치를 많이 남 길 수 있었다.
프리미엄 완제품 시장에서의 i웍 스와 뉴에그는 아주 바람직한 행보 를 진행 중이었다. 이것으로 ID 일 렉트로닉스에 대한 정리는 끝났다.
" 다음은요?"
"ID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판타지 유니버스를 위한 개발자들의 소집 을 완료했습니다."
판타지 유니버스 - 시공의 폭풍 개발을 담당한 개발팀 구성에 대한 보고였다.
유재원이 작성한 판타지 유니버 스 기획서를 받아든 ID 엔터테인먼 트 스테판 바버 사장은 처음 보자 마자 대박이라는 걸 느꼈다.
각 작품마다 막강한 팬덤을 거느 린 온갖 만화, 애니메이션, 히어로 물의 주인공들을 한 자리에 모아다가 게임을 만드는데, 그게 실패하 면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각자 개성이 다른 히어로들 의 팬덤이 모두 납득할 만한 이야 기와 수준 높은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개발팀 구성에 대해 서도 고민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지만,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 하나만으로도 벅찬 상태 인지라 차선책을 찾았다.
하지만 ID 엔터테인먼트 휘하 게 임 스튜디오들은 모두 게임 제작에 한창이었다.
하프라이프 2, 카운터 스트라이크, GTA 바이스 시티는 한창 제작 중이 었고 NBA, NFL, NHL 등의 북미 메이저 스포츠 게임의 차기 버전도 만드는 중이었다.
전자의 게임들은 2002년 중에 출시라면, 스포츠 게임들은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올해는 월드컵이 있는 해인지라 다른 스포츠 게임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03 버전을 내년 연 초에 내는 것으로 스케줄을 조정했 다.
스테판 바버 사장은 당연히 피파 축구 게임을 내고 싶었지만, 독점 라이선스가 EA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EA와의 독점 계약이 끝나는 내 년을 기약 중이었다.
그나마 ID 소프트웨어는 현재 개 발 중인 게임이 없었지만, ID 테크 엔진 3을 개발 중이기에 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ID 소프트웨어는 게임 판매 로 얻은 이익보다 게임 엔진 판매 로 얻은 이익이 더 커진 상태였기 에, 차세대 엔진 개발이 중요했다.
결국 남은 건 새로운 개발팀을 꾸리는 것이다.
개발팀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 니었기에, 유재원에게 바로 연락이 올라갔다.
스테판 바버 사장의 연락을 받은 유재원은 문득 한국에 개발팀을 꾸 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다.
ID 테크 엔진을 가져다 쓰면 기 술적인 차이는 사라지는 것이고, 한국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의 실력도 세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신 몸값은 훨씬 저렴하다.
당연히 게임 업계에서도 ID 엔터 테인먼트가 직접 한국에 개발팀을 꾸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연말에 돌 풍이 불었다고 한다.
유재원은 첨부된 이력서를 훑었 다.
육감적 체형이 특징인 김영태 디 자이너를 비롯해, 유재원이 알고 있던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된 리스 트였다.
최강욱과 함께 열심히 결재 서류 를 처리하}자, 드디어 끝이 보였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드디어 살생부가 유재원 앞에 나 타났다.
그야말로 살벌한 이름이지만, 정 식 명칭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97?02년 백호 펀드 운용 보고서 및 종합 평점에 따른 매각 검토 리스트였다.
97년에서 02년까지.
"만으로 4년이나 됐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앞만 보면 까 마득한데, 뒤를 돌아보면 시간은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최강욱의 대답에는 여러 가지 감 정이 섞여 있었다.
확실히 공감되는 말이었기에, 유 재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앞으로 치러야 할 일들을 생각하 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뒤를 돌아보면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IMF가 왔던 게 맞나 싶더군요."
"예, 웰빙이다 식도락이다 참 별 난 것도 많다 싶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며칠 지내다 보니 제일 먼저 는에 들어온 건 역시 텔 레비전이었다.
친척 분들이나 박 사장님과 같은 은인들을 만날 때가 아니면 컴퓨터혹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고향 집이라 몸도 마음도 푸근해 졌지만, 그렇다고 유재원과 티파니 가 즐길 거리가 많은 건 아니었으 니 말이다.
다행히 덕진리 집에 놓인 텔레비 전은 ID 일렉트로닉스의 최신 LED 텔레비전으로 42인치나 되는 널찍 한 화면과 1080P라는 최상의 화질 을 자랑했다.
최강욱이나 김대석과 같은 이들 이 챙겨주기도 했고, 어머니도 ID 그룹의 최신 제품은 가능하면 집에 들여다 놓으려고 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만든 물건이 니 집에서 두고두고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마음 같아선 샌프란시스코 집에 있는 제품들을 가져다 드리고 싶지 만, 아무래도 기술 유출 위험 때문 에 그럴 수는 없었다.
수십 명의 상시 경비 인력에, 이 미지 분석 서버와 연동된 CCTV 시스템, 드론 감시 체계까지 갖춰 진 샌프란시스코 집에 비하면 고향 집의 경비 수준은 아주 간단한 수 준이었다.
하여튼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많이 들리는 단어가 웰빙이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이르는 단어였고, 21세기 중반 이후로는 한국에서 듣기 힘들어진 말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먹고, 잘 사 기 위해서는 가성비라는 지상 과제 를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것들은 평소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도 많았고, 특히 유기농 제품은 가성비가 적용될 수 없는 식품이었다.
또한, 요즘 부쩍 많이 나오는 게 제주도와 해외여행 상품 홍보였는 데, 여행 역시 IMF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여행객들도 많아졌고요. 제주도 도 관광객이 폭발했던데요?"
단순히 텔레비전에만 많이 나오 는 게 아니라 실제 관광객의 숫자 도 상당히 늘어났다.
작년 해외 여행자는 300만 명을 넘었고, 제주도에 다녀온 이들은 600만 명으로 두 배를 넘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회장님 이 여기까지 생각하시고 제주도에 투자하신 건가요?"
최강욱의 물음에 유재원은 미소 만 지었다.
개장할 때만 해도 적자였던 ID 엔터테인먼트의 원더랜드도 이제는 흑자가 되었고, 제주도의 땅값도 부쩍 올랐다.
당연히 유재원의 이익이었다.
제주도에서 유재원의 땅을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매년 엄청난 수준의 땅을 샀으니 말이다.
물론 땅만 사고 만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투자도 했으니 원래 역사보다 일찍 제주도 붐이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
제주도의 자랑인 돌담길이라든 지, 해안 일주 도보길, 해안가의 빼 어난 경관을 보존하면서도 카페와 음식점을 위한 리모델링 역시 유재 원이 주도했던 것이었다.
과거처럼 무분별한 개발은 최대 한 줄이고, 제주도 원주민들과도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투자도 유도했다.
어딜 가나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유재원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조언을 귀담아듣고 협동 조합 카페에 가입하거나, 요식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제2의 제주도 관 광 붐의 수혜를 제대로 입을 수 있 었다.
물론 가장 큰 이익은 유재원의 몫이었다.
원더랜드를 비롯해 고급 호텔과 리조트 등등, 몇 년 전만 해도 예약 없이 당일 방문해도 여유롭게 이용 가능했는데 이제는 옛 이야기 다. 지금은 무조건 예약이 필수였 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역시 마찬 가지다. 예약 없이 왔다가 1, 2시간 기다리는 건 필수였다.
단순히 국내 관광객들만 폭발한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원인은 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 트의 폭발적인 흥행 덕이었다.
오래전부터 워크래프트의 테마로 꾸며진 원더랜드가 드디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해외에서도 관광객이 왔으니 호텔과 리조트는 언제나 만실이었다.
이처럼 웰빙이 유행이 될 수 있 었던 것은 국민들의 평균적인 살림 살이 수준이 IMF 이전 수준을 회 복했고, 일부는 그보다 더 나아졌 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1998년 경제 성장률이 10%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7% 중반, 20이년에는 6%에 이를 만큼 꾸준한 성장력을 보였다.
경제 성장률에서 하락세는 꾸준 히 보였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엄 청난 성장률을 자랑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옆 나라 중국 의 폭발적인 성장 덕이었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 죠."
"그러면 백호 펀드의 운영 상황 에 대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가장극적인 반전은 대호중공업입니다."
드디어 최강욱의 살생부가 펼쳐 졌다.
그러나 살벌한 살생부라는 이름 과 달리 제일 먼저 언급된 대호중 공업을 말하는 최강욱의 표정은 무 척이나 밝았다.
국내 경제도 활황이었고, 기업들 의 성적표도 좋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백호 펀드에 속 한 기업들의 약진은 특히나 눈에 띌 정도였다.
그럼에도 살생부라는 딱지가 붙 은 건, 백호 펀드의 창립 이념 때 문이었다.
IMF의 직격탄이란 외부 환경 때 문에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인수해, 회생시킨 다음 다시 사회 에 복귀시키는 것이 백호 펀드의 역할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