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22화
-스티브 버크가 뭘 어떻게 구슬 린 건지 모르지만, 자네에게 물먹 은 사람들이 유니버설-GE 컨소시 엄에 다 몰린 것 같더군.
고마운 빌 아저씨까지도 이름을 올린 걸 보니 진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건 머독이다.
"머독 씨는 왜 나를 적대하는지 모르겠네요."
-후후, 원래 그런 작자였지. 아 마도 자네의 성장에 위기감을 받았 는지도 모르지. 요즘 뉴스콥의 채 널들이 인터넷에 밀려 죽을 쑤고 있으니 말이야. 게다가 아랫도리 잘못 놀린 덕에 마리아에게 거액의 위자료도 챙겨 줘야 할 판이지. 위 자료 때문에 뉴스콥이 박살나기 전 에 뭐라도 해 봐야 했을 거야.
마냥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테드 터너였지만, 시세 파 악은 확실했다.
폭스TV의 행태를 보자면 애초부 터 머독은 본인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ID 그룹이 성장하면서 인터넷이 폭발했고, 인터넷이 폭발하자 TV와 신문의 영향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TV는 고정 시청자층이 있어 아 직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신문은 구독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타임지만 하더라도 종 이 신문 발행량이 90년대 초에 비 해 1/4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타임워너 넥스트컴에 속한 덕에 인터넷으로의 전환이 빨 랐고, 스마트폰에 대한 대응도 좋았다.
종이 신문의 발행량은 줄었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타임지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광고 수입도 90년대보 다 훨씬 늘어났다.
반면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 콥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바람을 피워서 부인과 이혼 소송 중이었다. 위자료로 엄 청난 돈을 내줘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연방 통신 위원회가 딴죽을 거는 사안이 뭐예 요?"
유재원은 짐작이 가는 건 있지 만,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테드 터너에게 먼저 물었다.
-우리 타임워너 넥스트컴 같은 인터넷 미디어 기업의 출범은 처음 이니 경계심이 큰 것 같다는군. 여 기에 공중파가 더해지면 매머드급 미디어 제국이니 말일세.
"뉴스콥은 매머드가 아니면 뭐래 요?"
공중파부터 케이블 방송국, 신문사, 라디오, 잡지, 음반과 영화사, 지방의 소규모 인터넷망까지 갖추 고 있는 회사가 있으니 루퍼트 머 독의 뉴스콥이었다.
심지어 미국뿐만이 아니라 아시 아와 호주,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서도 막강하다.
그야말로 미디어 업계의 포식자 처럼 다 해 먹고 있는 기업이 이 뉴스콥이다. 타임워너 넥스트컴과 비교해도 당연히 앞서고 있다. 폭 스TV라는 공중파나 미국 너머의 해외 사업장은 훨씬 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나도 건 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우리도 공 중파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뭐, 질 적으로 따지면 우리가 우위지만, 그래도 채널은 다양할수록 좋은 거 니 말이야. 아, 물론 소비자의 입장 에서 말일세. 그러면 뉴스콥의 대 항마로 우리가 딱이지. 그렇지 않 나?
"물론이죠."
물론 질만 따지면 타임워너 넥스 트컴의 압승이다.
걸프전에서 대박을 터트린 CNN 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911 테러에서도 충격적인 보도를 이어 갔다.
비록 세계무역센터 현장에서의 방송은 다른 방송국에 밀렸지만, 펜타곤이나 국회의사당 속보는 앞 섰다.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 온 토르의 해머 작전을 니미츠 항 공 모함에서 생방송으로 보도했고, 알 카에다를 제거하는 멸절 작전도 빠짐없이 보도한 덕이다.
니미츠 항공 모함으로 돌아온 헬 기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끌어내릴 때의 화면은 인터넷에 영구히 박제 되었고, 그 화면의 귀퉁이와 하단 에는 CNN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영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21 세기 폭스사 역시 유니버설처럼 워 너 브라더스에 의해 꽉 눌린 상태 였다.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이었으니 이러한 성적은 주가에 곧장 반영된 다.
현재 뉴스콥의 시가 총액은 500 억 달러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지만,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시가 총액은 1,200억 달러를 넘어 1,400억 중반 대를 자랑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20%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여기에 NBC가 더해지면 1,800 억짜리 회사가 되는데,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마지막 퍼즐인 공중파 까지 갖춰지는 것이므로 시너지 효 과가 더욱 생겨나 시총 2천억 달러 도 꿈이 아니다.
이렇게 보니 루퍼트 머독이 기를 쓰고 막을 만한 것 같다.
-그런데 말이지. 루퍼트 그 망할 놈이 자네 국적을 가지고 딴죽을 거는 모양이더군.
"역시 그런가요?"
-걱정 말게. 어차피 타임워너 넥 스트컴의 총회장은 100% 미국인인 레밍턴이잖는가. 대놓고 딴죽은 걸 지 못할 걸세.
대놓고 딴죽은 못 걸어도 이번처 럼 트집은 잡을 수 있다는 말이기 도 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죠."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보니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군!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일단 연 방 통신 위원회가 돌발 행동을 못 하게 잘 관리해 주세요."
본인의 국적을 문제 삼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민도 충분하게 한 상 태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테드 터 너였지만, 지은 죄(?)가 있어 캐묻진 못했다. 거기다 엄연히 미국 연 방 정부의 독립 기관을 관리해 달 라는 것도 재미있는 말이었다. 하 지만 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 이었다.
로비가 합법화된 나라가 미국이 었고, 연방 통신 위원회 위원들과 로비스트들이 접촉하는 것도 불법 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머독이 위원들을 구워삶은 것처 럼, 테드 터너도 충분히 할 수 있 었다.
게다가 명분과 실리 모두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담을 줄여줬다. 무엇보다 NBC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유니버설 -GE 컨소시엄보다 타임워너 넥스 트컴에 합류하는 걸 더 원하고 있 었다.
돈도 돈이지만, 합병 후의 비전 역시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월등했 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나, 미국 시민권을 얻 어야겠어."
유재원이 테드 터너와 전화 통화 를 하는 동안 곁에서 궁금증을 참 으며 기다리고 있던 티파니에게 폭 탄을 터트렸다.
"응? 시민권을?"
티파니에게 유재원이 테드 터너 와 투닥거리며 했던 대화는 재미있 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루퍼트 머독이 튀어나왔을 때는 살짝 놀라기도 했 다. 그와 동시에 유재원에게 해 줄말이 생각났었는데, 시민권이라는 말에 쏙 들어가 버렸다.
그만큼 유재원의 말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ID 그룹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세웠고, 기업 활동을 하면 서 수없이 많은 거물들과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유재원에게 은근히 미국인이 되는 걸 권유했다는 걸 알고 있다.
80억 전 세계 인류를 다 뒤져도 유재원과 같은 특별한 천재는 어디 에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니,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미국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두고 싶 었던 모양이다.
티파니 본인의 남편이라고 콩깍 지가 씌어서 80억분의 1의 천재라 보는 게 아니었다.
티파니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했고, 셰브롱에서 도 슈퍼컴퓨터를 운용할 정도로 전 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애정을 분리하고 냉철히 객관적 인 평가로 나온 결론이었다.
반도체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
어, 인터넷 분야의 발전은 유재원 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으니 말 이다.
"예전엔 아니었잖아. NBC 때문 에 생각이 바뀐 거야?"
"웅, 그런데 꼭 NBC 때문만은 아니야."
사실 유재원이 한국 국적에 각별 한 의미를 둔 것은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지금 말하면 믿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텐데, 21세기 초중반, 정 확하게는 2030년쯤부터 지구에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난다.
미국의 경우에는 허리케인 카트 리나 같은 건 예사였다. 그중에 최 고는 서부 대지진으로 촉발된 옐로 스톤 화산 지대의 분화였다.
최악의 시뮬레이션처럼 북미 대 륙이 가라앉은 건 아니었지만, 미 국 중부의 곡창 지대는 완전히 불 바다가 되어 버린다.
반면 극심한 기후 변화 속에서도 그나마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한 게 동아시아였다.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피해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메가톤급 태풍이 한두 개 찾아오긴 했지만, 국토가 화산재로 거덜난다 거나 해수면 상승과 쓰나미로 나라 자체가 사라진 동남아시아, 유럽과 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당연히 지구 곳곳에서는 기후 난 민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골치를 앓게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느슨 하게 굴러가던 국적법이 180도 달 라졌다.
특히 국적을 버렸다가 다시 돌아 오려는 얌체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입국 거부라는 철퇴를 내렸다.
여기에 덤으로 성공을 목전에 두 고 거꾸러졌던 회귀 전 유재원이었 기에, 성공과 인정에 목말라 있었 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한국 국적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티파니를 비롯한 미국 식구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 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 유재원이 최근 생각이 바뀐계기는 바로 최재영의 셋째 때문이 었다.
최씨 일가에 대해서는 웬만해선 접촉도 하지 않았고, 일성전자를 넘겨받는 것도 정교하게 설계해서 최대한 조심했다. 그런데도 셋째가 태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사업가의 기질이 훨씬 크 게 발휘되고 있지만, 유재원은 본 래 프로그래머였다. 머릿속으로 변 수를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행동하는 게 특기였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게 먼저가 아님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된 것 이다.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직도 30년이나 먼 미래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데, 30년 뒤를 생각해 선택지 하나를 봉인하 고 있는 건 손해라는 걸 깨달았다.
좀 더 유연하고 과감한 선택도 필요한 법이다.
"당장 뽑아 올까?"
티파니는 미국 시민권이 테이크 아웃 커피라도 되는 것처럼 신청만하면 나올 듯이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랬다. 미국 시민권을 얻는 방법 중 하나가 바 로 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었으 니 말이다.
결혼 그리고 기간 등을 고려해 시민권을 내주는데, 유재원의 경우 엔 그냥 신청만 하면 되는 상태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
마지막에 와서 또 망설이는 건 아니었다.
단지 미국 시민권 취득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부모님께 먼저 알려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최강욱을 비롯한 지인들에게도 먼저 말은 해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광일 커뮤니케 이션 총괄 이사와 통화도 해야 한 다.
김광일을 통해 통일국민당과 소 통 증이었는데, 혹시 정치적인 해 결책으로 이 문제가 풀릴 수도 있 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집에 가자. 디디가 너무 기다리겠어."
조금 지체되었던 입국 절차를 빠 르게 거친 후 디디가 기다리고 있 는 집으로 움직였다.
공항 입국에서부터 중대한 사건 을 겪은 유재원이었다. 집에 오면 한숨 돌릴 줄 알았다.
하지만 사건은 유재원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설 연휴 동안 조용히 있던 중국 이 일을 터트렸다. 눈에는 눈, 이에 는 이처럼 대규모 보복 관세를 들 고 나왔다.
사이버 911 테러가 미국과 중국 의 경제 전쟁으로 비화되는 건 당 연하다 할 정도로 예정된 순서였다.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 은 아프가니스탄과 확실히 다른 나 라였으니 말이다. 특수전 병력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한다거나, 미사일 세례나 폭격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아프가니스탄과 핵보 유국에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중국은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911 테러로 눈이 확 돌아 간 미국 정부는 중국을 상대할 때 에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을 줄 알 았다.
중국의 덩치가 웬만큼 커도, 미 국의 압도적인 힘이 있으니 겁을 좀 주면 사이버 911 테러를 계획하 고 실행한 범죄자를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처럼 안일했던 생각이 달라지 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