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1화
다음 날은 더 심해졌다.
온종일 뉴스 프로그램만 하는 CNN이었으니 중국 관련 소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시청률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반 응이 오자 당연하다는 듯 경쟁사들 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정한 뉴스, 균형 잡힌 뉴스, 폭스 뉴스입니다!
"푸하하!"
오랜만에 폭스 뉴스에 채널을 맞 췄던 유재원은 뉴스 시작과 함께 나온 폭스 뉴스의 캐치프레이즈 덕 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공정? 균형?
폭스 뉴스의 보도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가지 요소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동의하는 바 였다.
자극적인 매운맛 뉴스로는 그 어 디에도 지지 않는 폭스 뉴스까지도 중국 크래커로 인한 피해 사례를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건강엔 좋지 않아도 자극적인 게 당기는 것처럼 폭스 뉴스에 네티즌 들은 더욱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
폭스 뉴스도 이에 반응하며 중국 의 치부를 들추는 일에 더욱 열심 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늘 그 이상이 네."
폭스 뉴스를 보면서도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중국발 해킹에 대 해 공포심이 점점 늘어나는 미국이 었지만, 그래도 폭스 뉴스는 정도 를 넘어갔다.
지금 폭스 뉴스에서는 중국산 전자 제품에 해킹 전용 칩이 심어져 있다느니 하면서 다리미를 예로 들 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다리미를 콘센트와 연결하면 와 이파이 칩이 작동되어 암호화가 설 정되지 않은 무선 인터넷을 타고 스팸 메일을 뿌린다고 한다.
도시 괴담 수준의 뉴스를 보면서 유재원은 혀를 찼다.
아직은 무선 인터넷 칩이 비쌀 때라서 중국산 다리미보다 비쌀 텐 데, 이걸 겨우 스팸 메일을 보내는 데 쓴다니 폭스 뉴스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유재원 에겐 밑질 게 없는 일이었다.
냉정히 따져 보면 해킹이나 크래 킹에 대해 경각심을 넘어 공포심까 지 갖게 될 필요까진 없다. 운영 체제의 보안 시스템의 지침을 잘 따르고, 이상한 사이트에 자주 접 속하지만 않으면 웬만해선 다 막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해킹이나 크래킹으로 평범한 이들의 삶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이렇게 과도 하게 부풀려진 공포심은 그대로 뉴 스콥과 머독을 향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유재원이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 이 폭스 뉴스는 다리미 해킹을 넘 어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의 보안성 까지 걸고넘어지는 중이었다.
"또또, 시작이네. 기승전 ID 그 룹이야."
시작은 중국 해킹인데 이젠 유재 원과 ID 그룹 비난으로 이어졌다.
저런 식의 가짜 뉴스, 억지 뉴스를 계속 보는 것도 짜증 나는 일이 었기에 유재원은 텔레비전을 꺼 버 렸다.
테드 아저씨가 어서 빨리 일을 시작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 득했다.
그로부터 10일 후.
-개자식이란 말도 아까운 놈이었 어!
"테드 아저씨, 진정하세요."
생각보다는 며칠 늦어졌지만, 드 디어 기다리고 있던 테드 터너 아 저씨의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의 테드 터너는 지금 껏 유재원이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분노를 토해내는 중이었다.
-진정이 되나? 그 자식 때문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소녀가 죽 었어!
테드 터너의 말처럼 안타까운 일 이 있었다.
연초에 영국에서는 한 소녀가 유 괴되었고, 사건 발생 후 한 달쯤 뒤에 싸늘한 시신으로 가족에게 돌 아왔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세계적 으로 보자면 매일 벌어지는 강력 범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 뉴스콥이 연관 되어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 제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테드 터너는 유재 원으로부터 단서 하나를 듣고서 해 당 사건과 뉴스콥의 은폐되었던 연 결고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 를 말리지 말게! 이건 비즈니스 따 위로 풀어낼 일은 절대 아니니 말 이야!
그렇게 전화를 끊은 테드 아저씨 는 뉴스콥과 머독을 향해 미친 황 소처럼 돌진했다.
-뉴스콥은 살인 기업! 입에 담기도 싫은 그 인간은 살인 교사범!
과연 테드 터너였다.
영국의 모 신문사 앞에서 긴급 기자 회견을 펼친 테드 터너는 다 짜고짜 살인을 언급하며 거대한 파 문을 일으켰다.
테드 터너의 이름값을 믿고서 이 자리에 나온 기자들과 취재진은 처 음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 다.
뉴스콥이 살인 기업이라니.
입에 담기도 싫은 그 인간이라는건, 테드 터너와 오랜 앙숙 관계인 머독이 틀림없는데, 살인 교사라니.
두 사람이 세계적인 앙숙 관계라 고 해도 이건 너무나 정도를 나간 소리였으니 말이다.
"저기, 터너 부회장님, 다짜고짜 그런 소리를 하면……
오죽하면 취재진 사이에 있던 기 자 중 하나가 손을 들고 이의를 제 기할 정도였다. 물론 이들은 테드 터너가 배경 삼아 서 있는 세계의 신문이라는 주간 신문사에서 나온 취재진이 었다.
테드 터너는 기자 회견을 청할 때 세계의 신문도 빼먹지 않았고, 세계의 신문도 본인들의 코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몇 명이 취 재를 빙자해 나온 것이었다.
"다짜고짜? 마음이 급해서 본론 부터 튀어 나갔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사건의 전모를 알 게 된다면 잠시 후에는 나처럼 뉴 스콥과 그 작자를 비난하게 될 거 라 확신합니다."
살인 기업이니 살인 교사범이니 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테드 터너였지만, 그렇다고 흥분해서 막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지극히 냉정한 상태였고, 말하는 것도 조리가 있었다.
"내 뒤에 있는 세계의 신문이라 는 주간지 신문사가 일으킨 상상도 못 할 사건을 알려 드리죠."
세계의 신문.
영국의 신문사로 그 역사는 1843 년 시작되었으니 무려 159년이나 되는 전통의 신문사였다. 지금은 뉴 스콥의 자랑스러운 일원이었다.
"그 전에 알아야 하는 건 한 소 녀의 비극입니다. 그녀는 유괴 사 건에 휘말렸고, 결국 싸늘한 시신 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요."
구름처럼 모여 있던 이들은 테드 터너가 무슨 사건을 언급하는지 바 로 깨달았다.
미국과 같은 수준의 앰버 경고는 아니어도 영국 역시 유괴 범죄는 인지되자마자 속보로 전하는 체계 가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초기에 제대로만 수사를 했다면 구해낼 수 있었지만, 누군 가의 방해로 인해 수사에 교란이 생겨 실패했다는 겁니다. 그 방해 방법도 불법적인 도청과 해킹이었 다는 게 더 큰 문제지요!"
유괴된 소녀는 천신만고 끝에 집 에 연락을 했었다.
그런데 소녀의 집에는 도청이 진 행 중이었고, 그로 인해 혼선이 생 기는 바람에 경찰은 단순 가출 정 도로 파악했다.
심지어 소녀가 사용 중이던 메일 도 갱신되며 열람하였다는 표시가 떠 경찰은 단순 가출에 확신을 품 었고, 수사도 미적거렸다.
물론 이메일 역시 컴퓨터 해킹이 일어난 것인데, 영국의 경찰은 이 것도 대충 넘겨 버렸던 것이다.
"나는 수사에 치명적 오판을 하 게 만든 도청과 해킹을 저지른 곳 이 바로 내 뒤에 있는 세계의 신문 이 저지른 것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악마도 사표 써야 할 만큼 사악한 지시를 내린 이가 뉴스콥의 최고 경영진이라는 사실 역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테드 터너는 뒤가 없는 사람처럼 돌진했다.
"어제 폭스 뉴스를 보았습니다. 눈과 귀가 썩는 것 같아 1분도 못 참고 돌려야 했지만, 참으로 가관 이더군요. 해킹이니 크래킹이니 하 며 중국을 비난하고,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로는 단순한 자 극적 보도를 위해 자신들은 태연하 게도 도청과 해킹을 저지르고 있었 다는 거 아닙니까? 자극적 보도로 만 끝났으면 저 역시 원래 그런 회사라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엔 사람이 죽었습니다!"
테드 터너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취재진들 사이에 경악이 서렸다.
특히 무슨 일인가 나와 봤던 세 계의 신문 사람들은 새파랗게 질려 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취 재진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을 동정 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테드 터너가 증거들이라며 도청 과 해킹에 대한 구체적인 문건을 흔들었던 탓이다.
유재원으로부터 단서를 듣고서
그간 열심히 파헤쳐 모은 귀중한 증거들이었다.
이걸 손에 넣기 위해 그간 테드 터너가 들인 노력은 말도 못 할 정 도였지만, 구름처럼 몰린 취재진들, 특히 세계의 신문에서 나온 녀석들 이 새파랗게 질린 모습을 보니 그 노고가 거짓말처럼 풀렸다.
"저는 이 중거를 즉각 영국 경찰 에 제출할 것이고, 뉴스콥의 그 인 간과 세계의 신문 기자들을 고소할 겁니다! 이 발표를 들으신 영국 시 민들께서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 달라고 경찰과 정치권에 최대의 압력 을 넣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다시 는 이번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테드 터너는 수십 년 묵혔던 체 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을 느꼈 다.
곧이어 바로 준비된 차를 타고 사건의 관할 경찰서로 이동해 고소 장과 증거들을 제출했다.
그 모습을 기자 회견장부터 따라 온 기자들이 치열하게 찍었고, 실 시간으로 보도되었다.
뉴스콥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순 간이었다.
-황색 저널리즘의 끝은 어디인 가!
-159년 전통의 신문사 생존 비 법은 도청과 해킹!
-영국 정치권, 있을 수 없는 일!
―블레어 총리, 철저 수사 지시!
-뉴스콥, 사건 전모 파악 중, 경 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
-뉴스콥 머독 회장, 불법적 지시 내린 적,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어!
테드 터너의 이름값에 사건의 심 각성까지 더해져서,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영국은 난리가 났다. 도청과 해킹을 벌인 세계의 신문에 는 항의 전화가 폭주했고, 기자들 은 취재를 나가길 꺼려할 정도였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한국의 저널리즘도 정상은 아니 었다. 하지만 세계의 신문사가 저지른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였다.
오죽하면 바다 건너 미국의 폭스 뉴스도 대번에 논조가 바뀔 정도였 다. 매일같이 중국의 해킹 사례를 거들먹거리며 공포심을 조장하던 폭스 뉴스였다.
그런데 세계의 신문 스캔들이 터 지고 나서 해킹 이야기가 싹 사라 졌다.
해킹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게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임을 자각한 것이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 보겠다던 뉴스콥 경영진은 침묵을 이어 나가 고 있었다. 심지어 테드 터너의 입 담에 밀리지 않는 머독의 독한 입 도 꿀을 먹은 것처럼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테드 터너가 제 시한 증거들이 워낙 강력했고 직접 적이었던 탓이다.
바로 세계의 신문사에서 피해자 의 집에 도청과 해킹을 직접 수행 했던 이의 자백과 물증이었으니 말 이다.
이건 유재원도 신기한 일이었다.
테드 터너가 뭘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 어떻게 회유를 한 것인지 몰라도 현장에서 직접 도청과 해킹 을 저지른 이가 작업 결과물과 상 부로 올린 보고서, 지시 받은 내용 들을 싹 정리해 내놓은 것이었다.
거기엔 머독 일가의 음성도 있다 고 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스모킹 건이었다.
며칠 후.
영국 검찰들이 본격적으로 움직 이며 착수에 들어가자 잠깐 소강상 태가 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었어. 일찌감치 그놈의 위선적인 가면이 벗겨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었는데, 참 안타깝군.
테드 터너의 목소리도 덕분에 평 소의 톤을 되찾았다.
머독과 관련된 일이면 사람이 달라지는 테드 터너였고, 이번 도청 해킹 사건에서는 특히 더 심했다.
아무래도 희생자가 있었고, 뉴스 콥의 불법성이 명확한 탓에 특히나 열을 올렸다. 틈만 나면 매스컴 앞 에 나왔고, 뉴스콥과 머독을 신랄 하게 비판했다. 아니 비판 정도가 아니라 인격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 았다.
평소 같으면 바로 반격이 들어오 고 여러 가지 제약도 걸렸을 텐데, 이번 사건은 반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테드 터너도 날뛰었다.
"인과응보라고 하죠."
다행히 오늘 테드 터너는 많이 차분해진 상태였다.
그동안 눌려 있던 걸 다 풀어내 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모양이 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