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4화
우선 전쟁은 불가능했다.
국지전이든, 전면적 핵전쟁이든, 그 어떤 양상의 전쟁이든 중국의 승산은 0%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중국은 10년 전과 달리 잃을 것도 많았다. 전쟁은 애 초에 선택할 수 없는 카드였다.
그러면 전쟁에 준하는 대응을 해 야 하는데, 그 어떤 것도 유효한 게 없었다. 고심해 나온 카드를 중 국이 꺼낼 때마다, 미국은 훨씬 크 게 반격했다.
한반도의 평화는 중국의 용인 없이 정착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다고, 북한을 자극해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개발의 탈을 쓴 우주 개발 계획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미국은 중국의 해외 비자 금 동결 카드를 꺼냈다. 크래킹 범 죄 자금의 은닉 계좌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말이다.
여기에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대만과 군사 협력 체계 강화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중국은 대만 역시 최대한 빨리
되찾아 와야 할 중국의 일부로 생 각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정중 앙으로 겨냥하는 건 홍콩이 아니라 대만이 었다.
그렇기에 대만의 군사력 강화는 중국 수뇌부가 기겁할 일이었다.
"당장 난징군구 해군을 움직여 대만을 압박하겠습니다! 동시에 로 켓군을 움직여 우리의 미사일 전력 을 과시하는 실사격 훈련도 실시하 겠습니다!"
후진타오의 채근에 중국 인민 해 방군 중앙 군사 위원회의 국방부장이 큰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나 현 역 군인답게 강대강의 전형적인 전 략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후진타 오 주석은 짧고 굵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에 하나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대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 다.
대만이 끌어들인 미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 러자 강하게 들고 일어났던 국방부 장의 기세는 절로 꺾였다.
지금의 시계가 2020년쯤에 위치 하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인민 해방군 전력의 현대화 사업 도 끝났을 터였고, 해군의 수상함 전력과 각종 미사일 전력도 고도화 되었을 테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중국의 경제력이 미 국 턱밑까지 쫓아와서 충분히 자웅 을 겨룰 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테 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2020년이 아닌, 2002년이었다.
개혁 개방으로 중국의 체력이 나 아졌지만, 미국보다 앞서는 건 하 나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인 핵폭탄 만 해도 중국은 겨우 500기를 넘기 는 수준이지만, 미국은 수천 기가 있다. 이것도 핵감축조약에 따라 줄이고 줄인 물량이었을 정도다.
무엇보다 차이가 나는 건 질이었 다.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중 국의 미사일은 숫자가 더더욱 적었 고, 정밀도에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의 자랑인 동풍 미사일이지 만, 후진타오를 비롯한 수뇌부는 동풍 미사일의 성능에 대해 자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보다, 주석 동지. 인민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이 소식이 무분 별하게 유통되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진 공안부장의 말에 다들 고 개를 끄덕였다.
"인민의 눈과 귀를 가리자는 말 인가? 2차, 3차도 예고된 상황인데 그게 가능할 것 같나?"
공안부장의 말에 후진타오가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2020년쯤에 들으면 퍽 웃기는 말이었다.
그때가 되면 중국의 언론은 공산 당 관영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디어의 흐름 자체를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었고, 여론 역시 공산 당 주도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혁 개방에도 벅 찬 상태인지라 장악력이 부족했다.
더욱이 인터넷이라는 세상은 아 직 공산당의 검열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곳이었다.
"적어도 우리가 먼저 부패한 간 부들을 처리하며 발표해야 하지, 미국이 국내의 여론까지 주도하도 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동결한 계좌마다 수천만 달러, 수억 달러가 쌓여 있 었다. 미국 공인 불법 자금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게다가 계좌의 주인들은 반 이상 이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었다.
그런데 이 리스트를 현미경을 통 해 보듯 자세히 들어가면 이상한 뉘앙스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 다.
리스트의 뒤로 갈수록 큰돈이 담 긴 저수지 같은 계좌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있는 계좌들은 후진타오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상하이방 사 람들이 대다수였다.
중국에서 경제가 제일 발달한 상 하이를 근거지로 하는 계파였는데, 그만큼 뒤로 받는 돈도 많았던 모 양인지 깜짝 놀랄 만한 액수였다.
"흐음."
덕분에 후진타오 주석은 최측근 인 공안부장의 말에 담긴 속뜻을 바로 이해했다.
미국의 해외 금융 계좌 동결을 계기로 정적들을 숙청하자는 이야 기였다. 구도도 좋았다. 인민을 좀 먹는 부패 범죄자에게 철퇴를 내리 고, 그들이 착복한 자금을 다시 인 민에게 돌려준다는 아주 바람직한 모습으로 설계하기에도 딱이었으니 말이다.
이를 잘 이용하면 전대 주석인
장쩌민의 정식 후계자를 자처하는 상하이방의 핵심을 다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좋소. 바로 실행하시오."
다만 꺼림칙한 것 한 가지는, 1차 동결 리스트를 이런 식으로 만든 미 국의 진의였다.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후진타 오 주석은 타는 목마름에 차를 마 셔야 했다.
뱃속은 불이 들어 있는 것처럼 탔고, 목은 모래가 걸린 것처럼 껄 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발표한 동결 계좌들은 어떻게 보면 잘 만 들어진 살생부였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처럼 쳐내고 싶 은 사람들만 잘 모아 두었다.
오죽하면 미국이 이쯤해서 그만 합의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처럼 보 일 지경이다.
'내부에 미국과 내통하는 밀정이 라도 있는 건가?'
규격 외 존재인 유재원의 능력을 모르니 나올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 다.
사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앨 고어 대통령은 물론 CIA, NSA 등 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해당 리스 트를 본인들의 정보 수집 능력으로 만든 것으로 착각 중이었다.
물론 국제 금융 전산망을 실시간 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건 미국 의 능력이었지만, 거기에서 후진타 오 주석의 정적들의 비자금 리스트 를 정확히 추출할 수 있었던 것은, 유재원의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유재원도 해당 리스트를 매우 쉽 게 얻었다.
바로 인터넷에서 말이다.
미국은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기밀문서를 해제하는데, 21세기 중 반쯤에 풀린 기밀 중 하나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해외비자금 계좌 리스트였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 중국인 만큼 스케일도 대단해서, 3차에 걸 쳐 풀린 문서에는 수만 건의 계좌 가 있었고, 누적 액수만 해도 조 단위를 훌쩍 넘었다. 그것도 위안 화가 아니라 미국 달러 기준으로 말이다.
당시에는 다 폐기된 계좌였고, 계좌의 주인들도 대부분 죽은 상태 였다. 공개로 전환되고 나서도 후 폭풍은 없었지만, 지금은 모두 팔 팔한 현역이었다.
후진타오를 비롯한 수뇌부가 미 국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갑자기 인터폰이 긴급히 울렸다.
"무슨 일인가?"
-주석님! 긴급 사태입니다. 일본 자위대 군함이 댜오위다오를 침범 했고, 우리 어민과 어선을 나포했습니다!
"뭐라? 일본이?"
미국의 제재 리스트를 가지고 어 떻게 상하이방 놈들을 쳐낼지, 즐 거운 고민 중일 때, 폭탄이 터졌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 일본은 센카쿠 열도로 부르는 곳은 대만 섬과 오키나와 제도 사이의 동중국 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 어진 제도였다.
중국, 대만, 일본이 각각 영유권 을 주장하고 있었고, 일본이 실효 지배를 하는 지역이었다.
중국은 언젠간 되찾아 올 영토였 고, 중국의 간 큰 어민들은 씨가 말라 버린 중국 근해에선 고기가 잡히지 않기에 센카쿠 열도에 들어 가 고기를 잡는 일이 종종 벌어졌 다. 일본은 그런 중국 어선을 쫓아 내기 위해 자위대를 배치했다.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였는데, 지금은 정도가 심했다.
당연히 후진타오는 불같이 화를 내려다가 순간 움찔했다. 일본 뒤 에 또 미국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면 인민 해방군 해군으 로 충분히 밀어낼 수 있었다. 수상 함의 배수량이나 무장 수준에서 차 이는 나지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본을 밀어내면 미국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 켜진 것이다.
미국이 대만과 급속도로 가까워 지는 것부터, 일본?한국은 물론, 심 지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특사로 간다는 북한까지도 심상찮은 움직 임이다.
태평양 방면의 대중국 포위망이 착착 갖춰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 게 일어나는 후진타오 주석과 수뇌 부였다.
동시에 더 늦기 전에 악순환을 단번에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모 두의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의 위기감은 대단했 다.
만약 여기서 다시금 강공책을 펼 친다면, 2차로 나올 제재 리스트에 등재될 이들은 후진타오 본인 그리 고 본인이 속한 파벌인 공청단의 주요 인사들이 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부패하기로는 상하이방이나 공청단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건 누 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최후의 통첩이나 다름 이 없었다.
2002년 6월이 되었다.
월초부터 굵직한 월드 뉴스들이 쏟아졌다.
-미국 NBC, 최우선 협상자로
타임워너 넥스트컴 선정!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ID 테 크놀로지 상장 승인!
시작은 NBC 건이었다.
NBC 인수전은 머독이 떨어져 나가면서 유니버설-GE 컨소시엄의 추진력이 붕괴되었다. 자연스럽게 유재원이 최우선 협상자로 선정되 었고,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총회장 레밍턴 스팅이 유재원의 대리인이 되어 인수 작업을 시작했다.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추진한 ID 테크놀로지의 상장도 순항 중이었다. 증권 거래 위원회에서 강도 높은 실사 작업을 펼쳤고, 그 어떤 오점도 없이 승인을 받았다.
IT 버블 충격으로 인해 대형 IT 회사에도 의구심이 드리워지고 있 었다. 애플사도 아이폰과 아이팟이 없었으면 된서리를 제대로 맞았을 거다.
하지만 ID 테크놀로지만큼은 예 외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실이 탄탄하 다는 게 준사법 기관인 증권 거래 위원회의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유니버설-GE 컨소시엄의 뒷배였 던 머독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일 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유니버설 -GE 컨소시엄도 무너지는 중이다. GE는 미적거렸고, 투자금을 약속했 던 거물들은 승산이 보이지 않으니 몸을 빼기 시작했다.
"게이츠 씨에게도 배로 돌려 드 렸어야 했는데."
유재원은 NBC 인수 관련 기사 들이 떠 있는 모니터를 보며 입맛 을다셨다.
기억력도 좋고 꼼꼼한 유재원이 었기에, 게이츠가 유니버설-GE 컨 소시엄에 참가했다는 걸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잔챙이였기에 딱히 무슨 조치를 하기에도 애매했다. 대신 본인에 대한 복수심이 있다는 건 이번 일로 확실히 확인되었기에, 정보팀의 체크 리스트에 게이츠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 했다.
-뉴스콥, 머독 회장 사퇴. 후임 에는 라클란 머독.
-머독 회장, 성실히 조사에 임하 겠다 밝혀.
-영국, 세계의 신문 폐간.
황색 저널리즘의 끝을 보여준 세 계의 신문은 문을 닫았고, 아내에 겐 지분을 아들에게는 왕관을 빼앗 기고 물러나게 된 머독은 영국에서 기나긴 법정 싸움을 준비했다. 죄 가 밝혀지자마자 형이 떨어지면 참 좋겠지만, 영국 법원의 일반적인 공판 기일을 보면 2, 3년은 걸릴 일이었다.
비단 영국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나라에서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 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 었다.
덕분에 인공 지능이 판검사의 역 할도 보조해 줬던 회귀 전의 한국 이 그리워지기도 한 유재원이다.
-한국, 국적법 개정안 통과! 1호 적용자 유재원 ID 그룹 회장.
한국에서는 국적법 개정안이 큰 논란 없이 개정되었다.
세금에 있어서는 논란 자체가 일 어날 수가 없었다. 그간 개인과 법 인 통틀어 수십조 원의 세금도 잘납부했으니 말이다. 병역도 마찬가 지였다.
덕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할 필요 가 없어졌지만, 씁쓸한 맛이었다. 원래 계획은 당당하게 의회 명예시 민증을 살아서 받는 것이었으니 말 이다.
"뭐, 인생이 100% 계획한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유재원은 훌훌 털고 다음으로 넘 어갔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