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28화 (628/1,007)

30권 12화

2002 월드컵의 한국팀과 미국팀 의 경기 양상은 치열했다.

조별 예선 최대의 이변을 써 내 려가고 있는 팀이 한국이었고, 미 국 역시 만만찮은 기세를 보이며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미국팀 역시 폴란드와는 비겼지만, 포르투갈에 맞서서는 승리하면서 대이변을 연 출 중이었으니 말이다.

폴란드는 오늘 다른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포르투갈과의 경기, 한국 대 미국전의 결과에 따라 진출 여 부가 결정되지만, 포르투갈은 2패로 조별 예선 탈락이 확정된 상태 였다.

미국팀은 소리아팀과의 경기에서 최소 비기기만 해도 골 득실 원칙 에 따라 조별 예선 통과였고, 패하 게 된다면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 한다.

한국팀의 경우엔 미국팀에 져도 진출인 상황이라 제일 마음이 편했 다. 그런데도 경기 양상은 그야말 로 전쟁 자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올해 초에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동계 올림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하나만이 전 부인 한국이었는데, 그 쇼트트랙에 서 안톤 오노라는 미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했다.

그것도 헐리웃 액션이라는 최악 의 반칙으로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실격을 당해야 할 사람은 안톤 오노인데 오히려 1위 였던 한국 선수의 반칙 실격으로 처리되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남북 관계 개선의 부작용으로 한 국에선 반미 감정이 점점 끓어오르는 중이었는데, 이 사건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참고로 반미 감정이 세진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웃기는 일이었 는데, 이는 북한이 정상 국가가 되 면서 운동권의 투쟁 노선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탓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의하는 운동권이 대학가를 중심 으로 세력을 키우고, 곧 국회 진출 까지도 모색해 볼 정도로 커지게 되는데, 지금은 북한의 대대적 변 화로 인해 그 프레임이 완전히 어그러 졌다.

심지어 북한과의 협력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낸 한국 정치 세력은 민 주자유당과 통일국민당이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도 남북 경제 협력을 잘 이어 나가고는 있었지만, 웬만한 사업들은 민주자유당과 통 일국민당이 깔아 놓은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88혁명의 주체였지만, 아직 원내 진출에는 성공하지 못한 운동권은 그야말로 철저히 소외되는 중이었 다.

결국, 이들의 돌파구는 반미였다.

주한 미군 퇴출이 핵심 구호로 떠올랐고, 6.25 때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문제도 급격히 조명되었 다. 여기에 주한 미군이 벌인 범죄 들도 이슈였고, 최근에는 매향리에 주한 미군의 새로운 실탄 사격 훈 련장을 만드는 것을 온몸으로 반대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골치를 아 프게 했다.

그나마 지금은 반미 감정을 격화 시키던 부시 대신 앨 고어가 미국 대통령을 하면서 악화일로를 걷진 않았지만, 그래도 국민들 사이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은근하게 깔린 상태였다.

과거에 비하면 반미 감정의 농도 는 옅어졌지만, 저변은 훨씬 확대 되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었다.

축구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축구 대표팀은 북한 선수 셋을 받아서 단일팀을 구성한 덕에 미국전을 준비할 때부터 투지가 남 달랐다.

덕분에 한국팀이나 미국팀 모두 전력으로 맞붙으면서 경기의 양상은 치열해졌다.

-아아아악! 클린트 매시스 날카 롭습니다! 막아야 합니다!

-클린트 매시스 슛, 아아아', 골 이네요.

그러다가 클린트 매시스의 선제 골로 미국이 1점을 앞서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응원전이 펼쳐졌던 연 천의 거대한 공터에선 극과 극의 반응이 터졌다.

제2 보병 사단은 휘파람을 불며 난리가 났고, 한국의 28사단 병사 들은 단체로 침묵에 걸린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훨씬 더 격한 응원이 한국으로부 터 터져 나왔다. 응원에서라도 질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실제로 얼마 나 응원을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서 상품이 걸려 있었기도 했지만, 이 미 웅원전 상품은 이들의 눈에 들 어오지도 않았다.

격하기 그지없는 응원 덕일까?

한 골을 먹었지만, 한국팀은 주 눅들지 않고 훨씬 격하게 공격을 이어 나갔다.

-아, 아크 안에서 황선홍 선수 넘어졌어요. 제프 아구스 선수의 반칙 선언됩니다!

-패널티 킥 선언됩니다! 키커로 이을용 선수가 나서네요!

슛!

-골! 골골골?! 골이에요!

"헉! 골이야?"

군인들을 배려해서 VIP석은 제일 뒤쪽에 마련되었지만, 대형 인피니 티 디스플레이 덕에 이을용 선수가 패널티 킥을 꽂아 넣는 화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국 쪽 응원석에 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동 시였다.

마찬가지로 유재원은 깜짝 놀랐 다.

원래대로라면 이을용 선수는 이 번 패널티 킥을 실축하게 되기 때 문이다. 그런데 골이라니.

"와우, 강력한 골이로군. 축하하 네."

축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담담하게 축하 를 해 주었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응원하는 티파니 역시 마찬가지 다.

유재원은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기쁘게 받으면서도 속마음은 떨떠 름했다. 축구팀에 이변이 생겼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통 감 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조별 예선 통과가 된 마당 에 체력 안배라도 하면 참 좋을 텐 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과거에 도 준결승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 시게 된 건 그 고질적인 체력 문제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경기 일정이 빡빡한 토너먼트에 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간 경 험도 처음이었으니, 체력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전의 전력 투사가 나중에 체력 문제로 비화될 것 같 았다.

"와아아! 소리아팀 파이팅!"

잠깐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유재 원이지만, 곧 골에 열광했다.

결승까지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지금처럼 무슨 이변이 일어날지 모 르는데, 그때마다 전전긍긍할 수는 없다.

이럴 땐 그냥 현재를 즐기면 된 다. 경기 스코어는 1 : 1로 한층 치 열해졌고, 그만큼 재미있어졌으니 말이다.

-경기 스코어 3 : 2.

한국과 미국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의 스코어는 박진감 넘치는 3 : 2로 끝났다. 여기서 3골을 폭격한 팀은 당연히 2002 월드컵 최대 의 이변인 소리아팀이었다. 두 골 을 넣은 미국도 만만찮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미국은 프로 스포츠의 나라로 야 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에 서 산업 규모의 프로 리그를 자랑 했다. 반면 축구는 존재감이 미미 했는데, 이번에 선보인 경기력은 과거보다 훨씬 발달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한국에 졌던 미국이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 나가면서 폴란드를 제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미 연합 응원전, 한국 승.

마찬가지로 응원전 역시 한국의 승리로 선언되었다.

사실 소리아팀이 미국에 졌더라 도 응원전에서는 한국이 이겼을 것 이다. USA만 단조롭게 외친다던가 함성을 지르는 것이 전부인 미군들 에 비해서, 28사단 장병들이 준비 한 응원전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시상식을 위해 클린턴 전 대통 령과 유재원 회장 부부를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시상식도 즉각 이어졌다.

사회자는 클린턴과 유재원 부부 만 언급했지만, 사실 무대에는 주 한 미군 사령관이나 한미 연합사 사령관을 포함해 6군단장을 비롯한 별들이 가득했다. 클린턴 전 대통 령의 무게감과 유재원의 무게감이 더해진 결과였다.

"한미 연합 제군들, 오늘 하루 즐거우셨습니까?"

마이크를 먼저 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물음에 함성이 크게 터졌 다.

상급자가 물어보면 무조건 좋은 대답이 나오는 게 군대였지만, 지 금 터지는 함성은 순수하기 그지없 는 환호였다.

징병된 한국 장병은 물론이고 자 발적으로 군에 들어온 미군들도 오 늘과 같은 축제는 처음이었으니 말 이다.

"오늘 응원전에서 하나 된 모습 을 보니 승패를 나누는 게 의미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준비된 선 물을 다시 가져갈 수는 없으니 발 표를 하겠습니다. 응원상에 한국제28사단, 우정상에는 제2 보병 사 단입니다."

승패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딱 둘만 참가하는 응원전에서 1 등, 2등 가리는 건 이상해서 상 이 름을 별도로 지어내긴 했지만 한국 이 이겼다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 었다.

-시상은 유재원 회장 부부가 하 겠습니다.

상을 받기 위해 28사단장이 직접 올라왔다. 주변에 별들이 워낙 많 았고 심지어 취재를 나온 기자들도 많은 탓인지 사단장은 군기가 바싹 든 모습이었다.

"축하합니다. 신나는 응원 잘 봤 습니다!"

유재원은 축하의 말과 함께 준비 된 트로피를 넘겼다. 티파니는 꽃 다발을 담당했다. 그리고 부상으로 커다란 종이판을 넘겼다.

종이판에는 여러 개의 로고가 담 겨 있었다.

보르도 HDTV, 세탁기, 건조기, 엑스박스 로고, 케이블 TV 로고였 다.

유재원이 준비한 응원전의 상품 이었다.

28사단장은 표정이 아리송해졌 다. 상품을 받는 건 좋은데, 수량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유재원 회장님은 전군 소대급 내무반에 보르도 HDTV, 클라세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 엑스 박스 게임기, 그리고 케이블 TV 이용권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다 이어진 사회자의 설명에 헉 하고 놀라 버렸다. '전군'이라는 단어에 제대로 들었나 다시 확인해볼 정도였다.

군 내무반에는 아직도 볼록이 브 라운관 TV가 자리하고 있었고, 심 지어 그 숫자도 한 대가 전부인 내 무반이 많았다. 1개 중대가 한 번 에 자는 통합 막사에 텔레비전이 딱 한 대뿐이라는 이야기다.

세탁과 건조 역시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 손빨래를 해야 했던 경 험은 지금도 짜증나는 기억으로 진 하게 남아 있었다. 더욱이 자기 빨 래만 하면 참겠지만, 남의 빨래까 지 해야 되는 경우엔 최악이었다.

이러한 군대의 경험이 생생한 유 재원은 첫 번째 머니 스웩으로 전 군 내무실에 소대별로 가전제품 세 트를 보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8사단을 넘어, 육군과 공군 해 군까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군 이란 단어가 확실히 박혀 있는 것 이다.

엄청나게 큰돈이 들 것 같지만, 그래 봐야 그 수량이 10만 대도 되 지 않는다. 여기에 여가 시간을 재 미있게 즐기라고 엑스박스도 넣었 다.

케이블 TV의 경우엔 전방 사단 들은 난시청 지역이 많아서 채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아예 유선을 깔아서 선명하게 TV 를 즐기라는 의도였다.

-이어 우정상 시상이 있겠습니 다.

우정상을 위해 준비된 부상도 비 슷했다.

보르도 TV와 엑스박스다. 다만 수량이 훨씬 적다. 더욱이 사재 물 품 사용이 자유로운 미군은 내무실 에 텔레비전을 가져다 놓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여튼 오늘 풀린 물품의 가격을 다 합친다면 대략 1,000억 원 정도 가 소요되는 일이지만, 그래 봐야 유재원이 이번에 맞은 돈벼락에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액수였다.

"재고는 충분하니, 당장 내일부 터 보급이 시작될 겁니다. 응원전 에 승리한 28사단부터 깔아 드리겠 습니다."

내일부터라는 말에 28사단 장병 들로부터 환호가 터졌다.

"아, 그리고 일반 초청객들을 위해 준비된 상품과 행운의 복권도 있으니 잘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꼼꼼하게도 연천의 학생들과 주 민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 유 재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군 복무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입 니다."

이제껏 나왔던 그 어떤 환호보다 더 큰 울림이 유재원의 마지막 말 에 터져 나왔다. 여기에는 한국이 나 미국의 차이도 없었다.

이후 단체 사진 촬영을 끝으로 2002 월드컵, 연천 한미 연합 응원 전이라는 긴 이름의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

-유재원 회장, 국군에 통 큰 선 물!

-국군 장병에게 최신 보르도 HDTV와 클라세 세탁기 보급!

미국전 승리로 조별 예선 3승 전 승으로 진출한 소리아팀의 뉴스가 제일 크게 보도되었지만, 유재원이 터트린 대박도 뉴스 꼭지에서 빠지 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선물의 규모도 엄청나긴 했는데, 시각적으로 새로 운 충격을 주는 것도 있었기 때문 이다. 바로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 롯해 주한 미군의 고위 장성들이 유재원에게 깍듯이 대하는 모습이 었다.

미국이라면 저절로 약자가 되는게 한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인들, 그것도 군의 고위 장성들과 전직 미국 대통령이 유재원에게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건 그야말로 낯선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앨 고어 대통령과의 친분은 기본 이고 작년 911 테러 당시 유재원이 미군과 협조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놀라운 공적을 세우도록 도와준 것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제아무리 직업 군인이 라도 은퇴할 날이 찾아오는 건 사실이었고, 은퇴 후 진로에 대해 미 군이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바로 유재원의 ID 그룹이었다.

ID 그룹도 하이테크 연구소를 통 해 방산 분야 진출을 모색하고 있 었고, 실제 실적도 올리고 있으니 은퇴 후 이보다 적합한 진로는 없 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선물 보따리를 조금 푼 것으로 상당한 파문을 일 으킨 유재원이지만, 본 게임은 이 제부터 시작이다.

조별 예선을 실컷 즐긴 유재원은 티파니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지만, 그 일이라는 게 보통의 일은 아니었다.

미국의 대표 공중파 방송국 NBC의 인수 서명식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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