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16화
"재원아!"
토토 생각에 잠겨 있는데, 티파 니가 옆에서 불렀다.
"응?"
"큰아버님이 부르셔! 어디에 걸 거냐고 말이야."
"아, 저도 당연히 소리아팀 승리 죠. 스코어는 2 : 1이 분명합니다."
전재준이 유재원의 조언을 수용 했는지, 아니면 히딩크 감독이 외 풍에도 뚝심으로 밀고 나섰는지 몰 라도 선발 리스트는 과거 유재원이 알던 것과 100% 동일했다.
그렇기에 2 : 1이란 승리에 과감히 베팅할 수 있었다.
"역시 재원이가 게임 볼 줄 알구 만!"
유재원의 말에 뒤쪽에 자리한 친 척분 누군가가 환호했다. 아무래도 유재원과 같은 스코어로 내기에 참 여한 분 같았다.
경기가 시작되면서 VIP 박스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오늘도 커다란 카드 섹션을 준비한 붉은 악마의 선창에 맞춰 대한 민국과 소리아팀 파이팅이라는 응 원 구호가 난무했다.
유재원 역시 스포츠 토토에 대한 생각은 수첩에 적어 두고 경기에 빠져들었다.
-충격! 거함 이탈리아 침몰!
-소리아팀 2 : 1 대승.
-설기현, 경기 종료 직전 기적과 같은 동점골!
-패널티 킥 실축 안정환, 연장 후반 골든골로 부활!
소리아팀이 이번에도 이탈리아를 2 : 1로 이겼다.
덕분에 이변은 없었고, 있기도 했다. 유재원 개인에겐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었던 반면, 승리를 믿 어 의심하지 않았던 이탈리아에겐 충격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 경기 때문에 짐 싸서 라스베 이거스를 떠나는 도박사들이 한 트 럭이라고 했을 만큼, 수많은 이들의 예측이 빗나간 경기이기도 했다.
더욱이 후반 88분에 설기현 선수 가 동점골을 넣기 전까지, 패널티 킥 실축에 실점까지 하고 있어서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렇지만 한국 팀의 선전에 기뻐 하는 이들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 다!
-스팀 쿠폰 할인율 50% 돌파!
2002 피파 월드컵 기념 쿠폰, 보 통은 소리아팀 쿠폰이라는 쿠폰엔 기본 할인 10%에 한국팀이 승리할 때마다 10%씩 할인율이 올라간다.
게다가 단일 게임 하나에만 할인 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장바구니째 로 적용되는 쿠폰이었던 만큼 효용 은 엄청났다.
이번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코 리아팀의 승리로 인해 할인율은 50%에 이르렀기에 기존 스팀 유저 들은 물론이고, 인터넷까지도 들썩 이기 시작했다.
16강을 기점으로 게이브 사장의 공격적인 스팀 운영이 시작된 것이 다.
-스팀, 여름 할인 페스티벌 시 작!
-원하는 만큼 담고, 클릭 한 번 으로 전체 할인!
-할인 금액 상한 없는 무제한 쿠 폰이 있다?
-50%는 기본, 소리아팀의 선전 에 따라 최대 80%까지 상승 가능!
게이브 뉴웰은 6월 초부터 시작 했던 이벤트를 마치, 이제 막 여름축제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게임 쿠폰이 신선 식품처럼 언제 만들었는지는 딱히 중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여름 축제라는 이벤트 를 시작하는 것처럼 선전해 게이머 들의 관심을 새롭게 모았다.
장바구니째로 할인하고, 할인 금 액 상한이 없다는 것도 적극 어필 했다.
덕분에 2CH.com을 비롯한 인터 넷 커뮤니티에서는 꼼수로 통했던 기법이 사실은 꼼수도 아니었다는것이 밝혀지면서 다채로운 반응이 나오는 중이었다.
자기만 알던 게 만천하에 알려졌 다고 실망감을 토로하는 네티즌도 조금 있었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역시 스팀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회사는 물 론 오프라인의 유통 회사들이라도 할인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할인 금액에 상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50% 할인이라도 최대 10달러니, 5달러니 하는 한도가 정해져 있었 으니,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미미했다.
그런데 스팀은 달랐다.
장바구니에 넣은 만큼 할인이 된 다.
300달러치 게임들을 담고 쿠폰을 적용하면, 지금 당장 150달러가 할 인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제한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계정당 딱 한 번 사용 가능하고, 같은 게임 타이틀을 중 복해서 구매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게임 카테고리만 적용되었고, 일반 응용 프로그램 카테고 리에 있는 것들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ID 오피스라든지, 안드 로이드 운영 체제의 게이밍 에디션 이상의 상위 버전, 3D MAX나 포 토샵, 오토데스크, 오라클 등등의 고가의 프로그램은 제외였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기본 수백 달 러에서 수천 달러에 이르는 고가였 고, 개인이 구매하기보다는 기업에 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었기에 제 외시켜 놓은 것이다.
설사 개인이 구매하더라도, 즐기는 게 아니라 영리 활동을 위해 사 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정당하게 대 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게 좋았다.
게임 전문인 스팀에 이런 고가의 프로그램이 등록되어 있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 스팀의 기 원이 ESD.COM에 있었기에 가능 했다.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계약 은 아직도 길게 남았고, 그들도 스 팀에서의 판매량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기에 유통 계약 연장 역시 긍 정적이 었다.
-안 쓰고 버틴 보람이 있다!
게이머들은 환호했다. 먼저 쿠폰 을 써 버린 이들은 아쉽게 되었지 만, 인터넷을 깊게 하지 않아 꼼수 (?)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대다 수 게이머들은 공돈을 주운 것처럼 좋아했다.
물론 가장 살판이 난 건 게임사 들이었다.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시작하지 만, 게임사들의 제 살 깎아 먹기식 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었다.
할인 금액은 온전히 스팀에서 책임을 지고, 할인 행사에 판매된 게 임에 대한 정산은 원금 그대로 원 래의 비율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이 다.
팔리는 만큼 이익인데, 심지어 오래전에 냈던 게임들까지도 팔리 는 중이었다.
50% 할인은 마치 거저 가져가라 는 것처럼 보였고, 장바구니째로 적용된다는 소리에 게이머들은 딱 히 구매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게임까지도 함께 넣어서 결제했기 때문이다.
달랑 게임 하나에만 쿠폰을 쓰면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스팀 유저들은 이번 기회에 세상에서 가장 젊은 부자인 유재원 의 지갑을 거덜내겠다는 각오로 여 러 개의 게임을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서 그걸 인터넷에 인증하 는 게 마치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유재원의 지 갑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회장님! 누적 판매 건수가 벌써 1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거기엔 일을 벌인 게이브 사장도 있었다.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하자 무시 무시한 기세로 게임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디지털 소프트웨어의 유통이 좋 은 건 이러한 판매량이 실시간으로 집계가 되기 때문이었다.
스팀 전체로 반나절 사이에 100 만 개의 게임 소프트웨어가 팔렸다. 숫자를 보고받은 게이브 사장도 깜 짝 놀라서 다급하게 유재원에게 연락할 정도였다.
평균 단가는 30달러 정도였으니, 매출액은 3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할인 쿠폰으로 유재원 이 감당해야 할 액수는 딱 반절인 1,500만 달러였다.
유재원이 대폭 올려 준 6천만 달 러의 예산 중에 1/4이 반나절 사이 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나름 소심한 구석이 있는 게이브 사장이 놀라서 유재원에게 다급히 전화할 이유는 충분했다.
-100 만이라고요! 100만!
모니터 화면 속 게이브 사장은 원 밀리언을 외치며 방방 뛰는 중 이었다.
"100만이요? 충분히 예상했던 수 치네요. 계속 진행하세요."
반면 전화를 받은 유재원은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여유가 넘쳐흘렀다. 예상한 범위 내였기 때문이다.
-진짜 괜찮겠습니까?
"네, 추세를 보면 내일까지 매출 액의 피크가 찍힐 거고, 그다음부 터는 하향세일 테니까요."
이번 타이밍에 맞춰서 스팀에 모 두가 기대하는 초 AAA급 신작 게 임이 등록되었다면 열기는 며칠 더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ID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신작 게임의 발표를 IDDC 2002로 맞춰 놓았기에 당장 새로 구매할 게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건 사실 이다.
열성적인 게이머들은 살 만큼 샀 고, 이제 정품 구매를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좋은 이벤트였다.
대신 이번에 스팀으로 정품 구매 라는 맛을 본 이들이 앞으로도 꾸 준히 게임을 구매해 줄 거라고 기 대할 수는 있었다.
크랙을 쓰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상당했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대신 클릭 한 방으로 설치도 쉽 고 구매도 간편한 스팀은 확실히 편리한 도구였다.
여기에 대대적인 할인 행사로 돈을 주고 사면서도 왠지 이득을 보 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 준다면 정품 사용 문화가 훨씬 빠르고 방 대하게 보급될 것이다.
"스팀의 IDDC 2002 준비는 잘 되고 있죠?"
-물론입니다. 스팀 운영팀과 게 임 개발팀은 완전 분리되어 있어서 이번 소란에도 아무런 영향 없이 잘 운영 중입니다. 이미 개발은 끝 났고 디테일만 손보는 중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ID톡 화상 미팅으로 연결된 게이 브 사장은 자기만 믿으라는 표정이 었다.
유재원도 믿고 싶었다. 스팀의 운영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이라면 이야기 는 달라진다. 숫자 3을 모르던 게 이브 사장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FPS를 보여준 하프라이 프 3탄은 영영 떠나 버렸고, 다른 게임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어요. 지금은 스팀 운영이 중요하죠. 물론 게임 개발도 절대소홀히 하진 마세요."
스팀이 너무 잘되다 보니 게임 개발은 손을 놔 버린 것인데, 유재 원은 절대 그 꼴을 두 번이나 볼 수는 없었다.
-예, 회장님!
각오가 바싹 선 게이브 사장의 모습에 유재원은 만족감 가득한 표 정으로 ID톡 화상 미팅을 종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재원아! 재원아! TV 뉴스 좀 봐 봐!"
업무 시간에는 웬만해서는 서재 에 오지 않는 티파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와서는 TV를 켜라고 했던 것이다.
ID톡 화상 미팅에 집중한다고 TV는 꺼놓고 있었다.
티파니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 아닐 테니, 유재원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소리아팀이 이탈리아를 꺾는 파 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프랑스를 꺾으며 뢰블레의 신화를 박살낸 것 으로 유명세를 얻은 세네갈도 조별 예선의 기세를 살려 스웨덴까지도 꺾으며 8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러한 월드컵 뉴스가 한창이었다.
"응? 별일 없는데?"
"CNN 말고 한국 방송을 틀어 봐야지!"
"아, 한국 일이었어?"
그러고 보니 TV에 맞춰진 채널 이 미국 CNN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미국 소식에 더 집중하고 있던 터라 텔레비전은 늘 CNN에 맞춰져 있었다.
티파니의 지적에 유재원은 KBS 로 채널을 변경했다.
텔레비전 화면은 역시나 월드컵 소식이었다.
대신 CNN과 달리 화면 하단에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중국전투기 방공 식별 구역 침범'이라 는 글자가 선명했다.
"중국이라니!"
중국을 외치는 유재원의 목소리 에 짜증이 확 실렸다.
북한과 주한 미군 문제를 잘 처 리하며 성공적인 월드컵으로 치러 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중국제 전투기가 한국의 방공 식별 구역을 무단으로 침입하 면서 다 된 밥에 재를 확 뿌린 것 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