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41화 (641/1,007)

30권 25화

안드로이드 S2에 담긴 혁신적 기 능과 아이템은 유재원이라는 IT 분 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자 아이콘 을 통해 전해졌다.

HD 디스플레이, M4 말고도 안 드로이드 S2에 담긴 혁신 역시 대 단했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통해 손에 착 달라붙는 터치감, 향상된 GPS 모듈로 보다 빠르게 사용자의 위치 를 잡아냈고, 웬만한 대도시는 다 지원하는 내비게이션 앱도 기본 탑 재되었다. 여기에 지문 인식 버튼은 요즘 집중 조명되는 보안과 편 의성을 동시에 잡았다.

다만 시대를 앞선 신기술을 모조 리 끌어다가 집적했기에, 그만큼 가격도 올라갔다. 스토리지 용량이 8기가바이트로 가장 적은 모델도 80만 원부터 시작했고, 최대 용량 인 32기가바이트 모델은 160만 원 이었던 탓이다.

그나마 메인스트림 모델이라 할 수 있는 16기가바이트 모델은 98만 원으로, 최악은 면했다.

더구나 이는 한국 공시 가격이었고, 미국의 경우엔 소득 수준이 높 은 덕에 한국과 같은 가격이라도 체감의 차이는 달랐다.

그렇지만 언론에서 집중 조명한 건 전보다 비싸진 기기값이 아니라, 마지막에 터진 유재원의 충격 발표 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금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대 립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존경심은 변하지 않는 유재원이 하 나 더를 외쳤다.

"현 시간부로 모바일 안드로이드운영 체제를 공개하겠습니다. 스마 트폰 업계는 우리 ID와 A사 단둘 이서 이끌어 가고 있는데, 이는 바 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드로이드 운영 체제가 단번에 대세 가 된 것은 PC의 저변이 그만큼 폭이 넓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소비자들은 보다 다채로운 선택지 가 필요한데, 단 두 개의 회사만으 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입니다."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의 공개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사안이었다.

풍성한 모바일 생태계는 소프트 웨어뿐만이 아니라 하드웨어 분야 에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안드로이드 S2가 극한의 하이엔드를 추구했다면, 서 드 파티 업체들이 만든 적당한 성 능의 제품은 중저가를 원하는 소비 자들을 위한 선택지가 되지 않겠는 가.

대신 서드 파티 업체들이 만든 제품에서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를 지운다거나, 애드센스를 막는 짓은 절대 금지다.

그것들이야말로 스마트폰 사업의 핵심 비즈니스였고, 유재원이 자신 있게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를 공개하기로 한 원동력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유재원은 현장에 남은 스태프들 에게 수고했다고 깊게 인사한 후 차에 올랐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퇴근 시간 의 자유로움이었다.

IDDC 현장 진행 스태프들은 2 일차 일정이 끝났음에도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 유재원은 먼저 자 리를 뜰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유재원에겐 아직 못 다 한 일이 남아 있었다.

유재원은 다시 안드로이드 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예, 회장님!

최강욱 부회장이었다.

"최 부회장님, 1차 보고서를 보 긴 봤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거든요.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그것은 바로 중고품 나라에 올라 온 기부 물품 사건의 전모였다.

-알겠습니다!

최강욱은 곧바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관련된 정보들을 실시간 으로 받아 보고 있었기에, 유재원 의 머릿속에는 당시의 상황이 마치 DVD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 생되었다.

몇주전.

한반도에서 월드컵이란 지상 최 대의 축제가 끝나고서 다들 일상으 로 돌아갈 때. 군대 역시 마찬가지 였다.

월드컵 기간이라고 해서 군대가 확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군대의 운영 방침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는 상태였고, 오히려 월드컵 기간에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대비한다고 평상시보다 엄중한 경계 태세를 유 지해야 했다.

특히 중국 전투기가 한국 방공 식별 구역을 무단으로 넘어온 때에 는 일선 군부대에도 비상이 걸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소리아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사병들에게 경기를 보여줬다. 최악에는 조그만 브라운관 텔레비전 하나에 100명이 넘는 중대원을 모아서 단체 관람을 하는 식이었긴 했지만.

소대원끼리 과자와 냉동식품을 모아 두고 대형 HDTV 앞에 모여 선명한 화질로 경기를 감상하는 건 군사령부와 같은 일부 부대에서나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다.

그럼에도 소리아팀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군대에서의 분위기도 무척 이나 좋았다. 실제 통계를 보아도 월드컵 기간 내에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는 건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월드컵이 군대에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 있었으니, ID 그룹 유재원 회장의 통 큰 기부였다.

소대별로 TV, 세탁기, 건조기 그 리고 엑스박스 게임기라는 가전제 품과 오락기기의 기부였다.

말로는 생색을 다 내놓고 실제 기부는 기약이 없이 미뤄지는 것도 아니었다.

국방부로부터 전군에 공문이 내 려와 가전제품을 설치할 자리와 수 도 시설을 마련하라는 통보가 내려 오고 나서, 며칠 지나지도 않아 수 만 대의 가전제품이 최전방에 뿌려 졌다.

거기엔 강원도 철원의 230연대

소속 독립 중대도 있었다.

230연대는 철책선을 지키는 부대 였는데, 담당 구역이 험준한 산악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일부 중대를 따로 빼 철책선 바로 밑에서 주둔하며 분기 별 순환 근무를 하는 식으로 임무 를 서고 있었다.

"참나. 봄, 가을엔 물도 안 나오 는데 무슨 세탁기람."

소대장 장택수는 방금 본부 중대 에서 걸려온 전화를 끊으며 투덜거 렸다. 말로만 들었던 유재원 회장의 기부 물품인 TV와 세탁기, 건 조기 그리고 게임기가 도착했으니 대대 본부에 와서 수령해 가라는 연락이 었다.

산골짜기에 있는 독립 중대였고, 그가 맡은 소대는 더 깊숙한 오지 에 자리하고 있어서 수돗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식수나 생활용수 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서 쓰는데, 비가 좀 오지 않으면 물이 나오지 않는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다.

"뭐, TV는 그나마 쓸 만하지만. 그런데 설치까지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부대 일지부터 작전 계획도 갱신 까지 서류 업무가 끝이 없는 장택 수는 투덜거림이 아주 자연스러웠 다.

하지만 ID 일렉트로닉스는 그럴 만한 사정이 안 됐다.

기부 물품 생산만으로도 정신없 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클라세라는 대표 브랜드로 전면 교체하면서 기 존의 재고품은 중국과 인도 등 제3 세계 국가에 초저가로 밀어냈다.

대신 클라세라는 한 차원 높은

제품을 JIT(주문이 들어오면 생산) 방식으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기부용 물품을 소매가 그대로 구매해서 기업 재정엔 하등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대규모 매출 이 생긴 것이기에 임직원들은 신바 람을 내며 생산에 들어갔다. 특히 나라 지키는 군인들에게 보급될 물 건이라고 해서 평소보다 훨씬 공을 들여 작업에 임했다.

과부하가 걸린 건 배송팀이었다.

물류팀이 일순 마비가 될 만큼

물량이 쏟아졌기에, 정신이 없었다. 원래 ID 일렉트로닉스의 배송은 배 송전문팀이 집까지 찾아가 완벽하 게 설치해 주는 방식인데, 군부대 에는 일손이 부족해 그럴 수가 없 었다. 더욱이 군부대에는 보안을 요하는 것도 많아서 민간인이 출입 하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그렇기에 사단 혹은 연대 같은 상급 부대에 대량의 물량을 가져다 주고, 해당 부대에서 이를 다시 분 배하는 방식으로 보급되도록 이야 기가 맞춰졌다.

소대장 장택수가 받은 전화의 정 체였다.

"김 상병! 두돈반 좀 꺼내 와라. 올 것이 왔다!"

장택수 중위는 바로 운전병인 김 상병을 불러 트럭을 준비시켰다. 제식 명칭은 K511 이지만 군대에선 그냥 두돈반이라 부르는 트럭이었 다. 화물칸 탑재량이 대충 2.5톤쯤 된다고 해서 두돈반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우와! 이제 우리도 HDTV도 보 고 손빨래에서도 해방되는 겁니까!"

눈치 좋은 김 상병은 바로 용무 를 알아보았다.

아무리 사회와 담이 쌓여 있는 최전방이라도 알음알음 들리는 소 문은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공문이 시끄 럽게 내려오고 있었기에, 이때쯤 올 거 같다는 느낌을 사병들도 다 받고 있었던 것이다.

1시간 후.

구불구불한 산길을 신나게 달려 대대에 도착한 둘은 장관을 보았다.

"우와!"

말로만 들었던 최신형 가전제품 이 대대 연병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에는 대형 트레일러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ID 로고가 선명한 ID 일렉트로닉 스의 대형 물류 차량이었다.

트레일러의 화물칸 윙도어가 열 려 있었고, 거기서 아직 내리지 못 한 제품들이 있었다.

ID 일렉트로닉스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화물을 내리고 있었고, 그 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대대 장병 들이 달라붙어 돕는 중이었다.

그 소란 속에서 장택수는 대대장 을 만나 경례도 하고, 인수인계 확 인서에 사인도 하면서 그가 속한 중대로 떨어진 가전제품을 인수받 았다.

말로만 들었던 보르도 TV와 클 라세 가전제품, 엑스박스란 게임기 와 건전하기 그지없는 게임 타이틀 들 각각 4세트였다.

두돈반에 이게 다 실릴까 싶었는 데, 군대에서는 안 되는 게 없었다. 레고블럭 쌓듯 빈 공간을 최대한 줄이며 탑재하고 다시 출발할 때까 지, 장택수와 김 상병은 밥 먹는 것도 잊었다.

장택수 중위는 처음 연락을 받았 을 땐 귀찮다는 투였지만, 그야말 로 공장에서 막 나온 새 제품을 받 으니 짜증은 저 하늘로 날아가 버 렸다.

장택수는 병사들과 함께 거들면 서 두돈반에 제품들을 다 싣고 중대로 출발하기 직전, 직속 상관인 중대장에게 전화로 연락했다.

"중대장님! 중위 장택수입니다! 우리 중대로 할당된 가전제품을 모 두 수령했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음, 아주 좋아. 그럼, 대대장님 관사로 와!

"예? 관사요? 거긴……

-무슨 말이 많아? 오라면 올 것 이지. 끊어!

"아, 네……. 충성."

장택수 중위의 기분은 중대장과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진창으로 떨 어졌다. 얼마나 극단적이었으면 운 전대를 잡고 장택수에게 귀를 기울 이던 운전병 김 상병이 눈치를 볼 정도였다.

"김 상병, 출발해."

"예!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아니, 대대장 관사로 가자."

"아, 네. 관사로 출발하겠습니다."

작대기 3개인 상병이면 관사로 가자는 말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 었다.

대대로 내려올 때만 해도 서로 대화가 많았던 둘은, 대대장 관사 로 갈 땐 말이 없었다.

두돈반 차량이 중대장 관사에 도 착하자, 화물칸에 실린 가전제품이 각각 한 개씩 내려졌다.

빈자리가 대대 관사에 있던 낡은 TV와 중고 세탁기로 채워졌을 땐, 욕이 절로 나왔다.

소대장 중 제일 짬이 낮은 2중대 에 그 낡은 TV와 세탁기를 내려줄 때는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장택수가 폭발한 건, 소대애들과 함께하려고 중고 게임 타이 틀을 사기 위해 방문한 중고품 나 라 사이트에서 국방부 마크가 선명 한 세탁기 물품을 보았을 때였다.

게시물에는 사진 하나와 연락처, 주소가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자신 의 부대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한 게 다른 곳에서 또 벌어지고 있다 는 걸 깨달았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장택 수가 사회에 있는 친구 여동생의 톡톡 계정을 빌려 유재원 회장에게 다이렉트 톡톡을 보냈다.

너무 짜증이 나 그 기분이라도 풀어야겠다는 1차원적인 생각, 군대 를 위해 큰돈 쓴 유재원 회장이 이 런 일이 벌어지는 걸 모르면 안 되 겠다는 생각, 그렇지만 제보한 게 밝혀지면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만 해도 장택수 중위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실제로 다이렉트 톡톡을 보내고 나서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며칠 지 나고 나서도 별일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장택수 중위가 철책선 밀어내기 근무에 투입되었을 때, 그의 부대 는 불시에 뜬 상급 부대 감찰로 뒤 집히고 있었다.

-이것이 회장님께 다이렉트 톡톡 을 보냈던 장택수 중위의 사정이었 습니다.

"그러면 중고품 나라에 올라온기부 물품은 또 다른 누군가가 빼 돌린 거로군요."

-예! 그런데 그건 장택수 중위의 부대보다 심각합니다. 사단장까지 연루된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유재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중대장이 간도 크게 기부 물품을 빼돌린 것도 엄청난데, 사단장이라 니.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될수록 점 입가경이다.

유재원은 군대에 대해 너무도 낭 만적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을 크게 반성했다.

이번 일은 절대 묵과할 수 없다! 다만 IDDC 2002가 진행 중인 상 황에서 몸을 뺄 수는 없었다. 일단 IDDC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티파니 에게 맡겨 놓는 게 좋을 것 같았 다. 티파니가 이렇게나 의욕적으로 유재원을 돕겠다 나선 건 처음이었 으니 말이다. 다만 유재원은 큰 기 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 의 일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티파니의 수완은 유재원 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티파니의 움직임은 세련되었고 그 결과도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0